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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우승과 두 번의 강등. 지난 10년 동안 한 팀에 일어났다고는 믿기 어려운 성적이다. ‘동화 우승’의 팀이 ‘강등 비극’을 맞기까지, 레스터 시티의 몰락 원인을 분석했다.
# 동화의 팀
2014-15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로 승격한 레스터는 2015-16시즌 기적적인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전 세계의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도박업체들이 예상한 이들의 우승 확률은 0.02%.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었기 때문에 ‘동화의 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승 이후 팀은 중위권을 전전했지만, 2018-19시즌 로저스 감독이 중도 부임하며 레스터는 새로운 변환점을 맞이했다. 로저스 감독은 기존 레스터의 강점인 빠른 역습을 유지한 채, 팀에 짧은 패스 기반의 빌드업 체계를 이식하며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로저스 감독의 지도 아래 레스터는 2019-20시즌, 2020-21시즌 2년 연속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에 진출하며 명실상부한 잉글랜드의 강호 중 하나로 거듭났다. 특히 2020-21시즌에는 구단 최초의 잉글랜드 FA컵 트로피를, 2021-22시즌에는 커뮤니티실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동화의 다음 장을 써나가는 듯했다.
# 강등되면 안 되는 팀의 강등
하지만 동화의 다음 페이지는 쓰이지 못했다. 몰락의 시발점은 2021년 프리시즌이었다. 당시 창단 첫 FA컵 우승과 2년 연속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낸 레스터는 빅클럽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1억 파운드(1842억)를 들여 건설한 새로운 훈련센터의 개장은 레스터의 야망을 보여주는 신호탄과 같았다. 또한 지속적인 유럽대항전 병행에 적합한 스쿼드 뎁스를 갖추기 위해 6700만 파운드(약 1234억)를 쏟아부어 다카, 수마레, 베스터고르, 버틀란드 등을 영입했고, 이들에게 고액의 급료를 쥐어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이적생들은 모두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2021-22시즌 레스터는 8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며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다. 유럽 무대에서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스쿼드 정리가 필수였지만, 레스터는 잉여 자원 정리에 실패했다. 결국 첼시로 떠난 포파나의 대체자 바우트 파스 외에는 별다른 보강 없이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그리고 2022-23시즌, 레스터를 기다리는 건 ‘강등’의 비극이었다. 이미 전술이 파훼된 로저스 감독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구단은 로저스를 지나치게 신뢰하며 경질 타이밍을 질질 끌었고, 결국 8경기 남은 상황에서 쫓기듯 감독교체를 결정하게 된다. 새롭게 부임한 딘 스미스 감독은 마지막까지 분투했지만 끝내 레스터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진짜 비극은 강등 이후에 찾아왔다. 레스터의 선수단과 급여 시스템은 최소 중위권 이상을 확보해야 구단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즉, 당시 레스터는 ‘강등되면 안 되는 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부로 내려앉은 레스터는 ‘수익성 및 지속 가능성 규정’(PSR) 위반에 대한 프리미어리그의 거센 압박을 받았다. 결국 구단은 제임스 매디슨, 하비 반스, 티모시 카스타뉴 등 구단의 주축 선수들을 싼 가격에 팔아야 했다.
# 1년짜리 희망과 다시 찾아온 절망
주요 선수들의 이탈에도 레스터는 여전히 2부에 있기는 너무 강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EFL)에서의 첫 시즌, 레스터는 승점 97점으로 챔피언십을 우승하며 1년만에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한다. 새롭게 부임한 마레스카 감독은 점유율 기반의 전술 철학을 팀에 입혔고, 레스터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감독과 장기적인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마레스카의 성공에 첼시가 눈독을 들였다. 팀의 체질 개선을 바라던 첼시는 마레스카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했고, 레스터는 다른 감독을 찾아야 했다. 장기적인 계획 수립에 차질이 생겼기에, 레스터는 당장의 잔류를 위해 스티븐 쿠퍼 감독을 선임한다. 쿠퍼 감독은 마레스카와 정반대의 전술 색채를 가진 감독이다. 낮은 라인을 바탕으로 한 롱볼과 역습은 레스터가 구상한 미래와 달랐지만, 이들은 PL 잔류를 위해 실리적인 선택을 했다.
