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IF 기자단>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IF 기자단>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수카바티(Sukhavati)’ 산스크리트어로 안양(安養)의 지명 유래인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뜻하는 이 말은 ‘지극히 즐겁고 자유로운 세상(극락)’을 의미한다. 2013년 2월 2일 창단 선포 이후 11년간 K리그2에서 활약한 안양이 마침내 염원하던 ‘승격’의 꿈을 이뤘다. 한국 프로 축구의 최정상에서 “수카바티 안양!”이 울려 퍼질 날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2023년 12월 7일, 유병훈 감독이 FC안양의 제7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안양에서 생애 첫 감독 생활을 하게 된 ‘초보 감독’ 유병훈은 시즌 전 구단 유튜브를 통해 인생 첫 취임 소감을 밝혔다. 이때 유 감독이 이야기한 ‘꽃봉오리 축구’가 큰 관심을 모았다. ‘꽃봉오리 축구’에 대해 유 감독은 “꽃망울이 모아졌다 펴지듯이 경기 상황에서 자유롭게 남들보다 빠르게 모아졌다 펴졌다 하면서 상대를 혼동에 빠뜨릴 수 있는 색깔이다”라고 설명했다.
유 감독이 안양의 축구를 ‘꽃봉오리’에 비유했던 이날. 아마도 11년 동안 간절히 모아온 소망을 품은 보라색 꽃이 오늘을 위해 몽우리 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원큐 K리그2 2024’ 38라운드 부천FC와의 0-0 무승부를 끝으로 안양은 11년 만에 창단 첫 K리그1 승격을 확정 지었다. ‘신임 감독’ 유병훈과 함께 맹진한 안양은 보라색 ‘꽃봉오리’를 활짝 피웠다.
안양의 올해 성적은 18승 9무 9패 승점 63점. 우승팀이라 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성적이지만 대단한 점은 올 시즌 안양이 6월부터 시즌 종료 때까지 단 한 차례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안양은 올해 연패를 당한 적인 단 한 번뿐이다. 9번의 패배 중 연패를 당한 3경기를 제외하면 6번의 패배 이후 그다음 라운드에 곧바로 오뚜기처럼 반등했다. 무엇이 그들을 일으켰을까. 2024시즌의 안양을 돌아보며 ‘꽃봉오리’가 필 수밖에 없었던 3가지 이유를 찾아봤다.
# 이유1: ‘꽃봉오리’란 무엇인가? ‘백3→백4’ 체질 개선한 유병훈의 안양

원래 안양의 대명사는 ‘백3’였다. 지난 시즌까지 이우형 감독이 지휘했던 안양은 백3를 기반한 ‘선 굵은 역습 축구’를 해왔다. 하지만 유병훈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유 감독은 안양이 그동안 하지 않은 ‘백4’를 이식했다. 백4로의 변화는 유 감독이 이야기한 ‘꽃봉오리 축구’를 대변한다. 꽃망울이 모이듯 중원에 많은 숫자를 둬 촘촘한 중앙 블록을 쌓은 뒤 꽃망울이 펴지듯 넓게 퍼져 나가 속공을 완성 시킨다는 의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핵심은 미드필더였다. 올해 안양은 지난 시즌과 달리 중원을 거쳐 가는 정교한 축구를 시도했다. 실제로 안양은 지난 시즌 대비 전체 패스 숫자와 성공률이 모두 증가했다. 지난 시즌 15,373회 패스를 시도해 79.4% 성공시킨 안양은 올 시즌 16,070회 패스를 시도해 82.9% 성공률을 기록했다. 특히, 공격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방·중앙진영·공격진영 패스 성공률(64.4%, 82%, 78.2%)이 모두 오른 것이 고무적이다. 무의미한 패스는 줄고 유의미한 패스는 늘었다는 것이다.
올 시즌 유병훈 감독이 추구한 ‘꽃봉오리’ 형태에 빠른 속공도 수치와 지표로 명확히 증명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발간하는 ‘월간 TSG’ 11월호에 따르면 안양은 적은 패스 숫자로 가장 빠르게 속공을 완성하는 팀이다.
‘월간 TSG’에서 발표한 통계치에 따르면 안양의 평균 Direct speed(짧은 시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진했는지에 대한 지표)는 약 13.1km/h로 리그에서 세 번째를 기록했다. 안양이 얼마나 직접적인 공격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다. 게다가 공격 작업 시 안양이 시도하는 평균 패스 횟수는 약 2.77회에 불과하다. 즉 안양은 필요 이상의 패스 없이도 상대 깊은 지역까지 전진하는 효율성을 보인 것이다.
