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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별명은 ‘꿈꾸는(夢) 왕자님’. 정 회장의 자서전 <축구의 시대>에서 저자 소개를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이제는 그 꿈에서 깨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아니, 어쩌면 많이 늦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2일 대한축구협회(KFA)에 현 회장직 사퇴서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연임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으로 후보자 행보를 시작했다. 정회장은 이미 지난달 29일 하나은행 K리그 2024 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후보 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라 밝히며 4선 연임 도전을 공식화한 바 있다. 정 회장은 공정위의 연임 심사를 통과해야 선거에 나설 수 있다. 다만 정 회장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을 역임하는 등 기준점을 넘기는데 충분한 점수를 확보한 만큼 출마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가 정 회장의 4선 연임 도전을 허용한다면 앞서 출마를 선언한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경선을 치르게 된다. 12년만의 경선이다. 정 회장은 2013년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서 경선을 거쳐 당선됐고, 이후 제53, 54대 선거는 단독 출마해 3연임을 이어갔다. 차기 축구협회장 선거는 내년 1월 8일에 치러지며, 앞서 오는 12일 선거운영위원회가 구성되면 일정이 본격화된다. 그 가운데 25일부터 27일까지 후보자 등록이 진행되기에 새로운 인물의 출마 가능성 또한 배제해선 안 된다. 한편 새 회장의 임기는 선거 이후 1월 22일 정기총회부터 시작된다.
# 정 회장이 나가야 하는 이유
독단적인 운영 체계와 집행부의 무능력 및 무원칙. 이것이 정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다. 정 회장의 지난 12년은 문제의 연속이었다. 특히 감독 선임 과정은 이것을 유감없이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결과적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은 철저히 배제됐다. 되레 지연주의, 학연주의, 혈연주의 등 병폐만이 만연한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 축구의 수준을 격하시켰다.
이에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7월 29일부터 대한축구협회의 ▲클린스만,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비리 축구인 기습 사면 및 철회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 관련 차입금 실행과 보조금 집행 ▲비상근 임원 급여성 자문료 지급 ▲지도자 자격 관리 ▲기타 운영 관련 사항에 대해 감사를 진행했으며, 지난 5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특정감사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총 27건의 위법 및 부당한 업무처리를 확인, 이에 대해 합리적인 개선 방안 마련과 더불어 정 회장을 비롯한 관련인에 대해 자격정지 또는 해임 및 파면할 것을 요구했다. 정 회장의 지난 12년은 이랬던 것이다.
# 감독 선임 과정의 문제
정 회장의 과오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감독 선임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상당한 것이다. 감독 선임 과정을 통해 드러난 정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과 집행부의 무능력 및 무원칙.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시된 지연주의, 학연주의, 혈연주의 등 각종 병폐들. 그렇게 그 어느 해보다 화려했어야 한 한국 축구의 2024년은 불공정과 불투명으로 얼룩진 채 최종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면서 되레 2014년으로 회귀했다.
물론 감독 선임이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은 백번 이해한다. 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감독만 5,000만 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선택을 하던 간 협회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협회에게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미 직접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거쳐 감독을 선임했고, 나아가 성공까지 거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파울로 벤투 감독 선임 건이 그것인데, 당시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이 투명성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브리핑을 통해 벤투 감독을 향한 냉소적인 반응을 반전시켰다. 덕분에 협회는 그들의 방향성에 지지를 얻었고, 결과적으로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임생 위원장의 브리핑을 보아라. 그저 기득권자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하소연하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정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과 집행부의 무능력 및 무원칙은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정 회장이 친분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황금 세대를 이끌고도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탈락’이라는 씁쓸한 결과만을 남겼다. 나아가 지난 2월 그를 경질하면서 내준 거액의 위약금 때문에 협회는 재정적 타격마저 입게 됐다. 이후에도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의 막장 행보는 계속됐다.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한국 축구는 흑역사만을 생산해냈다. 공석인 감독 자리를 두고 호기롭게 ‘5월 내 선임’을 외쳤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그 사이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U-23 대표팀을 지휘하던 황선홍 감독을 겸임시켰다. 이는 ‘40년 만에 올림픽 진출 실패’라는 화살로 돌아왔다.
