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심상민, 잊혀진 유망주에서 대표팀 데뷔까지

기사작성 : 2020-12-29 16:06

-2016리우올림픽에 출전했던 기대주 심상민
-주전과 대표팀에서 멀어졌으나 심상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생애 첫 A대표팀에 발탁된 비결은?

본문


[포포투=이종현]

심상민(김천상무)은 포기를 몰랐다. 잊혀졌던 시간도 잠시, 국가대표에 발탁돼 축구 팬 앞에 나타났다.

심상민은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쳤다. 한국 축구 차세대 왼쪽 풀백으로 기대를 받던 그는 2014년 FC서울에 입단했다. 손흥민(토트넘홋스퍼)과 함께 2016리우올림픽 본선도 뛰었다. 어린나이에 성공을 일찍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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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시간도 잠시, 주전에서 밀리면서 벤치에 앉는 시간이 늘었다. 국가대표와도 멀어졌다. 2016년 서울이랜드FC로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9시즌을 앞두고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했다. 연령별 대표팀 은사 김기동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적응은 고됐다. 여전히 주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5년 동안 버티면서 쌓인 내공이 있었다. 심상민은 말한다. “내겐 기죽을 시간도 없었다.”

심상민은 다른 선수가 됐다. 연령별 대표에서 보여주었던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당시 김기동 감독이 이끌던 포항은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 중 하나였다. 심상민은 핵심 선수였다.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도 심상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1993년생인 심상민은 5월 25일 상주상무(현 김천상무)에 입단했다. 벤투 감독은 심상민을 잊지 않았다. 지난 10월 ‘김학범호’와 스페셜매치에서 심상민을 불렀다. 2016리우올림픽 이후 대표팀과 멀어졌던 심상민의 생애 첫 A대표팀 발탁이었다.

2016리우올림픽 이후 잊혀졌던 유망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심상민은 포기하지 않았고 국가대표 발탁이란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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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나. 인터뷰도 오랜만일 것 같다.
코로나19로 나가지 못하고 부대에서 지내고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대표 이후 (구단 인터뷰를 제외하고) 처음인 것 같다.

2014년 FC서울 입단, 2016리우올림픽에 출전하면서 한국 축구 미래의 왼쪽 풀백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연령별 대표팀은 다 또래 선수였다. 부담이 없었고 아이들과 발을 잘 맞췄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 형들과 경쟁하면서 벽을 느꼈다. 기에 눌렸다. 자연스럽게 출전을 못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는 정신력이 약했다.

무엇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나?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아 실력이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실력보다도 멘털의 차이가 컸다. 실력은 비슷한데 크게 될 선수는 가지고 있는 멘털 자체가 다르다. 그런 차이인 거 같다.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버텼나?
당시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렵지만 5년, 10년 뒤에는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가 돼 있겠다’라고 긍정적인 상상을 많이 했다. 당시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당장 앞이 아닌 멀리 봤다.

노력 없이 막연하게 긍정적인 생각만 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때는 할 수 있는 게 개인 운동밖에 없었다. 개인 운동을 하면서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상대 기에 안 지려고 했다. '성에 찰 정도로 못 뛴 거지, 아예 못 뛰진 않았다’라고 생각을 바꿨다. 멀리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한 게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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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시즌을 앞두고 포항 이적을 선택했다.
원래 나는 힘든 티를 안 낸다. 남에게 도움도 안 받으려고 한다. (U-21, U-22 대표팀 코치로 사제지간이었던) 김기동 감독님은 내가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장점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기억해 주시고 손을 내밀어 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서울을 떠날 때 부족해서 간다고 인정도 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 어디 나중에 보자’라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과거다.(웃음) 포항에 가서도 못 뛰면 1부에 남기 어려운 선수로 찍힐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각오도 많이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5년을 보내면서 기가 많이 죽었다. 김기동 감독님이 “까불면서 운동하던 상민이가 변했네? 서울에서 무슨 일 있었냐?”라고 하실 정도였다. 서울에서 눌려 있던 게 포항에서 한 번에 풀리지 않았다. 나 역시 포항 가서는 바로 잘 풀릴 줄 알았고 자신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기동 감독에게 특별한 지도를 받았나?
특별한 지시는 하지 않으셨다. 그게 오히려 나에게 맞춤 지도법이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하셨다면 독이 됐을 텐데, 감독님은 내 스타일을 잘 알고 계셔서 믿고 기다려 주셨다. 실수해도 기 안 죽게 한 게 결과적으로 내게 최고의 지도법이었던 것 같다. 모든 걸 지시하는 게 최고의 지도자가 아니다. 선수에게 맞춤 처방을 해주는 게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포항에서도 초반에는 기회를 잡지 못했다.
포항에 처음 갔을 때는 주전으로 뛰었다. 그러다가 경기력이 좋지 못해 밀려났다. 그때는 기죽을 생각도 안 들고 ‘보여주겠다’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겐 기죽을 시간도 없었다. 새로운 팀이고 나이도 있고 어쨌든 보여줘야 했다. 서울에서 보낸 힘든 시간들이 포항에서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됐다.

