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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4위, 7위, 3위, 4위. 한때 9년 연속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를 거머쥐며 ‘절대 군주’로 군림했던 유벤투스 FC의 몰락을 상징하는 숫자들이다.
이탈리아 세리에A 통산 최다 우승(36회), 코파 이탈리아 최다 우승(15회)의 기록을 지닌 유벤투스는 오랫동안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이었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서는 10시즌 중 무려 9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의 패권을 쥐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며 그 기세는 꺾였다. 스쿠데토는 고사하고, 준우승조차 한 번도 없다.
같은 리그에서 부침을 겪었던 AC밀란과 인터 밀란은 재정 위기를 겪은 뒤 구단주를 교체하고 재정 건전화를 추구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반면, 유벤투스는 그들과는 결이 다른 위기를 겪었다. 2022-23시즌, '플루스발렌차'로 알려진 재정 조작 논란과 함께 구단은 승점 10점이 삭감되며 3위에서 7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재정 스캔들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추락이었다.
# 2020년대, 스쿠데토 실패의 연속
2010년대 유벤투스의 성공은 안토니오 콘테,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마우리치오 사리로 이어지는 감독들의 전술적 성과와 맞닿아 있었다. 콘테 감독은 ‘BBC 라인’(바르찰리-보누치-키엘리니)을 중심으로 한 탄탄한 수비와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알레그리 감독은 공격 자원의 장점을 극대화해 5연패를 달성했다. 사리 감독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파울로 디발라의 공존을 통해 불안정한 전술 속에서도 우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유벤투스는 감독 교체를 반복하며 전술과 선수 기용 모두에서 혼란을 겪었다. 안드레아 피를로 감독은 3백 전술과 페데리코 키에사의 윙백 기용 등 실험적인 운영으로 비판을 받았고, 이후 복귀한 알레그리 감독은 공격 전술에서 효과적인 해답을 찾지 못했다. 2024-25시즌 선임된 티아고 모타 감독은 무승부만 거듭한 축구를 지속하다가 시즌 중반 경질됐다. 남은 9경기는 이고르 투도르 감독이 맡아 안정세를 찾았지만, 최종 순위는 4위에 머물렀다.
# 침몰의 원인 1: ‘잘못된 선수 활용'

피를로, 알레그리, 모타. 세 감독 모두 스쿠데토 탈환을 사명으로 부임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들의 공통된 실패 원인은 '선수 활용'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술적 가치가 뛰어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를로 감독에게는 호날두와 키에사가, 알레그리 감독에게는 두산 블라호비치와 마누엘 로카텔리가, 모타 감독에게는 케난 일디즈와 블라호비치가 있었다. 하지만 세 감독 모두 이들을 제 역량만큼 활용하지 못했다.
피를로 감독은 크로스 능력보다 드리블과 속도를 살리는 데 더 강점이 있는 키에사를 윙백으로 기용했다. 결과적으로는 호날두와의 직접적인 연계 없이 각자의 능력에 의존하는 형태가 됐다. 이들의 파괴력은 토너먼트에는 효과를 봤지만, 장기 레이스인 리그에서는 힘을 잃었다.
알레그리 감독은 넓은 활동 반경과 전진 패스를 장기로 삼는 로카텔리를 후방에 배치하며 창의적인 공격 전개를 스스로 봉쇄했다. 그 결과, 공격수 블라호비치는 상대 수비에 고립되는 장면이 반복됐고, 팀 전체가 단조로운 경기 운영에 갇혔다. 이탈리아 매체 '셈프레 밀란' 역시 알레그리 감독의 전술에 대해 "수비수들을 지나치게 후방에 배치하여 스트라이커가 고립된다"라며 당시 알레그리 감독의 전술을 비판했다.
모타 감독의 경우, 볼로냐 시절 중원을 중심으로 한 점유율 축구로 호평을 받았지만, 유벤투스에서는 블라호비치를 지나치게 내려쓰며 공중볼 경합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또한 주장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다닐루를 방출하는 한편, 일디즈에게 “너는 메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폭언 파문‘의 보도까지 나오며 리더십 측면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현재 이탈리아 ‘스카이 스포츠’에 소속된 리카르도 몬톨리보는 알레그리에 대해 “경기 해석을 선수에게 맡긴다”라고 평가했고, 모타에 대해서는 “선수 간 이해가 부족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유벤투스가 전술뿐 아니라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 측면에서도 문제를 겪었음을 암시한다. 결국, 세 감독 모두 '좋은 선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내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철학에 선수를 억지로 끼워 넣는 방식은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 침몰의 원인 2: 호날두 이후 사라진 ‘골잡이’

