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로이 마카이 “UCL 최단 시간 득점, 깨는 선수 없어야 할 텐데!”

기사작성 : 2021-01-13 12:15

- UCL 최단 시간 득점 주인공, 로이 마카이
- 판 할의 악담(?) 그리고 그날 그 득점까지
- 그래서, 바이에른은 왜 떠난 건데...?

본문


[포포투=Ed McCambridge, 에디터=조형애]

2010년 은퇴한 네덜란드 대표팀 출신 스트라이커 로이 마카이는 여전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골을 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걸 입증할 증거까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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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뤼돌퓌스 안토니위스 마카이다. 왜 로이라고 불리나?

실제론, 그게 사실이 아니다. 내 진짜 이름이 로이이고, 그것들은 다 미들네임이다. 내 여권을 확인해 봐도 된다!(웃음) 어떻게 그게 ‘팩트’처럼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뤼돌퓌스와 안토니위스는 내 할아버지들의 이름이었다.

비테세아른험에서 보낸 커리어 초반 이야기다. 당신은 아약스에서 루이스 판 할과 함께할 기회를 거절했다. 아약스는 유럽 챔피언이었는데…

사람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했다. 난 겨우 20세였고, 프로 선수로는 두 시즌 뛴 게 전부였다. 판 할은 이적 논의를 위해 우리 집에 왔다. 판 할이 손님이라는 건 조금 겁나는 일이지만, 우린 당시 정말 좋은 대화를 나눴다. 난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했다. 비테세에 잔류해 뛰는 게 더 낫다는 것이었다. 후회는 없다. 하지만 반 할은 내가 ‘아니오’라고 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며칠 뒤에 전화를 걸었는데, 판 할은 좋아하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후에 판 할은 국가 대표팀에서 내 감독이 되었다.

베르캄프, 클라위버르트, 하셀바잉크, 판 후이동크, 판 니스텔로이 등 엄청난 스트라이커들을 자랑했던 네덜란드 세대에 속해있었다. 가끔은 그게 좌절스러운 일이었나?
 
가끔은 좌절스러울 수 있다. 그 선수들이 다 있었지만, 네덜란드는 스트라이커 한 명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난 대표팀으로 43경기를 뛰었는데, 그중 절반은 오른쪽 윙을 맡았다. 요즘엔 대표팀에 톱클래스 공격수가 충분하지 않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신 세대에 가장 잘한 선수는 누구였나?

데니스 베르캄프. 전형적인 9번 선수는 아니었지만 환상적이었다. 그가 얼마나 잘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훈련에서 그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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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테네리페에 입단한 이유는?

그들은 UEFA컵 준결승에 올랐고, 클럽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첫 시즌에 우린 거의 깨어있지 않았다. 한 시즌 뒤엔 강등됐다. 난 14골을 넣고 데포르티보라코루냐로 이적했다.

당시 데포르티보는 라리가를 막 6위로 마쳤었다. 1999-00시즌, 당신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나?

우리 목표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이었다. 느낌은 좋았는데, 아무도 우리가 리그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부분이 맞아떨어졌다. 우린 부상이 많지 않았고, 안방에서 무적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 두 팀 모두 끔찍한 시즌을 보냈다는 것 또한 우리에겐 행운이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승할 자격이 있었다.

데포르티보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에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그게 작별을 고할 완벽한 방법이었나?

그런 것 같다. 난 그 시즌 라리가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해 29골을 넣었다. 놀라운 일이었고, 그런 성취를 할 것이라 기대한 적도 없는 일이었다. 마르코 판 바스턴, 빔 키프트 그리고 케이스 키스트에 이어 네덜란드인으로는 네 번째 수상을 한 게 무척 특별했고, 난 여전히 그 상을 받은 마지막 네덜란드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수상 이후 난 유럽의 더 큰 클럽 중 한 곳으로의 이적이라는 다음 스텝을 밟을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1,875만 유로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간 건 기록적이었다. 그리고 곧 득점을 시작했다. 분데스리가에서 어떻게 그렇게 편안할 수 있었나?

