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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칠 때 떠나라’는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인물이 대중의 호평이 식기 전, 미련 없이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보통 이 말은 ‘스스로 떠날 때’를 전제한다. 그러나 때로는 떠나는 방식이 ‘사임’이든 ‘경질’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왜 떠났느냐’다.

토트넘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유로파 리그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부임 2년차에 우승한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켜냈고, 실제로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팀을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방식은 경질이지만, 떠나야 할 타이밍은 정확히 ‘박수를 받을 때’ 였다. 팬들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동시에 더 이상 안 된다는 한계도 직감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를 박수 속에서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왜 박수를 받았지만 떠나야만 했을까.

# 부임 첫 해, ‘닥공 축구’로 희망을 보여준 포스테코클루

그동안 막혀 있던 혈이 확 뚫리는 듯한 시원함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은 2023년 여름, 북런던에는 모처럼 희망이 감돌았다. 그가 추구하는 전방 압박과 공격적인 빌드업, 빠른 전환을 중심으로 한 공격 축구, 일명 ‘닥공 축구’는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2023-24 시즌 초반, 손흥민과 메디슨의 콤비가 리그를 지배하며 무패행진과 리그 1위까지 오르는 성과는 팬들에게 큰 기대를 안겼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11월, 첼시와의 경기에서 토트넘은 로메로와 우도기의 퇴장, 반 더 벤과 매디슨의 부상이라는 악재를 한꺼번에 맞았다. 전반, 로메로의 퇴장으로 PK를 내주며 1-1이 된 상황에서도 포스테코글루는 물러서지 않았다. 수적 열세 속에서도 철저히 자신의 ‘공격 철학’을 고수했다.

비록 결과는 패배했지만, 그의 전술 철학은 뚜렷했고, 이는 일부 팬들에게는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날의 결정은 팀에 큰 대가를 안겼다. 적은 수의 선수로 수비라인을 하프라인까지 올리는 전술은 수비진의 부담을 키웠고, 결국 에이스 수비수 판 더 벤까지 이탈했다. 이후, 토트넘의 수비가 불안해지며 기세는 급격히 꺾였다.

결국,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고, 유로파 리그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기대가 높았던 시즌의 결말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 여전히 꺾이지 않는, 고집스러운 그의 철학

이쯤이면 포스테코글루가 자신의 철학에 대해 한 번쯤 성찰할 법도 했다. 하지만 2024-25시즌, 그는 오히려 자신의 방식을 더욱 견고히 했다. 지난 시즌,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음에도 유로파리그 진출에 만족해야 했던 결정적 원인은 그의 전술적 고집이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은 방식의 축구를 고수했다. 플랜B 없는 하이 라인을 기반으로 한 수비, 무리한 빌드업, 역습에 취약한 구조는 이미 리그 대부분 팀들에 철저히 분석되어 있었다. 그의 전술이 노출되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결국 토트넘은 리그 17위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만 했다.

일부에서는 유로파리그 결승전을 근거로 전술적 유연성을 보여줬다고 말한다. 실제로 결승전에서 한 골을 앞서고 있던 후반 포스테코글루는 이례적으로 수비 라인을 완전히 내리며 상대의 공세를 막아냈고, 결과적으로 토트넘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경기, 그것도 트로피가 걸린 단판 승부에서의 선택만으로 그의 철학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부임 이후 내내 “나는 내 방식을 고수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대부분의 리그 경기에서도 그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유로파 결승의 ‘수비적 조정’은 철학의 전환이 아니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일회성 대응에 가까웠다. 시스템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것이 불과하다.

그리고 그의 철학이 꺾이지 않는 한, 팬들이 기대하는 ‘실용 축구’는 앞으로도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잖아요...

이번 시즌 토트넘은 유로파리그, 리그, 컵 대회를 병행하며 오랜만에 ‘진짜 유럽 무대’를 소화했다. 물론 핵심 선수들의 줄부상은 분명 불운이었다. 그러나 그 부상이 단지 운의 문제였을까? 포스테코글루는 시즌 내내 높은 라인, 강한 압박, 빠른 전환을 요구하며, 체력 소모가 큰 경기 운영을 강행했다. 이는 스쿼드 뎁스를 고려하지 않은 전략이었고, 결국 시즌 중후반, 주전 선수들의 이탈은 경기력 급락으로 직결되었다. 선수를 보호하지 못한 전술은, 아무리 철학이 뚜렷하더라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경질을 비난하며, “그래도 이번 시즌에는 일정이 많았다”, “다음 시즌엔 챔피언스리그라 더 유연성있는 경기를 보여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음 시즌은 더 혹독할 것이다.

