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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이 단독 선두에 올랐다. 시즌 절반에 가까운 시점인 현재 전북은 10승 5무 2패(승점35점)을 기록하며 1위에 위치해있다. 현재까지 리그 13경기 연속 무패, 공식전 15경기 무패를 이어가며 ‘지는 법’을 잊었다.
팬들의 기억 속 K리그1 최다 우승팀(9회)이자 한때 리그 5연패를 달성했던 ‘전북 왕조’의 실루엣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시즌 10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자존심을 구겼던 전북은 부활한 ‘위닝 멘탈리티’로 팬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고 있다. 직전 울산과의 ‘현대가 더비’에서는 창단 첫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단 페트레스쿠, 김두현 체제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은 전북은 올해 새로운 남자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그 주인공은 바로 거스 포옛. 한국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는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대표팀 감독 등을 맡으며 풍부한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전북을 선택한 이유로 “위닝(Winning)”, 단 한 단어를 말했다.
또한 “승리를 위한 공격 축구를 펼치겠다”고 선언했고 지금까지의 성적은 그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전북은 현재 리그 최다 득점 1위, 최소 실점 1위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 경기력이 완벽하지 않아도 끈질기게 승점을 챙기고, 리드를 내주지 않으려는 집중력이 경기 내내 살아 있다. 수비진의 조직력은 눈에 띄게 안정됐고 중원에서는 경험과 체력이 조화를 이루며 경기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터지는 공격진의 한 방은 전북 특유의 ‘지지 않는 축구’를 다시 가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작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강등 플레이오프(PO)까지 치러야 했던 전북의 무엇이 달라졌기에 단 1년 만에 선두에 오른 것일까. 개막전부터 지금까지의 전북을 되짚으며 그 변화를 분석했다.
# 반등의 전환점은 전술의 전환
전북은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개막전에서는 ‘닥공’ 축구로 승리를 거두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2무 4패라는 부진에 빠지며 전술에 대한 의문 부호가 따라붙었다. 시간이 흐르며 전개 속도는 느려졌고 플레이는 점점 단조로워졌다. 공격 루트 역시 최전방 콤파뇨를 향한 크로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반복되며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대로는 반등이 어려워 보였다.
전환점은 뜻밖에도 ‘닥수’에서 시작됐다. 안양과의 경기에서 포옛 감독은 1-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무려 센터백 4명과 풀백 2명을 투입하는 초수비 전술로 전환했다. 콤파뇨의 선제골 이후 이뤄진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승리를 지켜냈다. 상대 팀 유병훈 감독마저 “전북이 이 정도로 깊게 라인을 내릴 줄은 몰랐다”고 말할 만큼 극단적인 수비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 경기를 기점으로 전북의 반등이 시작됐다.
포옛 감독은 기본적으로 4-3-3의 포메이션을 운용하며 후방 빌드업, 수비 밸런스, 빠른 속공을 강조한다. 중앙에서는 미드필더 박진섭이 1차 공격 차단과 볼 배급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담당한다. 수비 시스템으로는 상대 선수를 따라다니며 마크하는 대인 수비가 아닌 특정 지역을 지키는 지역 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전북의 주전 수비진 김태현, 김영빈, 부상 복귀한 홍정호, 김태환은 오랜 기간 경험을 한 베테랑으로서 해당 전술을 잘 이해하고 녹아들었다.
하지만 공격에서 빠른 전개가 이뤄지지 않자, 포옛 감독은 이영재-이승우 2선 조합에서 강상윤-김진규 조합으로 변화를 택했다. 미드필더가 더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며 팀의 수비 조직력을 높이고 공격 전개를 원활히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선택은 적중했다. 김진규는 공수에서 강한 압박으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했고 강상윤은 그라운드를 활발히 뛰어다니며 깔끔한 패스를 뿌려줬다. 이후 전진 패스의 타이밍은 빨라졌고 전환 플레이도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비가 안정화돼도 득점하지 못한다면 경기는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전북의 짜임새 있는 수비 조직과 중원 장악은 효율적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안양전까지 7득점 7실점에 그쳤던 전북은 전술 변화를 기점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20득점 5실점이라는 완벽한 공수 균형 속에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점은 공격 전술의 유연성이다. 콤파뇨의 제공권이 막히기 시작하자 포옛 감독은 콤파뇨에게 수비와 적극적으로 부딪히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했다. 콤파뇨가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는 사이 생긴 틈을 2선 자원들이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측면과 윙백, 미드필더 간의 3자 연계 플레이는 전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송민규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전진우는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났다.

#전북의 ‘전진’에는 ‘해결사’ 전진우가 있다
포옛 체제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전진우는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수원 시절만 해도 전진우는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양발 능력을 갖췄음에도 공격 포인트를 쌓지 못해 ‘가능성은 있으나 터지지 않는 유망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자신감을 잃어갔지만 이번 시즌 전북에서 드디어 숨겨졌던 재능이 폭발하고 있다.
