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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공격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경기 도중 눈물을 보였다. 무릎이 꺾여서, 발목이 접질려서도 아니다. 단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차별한 관중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었다.

지난 달 22일 발렌시아의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와의 맞대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후반, 비니시우스가 왼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해 들어올 때 또 다른 공 하나가 경기장 안에 들어왔다. 발렌시아의 수비수는 그 공을 걷어내듯이 차버렸는데 정확히 비니시우스가 드리블하고 있던 공을 맞췄다. 고의성이 다분해 보였다. 비니시우스는 심판에게 불만을 드러냈고 모두가 인정할 만한 항의였다. 그때, 발렌시아의 홈팬들이 비니시우스에게 “원숭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비니시우스는 이성을 잃고 관중석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간 듯 눈물을 보였고 이후,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인 뒤 퇴장 당했다.

비니시우스의 눈물은 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인종 차별이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축구계에서 인종 차별은 너무나도 흔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수많은 대처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한 무력감과 상실감이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번처럼 팬과 선수 사이뿐만 아니라 선수와 선수 혹은 팬과 팬 사이에서도 인종 차별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심지어, 심판과 팀 코치와의 인종차별 사례도 있었다.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한 코리안리거들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특정 상황이 꼭 이슈가 되지 않더라도 인종 차별은 항상 그들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과거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에 출연한 이영표는 “스로인을 전담해서 관중들이 바로 뒤에서 하는 말이 다 들린다. 그때 그런 (인종 차별) 발언들을 많이 듣는다. 원숭이 소리도 낸다”며 씁쓸해 했다. 그동안의 수많은 인종 차별에서 축구계는 무엇을 깨달았고 어떤 대처를 해왔을까. 대처는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걸까.

# 에브라, 알베스의 사례

이 사건은 관중과 선수의 다툼이 아니다. 선수와 선수간의 마찰이었다. 맨유의 레전드 풀백 파트리스 에브라는 우루과이의 레전드 스트라이커 수아레스와 인종 차별 문제로 다툰 적이 있다. 2011년 10월 안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에브라와 수아레스가 볼 다툼을 벌였고 이때, 수아레스가 에브라에게 “Negro(검둥이)”라고 했다. 화가 난 에브라에게 수아레스는 다시 무려 7차례 같은 단어를 언급하며 인종 차별 행위를 가했다. 이 사건으로 수아레스는 8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을 물게 되었다. 이후 수아레스가 이 제재에 항소하며 법정 싸움까지 가기도 했다.

브라질의 수비수 다니엘 알베스도 인종 차별에 대놓고 맞서 싸운 전력이 있다. 2014년 라리가 경기에서 한 인종차별주의자가 경기장에 바나나를 던졌다. 코너킥을 준비하던 알베스에게 정면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는 곧바로 바나나를 주워들더니 여유롭게 먹고 코너킥을 찼다. 이 재치 있는 대처에 수많은 동료들이 SNS를 통해 일명 ‘바나나 인증샷’을 올리며 그를 응원했다. 당시 블래터 FIFA 회장은 월드컵을 앞두고 인종 차별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당시 바나나 투척 관중은 신원 확인 뒤 홈구장 출입이 평생 금지됐다.

# 손흥민 사례

한국 대표팀의 ‘캡틴’ 손흥민도 어린 시절부터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인종 차별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 작년 팬미팅 인터뷰에서는 “어린 시절 독일에 갔을 때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했다”며 인종 차별의 심각성을 알리기도 했다. 경기장 내에서 늘 관중들의 눈을 찢는 인종차별적 행위와 맞서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 크리스탈 팰리스전에서는 원정석을 지나가다가 일부 원정 팬들에게 인종 차별적 행위를 당했다. 눈을 찢는 행위 뿐 아니라 기분 나쁘게 비웃으며 손가락 욕을 하는 등 손흥민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토트넘은 경찰 및 상대팀 구단과 협력해서 해당 관중에게 경기장 출입 금지 조치를 취하도록 했고 이는 그동안의 대처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손흥민은 “영국에서 내가 인종 차별을 당하는 것을 모두 안다. 인종 차별에 따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며 의연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의 대외적인 대처를 보면 주로 관중에게는 경기장 출입 금지 조치를, 선수에게는 경기 출전 정지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즘처럼 SNS가 활발한 시대에는 SNS를 통해 각 팀이 인종 차별을 규탄하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수들이 다 같이 연대해서 인종 차별당한 선수를 지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비니시우스 사건과 함께 곪은 상처는 다시 터지고 말았다. 우선, 인종 차별 자체가 아직도 만연하다. 아직도 유럽에는 인종이 섞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팬과 팬 사이의 인종 차별 문제 등 경찰과 팀이 현실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사각지대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비니시우스 사건에서는 어떤 대처가 이뤄지고 있을까. 우선 사건이 발생한 라리가에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5일 레알 마드리드의 홈경기에서는 레알의 선수들이 모두 비니시우스의 등번호를 입고 나와 그를 지지했고 홈팬들은 응원 걸개를 내걸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바르셀로나와 바야돌리드 전에서도 양 팀 선수들이 인종 차별 근절을 외치는 세리머니를 함께했다. 물론, 실제적인 대응도 이미 시작됐다. 인종 차별 가해자 팬은 경기장 입장 영구 금지에 이어 형사 처벌까지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안니 인판티노 국제 축구 연맹(FIFA) 회장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비니시우스에게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우리는 이처럼 인종차별을 겪은 모든 선수들을 돕겠다”라며 앞으로의 축구계인종 차별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브라질 내에서도 라리가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또한 분노의 뜻을 밝혔고 국민들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나 비니시우스에게 뜻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처 방식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이지만 그 강도가 더욱 강해지고 광범위해진 모습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강경 대응이 유지되어야 한다. 단발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경기장을 찾는 모든 축구 팬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인종 간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교육, 문화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축구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전 세계 명실상부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축구는 세대, 성별, 직업 등 환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축구를 즐길 때만큼은 모두가 서로의 차이를 잊게 되고 공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팀의 승리를 응원하지 않나. 혹자는 축구를 단순한 공놀이, 스포츠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축구의 특성 때문에 축구는 스포츠 이상의 정신을 갖는다고 믿는다. 사람들을 가르는 인종 차별은 축구의 위대한 정신에 완전히 위배된다. 하루 빨리 축구계에서 인종 차별을 지워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비니시우스의 눈물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글='IF 기자단‘ 1기 최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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