최종적으로 지난 7월 정관을 무시하면서까지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면서 막장 행보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현역 프로 감독을 시즌 중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차출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 선택은 결국 한국 축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K리그를 철저히 무시한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감독 평가에서 홍 감독은 다비드 바그너 감독에 밀린 2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집행부의 선택으로 선출됐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팬들이 있어야 축구가 존재한다. 팬들이 모여야 시장이 형성되고, 시장이 형성되야 자금이 유통된다. 그래서 협회는 축구를 통해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오히려 팬들의 신의를 저버렸다. 불공정과 불투명을 일삼았다. 더욱이 그 선택의 결과 또한 좋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승할 만한 전력을 갖추고도 협회의 무능함 때문에 졌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의 최종 결정권자는 정 회장이다.

# 4연임에 대한 정 회장의 고집,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이미 정 회장은 매스컴과 자서전 등을 통해 자신의 경력이 명예롭게 마무리되길 희망한다고 직간접적으로 표현해 왔다. 만약 그가 지금의 여론을 수용한다면 불명예 퇴진에 불과하다. 이는 그가 자부하는 30년 축구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는 것과 같다. 나아가 최동호 스포츠평론가에 따르면 “정 회장은 축구협회장을 일종의 가업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왜 명예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정 회장은 ‘천안축구종합센터 완공’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카드라 믿고 있다. 12개의 축구장과 체육관, 숙소, 박물관 등을 포함한 이 대규모 사업은 내년 6월 완공 예정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해당 센터의 완공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욕심은 분명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또 본인이 4선 도전을 포기할 경우 해당 센터 건립을 위해 쓰인 많은 부채가 차기 회장 집행부에게 전가되는 만큼, 그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정 회장에게 반문하고 싶다. 정말 회복할 명예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천안축구종합센터는 향후 성공적으로 완공 및 운영이 되더라도 그것의 본질적 취지를 의심받게 됐다.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이 진정 한국 축구를 위함인지, 아니면 정 회장 본인의 4선을 위함인지 그 목적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대한체육회로부터 임원 연임 제한이 폐지되기 전까지 본래 대한체육회와 소속 단체 임원은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4선이 금지됐다. 그러나 뚜렷한 업적이 존재할 시 그 공을 인정해 예외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는데, 정 회장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천안축구종합센터의 공정을 늦춘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더욱이 건립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허위 신청 및 관급자재 선금 집행 등 여러 비리가 드러나면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문체부의 감사를 통해 축구협회가 보조금 신청 시 허위 자료를 제출해 56억 원을 부정 수급했으며, 사업비 21억 원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과연 이것을 명예라 볼 수 있을까.
#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한국 축구가 도태되는 사이 세계 축구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먼저 독일축구협회(DFB)는 지난 3월 자국 브랜드 아디다스와 결별을 선택하고 나이키와 2027년부터 2034년까지 장비 공급계약을 맺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독일에서 자국 브랜드 아디다스의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이는 분명 파격적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우승 이후 긴 시간 부진이 이어지면서 독일축구협회는 2022년 420만 유로(약 61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난을 맞이했고, 이를 쇄신하기 위해 아디다스보다 2배 이상의 금액을 제시한 나이키를 선택한 것이다.
옆나라 일본은일본축구협회(JFA)의 든든한 지원 아래 2005년부터 ‘일본의 길’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그 결과 유럽파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해 내면서 전력 강화에 성공했고, 이는 국제무대에서 연이은 성과로 이어졌다. 더욱이 일본축구협회장의 평균 재임 기간이 4.3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괄목할 만한 성과다. 나아가 지난 3월에는 최연소 축구협회장을 맞이했다. 대표팀과 J리그를 경험한 미야모토 쓰네야스가 47세의 나이로 제15대 일본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미야모토 회장은 “다음 100년까지 보는 장기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하겠다”라며 신선한 바람을 예고하는 한편 일본 축구계에 ‘2050년까지 월드컵 개최 및 우승 도전’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했다.
이렇듯 세계 축구가 개혁을 거듭하며 발전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정 회장의 집권 이래 이렇다 할 개혁이 있었는가? 또 지난 12년간 해오지 못한 걸 이제 와서 한들 제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어쩌면 한국 축구가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은 아닐 지 우려된다. 망설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와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정몽규 회장님, 이제는 꿈에서 깨실 시간입니다.

글=’IF 기자단’ 4기 송청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