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 ‘IF’의 사전적인 의미는 ‘만약에 ~라면’이다. <IF 기자단>은 ‘만약에 내가 축구 기자가 된다면’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누구나 축구 전문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발행하고 있는 ‘No.1’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함께 하는 <IF 기자단>은 K리그부터 PL, 라리가 등 다양한 축구 소식을 함께 한다. 기대해주시라! [편집자주]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의도치 않게, 우연히 얻은 경험이나 성과를 일컫는 단어이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누구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차상엽 해설위원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국제기구에서 일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선택한 그는 원하던 대로 국제기구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축구의 나라’ 독일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졌다. 축구의 매력에 빠진 그는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통신원, 기자 등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뜨거운 유럽 축구 현장의 열기를 품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이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은 그는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던 중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갑작스럽게 해설위원으로서 중계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어느덧 15년 차 축구 전문 해설위원이 된 차상엽 해설위원이다.

그는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진짜 우연이다’며 우연을 주장한다. 그러나 끊임없는 도전의 반복이 그가 가진 역량과 재능을 살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게 했던 것 아닐까.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 차상엽 해설위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실 처음부터 축구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모든 스포츠를 다양하게 좋아했다.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축구 선수로 활동도 했었다고 들었다. 축구 선수를 그만두게 된 이유와 독어 독문학(학사), 정치학(석사)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독어독문학은 한국에서 공부했고, EU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목표가 있었기에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실제로 회사에 들어가서 6개월 정도 일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환경이 한국이랑 너무 똑같았고, 결국에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축구 선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유학 시절 취미로 했다. 당시 학교 축구팀이5부 리그에서 경기를 치렀다. 골키퍼로 한 두 경기 출전했던 것이 전부다. (웃음)

-모든 운동을 좋아했다고 했는데, 그 중 굳이 축구팀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사실은 야구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유럽은 축구가 더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축구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 한두 경기 뛰게 해준 것을 보면 못하진 않았나 보다. 두 경기하면서 한 네 골인가 먹었다. (웃음)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겪었던 일 중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있는지?

태어나서부터 계속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독일에 가서는 도시와 거리가 먼 동네에 살았는데, 그 조용하고 여유로운 환경이 좋았던 것 같다. 편안했던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환경은 좋았는데 마음 맞는 친구가 많지 않았던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 축구의 길을 선택한 도전: 유럽 축구의 매력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것은 처음부터 축구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기구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독일에 도착했고,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퇴사하고 축구와의 동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를 축구의 길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하게 한 유럽 축구현장에서의 경험과 분데스리가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럽에 있는 동안 통신원으로도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다 인상적이다. 당시 유럽에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설기현 등의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포함한 수많은 축구 경기를 봤고, 수많은 경기장에 갔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영표 선수, 박지성 선수 그리고 히딩크 감독이 PSV 에인트호번에 있었을 때 에인트호번 필립스 스타디움을 방문했었다. 그때 경기장 환경에 반했다. 겨울이었는데 경기장에 히터가 나오더라. 축구장이 차원이 다르고, 배려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많이 하실 때 뭔가 기억에 남는 취재의 순간도 혹시 있는지?

기억에 남는 취재의 순간은 많다. 한국 선수들이 골 넣었을 때가 기억이 잘 나는 것 같다. 한국 선수들이 골 넣었을 때 한국인인 나를 알아보고 외국인들이 축하해 줬던 것도 기억난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독일 축구’하면 ‘투박한 축구’가 차별화된 점이다. 다른 리그는 기술적인 축구를 많이 하는데, 독일은 투박하고 새로운 동유럽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게 특징이다.

-독일과 한국 축구 현장의 차이점은?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축구판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마케팅을 예로 들자면, 유럽의 경우 그 경기장 내에서만 나오는 광고들도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몇 만 명이 들어와서 앉아서 광고를 보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도 판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요새는 조금 관심이 늘고 있는 거 같다.

