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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편중된 사고방식으로 양극단 외의 중간 지점을 용납하지 않는다.

브라질은 18일 오전 4시 30분(한국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RCDE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기니에 4-1 승리를 거뒀는데, 전반에는 검은색 유니폼, 후반에는 기존 노란색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삼바군단’ 브라질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 이유는 분명하다.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최근 브라질의 에이스 비니시우스가 소속팀 경기에서 심각한 인종차별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브라질 대표팀이 전 세계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축구계에 인종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건은 지난 달 22일 스페인 발렌시아에 위치한 메스타야에서 열린 2022-23시즌 스페인 라리가 35라운드에서 발렌시아와 레알 마드리드 간의 경기에서 나왔다.

경기 막판 비니시우스를 향한 인종차별 세례 때문이었다. 발렌시아 팬들은 비니시우스를 향해 ‘Mono(모노: 스페인어로 원숭이)’를 외쳤고 후반 27분 비니시우스가 관중석을 가리키며 분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후 비니시우스는 발렌시아 선수들과 뒤엉키며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비니시우스는 퇴장을 당했다.

이후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장문의 글과 사진 영상을 게시했다. 그는 “인종차별은 한 번도, 두 번도, 세 번째도 아니다. 이곳 라리가에서 인종차별은 흔한 일이다”고 분노했다.

그의 소속팀 레알을 비롯한 축구계는 다시 한 번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사건이 벌어진 발렌시아전 바로 다음인 36라운드 경기에서 모든 레알 선수들은 비니시우스의 등번호인 20번 유니폼을 맞춰 입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관중석에는 ‘우리는 비니시우스와 하나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번 사건의 영향력은 축구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졌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인종차별이 축구장을 장악해선 안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종차별 행위가 없어지도록 조처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즉각 “축구와 이 세상 모두에서 인종차별은 있을 수 없다. 인종차별을 겪은 모든 선수와 비니시우스에게 지지를 보낸다”라고 입장을 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축구계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국적만큼 인종도 다양하며, 아직도 인종차별로 인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비니시우스를 포함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유색인종 선수들은 경기장 안팎으로 인종차별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유럽 축구계에서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전부터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숨진 흑인 조지 플루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은 코로나 19로 중단된 리그가 재개되자 킥오프 직전 무릎을 꿇으며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 동참했다. 3개월 뒤 EPL 사무국은 2020-21시즌을 맞이해 인종차별 반대 구호인 ‘No Room For Racism(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 패치까지 선보였다.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나 분명 오류가 존재한다. 축구계가 다루는 인종차별은 주로 흑인 선수를 향한 인종차별 행위로 국한되어 있는 것이다. 흑인 못지않게 많이 발생하고 있는 동양인 인종차별은 그 심각성은 깨닫지 못할뿐더러 아예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인 최초로 EPL에 진출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에게 현지 팬들은 일명 ‘개고기 송’으로 불리는 응원가를 목청껏 불러댔다. 분명 좋은 의미로 박지성을 위해 만든 응원가지만, 개고기를 언급하는 부분은 분명 인종차별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다.

인종차별은 박지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손흥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지 팬들은 손흥민이 맹활약을 이어가면 그의 SNS에 “개고기나 먹어라”라는 조롱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시즌 손흥민이 EPL 득점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음에도 인종차별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일부 현지 관중은 손흥민을 향해 “개고기나 먹어라”라는 욕설을 했고, 5월 토트넘과 리버풀과 경기를 중계하던 스카이스포츠 해설가 마틴 타일러는 손흥민의 수비 장면을 보고 “그가 무술(Martial Arts)을 하고 있다”라는 식의 표현을 했다. 동양인을 중국 ‘쿵후’에 빗대 일반화할 때 쓰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또한, 크리스탈 팰리스전 경기 도중에는 한 관중이 손흥민에게 대표적인 동양인 비하 행동인 ‘눈 찢기’ 제스처를 했다. ‘눈 찢기’ 제스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첼시와 토트넘의 경기 도중 코너킥을 차기 위해 이동하는 손흥민을 향해 한 첼시 팬이 ‘눈 찢기’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비단 EPL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던 기성용은 그가 공을 잡으면 관중이 벌떡 일어나 원숭이 울음소리를 내는 인종차별을 당했다.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강인 역시 ‘눈 찢기’ 제스처를 여러 번 당했고, 심지어 최근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이 훈련 중이던 이강인을 향해 “Que haces chino(중국인 뭐 하는 거야-Chino: 중국인)”라고 한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이외에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훈련 영상에서도 이강인의 슈팅이 빗나가자 주변에서 이강인을 ‘Chino’라고 불렀다. Chino는 중남미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는 단어이다. 이렇게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 발언은 그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웃어넘기는 장난으로 사용되고 있다.

비니시우스에게 ‘Mono’라고 부르는 것과 이강인에게 ‘Chino’라고 부르는 것 모두 인종차별 발언이지만 전자는 심각하고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지고 후자는 그저 친근하게 부르는 장난으로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빈도수의 차이가 있다고 얘기하기엔 이강인 역시 2년 전 한 유튜버와 인터뷰에서 "스페인에서는 동양권 사람을 보고 'Chino'라고 한다"며 인종차별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없이 일상 속에서 인종차별을 당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행동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니시우스의 팀 동료 페데리코 발베르데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눈 찢기’ 골 세리머니로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이번 사건 이후 비니시우스를 향한 응원에 동참했다. 이전에 인종차별 행위를 했던 선수가 이번엔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나선 것이다.

축구계에서 근절하기 위해 힘쓰는 인종차별은 흑인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흑인 선수를 향한 인종차별은 많은 사람이 집중함에도 동양인 선수를 향한 인종차별은 왜 묵살되는 것인가?

비니시우스 사건으로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소속팀, 정부, 협회 등이 발 벗고 나선 것에 비교해서 동양인 인종차별 사건은 그리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이 공식 SNS를 통해 “손흥민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에 대해 유죄가 인정될 경우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뿐, 리그나 협회 차원에서의 노력은 따로 없었다.

필자는 이걸 ‘인종차별 속에 숨겨진 흑백논리’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문제를 흑과 백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편중된 사고방식인 흑백논리처럼 그들이 언급하고 다루는 인종차별은 흑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없애려는 인종차별 속 등장인물은 흑인과 백인뿐이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Black Lives Matter’, ‘No room for racism’ 등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은 아무 효과가 없는 그저 그런 형식적인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의미 없는 보여주기식 운동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흑인만 해당하는 것은 아님을 일깨워야 한다.

이대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만 다뤄지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피부색 구분 없이 같은 인간인 것처럼 인종차별 역시 특정 인종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종차별을 없애려는 움직임 속에 또 다른 차별이 존재하지 않으려면 진정 축구계에서 근절하려는 인종차별이 흑인에 대한 차별인지, 다른 모든 인종에 대한 차별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IF 기자단’ 1기 이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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