유병훈 감독의 ‘꽃봉오리 축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중원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볼을 탈취한 후 2~3번 만의 전진 패스를 통해 속공으로 상대의 골망을 흔든다. 올 시즌 안양이 보여준 K리그2 ‘위너’의 첫 번째 비결이다. ‘백3->백4’로 완벽하게 체질 개선에 성공한 유병훈 감독은 그 공을 인정받아 올해 ‘K리그2 감독상’을 수상했다.
# 이유2: 앞에서는 헌신! ‘압박+공격P’ 승리 만든 ‘브라질’ 트리오

올해 안양의 공격은 외국인 선수들이 책임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맹활약한 마테우스와 야고 그리고 부상으로 중도에 팀을 떠난 단레이가 그 주인공이다. 안양의 ‘브라질’ 삼인방이 단순히 많은 공격포인트를 생산했다고 승격의 이유로 꼽은 건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헌신’이 올 시즌 안양의 여정에서 더욱 돋보였다.
올 시즌 합류한 마테우스는 안양 공격의 핵심이었다.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마테우스는 7골과 11도움(1위)을 기록하며 ‘Best11 공격수’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마테우스는 전 경기에 출전해 총 3,169분을 소화, 평균 88분을 뛰며 ‘철강왕’의 기질도 보였다. 수비 지표에서도 마테우스의 ‘헌신’이 빛났다. 마테우스는 태클 22개, 획득 239개 등 공격포인트 생산뿐만 아니라 수비 상황에서도 적극 가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테우스는 지난여름 이적시장에서 타 팀들의 많은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마테우스는 안양과의 재계약에 서명하며 본인을 둘러싼 이적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 감독은 “팀도, 본인도 강력하게 원했다. 안양을 사랑하고, 안양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 하더라”며 마테우스의 진심을 대신 전했다.
올해로 ‘2년 차’인 야고도 선발과 교체를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 ‘Best 11’ 후보에도 오른 야고는 6골 6도움을 기록했다. 특히, 야고의 헌신이 돋보인 부분은 그가 교체 자원으로 활약했다는 점이다. 야고는 올 시즌 소화한 33경기 중 17경기를 교체 출전했다. 주로 후반전에 투입된 야고는 체력적으로 지친 상대 수비를 흔들고 볼을 전방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했다. 시즌 초, 유병훈 감독의 새로운 전술에서 잦은 수비 가담으로 고전했던 야고는 결국 교체 자원으로 자리 잡아 공격포인트 12개를 쌓았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수는 바로 ‘헌신의 아이콘’ 단레이다. 올해 단레이는 19경기에 나와 4골 2도움을 기록했다. 공격수로서 눈에 띄는 기록은 아니었지만, 수비적인 헌신이 박수 받기 충분했다. 시즌 절반만을 소화했지만, 단레이는 지상 경합 53개(1위), 공중 경합 68개(5위)로 수비 지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레이는 시즌 중반부터 안양과 함께하지 못했다. 22라운드 부산전에서 상대 선수의 태클에 맞아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고 결국 상호 계약 해지로 팀을 떠났다. 그럼에도 단레이가 보여준 ‘헌신’을 부정하는 안양 팬들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을 보여준 안양의 브라질 트리오는 팀을 승격으로 이끌었다. 단레이의 대체자로 들어온 니콜라스(9경기 0골 1퇴장)가 부진하며 외국인 선수들의 헌신에 약간의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외려 단레이에 대한 안양 팬들의 그리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맹활약한 마테우스와 야고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 이유3: 뒤에서는 투지! ‘빌드업+최저 실점 2위’ 승리 지킨 ‘베테랑’ 수비진

‘공격을 잘하면 승리할 수 있지만, 수비를 잘하면 우승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이론을 올 시즌 안양의 ‘베테랑’ 수비진들이 몸소 증명했다. 안양 수비진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30대다. 때로는 높은 연령대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투지와 노하우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베테랑’의 투지를 앞세운 안양은 36실점만을 허용하며 최저 실점 2위를 기록했다.
