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포투=이종관(안양)]
30살, 누군가는 늦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지만 김운에겐 이제 시작이었다. 세미프로 수위급 공격수로 성장한 그는 지난겨울, K리그2 ‘명문’ FC안양 유니폼을 입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영입이었다.
예상대로 프로의 벽은 높았다. ‘내가 프로 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하부 리그부터 쌓아온 경험은 배신하지 않았다. 개막 4경기 만에 교체 투입되며 생애 첫 프로 무대를 밟았고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살면서 벅차오른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나 혼자만 운동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8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데뷔전부터 데뷔골을 폭발시킨 그는 기세를 이어 안양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 30살에 밟은 프로 무대

번번이 승격 실패의 아픔을 겪은 안양은 새 시즌을 앞두고 유병훈 감독을 선임하며 새판짜기에 나섰다. 박재용이 떠난 이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던 최전방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단레이를 영입했고, 세미프로 경험이 풍부한 김운과 ‘유망주’ 이동현이 합류했다. ‘우승을 노리기엔 무게감이 떨어지지 않나?’라는 우려가 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기우였다.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타깃맨’ 단레이는 완벽하게 K리그2 무대에 적응했고, 활동량과 연계에 강점이 있는 김운 역시 그라운드 안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내보였다. 그 결과, 안양은 시즌 초반부터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주며 K리그1 승격을 향해 달려나갔다.
-군 복무를 마치고 FC안양에 입단한다. 언제쯤부터 이야기가 오갔나?
(유병훈) 감독님 선임이 12월 중순쯤에 결정 났고 한 일주일 뒤부터 빠르게 진행됐다. 단레이랑 (이)동현이 말고 다른 유형을 원하셨다고 들었다. 김연건 수석 코치님이 아이디어를 내셨고 감독님께서도 동의하신 걸로 알고 있다.
-FC안양은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부담감도 있었을 텐데?
있었다. FC안양은 명문 구단 아닌가. ‘내가 여기서 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동계 훈련부터 주눅이 들었다. 또 잘 보여야 하니 힘도 많이 들어갔다.
-이제 정말 프로 무대로 왔다. 확실히 다른 점이 느껴졌나?
운동에 임하는 마인드, 몸관리부터가 달랐다. 확실히 체계가 잡힌 느낌이었다. (코칭·지원) 스태프분들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정말 프로 선수가 됐다는 것을 느꼈다. 또 훈련하면서 선수들도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었고 감독님께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려주셨다.
-시즌 시작 전의 목표?
5골 3도움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목표를 높게 잡으면 그 근처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시즌 기록이 하나씩 부족한 4골 2도움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주전 경쟁에 대한 자신감?
시즌 시작 전에 감독님과 면담을 했는데 “어느 구단이든 외국인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들은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고 대신 네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너를 기용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감이 생겼고 때마침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반응?
사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첫 출전이 안산 그리너스전이다. 교체 투입 후 골까지 넣었는데?
사실 경기 출전도 예상하지 못했다. 팀의 기세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또 교체 패턴도 항상 비슷했기 때문에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현우 형과 나를 부르시더라. ‘내 존재감을 보여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마테우스가 좋은 크로스를 올려줬고 골까지 만들었다. 살면서 벅차오른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때 딱 느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나 혼자만 운동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릿한 기억이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예상했는지?
K3·K4리그와는 달리 프로는 주중 주말 계속해서 경기가 있다. 로테이션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때가 내가 나설 타이밍이라고 느꼈다. 운 좋게 감독님께서 바로 다음 경기에 날 선발로 넣으셨다. 항상 ‘사람은 기세가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부천전을 준비하면서도 (김)연건 코치님이 닐손주니어에 대한 피드백을 많이 주셨다. 그런데 정말 그대로 되더라. 그러면서 자신감을 많이 찾았고 대승(3-0)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지대 더비’에서도 득점을 올렸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경기였다. 13,000명 정도의 관중이 들어왔던 것 같은데 부담도 되고 긴장도 많이 됐다. ‘이런 게 정말 더비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기는 잘했던 것 같은데 격차가 0-3까지 벌어졌다. 교체 투입되면서 팬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마테우스가 날린 슈팅이 나에게 오면서 득점에 성공했다. 그나마 영패를 면한 것이 팬분들께 위안이 된 것 같다.
-화려한 득점보다는 집념으로 만든 득점이 많은데?
