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IF 기자단>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IF 기자단>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구단을 축구 클럽이 아닌 투자 수단으로 본다며 비판받던 첼시의 구단주 토드 보엘리. 그러나 지난 시즌 첼시는 UEFA(유럽축구연맹) 컨퍼런스 리그(UECL)와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트로피를 모두 석권하며 반전을 이뤄냈다.

3년 전, 보엘리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뒤를 이어 구단주로 취임했을 때 많은 이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의 LA 다저스, 미국 프로농구(NBA)의 LA 레이커스를 소유한 사업가라는 점과 단독이 아닌 블루코(Blue.Co)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했기 때문. 이런 배경은 사람들의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첼시 팬들은 글레이저 가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클럽이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컨소시엄 인수는 여러 투자자가 관여하게 되면서 책임 소재가 분산되고, 수익 중심 경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글레이저 가문은 클럽을 인수한 뒤, 구단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해 재정을 악화시킨 바 있다. 첼시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로만이 이를 막고자 인수 조건에 삽입한 것이 ‘안티 글레이저 조항’.

보엘리는 조항 수용과 홈 구장 증축, 첼시 재단 지원을 약속하며 마침내 구단주 자리에 올랐다. 취임 직후 “유스를 발전시키고 최고의 선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해 첼시의 성공 역사를 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향후 운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구단주가 되자마자 대담한 변화를 시도했다. MLB에서나 볼 법한 대규모 리빌딩, 공격적인 유망주 투자, 초장기 계약까지. 이는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미국식 경영의 오만’, 재정적 페어플레이(FFP)를 우롱하는 행태“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성과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신반의 속에서도 이러한 결실을 가능하게 한 과정을 분석해 봤다.

# 익숙함을 버린 첼시, 낯선 재편의 시작

 

보엘리의 첫 이적시장이었던 2022-23시즌, 첼시는 무려 6억 유로(약 1조 387억 원) 넘게 투자했다. 이는 당시 유럽 구단 중 최다 지출. 과소비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무너져가던 팀을 살린 ‘응급 처치’와 같았다. 실제로 그 시절 첼시는 스쿼드 정리가 불가피했다.

코바치치, 캉테 등 주전 대부분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 여파로 경기력과 순위는 곤두박질쳤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첼시는 유망주 영입과 즉시 전력 보강을 동시에 추진했다. 쿠쿠렐라, 마두에케, 귀스토, 주앙 펠릭스, 엔조 페르난데스, 콜 파머, 카이세도 등 젊은 자원들이 대거 합류했다. 반면 루카쿠, 조르지뉴, 마운트 등 기존 자원 중에서 팀 분위기를 해치거나 전력 외로 판단된 선수는 과감히 방출했다.

그러나 축구계 인사들과 언론은 이러한 이적시장 행보에 물음표를 달았다. 영입한 선수들의 재능만 놓고 보면 미래가 빛나 보였지만, 성공을 장담할 카드는 아니었기 때문. 팬들 또한 유망주 위주로 재편된 스쿼드가 잠재력을 드러내고, 손발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2022-23시즌 첼시는 20명 이상 영입으로 비대해진 스쿼드 관리에 골머리를 앓았다. 여기에 네 명의 감독이 교체되는 혼란까지 겹치며 정상적인 운영도 어려웠다. 결국 당시 리그 12위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과도한 유망주 수집은 과유불급이 되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급격한 성적 부진은 팬들의 불만을 더 키웠다.

‘돈을 쓴 액수가 성적과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걸 몸소 보여준 보엘리. 지나친 유망주 영입과 잦은 감독 교체에 대해 사과하며 재기를 약속했다. 이후 반전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년. 아무리 갑부 구단이라도 거액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면 재정 부담과 스쿼드 정리로 숨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첼시는 곧바로 재정비를 시작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새로운 이적시장 접근법, 장기 계약이었다.

 

# ‘시간’을 무기 삼은 보엘리의 ‘선택과 집중’

보엘리가 이적시장에 관여한 뒤 나타난 변화는 바로 장기 계약이다. 최근 3년 사이 첼시는 여러 선수와 7년 이상 계약을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콜 파머(7년), 카이세도(8년), 주앙 페드루(7년) 등이 있다. 이런 계약 방식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활동량이 많고 부상 위험이 큰 축구에서는 이례적이었다.

장기 계약 전략 출발점은 UEFA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제를 피하는 데 있었다. 예컨대 2023년 기준 UEFA 규정상 이적료는 계약 기간에 따라 나눠 계산됐다. 첼시는 당시 무드리크를 6,200만 파운드(약 1,160억 원), 8년 6개월 계약으로 영입해 매년 지출을 약 730만 파운드(약 137억 원)로 줄였다. 이런 편법이 생기자, UEFA는 최대 5년까지만 분할 계산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바꿨다. 하지만 첼시는 여전히 장기 계약 전략을 고수 중이다.

