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포투=Mark White]
축구에서 등번호 ‘10번’이 주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10번은 역사상 전설적인 선수들의 번호이자 팀을 상징하는 선수에게 부여하는 번호다.
주로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에이스’가 10번 유니폼을 입는다. 물론 아스널의 윌리엄 갈라스 같은 예외도 있다.
현대에 점차 확대되는 선수단 규모와 글로벌 마케팅의 영향으로 피치 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창의적인 10번은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됐다.
오늘날 10번은 경기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과 가치를 동시에 나타낸다. 여기, 등번호 10번의 위대한 주인공 10명을 모아 봤다.
10. 메수트 외질
스탯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메수트 외질은 한 시대를 풍미한 플레이메이커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하기 전 레알 마드리드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외질은 자신이 몸담았던 클럽 대부분에서 10번 유니폼을 입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차군단의 황금기를 이끌며 올해의 독일 국가대표 선수로 꾸준히 선정됐다. 정치적 문제로 잡음이 있었지만, 정통 10번의 낭만을 부정할 수는 없다.
9. 후안 로만 리켈메
후안 로만 리켈메는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선수 중 한 명이다. 임대와 이적을 거치며 보카 주니어스에만 3차례 몸담은 그는 팀의 눈부신 전성기를 이끌었다.
리켈메는 '엔간체'의 전형이었다. 엔간체는 연결 고리를 뜻하는 스페인어로,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연결하는 아르헨티나의 고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를 일컫는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볼 키핑 능력과 볼 운반력, 킬패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재능 있는 사람은 아무도 맞힐 수 없는 과녁을 맞히고,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과녁을 맞힌다. 리켈메는 천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8. 프란체스코 토티
프란체스코 토티는 원클럽맨의 대명사다. 1988년 AS로마 유소년팀에 입단한 토티는 2017년 은퇴할 때까지 28년간 로마 유니폼만 입었다. 그는 트레콰르티스타부터 좌측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제로톱까지 소화하는 멀티 자원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세계 최정상급 10번을 여럿 배출했다. 토티 역시 그중 하나였다.
토티의 영향력은 끝이 없고 클래스는 영원하다. 많은 이탈리아 선수들은 ‘레전드’ 토티를 우상으로 동경하며 자랐다. 하지만 단순히 그가 10번을 달았을 때 멋있어 보였다는 이유로 10번을 따라 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7. 미셸 플라티니
요즘 아이들은 미셸 플라티니를 부패한 유럽축구연맹(UEFA) 전 회장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수많은 비리와 정치 스캔들에 연루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축구의 영웅으로 불렸다.
플라티니는 1980년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다. 그는 매우 넓은 패스 시야와 날카로운 프리킥 능력으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심지어 득점력까지 뛰어나 공격수로 착각할 만한 득점 기록과 도움 기록을 가지고 있다. 플라티니는 1980년대 3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다.
6. 데니스 베르캄프
아스널에서 티에리 앙리가 데니스 베르캄프의 득점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은 베르캄프가 앙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앙리는 베르캄프가 자신이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베르캄프는 비행 공포증 때문에 ‘날지 못하는 네덜란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과감한 스루패스와 환상적인 볼터치, 볼 컨트롤로 예술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베르캄프는 지금까지도 ‘우아함’ 그 자체로 불린다.
5. 호나우지뉴
왕관을 쓰려는 사람은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특히 그 왕관이 바르셀로나의 왕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호나우지뉴는 바르셀로나의 10번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견뎌내며 항상 경쾌하고 아름다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현역 시절 ‘외계인’으로 불린 호나우지뉴는 예측불허한 플레이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브라질 선수다운 화려한 개인기와 정확한 마무리 기술로 상대 수비수들 농락하기도 했다. 결국,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도 등번호 10번을 차지했다.
4. 지네딘 지단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등번호 5번을 달았던 것은 클럽에서 보인 수준이 10번을 달았던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보인 수준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단은 그 정도로 위대한 프랑스 축구의 전설이자 아트사커의 지휘자였다.
지단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연달아 우승을 차지했다. 그가 이뤄낸 수많은 우승 경력과 무수한 개인 커리어는 그가 유럽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다는 사실을 공고히 한다.
3. 디에고 마라도나
디에고 마라도나는 폭발적인 드리블로 수비진을 뚫어냈고 위협적인 왼발 프리킥으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손꼽혔으며 창의적이고 변칙적인 패스로 경기를 지휘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일인자였다.
마라도나는 모든 세대를 대표하는 ‘No.10’이다. 심지어 그는 1982년 대회에서 다른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동료들이 알파벳 순으로 등번호를 받는 와중에 홀로 10번을 배정받기도 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 마라도나는 10번을 상징하는 최초의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며 오늘날 모든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준점이 됐다.
2. 펠레
펠레는 브라질의 4-2-4 포메이션에서 10번 역할을 맡았다. 펠레는 브라질 10번 계보의 시작이었으며 축구에서 등번호 10번이 지금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었다.
10번과 ‘축구의 황제’ 펠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더군다나 그는 1958년 스웨덴,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월드컵 3관왕에 오른 유일한 선수다. 마라도나를 밀어내고 2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1. 리오넬 메시
또 누가 있겠는가?
리오넬 메시는 지난 10년간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이 10번을 달게 한 시대의 아이콘이자 가장 존경 받는 우상이다. 비록 현재 파리 생제르맹(PSG)에서는 30번을 달고 있지만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의 등번호를 물려받은 안수 파티에게는 부담감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제 새로운 10번이 된 파티는 메시의 후계자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번역=유다현 에디터
사진=게티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