# 통신원에서 해설위원으로: ‘말’로 축구를 전하게 된 계기

통신원 및 기자로서 유럽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축구 현장을 취재했던 그의 경험담을 들어봤다. 여러 경험을 통해 축구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그는 유럽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도 축구는 그에게 여전히 동반자로 남아있으며 이제는 축구 해설위원으로 많은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해설위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덧 15년 차 해설위원이 된 그는 ‘의도치 않게’ 맡게 되었던 첫 중계를 회상하며 당시 상황을 솔직하고도 생생하게 풀어냈다.

15년 차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상엽 해설위원(오른쪽). (사진 = 본인 제공)
15년 차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상엽 해설위원(오른쪽). (사진 = 본인 제공)

-통신원 이후에는 에이전트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로 축구 선수와 배구 선수를 중심으로 에이전트를 운영했다. 배구의 문성민 선수가 독일 진출할 때 같이 갔었다. 전술 회의나 비디오 분석할 때 같이 들어가서 통역해 줬다.

-2009년부터 해설을 했다고 들었다. 에이전트를 어떻게 그만두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에이전트로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일하기는 했었는데, 일을 하다가 어려워져서 그만뒀다. 에이전트 직업 특성상 생기는 리스크들이 있는데, 그 책임들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365일 중에 거의 150일 이상을 해외에 있다 보니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됐다. 그래서 그만뒀다.

-해설위원이 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했나?

사실 준비를 하나도 안 했었다. 기존의 해설위원이 갑자기 당일에 다쳐서 해설하러 못 오니까 대타를 구하는 PD한테 연락이 왔다. 일단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갑자기 스페인 라리가 중계를 들어가게 되었다. 땀 뻘뻘 흘리면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방송사가 그다음 시즌에 분데스리가 중계권을 구매했다. 내가 독일어를 하니까 PD한테 선수 이름 읽어주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분데스리가 해설에 들어가게 됐고,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진짜 우연이다.

-15년간 해설을 해오면서 많은 경기를 보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

해설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경기가 끝나면 보통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정우영 선수의 바이에른 뮌헨 데뷔전을 중계한 게 기억에 남는다. 이전 해에 독일에 출장을 가고 휴가 때 바이에른 뮌헨 캠퍼스를 갔었는데, “지금 유소년팀에 있는데 굉장히 크게 될 선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1~2년 뒤에 중계하는데 그날 정우영 선수가 데뷔했다. 우리나라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뛴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데, 그 순간을 중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설위원이라는 직업의 장단점이 궁금하다

단점은 확실하다. 규칙적인 생활이 어렵다. 유럽 축구가 대부분 새벽에 있다 보니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다. 그리고 K리그는 지방을 많이 가야 해서 돌아다니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힘들 것이다. 또 조용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조용한 사람이라 처음에 적응하기 오래 걸렸다. 요즘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낯을 많이 가리긴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 해설 일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특이한 일이라 남들에게 이 직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좋다는 것은 장점이다.

-해설위원으로 해설하실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나 신경 쓰는 부분은?

틀린 정보를 주면 안 되니까 정보를 굉장히 많이 찾는다. “얼마나 준비한다고”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전날은 무조건 이것만 준비한다. 외울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외운다고 해서 다 써먹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옛날 기사들 다 찾아보고 선수 파악을 다 한다. 그리고 해설하면서 중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중립을 지키기 위해 신경 많이 쓴다. 양 팀 팬들을 만족시키려고 일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한다.