이는 구단 전력 관리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는 끝까지 관찰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스쿼드를 정리했다. 또한 1군 기회가 부족한 선수들은 위성구단인 프랑스 리그앙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로 임대 보내 성장세를 지켜봤다. 풍부한 유망주를 갖춘 첼시는 핵심 전력을 구축하고, 부진한 성적 속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첼시는 이적시장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켓’ 기준, 최근 10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PL) 이적료 수입 1위를 기록했다, 총 14억 4,000만 유로(약 2조 3,200억 원)로, 2위 맨체스터 시티의 9억 2,200만 유로(약 1조 4,800억 원) 수입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일각에서는 보엘리가 축구를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첼시 전략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운영진은 장기간 ‘선택과 집중’을 거쳐 추려진 알짜배기 스쿼드에 확실한 전술이 스며들면 자연스럽게 성과가 나올 것이라 봤다. 그리고 그 변화는 서서히 드러났다.

# 런던의 자부심 더 블루스, 황금기의 막을 올리다

지난 시즌 첼시는 보엘리 체제 2년간 리그 성적이 (12위→6위) 신통치 않았고, 별다른 메이저 트로피도 들지 못했다. 지휘봉을 잡았던 투헬, 포터, 램파드, 포체티노 등은 반등의 발판을 만들지 못했다. 한층 젊어진 스쿼드에 새로운 전술적 색채가 필요한 시점. 작년 레스터 시티 FC를 승격시킨 지도력으로 주목받은 엔조 마레스카를 사령탑에 앉혔다.

마레스카의 전술은 원석 같은 인재들을 다이아몬드로 연마했다. 그는 점유율 기반의 후방 빌드업 축구를 추구하며, 선수들에게 빈 공간 침투와 효율적인 동선을 주문한다. 이를 통해 수적 우위를 확보하며 경기를 풀어나간다. 이러한 철학은 그간 축구 지능과 잠재력 높은 선수들을 모아온 첼시 스쿼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먼저 패스 능력과 체력이 뛰어난 양 측면 수비수 쿠쿠렐라, 귀스토를 ‘인버티드 풀백’으로 활용해 중앙 빌드업을 강화했다. 중원에서는 카이세도가 안정적인 수비력과 볼 차단 능력으로 중심을 잡았다. 또한 좌측면에서 뛰던 엔조 페르난데스는 8번(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으며 양질의 패스로 공격 전개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박스 안 움직임과 공격포인트 생산 능력을 끌어올렸다.

안정된 중원과 효율적인 전개 덕분에 ‘에이스’ 콜 파머는 공격을 주도할 수 있었다. 시즌 후반에는 기복이 있었으나 중요한 순간마다 최전방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특히 UECL 결승전은 2도움으로 경기 최우수선수(MOTM) 선정,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골든볼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유망주 성장, 보엘리표 장기 계약, 마레스카 전술의 조화로 4년 만에 무관을 탈출한 첼시. 3년 만의 챔피언스리그(UCL) 복귀와 ‘더블’을 달성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 시즌 중 하나를 기록했다. 유망주 중심의 ‘시간을 품은 투자’가 트로피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첼시 주전 평균 나이는 24세 안팎이라는 점. 앞으로 5년 이상 황금기를 이어가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올 시즌 합류한 선수들도 제 몫을 해냈다. 주앙 페드루는 클럽 월드컵 8강 전부터 출전해 3경기 3골로 기록해 팀의 우승에 이바지했고, 리암 델랍 역시 6경기 1골 1도움을 올리며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활약은 첼시의 공격력이 앞으로 훨씬 강해질 것임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대회 우승 상금 1억 1,460만 달러(약 1,587억 원)는 향후 이적시장에서 첼시가 또다시 큰 손으로 나설 여지를 남긴다.

불과 몇 년 전, 팬들은 클럽이 수익을 위해 유스 자원까지 팔아버린다며 낭만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커리어에 남는 건 결국 우승 트로피’라는 말처럼, 구단의 존재 이유는 우승. 첼시는 이번 시즌 그 이유를 증명한 셈이다. 나아가 모든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린 유일 클럽이라는 타이틀까지 품으며, 런던의 자부심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물론 리그 정상 복귀와 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처럼 더 큰 목표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막 비상을 시작한 구단이 한 번에 이루는 건 쉽지 않다. 첼시는 여전히 적재적소의 스쿼드 조율로 퍼즐을 맞춰가는 중이다. 보엘리의 승부수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고 나머지 절반의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팬들이 해줄 일은 잠깐의 기복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큰 그림이 완성되는 시간을 지켜보는 것. 런던의 푸른 깃발은 다시 바람을 타고 있다

 

글=‘IF 기자단’ 5기 김현수

저작권자 © 포포투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