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Richard Jolly]

델레 알리가 결국 이적 시장 마지막 날 프랭크 램파드 감독이 이끄는 에버턴으로 떠났다. 지난 2015년 토트넘 훗스퍼에 입단한 알리는 한때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으로 불리며 램파드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갑작스럽게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아예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알리에게 러브콜을 보낸 램파드 감독은 현역 시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맹활약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알리가 나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겠냐고? 당연하다"라고 답하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램파드 감독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지만 그가 알리를 "특별한 선수"라고 극찬한 것은 지난 2017년.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발언이었다. 실제로 램파드 감독은 알리를 두고 "20세 때의 나보다 훨씬 낫다"라며 그의 재능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리는 2015-16시즌부터 매 시즌 10골, 22골, 14골을 넣으며 역대 잉글랜드 미드필더 중 가장 어린 나이로 EPL 50골의 고지를 밟았다. 당시 나이는 23세로 이른바 '스램제'로 불리는 폴 스콜스,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의 기록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전성기를 맞이한 알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페널티 박스 안으로 거침없이 침투하는가 하면 어느새 박스 밖으로 나와 공간을 창출했다. 2016년 1월에는 에버턴 수비진을 넘긴 토비 알더베이럴트의 롱패스를 문전에서 단 두 번의 터치 만에 골로 연결했다. 간결한 볼 터치와 깔끔한 결정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는 특히 지능적인 오프더볼 움직임과 공간 침투로 두각을 드러냈다.

게다가 그 시절 알리는 강팀 킬러의 면모를 보였다. 21세의 알리는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4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무려 2골을 터뜨렸다. 그날 토트넘은 알리의 멀티골에 힘입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레알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어리고 패기 있는 알리를 향해 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다. 천정부지로 뛴 그의 몸값은 어느새 1억 파운드(약 1,625억 원)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레알이 영입에 관심을 보이며 알리와 강하게 연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차기 행선지는 결국 에버턴이었다. 에버턴은 기본 이적료 없이 20경기 이상 출전 시 1,000만 파운드(약 160억 원)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최대 80경기 4,000만 파운드(약 650억 원)를 약속했다. 이제 알리는 매각해도 이적료조차 받지 못하는 선수로 전락했다.

그런 알리에게 램파드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에버턴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알리 영입에 나섰다. 그렇다고 그의 추락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알리가 토트넘에서 방출돼 남은 시즌 강등권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느덧 25세가 된 알리는 램파드 감독의 제자는 맞지만 더 이상 램파드의 후계자는 아니다. 이제는 '미들라이커' 램파드가 기록한 리그 177득점을 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알리는 램파드의 계보를 이을 잉글랜드 차세대 미들라이커로 불렸으나 아직 리그 51골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2개월 동안 넣은 골은 단 하나. 그 1골마저 페널티킥(PK) 골로, 오픈 플레이 상황에서는 2년 넘게 득점하지 못했다.

알리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토트넘을 떠난 뒤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이후 조세 무리뉴 감독,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이 토트넘을 거쳐갔지만 그 누구도 알리를 중용하지 않았다. 현재 토트넘을 이끌고 있는 안토니오 콘테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자연스레 대표팀에서의 입지도 흔들렸다. 오랜 기간 잉글랜드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미 많은 어린 선수들이 알리를 따라잡았다고 판단했다. 램파드가 한창 자신의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던 나이에 알리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댔다.

한편 램파드 감독은 강등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에버턴 사령탑에 앉았다. 자신의 미래를 건 도박이었다. 여기에 알리까지 영입하며 또 다른 도박을 걸었다. 다만 긍정적인 점은 램파드 감독이 짧은 감독 커리어 동안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들과 함께 좋은 시너지를 냈다는 것이다.

더비 카운티 감독 시절 해리 윌슨만 봐도 그렇다. 윌슨은 분명 괜찮은 득점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 시즌에 9골 이상 득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18-19시즌 램파드 감독 체제에서는 무려 15골을 터뜨렸다.

또한, 메이슨 마운트는 램파드 감독 커리어 최고의 걸작이었다. 램파드 감독은 마운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마운트는 UCL 우승을 차지한 2020-21시즌 첼시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그런 마운트의 유일한 단점은 문전에서 램파드만큼 무자비하지 않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램파드 감독이 2019-20시즌 첼시에서 중용한 윌리안 역시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알리는 토트넘 시절 지오반니 로셀소, 탕귀 은돔벨레와 포지션이 겹쳤다. 에버턴으로 둥지를 옮기며 주전 경쟁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도니 반 더 비크의 임대 영입으로 다시 경쟁을 이어가게 됐다.

그러나 알리의 역할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몇 년 전 램파드 감독은 알리를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적어도 누누 감독처럼 알리에게 어색한 '8번 롤(중앙 미드필더)'을 맡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알리가 파이널 서드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진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알리의 부진은 단지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는 지난 3년간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건방진 태도로 점점 빛을 잃어갔다.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알리를 붙잡고 애정 어린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둘 사이 갈등의 골만 깊어질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과거 램파드 감독 또한 무리뉴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특히 램파드는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EPL 우승 3회, 잉글랜드 FA컵 우승 1회, 잉글랜드 풋볼리그컵(EFL컵) 우승 3회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제지간이어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 무리뉴 감독은 영국 '스카이 스포츠' 해설가로 활동하던 시절 램파드 감독의 선수 기용을 비판했다. 그는 마운트를 비롯한 몇몇 선수를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이제는 램파드 감독이 알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알리가 지난 몇 년간 방황하는 사이 토트넘은 결국 그를 포기했지만 램파드 감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넥스트 램파드가 되지 못한 알리에게 진짜 램파드가 나설 때가 왔다.

번역=유다현 에디터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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