전진우를 평소 ‘아들’이라 부르며 전적으로 신뢰하는 포옛 감독은 그에게 “수비 시에는 끝까지 따라붙고, 공격에선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마무리하라”고 주문했다. 감독의 믿음은 선수의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한동안 자신감을 잃어갔던 전진우는 마치 다른 선수처럼 탈바꿈했다. 수원 시절 부담감 속에 헤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공격 포인트는 전북 이적 후 단숨에 두 자릿수를 돌파했고 동료와의 연계 능력은 한층 향상됐다. 몸싸움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며 특히 자신감이 되살아났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이다. 이는 곧 리그 최다 득점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포옛 감독의 ‘황태자’로 자리 잡은 셈이다.
현재까지 17경기 11골 1도움을 기록 중인 전진우는 산술적으로 시즌 종료 시점에는 24골 2도움까지 기대할 수 있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에 따르면 전진우는 xG(기대 득점) 7.7, 실제 득점은 이보다 훨씬 많은 11골에 달한다. 즉 만들어진 찬스 이상의 골을 기록하며 결정력 면에서도 리그 최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슈팅 42회 중 유효슈팅 21회로 슈팅 대비 유효슈팅 전환율이 0.5에 달해 슈팅 두 번 중 한 번은 득점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활약은 놀랍다.
아직 전반기조차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작년 전북 최다 득점자였던 문선민(10골)을 넘어섰고, 재작년 구스타보(11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근 몇 년간 확실한 해결사 없이 답답한 공격을 운영했던 전북에게 전진우는 말 그대로 천금 같은 존재다. 실제로 그가 골이나 도움을 기록한 모든 경기에서 전북은 7승 2무를 거두며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전진우에게 ‘정형화된 득점 패턴’이 없다는 것이다. 감아차기, 드리블 돌파 후 슈팅, 헤딩슛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골문을 뚫었다. 이에 대해 전진우는 “감독님이 저를 끝까지 뛸 수 있도록 믿어주신다. 보답해야겠다는 생각과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강해지다 보니 여러 방식으로 득점 감각이 살아난 것 같다”고 밝혔다.
물오른 감각은 국가대표팀 승선이라는 결실로도 이어졌다. 첫 A대표팀 소집에서 “손흥민 형을 만나 많이 배우고 싶다”고 했던 전진우는 지난 이라크와의 원정에서 후반 교체 투입해 오현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이제 소속팀을 넘어 태극마크를 단 자리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전진우의 활약이 계속된다면 전북의 이번 시즌 우승 경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꾸준한 득점력과 넘치는 자신감은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선두 경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전진우가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커진다.
# 포엣 리더십이 빚어낸 전북,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전북이 현재 리그 단독 선두로 올라서기까지, 그 중심에는 포옛 감독의 뚜렷한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전술적 성과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압도적인 선수 장악력과 ‘팀 퍼스트’를 실천하며, 실력 위주의 기용 원칙을 통해 선수단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단순히 선수 이름값이나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경기력과 팀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현재 가장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선수를 중심으로 시즌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매 경기 같은 얼굴만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폼이 좋은 선수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부여하며 자연스러운 경쟁 체계를 유도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뛰지 못하는 선수들까지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공정한 리더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동시에 포옛 감독은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경기장에서 성실함이 부족하거나 감정을 자주 드러내며 흐름을 끊는 행동은 철저히 배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아텡과 에르난데스다. 보아텡은 경기를 치르며 공을 끝까지 쫓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에르난데스는 감정 기복이 드러나는 장면이 반복됐다. 포옛 감독은 두 선수를 과감하게 출전 명단에서 제외했고 결과적으로 팀은 이들 없이도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
팀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주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감독과의 갈등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적을 요청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승우는 지난 시즌 수원FC와 전북에서 총 12골을 넣으며 올해도 전북 공격의 핵심을 맡으리라 예상됐지만 현재는 주전 경쟁에서 다소 밀려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승우는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 우선이다. 출전에 대해서는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 사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이는 포옛 감독이 만들어낸 팀 퍼스트 문화가 선수들에게 얼마나 깊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실력에 기반한 공정한 기용, 선수단 관리에 있어 원칙을 지키는 냉정함 그리고 팀 중심의 철학. 이 세 가지는 지금의 전북을 단독 선두로 끌어올린 포옛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다. 전북의 질주는 전술의 변화뿐 아니라 '팀 퍼스트'라는 간단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번 시즌 전북은 경기장의 모든 순간을 전력으로 뛰며 단단한 조직력과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과 팬, 그리고 감독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낸 시너지는 전북의 질주를 멈추지 않게 한다. 남은 경기에서도 그 열정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리그 정상 자리를 굳건히 지켜낼 전북의 앞날을, 팬들은 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응원할 것이다.
글=’IF 기자단’ 5기 김현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