챔피언스리그, 리그, 컵 대회. 일정은 결코 줄지 않는다. 포스테코글루가 고집한 방식, 경기의 템포를 낮추지 않고, 교체 타이밍을 느리게 가져가며, 젊은 유망주를 무리하기 기용하는 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토트넘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의 전략이 설령 이번 시즌 유로파 무대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그것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챔스는 훨씬 더 정교한 수비, 더 냉정한 전술 대응, 더 성숙한 위기관리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 무대에서 또 다시 포스테코글루의 ‘모 아니면 도’ 접근법을 반복한다면, 결과는 고작 조별리그 탈락 혹은 또 다시 리그 포기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또 손흥민, 메디슨, 판 더 벤과 같은 핵심 자원이 부상당한다면?

감독이 고집을 꺾지 않는 이상,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선수들의 체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향상되거나, 이적 시장에서 3줄짜리 스쿼드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리그는 무너졌고, 팀은 공백에 시달렸다. 우리는 또 한 시즌을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 강등 직전의 운, 또 기대하기엔 도박

토트넘은 이번 시즌 무려 22패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승점 38점으로 간신히 잔류했다. 이 수치는 2021-22시즌 강등된 번리의 17패 승점 35점보다도 패배가 많은 기록이다. 22패를 하고도 강등되지 않은 팀은 전례가 없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던 시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운이 매 시즌 반복될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구단은, 더 이상 그런 ‘벼랑 끝의 시즌’을 또 다시 감당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시즌, 토트넘은 리그 무실점 경기가 단 7경기에 불과했다. 총 65골을 실점했고, 마지막 10경기 중 8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며 시즌을 마무리 했다. 핵심 선수의 부상이라는 불운이 있긴 했지만, 그 모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결과는 참혹했다. 우승의 기쁨에 멀어, 리그 최악의 성적을 미화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은 어쩌면, 이미 어딘가에서 반복된 적이 있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유사한 딜레마를 겪은 맨유는 지난 2023-24시즌 성적 부진과 선수단의 갈등에도 FA컵 우승이라는 단기성과에 기대어 텐 하흐 감독에게 한 시즌을 더 맡겼다. 그러나 다음 시즌, 맨유는 더 깊은 침체에 빠졌고, 결국 텐 하흐를 경질한 뒤 후뱅 아모림 감독을 선임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이어진 부진은 마지막 희망이던 유로파리그 결승에도 꺾이며 무관으로 이어졌고, 이는 ‘FA컵 우승’이라는 단기성과를 과대평가한 대가로 남았다. 많은 전문가들이 토트넘에게 맨유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유로파 우승이라는 트로피 뒤에 가려진 리그 17위, 22패라는 처참한 기록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 ‘이상’보단 ‘현실’을 선택

포스테코글루는 분명 축구 적으로 매력 있는 감독이다. 그가 추구하는 철학은 현대 축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현재의 토트넘은 철학적 실험을 감내할 만큼 여유 있는 클럽이 아니다.

지금 토트넘에게 필요한 건 ‘이상적인 철학’이 아닌, ‘현실적인 경쟁력’이다. 강등권에 머문 리그 성적, 반복되는 부상, 스쿼드를 고려하지 않은 플랜B 없는 운영 등은 더 이상 실험으로 포장될 수 없다. 수많은 감독이 2년 차를 넘기지 못한 것만 봐도, 이 구단은 철학적 실패에 오래 관대하지 않았다. 결국 포스테코글루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그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결별이 모두의 뜻은 아니었다. 실제로 감독 경질 이후, 여러 주축 선수들은 구단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내부적으로 적잖은 혼란이 감지되기도 했다. 구단이 결국 선택한 건 ‘철학’보다 ‘성적’이었다. 내부 신뢰가 남아 있었던 감독을 단호히 내쳤다는 점에서, 이는 단지 감독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토트넘이라는 구단이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의 토트넘은 다시 실패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순위가 있고, 만족시켜야 할 팬들의 기대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글=‘IF 기자단’ 5기 류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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