유벤투스의 스쿠데토 탈환 실패는 단순히 선수 활용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꾸준히 지적되는 ‘득점력 부족’이다. 특히 호날두가 팀을 떠난 이후의 빈자리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호날두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0-21시즌, 유벤투스는 77골을 기록하며 리그 4위에 올랐다. 순위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득점만큼은 상위권에 속했다. 하지만 호날두가 떠난 직후인 2021-22시즌부터 유벤투스는 단 한 번도 리그에서 60골을 넘기지 못했다. 가장 최근 시즌인 2024-25시즌에는 58골로 리그 다득점 구단 7위. 2020-21시즌과 같은 4위 성적이라도 득점력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호날두 개인의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유벤투스는 호날두 이전에도 카를로스 테베즈, 곤살로 이과인, 파울로 디발라 등 리그에서 20골 이상을 넣어줄 수 있는 공격수를 꾸준히 보유한 팀이었다. 2012-13시즌부터는 리그 70골 이상을 늘 기록했던, 이탈리아 내에서도 득점력이 탄탄한 구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호날두 이후 유벤투스의 공격진은 연쇄적으로 흔들렸다. 블라호비치, 아르카디우스 밀리크, 키에사 등 리그에서 검증된 자원을 영입했지만, 기대만큼의 득점력은 나오지 않았다. 주전 공격수들이 부상과 폼 저하로 어려움을 겪은 점이 크다.
특히 키에사는 2021-22시즌 십자인대 부상 이후 공격적인 날카로움이 무뎌졌다. 복귀 이후 두 시즌 동안 리그에서 기록한 골은 11골에 불과하다. 블라호비치는 탈장 및 반복되는 근육 부상에 시달리며 폭발력을 잃었다. 왼발에 대한 의존도 역시 문제로 지적되며, 2024-25시즌 리그 득점은 10골에 그쳤다.
밀리크는 그보다 더 나쁘다. 2022-23시즌 유벤투스에 입단한 이후 한 시즌도 10골을 넘기지 못했고, 최근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아예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선발보다는 벤치에서 기용된 점을 감안해도, 득점력 부문에서 사실상 공백에 가깝다.
이와 같은 공격진의 부진은 다른 팀들과 비교를 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2024-25시즌 기준, 유벤투스는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한 선수가 블라호비치 한 명뿐이다. 반면, 세리에A에서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2명 이상인 구단은 5개에 이른다. 특히 아탈란타 BC의 마테오 레테기(25골), 아데몰라 루크먼(15골)은 확실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팀의 상위권 진입을 견인했다.
결국, 유벤투스는 호날두 이탈 이후 리그에서 단 한 명의 20골 이상 득점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단순히 공격수 개인의 부진을 넘어, 구단 차원의 득점 전략을 정비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한 수비와 함께 뚜렷한 득점원이 조화를 이뤘던 과거의 유벤투스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지금의 유벤투스는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 침몰의 원인 3: 스카우팅 ‘전략 부재’와 육성 시스템의 ‘한계’
유벤투스의 부진은 유망주 육성과 스카우팅 양쪽 모두에서 발생한 ‘방향성 상실’로도 설명할 수 있다. 팀 재건은 중장기적 자원 관리가 핵심이지만 유벤투스는 이러한 부분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상실한 채, ‘임기응변식’ 이적 시장을 보내왔다.
육성 시스템의 대표적 사례는 파비오 미레티다. ‘넥스트 제너레이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군에 올라섰지만, 성장 과정은 일관되지 못했다. 반복적인 출전 기회에도 명확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하며 팀의 미래 자원이 되기보다는 주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 대안으로만 활용됐다. 그 결과, 잠재력을 인정받았음에도 충분한 투자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
외부 영입 역시 방향성 없는 단기적 선택에 머물렀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드리앙 라비오다. 자유계약으로 구단에 합류한 그는 중앙 미드필드에서 ‘박스 투 박스’와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넘나들며 명확한 역할 부여 없이 기용됐다. 이에 따라 로카텔리, 웨스턴 맥케니 등 다른 미드필더 자원들이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이는 팀 조직력의 혼선을 불러왔다.
설상가상으로 라비오의 기복 있는 경기력과 계속된 재계약 협상, 그리고 이적설은 구단 운영의 불안을 더했다. 구단은 그와의 재계약 여부를 명확히 결정하거나 대체 자원을 확보하는 계획을 세워야 했지만, 어느 쪽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다. 대신 ‘당장 쓸 수 있는 선수’에 의존하는 임시방편적 운영이 이어졌고, 이는 중원 전체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유벤투스는 유망주와 외부 자원 모두를 어떻게 활용할지 구체적 설계 없이 기용해왔다. 단기적 수요를 채우는 데 치중한 나머지, 지속 가능한 팀 빌딩보다는 현재를 버티는 운영이 이어졌다. 많은 선수를 영입하고 활용했지만, 그 안에 일관된 기획과 미래 구상은 결여된 것이다.

# 다시 ‘명가’로 돌아가기 위해
유벤투스가 다시 정상에 오르려면 무엇보다 확실한 득점원이 절실하다. 단순히 선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방법론적인 전술을 포함한다. 지금의 득점력 문제는 단순히 선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 전략에도 허점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로운 감독과 함께 공격 전력을 다시 맞춰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득점원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팀의 중장기적인 경쟁력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득점원 확보만큼 중요한 건 감독과 선수 사이의 시너지다. 단순히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독의 전술과 선수단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팀 전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이 조화가 만들어질 때, 유벤투스는 다시 한번 명문다운 경쟁력과 스쿠데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IF 기자단’ 5기 최재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