또한 쿠퍼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약 7880만 파운드(1451억)를 지원해 스쿼드를 보강헀다. 승격팀 중 가장 많은 투자였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마레스카의 전술에 익숙해진 기존 선수단은 쿠퍼의 전술 색채에 적응하지 못했고, 새로운 영입생들의 활약도 지지부진했다.
결국 레스터는 또 한 번의 절망을 경험해야 했다. 쿠퍼는 12라운드까지 2승에 그치며 경질당했고, 레스터는 루드 반니스텔루이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21경기 2승 2무 17패로 33라운드에서 강등을 확정지었다.
# 가장 사랑받는 구단에서 ‘루드킨 아웃’까지
레스터의 두 번의 강등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주체는 단연 보드진이다. 2020-21시즌 FA컵 우승 직후만 하더라도 레스터와 보드진, 구단주의 관계는 PL에서 가장 좋았다. FA컵 결승전 종료 후 로저스 감독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포터를 비롯해 클럽 회장님과 그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걸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서포터와 구단주의 유대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1-22시즌부터 이어진 구단주와 보드진의 실책으로 결국 레스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레스터 보드진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는 로저스 감독을 지나치게 신뢰한 것이다. 2021-22시즌부터 전술이 파훼된 로저스 감독은 지난 2년간의 성공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다. 전술적 실책 외에도 슈마이켈을 내치는 등 선수단 관리에도 문제를 드러냈다. 그러나 보드진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보드진의 실책은 경기장 밖에서도 지속되었다. 디 애슬래틱의 기사에 따르면, 매디슨, 포파나, 페레이라 등의 성공적인 영입을 주도했던 데이터 분석가들이 베스터고르와 버틀란드와 같은 선수들의 영입을 반대했음에도, 로저스는 이를 무시하고 이적을 추진했다. 이에 클럽의 프로세스가 무시된다고 느낀 분석가들은 실망을 느껴 이적을 추진했다. 레스터가 끊임없는 선수 유출에도 상위권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의 스카우팅 시스템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클럽의 근간을 무너뜨린 행위다.
재정 관리 실패 역시 레스터 몰락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2021-22시즌 유럽대항전 진출 실패 이후 클럽의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함에도, 보드진은 안일한 판단으로 선수단 정리를 망설였다. 그 결과 유리 틸레망스, 아요세 페레스, 찰라르 쇠윈쥐, 낭팔리스 멘디, 다니엘 아마티, 조니 에반스, 라이언 버틀란드가 2022-23시즌 이후 FA로 팀을 떠났다. 이들 모두 이르게 판매했다면 적당한 값의 이적료를 받아낼 수 있었기에 보드진의 판단은 레스터 재정에 큰 타격을 입혔다.
레스터의 모기업 킹 파워가 태국의 면세점으로 코로나 시기 큰 타격을 입은 것을 감안하면, 선수 매각 실패는 팀의 재정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레스터는 2022-23시즌 강등 이후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의 끊임없는 징계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2024-25시즌까지 레스터는 두 번의 징계 위기를 벗어났지만, 다가오는 시즌 챔피언십의 징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영국 매체 ‘더 선’에 따르면 레스터는 2025-26시즌 승점 12~16점 삭감이 유력한 상황이고, 이적시장 제한 조치까지 이루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 밝지 않은 미래, 동화를 다시 쓰기 위해서는?
지난 10년간 빛과 암흑의 시기를 모두 겪은 레스터는 구단의 명운이 달린 반환점에 도달했다.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영광의 시기는 모두 지나갔고, 팀의 ‘레전드’ 제이미 바디가 FA로 풀려나며 2015-16시즌 PL 우승 당시 팀을 이끌었던 자원들은 모두 레스터를 떠나게 되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현재 레스터의 상황은 매우 어렵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레스터는 2014-15시즌 이후 수많은 기적을 써온 ‘동화의 팀’이다. 현재 보드진의 안일한 운영으로 위기를 맞이했지만, 승격 이후 위기 때마다 적절한 영입과 끈끈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던 킹 파워이기에 앞으로 절치부심하여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10년간 누구보다도 다이나믹한 시절을 보낸 레스터 시티. 축구팬들을 웃고 울린 ‘동화의 팀’이 동화의 다음 장을 써내기를 바란다.
글=‘IF 기자단’ 5기 김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