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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김태륭 대표의 ‘사람으로서의 이야기’에 집중해 본다. 그는 지도자, 축구 해설자 그리고 양천 TNT FC의 운영자로서 다채로운 커리어를 쌓아왔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했다. 유년 시절 프랑스에서의 경험부터 지도자 생활, 해설자로서의 전환, 그리고 아버지 역할까지. 그의 삶은 단지 ‘축구인’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여정이다.

그는 자신을 ‘한국 축구계의 비주류’라 말하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왔다.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끊임없이 방향을 수정하고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온 그는 지금도 여전히 도전 중이다. 그가 말하는 축구, 인생, 가족, 그리고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김태륭 대표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축구라는 프레임을 넘어 ‘삶을 설계하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한다.

앞선 인터뷰 1편에서는 TNT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중심으로 김 대표가 왜 ‘비주류의 축구’를 택했는지, 그리고 TNT가 어떻게 ‘연결고리’라는 팀 철학을 실현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은 축구 동호회에서 시작된 TNT는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 서울 서부를 기반으로 한 K5 구단으로 성장했다. 그는 ‘왜 하냐’는 질문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으로 바꾸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을 걸어왔다. 특히 프로와 아마추어, 학원과 성인, 축구와 삶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고, 이를 통해 한국 축구 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뷰 2편에서는, 그러한 철학의 바탕이 되는 김태륭이라는 사람의 삶과 가치관에 한층 더 깊이 들어가 본다.

Q. 사무실 오는 길에 유니폼 컬렉션이 눈에 띄던데?

다양한 경로에서 받았다. 황희찬 RB 잘츠부르크 유니폼은 희찬이가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선물 받았고, 우리 팀 유니폼도 있다. 사실 유니폼을 많이 모으게 된 건 핏투게더 근무 시절이다. 고객사가 가장 많았을 때는 전 세계 500개 팀까지 있었는데, 해당 팀들의 유니폼을 여러 벌 받을 수 있었다.

안쪽 실내 짐에 가면, 정말 희귀한 유니폼들이나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유니폼들과 개인 소장품도 있다. 여러 유니폼 중에서 가장 아끼는 유니폼은 아르헨티나의 아이마르와 바티스투타 유니폼이다.

아르헨티나 유니폼 외에도 희귀한 유년 시절 구매한 1993년과 1996년 프랑스 유니폼들도 있다. 한번은 파리 생제르맹(PSG) 열성팬으로 알려진 방송인 파비앙이 놀러 와서 내 컬렉션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너 태어나기도 전에 구한 유니폼이라고 했더니 놀라더라.

Q.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거로 알고 있다. 한국과 문화적 차이를 느낀 순간이 있나?

당연하다. 우선 한국과 프랑스는 문화적으로도, 교육 시스템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체육과 교육의 관계에서 두 나라의 시선은 확연히 달랐다.  1학년 때, 6개월 동안 프랑스로 해외 연수를 떠났다. 그때 간 팀이 바로 PSG였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숙소에서 주 3, 4회 정규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들은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스포츠 생리학, 역학, 역사 등 스포츠와 연결된 학문이었고 정식 학과목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체육계와 교육계가 시스템적으로 연동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현재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들에 대해 프랑스에서는 이미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체육계와 교육계가 대립하는 구도다. 최저학력제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와 관련해 왜 논쟁을 펼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초,중등생은 정규 수업과 방과후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고등학생부터는 스포츠 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라고 봐야 한다. 그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일반 교육을 강요하기보다, 체육 특기생으로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게끔 하는 것이 맞다.

뉴스에서 운동선수 출신들이 생계 문제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 흔히 ‘운동 외에는 다른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는 해석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다. 실제로 선수 생활이 끝난 뒤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운동선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편견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그러한 시선을 막기 위해 프랑스처럼 교육과 체육이 연결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체육계와 교육계가 대립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단순히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 정치, 문화, 사회 모두 걸친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시스템과 제도는 필수적이다. 축구협회가 단지 축구 운영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서와 협업해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편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그 문화적 차이가 지금 TNT 운영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지?

구단 운영 철학과의 연관보다는 나의 삶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정말 많다. 축구도 재밌게 했고 특히 가족과의 시간을 많이 보냈다. 생활면에서도 유럽은 당시 한국에 비하면 좋았던 시기라 정말 즐거웠다. 이게 축구할 때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유럽식 축구가 익숙해져 있으니 머릿속 이상만 커서 나중에 우리나라 축구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쉽기도 하다. 축구나 똑바로 해야 했는데 (웃음).

Q. 축구선수 외에도 지도자, 해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언제였는가?

나는 경험이 많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잘하는 분야는 집중하고 부족한 분야는 주저 없이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이런 사고는 커리어 결정에도 적용됐다.

첫 직장은 고려대 축구부 코치였는데, 꽤 좋은 조건 속에서 일했다. 코치직을 맡던 중 SPOTV에서 축구 해설을 우연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월 60만원을 받고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그런데 학교 축구부 성적이 점차 떨어지면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고, 결국 자신이 있다고 판단한 해설을 선택했다. 당시 연말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무리한 결정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내만 유일하게 이 선택을 지지해 줬다.

