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포투=이하영 에디터(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이자 가우디의 미완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2년 착공 후 140년 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 관광객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크레인이 함께 선 모습을 '원래 그런 것'처럼 받아들이며 바르셀로나 풍경의 일부로 생각한다. "언젠가 완공되겠지"라는 말도 농담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 도시의 또 다른 상징, FC바르셀로나의 캄프 누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 중이다.
# “125주년에 맞춘다”던 계획은 무너졌다
2023년 여름, 구단은 오래된 경기장(구 캄프 누)을 허물고 스포티파이 캄프 누를 새로 짓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당초 계획은 2026년 완공, 그리고 창단 125주년(2024년 11월 29일)에 맞춰 팬들이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공사 지연으로 이 계획 틀어졌고, 복귀는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공사 지연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1) 초기 예산 계획과 일정 설정이 현실적이지 않았다. 2) 구단의 재정 압박: 부채와 자재비 상승이 맞물리며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다. 3) 자재·노동력 부족 문제: 글로벌 건설 자재 공급난이 현장을 지연시켰다. 4) 시 당국의 허가 및 인증 절차 지연: 안전, 출입 동선, 비상 통로 검증 과정에서 일부 구간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가가 늦어졌다.
# 894일 만에 다시 찾은 집

그리고 현지시간 2025년 11월 7일, 894일 만에 캄프 누의 문이 다시 열렸다. 2023년 5월 마지막 홈경기 이후 약 2년 반 만이다. 완전한 재개장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 시의회로부터 허가받은 메인 스탠드와 남쪽 골대(Gol Sud) 일부만 개방했다. 21,795명의 팬이 캄프 누에 모여 선수단의 공개 훈련을 지켜봤다. 오전 11시, 공개 훈련을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섰고,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선수들과 팬들 모두가 그리워하던 순간이었다. 라포르타 회장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직접 캄프 누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선수들은 천천히 경기장을 둘러보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피냐와 더 용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측면 스탠드 3층을 올려다보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래시포드와 페르민은 북쪽 골대를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선수들의 눈빛에서 설렘과 이곳에서 경기하는 날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훈련 세션은 팬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했다. 골이 터질 때마다 관중석의 팬들은 크게 환호했고, 응원가가 경기장 전체를 울렸다.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은 공을 차서 관중석으로 보내고, 사인을 해주거나 유니폼을 던져주는 등 아낌없는 팬서비스를 펼쳤다. 감동한 팬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순간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 공개 훈련은 팬 이벤트이자 증명의 무대였다

이번 공개훈련은 단순한 팬 이벤트는 아니었다. 스포티파이 캄프 누의 시설, 출입 동선,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는 ‘기술 테스트’의 성격이 강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반 전에 게이트가 열렸고, 티켓 바코드를 찍고 경기장에 입장했으며, 라인업 발표, 스코어 보드와 음향, 보안 요원 배치까지 실제 경기 운영 시나리오와 동일하게 진행됐다. FC바르셀로나는 캄프 누 시설의 완성도 및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바르셀로나는 현재 1B(45,401석)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구단의 목표는 2주 뒤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라리가 경기를 캄프 누 재개장 첫 경기로 치르는 것이다.
# “미완이지만, 더 넓어졌다” — 내부 첫인상과 공사 현황

스포티파이 캄프 누 외부는 여전히 크레인과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좌석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색인 블라우그라나(푸른색과 붉은색) 패턴으로 배열되었고, 관중석의 경사는 과거보다 완만해져 시야와 이동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내부에서 봤을 때도 3층 상부 스탠드는 아직 공사 중이라 철골 구조가 그대로 노출돼 있었고, 경기장 어디서도 보이는 크레인은 ‘미완의 경기장’이라는 인상을 줬다.
그리고 지붕(루프) 공정은 몇 개월 동안 관중 없이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내년 여름에서야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면 스포티파이 캄프 누의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2027년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계획은 또 바뀔 수 있다. 이에 바르셀로나 팬들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천천히 가도 괜찮다”며 믿고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경기장 앞에서 만난 31년 째 소시오 살바도르 씨는 캄프 누를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살바도르 씨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 2년 반 만의 캄프 누 복귀, 기분이 어떠세요?
“몬주익에서도 경기를 봤지만, 진짜 집은 여기예요. 우리 가족 모두가 이곳의 ‘새로운 시작’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 다시 이곳에서 경기를 볼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완공되면, 세계 최고의 경기장이 될 거예요.”
- 그런데, 공사가 지연되고 있어서 언제 완공될지 기약이 없어요. 팬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공사가 조금 느리긴 해요. 하지만 경기장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새로 짓는 셈이에요. 그러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죠. 바르사를 위한 일이면 뭐든 기다릴 수 있어요. 라포르타 회장이 아주 잘하고 있어요. 돈도 많지 않은데 천천히, 꾸준히 잘 가고 있어요.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살바도르 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바르사는 돈이 많지 않아도, 용기와 가슴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Pit i collons. 그게 우리의 방식이에요.” 살바도르 씨가 말한 카탈루냐 정신 ‘Pit i collons’은 카탈루냐어로 가슴과 용기, 즉 끝까지 버티는 근성과 의지를 뜻한다.
894일 만에 열린 스포티파이 캄프 누의 문. 바르셀로나는 팬들의 믿음 속에 다시,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글=이하영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