바이에른은 철저히 준비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형의 스트라이커라고 느껴졌다. 득점을 할 수 있으면서도, 상대 수비 뒤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공격수 말이다. 언론들은 내가 이적료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으나, 구단은 내게 압력을 주지 않았다. 난 득점으로 보답했다.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팬들은 ‘유령’ 또는 ‘득점 기계’라고 불렀고…

(웃음) 언론은 가끔 유령이라고 하면서 내가 경기를 뛰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난 팬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감독, 그리고 동료 선수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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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단 시간 득점을 올렸다. 10.12초 만이었다. 어떻게 해낸 건가?

16강전이었고, 많은 것이 달려있는 엄청난 경기였다. 레알이 1차전을 3-2로 이기고서 2차전 킥오프를 했기 때문에, 우린 경기 직후에 바로 압박하고 싶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터치가 좋지 못해 하산 살리하미지치가 공을 가로챘다. 그러고 나서 난 세르히오 라모스와 이반 엘게라 사이에 끼어들어갔다. 난 하산의 볼을 받을 준비가 돼 있었다. 하산이 패스를 줬을 때 난 그걸 골대 구석으로 차 넣었다. 그 순간엔 그게 얼마나 이른 골인 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2011년 발렌시아도 아주 이른 득점(10.96초)을 했다. 내 아들과 딸은 “기록이 깨졌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난 집에 가서 뭐가 더 빠른 골인지 확인하기 위해 분할 화면으로 경기를 다시 봤다. 내 골은 훨씬 더 빨리 골망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오랫동안 그 기록을 깨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펠릭스 마가트는 바이에른에서 3년 동안 당신의 감독이었다. 그가 치즈로 부상을 치료해보자고 한 적이 있었나? 풀럼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다. 그런 특이한 건 없었다. 내가 치즈를 얹은 건 샌드위치뿐이었다! 그의 훈련 세션은 힘들긴 했지만, 난 여전히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가트 지휘 아래 우린 바이에른 역사상 처음으로 백투백 더블 우승을 했다. 그는 볼프스부르크에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지도자인지 보여주었다. 그들을 챔피언으로 만든 것이다.

히딩크, 히츠펠트, 판 할, 레이카르트, 아드보카트 등. 정상급 감독들과 함께했다. 누가 최고였나?

오트마르 히츠펠트. 바이에른에서 그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으나, 그는 훌륭한 감독이었다. 나는 그가 선수들 대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는 필요하면 엉덩이를 걷어찼고, 또 필요하면 어깨동무를 했다. 그는 사람을 이해하는 지도자였다.

바이에른에서 102골을 넣었다. 왜 떠났나?

내가 뛴 마지막 해에 우린 4위를 했다. 그래서 클럽이 새로운 선수들을 사들일 것이란 걸 알았다. 루카 토니,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영입됐고, 루카스 포돌스키도 있었다. 클럽이 내게 떠나라고 하지 않았지만, 난 새로 온 선수들이 경기에 나설 것이라는 건 알았다. 떠나온 지 10년 만에, 네덜란드 쪽에서 돌아와달라고도 했다. 바이에른은 훌륭한 클럽이었다. 다른 구단들이 더 이적료가 많은 제안을 했는데도 내가 페예노르트로 이적하는 걸 도와줬다.

프로 마지막 경기에서 헤이렌베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은퇴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을까?

기자회견에서 이미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마리오 빈)은 몇 분을 뛰고 싶은지 내게 물었다. 종종 은퇴하는 선수는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거의 경기 마지막에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난 세 번째 득점을 하고서 교체되기로 했다. 75분이 넘어서였다. 내 커리어 마지막 슈팅은 골이었다. 그렇게 마감할 수 있어서 정말 황홀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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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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