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 '풋볼(Fútbol)'은 축구를, '까르따(Carta)'는 편지를 뜻한다. '풋볼 까르따'는 스페인에서 날아온 한 장의 축구 편지다. 단순한 경기 결과를 넘어, 선수들의 이야기와 축구가 스며든 거리와 문화, 그리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설렘을 담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주]

# ‘시벨레스vs넵투노’ 신의 맞대결, 마드리드 더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한가운데에는, 도시의 상징인 시벨레스 광장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사자 두 마리가 끄는 마차 위에 시벨레스 여신이 앉아 있다. ‘풍요와 대지’를 상징하는 이 여신상을 마드리드 시청, 스페인 은행, 육군사령부가 둘러싸고 있으며, 여신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난 대로를 따라가면 마드리드의 심장부인 ‘솔 광장’에 닿는다. 말 그대로 스페인의 중심이자, 수도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공간인 셈이다.

시벨레스 광장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성지’로도 여겨진다.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거두면, 주장이 시벨레스 여신상에 구단의 깃발과 스카프를 걸고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한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전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는 2019년 스페인 방송사 Movistar+에서 시벨레스 여신을 향해 “플라토닉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시벨레스와 시간을 보내는 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어머니를 다시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벨레스(Cibeles)’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며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도 전했다. 이처럼 레알 마드리드에게 시벨레스 여신은, 영광의 순간을 함께하고 늘 그들을 지켜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마드리드에는 시벨레스만큼이나 뜨겁게 사랑받는 또 다른 신이 있다. 시벨레스 광장 옆으로 난 공원을 따라 약 10분쯤 걸으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장소인 넵투노 분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바다의 신’ 넵투노가 삼지창을 들고 파도를 제압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데, 경기 중 격렬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시메오네 감독과 상당히 닮아있다.

본래 시벨레스 광장은 두 팀이 함께 쓰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5연패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자 시벨레스 광장은 점차 레알 마드리드의 전유물로 굳어졌다. 흰색 깃발로 뒤덮인 시벨레스의 풍경은 마드리드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고, 이 시기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인근의 넵투노 분수로 축하 무대를 옮겨야만 했다. 함께 쓰던 공간을 내어주고 옆으로 밀려난 듯한 역사,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스스로 지켜온 자존심. 그것이 아틀레티코의 정신이다.

시벨레스 여신이 권위와 성공, 그리고 승리를 상징한다면, 넵투노는 투지와 끈질김, 저항의 상징이다. 시벨레스와 넵투노, ‘신의 맞대결’이라고 불리는 마드리드 더비에는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있다.

2025-26시즌 첫 마드리드 더비 당일 ‘포포투’가 만난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Nunca dejes de creer(절대 믿음을 버리지 마라)

2025-26시즌 첫 마드리드 더비가 열리는 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구장 시비타스 메트로폴리타노를 찾았다.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곧 도착할 라커룸을 먼저 살펴봤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복도에는 ‘PORQUE LUCHAN COMO HERMANOS(형제처럼 하나 되어 싸우는 팀이기에)’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문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단번에 달라졌다. 천장 중앙의 커다란 구단 엠블럼이 은은한 빛을 내며 공간을 비추었고, 각 선수 이름 위로 켜진 붉은 조명이 더해져 아틀레티코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흰색을 만들어냈다. 라커룸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그만큼 밀도가 높았다. 시메오네 감독의 외침이 벽을 타고 곧장 선수들의 심장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는 공간이었다.

트로피 전시 공간도 둘러봤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역사와 영광을 한눈에 볼 수 있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의 빈자리가 가슴 아픈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세 번의 결승, 세 번의 눈물. 레알 마드리드가 15차례나 UCL 우승을 경험한 팀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공백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틀레티코는 2014년, 2016년 두 번이나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무릎을 꿇었고, 지난 시즌에도 8강에서 마드리드 더비 끝에 탈락했다. 그렇게 두 팀은 역사 속에 서로의 이름을 남기며, 계속해서 마드리드 더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들의 정신 ´Nunca dejes de creer(절대 믿음을 버리지 마라)´를 마음에 새기고 다시 일어서며,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 Siempre sufrimiento(늘 고통이 따른다)

경기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뜨거웠다. 경기장 한쪽 펍에서 나오는 “Atleti~ Atleti~(알레띠~ 알레띠~)” 응원가가 귀를 사로잡았다. 팬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더비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있었다. 펍에서 응원가를 연주하는 밴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페냐(스페인의 팬 모임) 멤버들이었다. 백발의 할아버지 밴드가 온 마음 다해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이 팀을 향한 애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른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함성과 함께 메트로폴리타노가 흔들렸다. 팬들이 발을 구르며 만들어내는 진동이 경기장 전체를 울렸고, 붉고 흰 카드 섹션이 커다란 파도처럼 펼쳐졌다. “¡Aúpa Atleti!(힘내라, 아틀레티코!)”라는 외침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옆자리에는 아버지와 딸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틀레티코는 하나의 신념이자,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은 존재”라면서 “우리 가족 모두가 알레띠인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오늘 더비에 대해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는 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더비에서 승리하면, 나머지 시즌이 어떻든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팬은 “오늘은 마드리드의 주인이 누군지 보여주는 날”이라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표현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마드리드 더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경기는 홈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완승이었다. 전반 14분 르노르망의 선제골로 기세를 잡은 아틀레티코는 음바페, 귈러의 연속골로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쇠를로트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균형을 맞췄고, 후반전에는 훌리안 알바레스의 멀티골과 그리즈만의 쐐기골이 이어지며 5-2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시메오네 감독은 벤치에서 눈물을 보였고, 선수들은 팬들에게 달려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팬들 또한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영광의 순간을 온몸에 새겼다. 수많은 패배를 견뎌온 시간들을 보상받는 듯했다. 메트로폴리타노는 마치 오래 참은 숨을 내쉬듯 폭발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Siempre sufrimiento(늘 고통이 따른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다 보면 오늘과 같은 환희가 찾아온다.

많은 이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웅장함, 화려함에 반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과 가족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고 말한다. ‘포포투’가 만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 어떤 팀보다 가족적이었고, 하나의 신념으로 뭉쳐있었으며, 단단한 정신력을 가진, 그런 매력적인 팀이었다.

포포투의 말: 마드리드 더비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라리가 공식 유튜브 영상을 통해 더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WeaExoUDgaU?si=aif2yhUooVwd85RV

글/인터뷰=이하영 에디터

사진=이하영 에디터,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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