눈싸움마저 안 지려고 했다고 들었다.
작은 것부터 했다. 유치할 수도 있지만 눈싸움 등 기싸움부터 시작했다. 절대 안 지려고 했다. 세계적인 스타는 작은 것에도 예민하다. 선수는 예민해져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너무 예민한 건 좋지 않지만 축구로 먹고사는 나 같은 선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다. 축구하는데 신경이 서 있어서 그런지 축구도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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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력과 끈기는 보상받았다. 최근 10월 생애 첫 A대표팀에 부름받았다.
2019시즌에도 대표팀 발탁에 대한 말이 있었던 거로 안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에 (홍철의 무릎 부상에 의한) 대체 발탁으로 뽑혀서 기쁘긴 했지만 아쉬웠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다. 동기부여가 생겼다. 리우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대표팀 발탁은 어렵다'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반발짝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대체 발탁이 아닌 처음부터 선택받고 싶다. 욕심이 생겼다.

지난 5월 25일 상무에 입단했다. 이제 막 기량을 보여주는 시점에서 포항을 떠나게 돼 아쉬움도 있었을 텐데.
2020시즌을 끝내고 입대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그렇게 됐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들어와서 좋은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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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에서는 어떤 걸 배우고 있나.
감독님이 편하게 해주신다. 각 팀에서 압박을 받던 선수들인데 감독님이 워낙 편하게 해주신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 것들이 모여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 같다. 선수들이 또래다 보니까 ‘이런 플레이를 하면 어떨까?’라는 대화도 활발하다.

서울, 포항, 상주 심상민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서울에서 뛸 때는 나이가 아닌 생각이 어렸다. 포항에서는 실력은 물론 생각도 성장했다. 생각이 성장해서 좋은 플레이가 나왔고 좋은 동료와 감독님을 만났다. 상무에서는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있다.

2021시즌부터 김천상무에서 뛴다.
우리 기수는 2020시즌을 다 뛴다. 위 기수가 시즌 도중에 나간다. 어수선해질 수 있다. 상무는 프로 팀이기 전에 군팀이다. 새로운 기수가 들어오면 그 문화를 받아들이게 해줘야 한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적응만 빠르다면 성적도 자신한다. 올해 김천상무의 목표는 다이렉트 승격이다. 2부라고 얕보지 않을 거다. 무조건 목표는 승격이다.

최근 모교 중앙대 축구부에 패딩을 기부했다. 일회성이 아니라 초중고 모교에 꾸준히 선행을 베풀고 있다. 남을 돕는 품성이나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 선수로 성공하는데 도움이 됐나.
가족끼리 ‘내가 잘 된다고 해서 나만 잘 먹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는 도울 수 있을 때 돕자’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기부하고 가족과 이야기한다. 부모님도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그 느낌이 개운하더라. 여유가 되면 내가 나온 모교 선수들이 좋은 길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하고 있다. 내 기부가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에 진출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선수가 한 명이라도 생기면 좋겠다. 힘들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잘 배운 것 같다. 감사드린다. 어머니께서 늘 "순리대로 가는 게 맞다”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나 역시도 축구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돌아가더라도 생각을 바르게 하려고 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게 어려움을 극복한 토대가 된 것 같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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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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