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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PL)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무대 중 하나다. 클럽들은 매 시즌 팀을 보강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1억 파운드가 넘는 선수 이적료는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과연 돈을 많이 쓴 팀이 좋은 성적을 낸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프리미어리그가 막 개막한 시점에서, 이적료 지출이 최종 성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투자=성적’ 오일머니 팀들의 부흥이 보여준 공식
기본적으로는, 투자와 성적 사이에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존재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많은 자본을 가진 팀은 높은 몸값의 수준급 선수를 무리 없이 수급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팀 성적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이른바 ‘오일머니’로 불리는 석유 재벌의 어마어마한 투자에 힘입어 급격한 상승세를 탄 팀들이 여럿 생겨났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팀을 인수한 후 얻을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획득한 첼시, 만수르 등장 이후 1부와 2부를 오가던 팀에서 유럽 최강팀으로 발돋움한 맨체스터 시티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사우디 국부 펀드에 매각된 뉴캐슬 역시 UEFA 챔피언스리그(UCL) 진출, 잉글랜드 풋볼리그컵(카라바오컵) 우승 등의 성과를 이뤄내며 ‘투자=성적’ 공식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매체 ‘디 애슬래틱’은 스포츠 인텔리전스 기업 ‘트웬티 퍼스트 그룹(TFG)’의 연구를 인용하며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지출 합계와 승점 합계의 상관관계를 제시했다. 그 결과 세 시즌 동안 두 지표의 상관관계는 61%, 네 시즌 동안의 상관관계는 약 66%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투자가 담보된다면, ‘돈을 많이 쓰면 많은 승점을 얻는다’는 일반적인 상식은 일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 720억 쓰고 ‘우승’한 레스터, 1조 이상 쓰고 ‘12위’ 한 첼시
그러나, 익히 알 듯 축구는 항상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 영입한 선수가 ‘잭팟’을 터뜨릴 때도 있고,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발생시키고도 ‘먹튀’로 전락한 선수도 적지 않다. 이적료가 곧 선수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당장의 성적을 보장한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낸 사례가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동화 우승’이다. 당시 레스터가 지출한 이적료는 약 3,820만 파운드(한화 약 720억 원)에 불과했으나, 창단 이후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충격적인 이변을 연출했다. 우승의 주역 3인방으로 꼽힌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의 이적료를 모두 합친 금액이 114억이었다는 사실은 이적료와 선수의 활약이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엄청난 금액의 이적료를 투입했지만 실패한 시즌을 보낸 클럽도 있다. 2022-23시즌의 첼시는 무려 6억 3,000만 유로(한화 약 1조 250억)를 쏟아부었음에도 리그 12위에 머물렀다. 스털링, 쿨리발리, 포파나, 펠릭스, 무드릭, 마두에케, 귀스토, 엔소 등 21명의 선수를 영입하며 ‘폭풍 투자’를 감행했으나 영입생들의 부상과 부진, 조직력 문제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물론 현시점에는 당시 영입한 선수들 중 일부가 핵심 자원으로 도약했지만, 해당 시즌의 실패는 이적료 지출이 즉시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 돈은 불어나는데, 성적은 담보할 수 없다면?

최근 흐름은 더욱 흥미롭다. 위 자료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순위별 이적료 지출을 나타낸 그래프다. 상위권과 하위권이 지출 규모로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고, 높은 지출에도 중하위권에 머문 팀들도 여럿 보인다. 실제로 지난 시즌 1위 리버풀은 리그에서 가장 적은 이적료를 지출한 팀이었으며, 입스위치는 평균보다 많은 이적료를 지출하고도 강등당했다. 이적료 지출과 성적의 상관관계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프리미어리그의 전체적인 자본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전체 중계권료의 50%를 균등 분배하는 독특한 수익 배분 구조 덕에, 중하위권 팀이라고 해도 뛰어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많은 이적료를 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적료와 순위 간 상관관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제는 돈을 많이 투자하더라도 성적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금력을 가진 팀들의 목표는 결국 유럽대항전 진출이다. 그러나 유럽 무대의 티켓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 재정적으로 탄탄한 팀들은 많다. 막대한 이적료를 투자하고도 거센 경쟁 끝에 진출권에서 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중요한 건 ‘얼마’가 아닌 ‘어떻게’다
이제 프리미어리그에서 투자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지만,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치열해진 경쟁 속 같은 이적료를 지출하더라도 팀에게 필요한 선수를 골라 적당한 값에 데려오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브렌트포드는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PL에 정착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데이터 분석을 스카우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자체적인 알고리즘을 가진 데이터 분석 컴퓨터를 바탕으로 전력 분석, 선수 분석을 진행한다. 결국에는 팀의 전술적 접근에 적합한 선수들을 적은 이적료로 데려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4년간 브렌트포드의 승점당 지출 금액은 1,291,000유로(한화 약 21억 원)로, 같은 기간 3시즌 이상 PL에 머무른 팀 중 가장 적었다. 이러한 브렌트포드의 사례는 구단 운영진의 능력이 구단의 자금 규모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뛰어난 선수들을 쓸어 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도한 경쟁으로 많은 이적료를 지출하고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돈이 성적을 담보하는가?”라는 질문에 더 이상 “YES”라고 말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닌 ‘어떻게’ 쓰느냐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자본으로 굴러가는 단순한 머니 게임이 아니라, 각 구단의 운영 철학과 시스템이 충돌하는 무대다. 거액의 투자에도 실패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효율적 투자로 판도를 바꾸는 팀 역시 존재한다. 이번 시즌의 진짜 승자는, 막대한 이적료로 화려한 선수단을 갖춘 팀이 아니라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데려온 팀이 될 것이다.
글=‘IF 기자단’ 5기 김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