득점왕을 하던 시절부터 돌이켜보면 그런 득점들이 많은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골문으로 쇄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 넣은 득점들이 그런 식이었다. 팬분들께서는 ‘인자기(필리포 인자기)’라는 별명으로 나를 불러주시기도 한다(웃음). 어쨌든 같은 한 골이지 않나. 절실함이 만든 득점들인 것 같다.
# 경쟁자 단레이의 부상 그리고 역사적인 K리그2 우승

지난여름, K리그2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던 안양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던 단레이가 부상을 당한 것. 그의 이탈은 김운에게도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새로운 외국인 선수 니콜라스가 영입됐으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전방에서의 득점력은 더 떨어지기 시작했고 팀 역시 3연패를 기록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위기감이 최고조로 올랐던 것 같다. 선수들도 타 팀 경기 결과를 다 보지 않나. 또 이전에 (팀이) 그런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팀원들 모두 조금씩 그런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거센 바람도 안양의 승격 의지를 꺾진 못했다. 휴식기 동안 전지훈련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은 안양은 이후 4경기에서 단 한차례도 패배하지 않으며 역사적인 창단 첫 K리그2 우승을 차지했다. K리그2 우승이 확정되자 안양 팬들은 영화 같은 홍염 세리머니를 펼치며 11년간 묵어온 한을 풀어냈다.
-여름에 경쟁자인 단레이가 부상으로 팀을 이탈했다. 출전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텐데?
사실 부담감이 더 컸다. 단레이와 번갈아가며 경기를 뛸 땐 체력적인 부분들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면 그런 부분들이 더 요구된다. 첫 시즌이다 보니 나는 아직 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적인 압박이 컸는데 감독님이나 코치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다행히 바로 다음 김포전에서 골을 넣어서 기뻤다.
-새롭게 니콜라스가 영입됐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있었나?
외국인 선수가 빨리 와서 팀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니콜라스는 훈련장에서 정말 좋은 능력을 보여준 선수다. 그래서 동료들이나 감독·코치님들도 기대가 컸다. 아무래도 퇴장도 당하면서 잘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같은 스트라이커로서 정말 좋은 능력을 갖춘 선수라고 느꼈는데 ‘확실히 훈련장과 경기장은 다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니콜라스가 영입된 이후 특히 득점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공격수로서 부담감도 있었을 텐데?
공격수는 골 하나로 자신감을 찾는다. 그런 부분에서 오는 공격수들만 아는 부담감이 있다. 팬분들께서도 ‘앞쪽에서 골을 넣지 못하니 팀이 힘을 내지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부담감이 정말 컸다. 특히 3연패를 하는 동안 팀이 무득점이었다. 선수들도 많이 힘들어했고 분위기도 굉장히 안 좋았다. 감독님께서도 많은 고민을 하시다가 보은 전지훈련에서 해답을 찾으신 것 같다.
-우승을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은데?
위기감이 최고조로 올랐던 것 같다. 선수들도 타 팀 경기 결과를 다 보지 않나. 3연패 중 1승만 했더라도 격차를 벌릴 수 있었다. 또 이전에 (팀이) 그런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들 조금씩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부천전에서 K리그2 우승을 확정 지었다. 프로 첫 시즌 만에 거둔 우승인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을 달성했다. 또 FC안양이라는 명문 팀에 와서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했다. 특히 홍염 퍼레이드는 정말 멋있었다. 다른 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낭만 있는 팬들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너무나 행복한 시즌이었다.
-올 시즌 활약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75~80점 정도를 주고 싶다. 우선 개인적인 목표로 설정했던 5골 3도움을 올리지 못했다. 팀이 우승을 해서 기분은 좋지만 2라운드 로빈 때 팀에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들에서 25~30점 정도를 뺐다.
-한 해를 돌이켜 본다면?
우선 감독·코치님, 동료들에게 힘든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또 팬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같이 좋아하고 슬퍼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여자친구도 내가 힘들 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테니 항상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5경기 4골 2도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활약이었다. 8년 전, 절박한 심정으로 하부 리그를 두드렸던 김운은 이제 대한민국 최상위 리그 무대를 밟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까지도 낮은 곳에 꿈을 키우고 있는 ‘제2의 김운’을 향해 희망찬 조언을 남겼다.
“요새 결혼식 시즌이다 보니 K3·K4리그에서 뛰는 동료들을 많이 만난다. 아는 형이 있는데 내년에 35살이 된다. K3리그에서도 상도 많이 받고 인정받는 선수인데 프로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있다고 말하더라. “충분히 할 수 있고, 형이 가고자 한다면 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을 믿고 능력을 보여주면 프로 무대에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