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top100] 3위 시어러, 여전히 저평가 받는 PL 최다 득점자

기사작성 : 2021-01-25 16:13

- <포포투>가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를 선정했다
-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골 보유자 시어러, 하지만 저평가받는다?
- 시어러는 어떻게 260골을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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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Richard Jolly, 에디터=이종현]

프리미어리그가 1992년 시작되진 않았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를 바꾸는 시기였던 바. 기준을 1992년부터 2021년까지로 하고 베스트 플레이어를 꼽았다. 한 세대를 정의한 궁극의 아이콘 3위는 앨런 시어러다.

시어러가 보유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골(260)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록은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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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앨런 시어러ㅣFWㅣ블랙번로버스, 뉴캐슬유나이티드ㅣ잉글랜드
한 시대라는 건 우리가 예측했던 때에 맞춰 시작하고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60년대’는 비틀즈가 데뷔 싱글앨범인 ‘Love Me Do’를 발매했을 때 그리고 디자이너 메리 퀸트가 예기치 않게 불러온 미니스커트의 유행으로 1962년에 비로소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리버풀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잉글리시풋볼리그를 지배했다. 그러나 18번째 리그 우승은 1990년대(1989-90시즌)에 완성했다. 1992년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가 시작했다.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26년 동안 리그 우승 타이틀이 없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21년 동안 13번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새로운 시대인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블랙번은 크리스탈팰리스와 3-3으로 비겼다. 영국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330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합류한 스물두 살의 공격수 시어러가 멀티골을 넣었다. 시어러는 사우샘프턴에서 뛴 풋볼리그 118경기에서 단 23골을 넣었다. 사우샘프턴에서 뛴 마지막 시즌(1991-92) 41경기에서 13골을 넣었으나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시어러는 달랐다. 그는 놀랄만한 득점력을 보여줬다. 시어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이로운 존재였다. 그는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을 지칭. 프리미어리그는 이 시기 짧은 기간 많은 경기를 치른다.) 전까지 16골을 넣었다. 십자인대 부상이 아니었다면 득점왕은 그의 차지였을 거다.

블랙번 입단 두 번째 시즌(1992-93) 득점왕은 시어러 차지였다. 25년이 흘렀으나 그의 득점 기록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해리 케인(토트넘홋스퍼)이 위협적인 존재다. 하지만 케인(*2021년 1월 25일 기준, 155골)이 시어러의 최다골 기록을 따라잡기 위해선 100골 이상 필요하다. 케인이 시어러를 넘지 못한다면 2020년대에도 새 기록이 나오긴 아마 어려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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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러는 대기록을 세우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100호 골까지 걸린 시간은 단 124경기다. 해당 부문 2위보다 17경기 빠르다. 잉글랜드 선수 중 유일하게 득점왕과 30골 이상을 세 시즌 연속 기록한 선수다. 7시즌 연속 20골 이상 득점한 것도 시어러뿐이다. 시어러는 한 경기에서 5골을 넣은 적도 있다. 그는 블랙번에서 경기당 0.81골(138경기 112골) 파괴력을 보였다. 단일팀 기준 그의 득점력에 근접한 선수는 없다.

시어러의 더 나을 수 있는 득점 페이스에 두 가지 방해물이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두 차례 십자인대 부상으로 타깃맨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수로 뛰기 어려워졌다. 시어러는 보비 롭슨 감독의 충고로 피지컬이 무기인 선수로 플레이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두 번째로 1996년 맨유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절했다. 그가 맨유로 이적했다면 300골을 이상 기록했을 거라는 의견이 다수다.

결과적으로 시어러는 1994-95시즌 블랙번을 81년 만에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후 고향팀 뉴캐슬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뉴캐슬은 시어러가 합류했었음에도 5시즌 동안 5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블랙번과 뉴캐슬에서 뛴 시어러를 지도한 케니 달글리쉬는 “시어러가 어느 팀에서 뛰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무자비하게 득점했다”라고 말했다.

시어러는 기술도 겸비했다. 시어러가 가장 좋아하는 득점이 2002년 에버턴전에서 나온 발리슛인 사실이 예다. 그는 페어플레이를 펼쳤다. 공중전에서도 뛰어났다. 오직 피터 크라우치만 프리미어리그에서 시어러보다 많은 헤더 골을 넣었다. 지미 그리브스, 스티브 블룸어, 딕시 딘, 고든 호지슨만이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시어러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시어러는 1부 리그에서 283골과 우승 1회를 남기고 은퇴했다. 시어러가 은퇴한지 15년이 지났으나 아무도 그의 기록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황지영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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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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