해설을 준비하는 루틴에 대해 질문을 받자, 노트를 꺼내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차상엽 해설위원의 모습이다. 중계 전날에 하루 종일 준비한다는 그의 빼곡한 노트속에는 완벽한 해설을 위한 수많은 노력과 준비가 담겨 있었다. (사진 = ‘IF 기자단’ 2기 박윤서)
해설을 준비하는 루틴에 대해 질문을 받자, 노트를 꺼내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차상엽 해설위원의 모습이다. 중계 전날에 하루 종일 준비한다는 그의 빼곡한 노트속에는 완벽한 해설을 위한 수많은 노력과 준비가 담겨 있었다. (사진 = ‘IF 기자단’ 2기 박윤서)

# 해설위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차상엽 해설위원이 말하는 ‘습관의 중요성’

차상엽 해설위원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설의 기회를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지만, 유학부터 에이전트까지 쉴 새 없이 새로운 일에 끊임없는 ‘도전’을 반복한 그는 이미 ‘우연한 기회’를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통달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설위원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될 만한 조언을 구해봤다.

-해설위원을 꿈꾸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같은 게 있나?

축구 해설위원이라면 당연히 축구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국어를 잘해야 한다. 선수 출신들이 축구 중계를 할 때 제일 거슬리는 부분 중의 하나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쓰지 않는 말들을 쓰는 거다. 흔히 말하는 표준어가 아닌 말, 비속어 같은 것들이 습관적으로 나온다. 생활에서 욕을 자주 하면 무의식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언어적인 부분 말고도 필요한 역량 같은 게 있나?

해설은 경험이 쌓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 아까 얘기했듯이 처음 해설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처음에 같이 중계를 했던 캐스터분이 연륜이 조금 있으신 분이었는데 처음 해설을 끝내고 나서 모니터링을 해 주셨다. 그리고 아무래도 순발력이 좋으면 좋다. 나는 순발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캐스터가 농담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

-그렇다면 언어적인 능력을 기르기 위한 본인만의 공부법이 있는지?

“너는 잘해서 그러냐?”라고 할 것 같아서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평소에 잘해야 될 것 같다. 사람은 습관적으로 평소에 하던 습관이 나온다. 아까도 얘기한 대로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은 언젠가 그게 나온다. 되도록이면 표준어를 쓰고, 예의 바르게 말했으면 좋겠다.

#차상엽 해설위원의 목표: 축구와 함께하는 미래

국제기구 일원에서 통신원, 기자, 에이전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축구의 현장에 오래 몸 담아온 차상엽 해설위원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중계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매체에서 축구 관련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지 않을까”라며 또 다른 도전을 예고했다.

최형진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 ‘극장골’에 출연하고 있는 차상엽 해설위원(왼쪽)의 모습이다. (사진 = 유튜브 ‘극장골’ 캡쳐)
최형진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 ‘극장골’에 출연하고 있는 차상엽 해설위원(왼쪽)의 모습이다. (사진 = 유튜브 ‘극장골’ 캡쳐)

-차상엽 해설위원에게 축구란?

남들이 하지 않는 그런 기회를 준 거다. 기자, 팬들, 감독, 선수 다 축구에 관계된 사람이지만 해설하는 사람은 한 명이다. 이런 특별한 일을 하게 해준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언젠가 독일로 돌아가 축구 전문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꿈을 가졌는지?

그건 옛날이다. 2009년부터 해설위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고, 운이 잘 따라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설을 잘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더 하지 않을까. (웃음)

-앞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것들이 따로 있는지?

중계를 그만두더라도 요즘은 매체가 많아졌으니 다음 새로운 매체가 나올 때쯤 축구계의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아무튼 축구와 관계된 걸 할 것 같다.

-오늘 인터뷰에 대한 소감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 인지”에 대한 질문에 끝까지 답변 못했는데, 그 답은 앞으로 계속해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 차상엽 해설위원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채로운 경력을 쌓아온 그의 해설위원이 되기 전 인생과 직업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해설위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조언까지 들어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 해설위원을 꿈꿔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축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했고,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축구 현장과 항상 가까이 있었으며 준비되어 있었기에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운이 좋았다’며 지금까지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표했다.

콘텐츠 제작=‘IF 기자단’ 2기

글=신지영, 윤보나

사진=박윤서

현장 취재=권은희, 박윤서, 신지영

자료 조사=김도원, 윤보나, 최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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