전업 해설자가 된 이후에는 생활비를 더 벌어야 해서 3달 동안 주유소와 피시방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던 중 문체부 공고 사이트에 도핑방지원회에서 체육인 특채 구직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후 해설과 문체부 일을 겸하며 열심히 살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KBS에서 전속 제안이 들어와 SPOTV와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방송만 집중해도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존에는 업계 내 두 개 이상의 방송을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가치를 인정받아 최초로 두 개의 방송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코치직을 포기하고 해설직으로 갔던 게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다.

Q. 그러한 경험을 통해 어떤 성장의 계기를 얻었나?

비록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당시 서동원 감독님께 많은 배움을 얻었다. 서동원 감독님은 한국의 위르겐 클롭 같은 느낌이었다. 워낙 열정적이셨던 분이라 코치들은 잠을 잘 시간도 없었다. 훈련을 1분 단위로, 체계적으로 나누는 철저한 사람이었고, 축구 프로세스에 대해 더 배우게 됐다.

해설을 하면서는 인정받는 재미가 있었다. 6개월 단위로 내 위상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아서 더 몰두했다. 당시(2010년대 초중반)에는 흔히 ‘메날두의 시대’로 불리는 축구의 황금기였는데, SPOTV가 모든 해외축구 콘텐츠를 갖고 있어서 마음껏 해설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설 외에 다른 사회생활에 크게 신경 쓰지 못해 오만해졌고, 일을 하면서도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Q. 지금까지의 경력 중, 스스로 가장 성장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가장 많이 성장을 느꼈던 단계는 핏투게더 시절이다. 축구라는 우물 안에 있다가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 이를 통해 시야가 많이 넓어졌고, 축구가 세상의 아주 작은 조각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세상 사람들은 축구를 너무 사랑한다. 이제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따라와야 한다. 아직 축구를 벗어난 경영자 단계에서 부족하다. 여전히 겸손한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다.

Q. 요즘 청년들은 안정성과 도전 사이에서 많이 고민한다. 김태륭 대표의 도전 원동력이 궁금하다

일단 축구가 너무 좋고, 축구에 대한 꿈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치열함은 언제나 있었고, 부귀영화가 아닌 생존을 위해 일한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1순위이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먹고 싶은 걸 먹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함 외에 꾸준함 역시 중요한 가치이다. 삶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라 꾸준한 도전은 정말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해왔던 일을 하면서 안 해본 일을 합니다’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TNT도 이와 마찬가지로 매년 같은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추가하고 도전한다.

 

Q ’좋아하는 축구’와 ‘해야 하는 축구’ 사이에서 고민도 있을 텐데?

아이들과 가족을 생각하며 버티면서 일한다. 축구 관련 일들을 수행하기에 환경은 좋아질 것이고 앞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후배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그 시기가 왔을 때 내가 계속 일을 할지는 미지수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일본 선수 ‘나카타 히데토시’는 은퇴 이후 축구를 끊고 축구와 무관한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히데토시처럼 나도 축구 외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TNT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사명이라고 느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대표 자리는 일정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좋은 점이 많지 않기에, 항상 힘들다. 그런데도 축구가 너무 좋아, 언젠가 TNT 일을 내려놓게 되면 유소년 육성에 전념하면서 내 삶을 살고 싶다.

솔직히 나는 축구계에서 비주류라고 본다. 광주 FC의 이정효 감독이 비주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내가 더 비주류이다(웃음). 비주류의 경우는 지지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이 때문에 나는 TNT가 비주류들의 지지 세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TNT 출신으로 구성된 비주류 커뮤니티가 형성 중이다. TNT가 잘 돼야 이들의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세대에 시스템을 잘 닦고 구축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Q. 마지막으로, 축구 산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솔직히 앞으로의 10년은 축구 산업의 좋은 시기일 것이다. 일본 시장의 흐름이 5년 내로,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본다. 지금 2030 세대는 축구에 대해 친숙하고 이해도도 높다. 100만 원을 받는 축구선수가 20만 원어치 표를 구매해서 축구 관람을 하고, K리그와 주토피아가 협업한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는 시대다. 산업적 가능성은 이미 시장 안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축구 산업 쪽에 종사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언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외국어 한 가지만 제대로 해도 맡을 수 있는 업무의 폭이 넓어진다. 커뮤니케이션과 기획, 콘텐츠 제작 등 모든 영역에서 숙달된 언어는 곧 기회가 된다.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청년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잠재력도 크기 때문에 언어라는 열쇠만 잘 갖춘다면 충분히 그러한 기회를 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대학생 때는 대외 활동이나 프로젝트같이 여러 경험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력서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학벌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는가다. 자기소개서를 보면 진심 어린 고민과 열정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핏투게더 면접관으로 참여했을 때도 그런 진정성이 보이는 분들을 많이 선발했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도, 본인의 이야기를 자기 언어로 진솔하게 풀어내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신만의 서사’다. 그런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 자체가 자신의 스펙이고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시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즉,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고 하나의 경험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하면 반드시 남는 것이 있다. 다양한 경험을 치열하게 해보면 모든 게 연결되고 자신만의 무기가 된다. 여러분은 똑똑하니까, 나보다 더 잘할 거다. 축구 산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날을 기다리겠다.

 

콘텐츠 제작='IF 기자단' 2기-5기

글/인터뷰=김현수, 강유찬, 서예원, 김은성

사진=강유찬

현장 취재=김현수, 서예원,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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