안양의 허리를 담당하는 3선 미드필더에는 김정현과 리영직이 중심을 잡았다. ‘베스트11 미드필더’ 93년생 김정현은 ‘꽃봉오리 축구’의 핵심 자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을 오간 김정현은 33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강한 몸싸움과 롱패스로 무장한 김정현은 차단 91개(3위), 획득 296개(6위)를 기록하며 중원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파트너인 ‘투지의 수호자’ 91년생 리영직도 준수했다. 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 임창우의 결승골 장면 중 손으로 슈팅을 막은 주인공인 리영직은 조선적 출신으로 북한 국대를 경험한 독특한 이력의 선수다. 리그 29경기에 출전한 리영직은 후방 빌드업의 핵심이었다. 특히, 9라운드 전남전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중거리 슛은 그의 이름을 K리그에 각인시킨 골이었다.
백4로 내려오면 안양의 ‘캡틴’ 90년생 이창용을 빼놓을 수 없다.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진 못했던 이창용은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25경기 출전, ‘베스트11 수비수’에 선정됐다. 특히, 이창용이 시즌 중 구단 유튜브 콘텐츠에서 이야기한 ‘도전자의 입장으로’라는 문구가 화제가 됐다. 이창용의 발언 이후 ‘도전자의 입장으로’라고 적힌 걸개가 안양의 응원석 한편에 걸리게 됐고 이는 선수단의 정신적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이창용의 부상 이탈 이후 주장 역할을 도맡은 ‘부주장’ 92년생 김동진의 투지도 빛났다. 본래 좌측 풀백인 김동진은 팀의 상황에 따라 측면 공격수 역할도 자처했다. ‘윙동진’이라고도 불리며 승부처마다 순도 높은 골을 뽑아낸 김동진은 33경기 5골 3도움을 기록했고 ‘베스트11 수비수’에도 선정됐다. 다른 포지션도 군말 없이 소화한 김동진에 대해 유병훈 감독은 “힘들 때 항상 득점해 줘서 고마운 선수”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 밖에도 ‘베스트11 골키퍼’ 89년생 김다솔, ‘베스트11 수비수’ 92년생 이태희, ‘160경기 연속 출전’ 90년생 주현우 등 각자의 자리에서 투지를 보여준 안양의 베테랑들이다. 승격 기자회견에서 유병훈 감독은 “내가 초보 감독이라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경험 있는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라며 베테랑 선수들의 공을 인정했다.
# 이제는 꽃을 든 좀비?...‘꽃봉오리’ 피운 유병훈 감독 “내년은 좀비 축구다”

유병훈 감독과 선수단은 ‘꽃봉오리’가 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러나 안양은 이제 더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전설적인 전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 감독인 리누스 미헬스는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이라고 말한 적 있다. 한번 만개한 꽃은 내일이면 지기 마련.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K리그2 우승 및 승격 기자회견에서 유병훈 감독은 K리그1에 도전하는 출사표를 던졌다.
K리그1에 오른 안양은 이제 상대적 ‘약팀’의 입장이다. 유병훈 감독은 ‘약팀’이 되지 않기 위해 ‘좀비’가 되겠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올해는 중원으로 거치는 꽃봉오리 축구를 내세웠는데, 내년에는 새로운 걸 하기보단 안양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좀비처럼 1부리그에 남도록 하겠다”라고 각오했다.
유 감독의 ‘좀비 축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직 여러 과제가 남아있는 안양이다. 확실한 득점력을 지닌 외국인 스트라이커, 선수단 고령화에 따른 유망주 육성, 경쟁력 있는 선수단 구축 등 시즌을 앞둔 겨울부터 깊은 고심이 필요하다. 소망의 꽃을 활짝 피운 안양은 이제 화려했던 꽃잎을 떨어뜨리고 처절하게 버티기 위한 ‘좀비’가 되고자 한다.
“나 한 번도 이 세상을 달려보진 않았었지만, 이제 한 번 나의 친구들 영원히 함께 있어줘” 안양의 대표 응원가 중 하나인 ‘싸나이’의 한 소절이다. ‘나’를 있게 만든 친구들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리게 된 안양이다. 11년간 조심스레 갈고 갈아온 칼을 마침내 안양이 뽑아 들었다. 광풍 속으로 달려들 보라색 폭도들은 언제인지 모를 그날을 위해 K리그1으로 힘찬 맹진을 시작했다.
글='IF 기자단' 4기 김진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