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eiw] ‘은퇴’ 사발레타 “다들 아구에로 득점만 기억하지만…”

기사작성 : 2020-12-04 11:56

- 사발레타가 전하는 은퇴 그 후
- 맨체스터시티와 함께 한 9년을 돌아본다
- 그래서, 시티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거야…?

본문


[포포투=Dani Gil, 에디터=조형애]

프리미어리그 우승의 결정타를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파블로 사발레타는 맨체스터시티 팬들이 사랑하는 풀백이 되었다. 지난 10월, 은퇴를 선언한 그가 근황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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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웨스트햄유나이티드를 떠난 뒤, 10월 은퇴를 선언했다. 서른다섯이다. 왜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나?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잉글랜드에서의 마지막 1년 동안, 나는 내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을까 하여 여름까지는 기다렸다. 실제 스페인 3개 클럽과 터키 1개 클럽이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나를 흥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도 고려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우린 지금 바르셀로나에 있다. 친구들도 여기 있고, 삶의 질도 좋다.

선수 커리어가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든가?

전혀 그렇진 않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축구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고, 모든 것을 해보았다. 후회는 없다. 은퇴를 공식화할 때는 슬펐지만, 동시에 축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오랜 시간 동안 축구를 했고, 몇몇 특별한 순간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유스 선수였을 때 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부터 프로 축구 선수가 될지 어떨지 모른 채로 한 클럽 하우스에서의 숙식, 셰이크 만수르가 인수하기 전에 맨체스터시티로의 이적, 웨스트햄과 함께한 런던에서 보낸 마지막 선수 생활 기간까지. 멋진 순간들이었다.

2008년에 유벤투스로의 이적을 없던 일로 하고 맨체스터시티에 합류했다. 왜인가?

유벤투스의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에스파뇰이 바이아웃 조항에 따른 이적료를 지급받기를 원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그때 맨체스터시티의 제안이 들어왔다. 베드란 콜루카가 스퍼스로 갔고, 마크 휴즈는 대체 선수가 필요했다. 내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티는 지금과 같은 클럽이 아니었고, 난 바르셀로나라는 멋진 곳을 떠났다. 그때 에스파뇰은 코파델레이에서 우승하고 UEFA컵 결승에 오른 팀이었다. 맨체스터에서 9년을 보내면서 내 전환점을 경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만수르가 시티를 인수하기 며칠 전에 합류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나?

아니다. 이전 소유주인 탁신 친나왓이 태국에서 부패 문제가 드러난 터라 시티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에스파뇰은 내 이적료가 현금으로 지불되길 바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거다. 난 아부다비에서 거부가 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시티가 레알마드리드에서 호비뉴를 영입했을 때, 깨달았다.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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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은 어떤 의미였나?

특별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우승하기 되었는지를 보면 더욱 특별하다. 우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같은 승점이었고, 우승 시나리오는 이상적이었다. 쓰러져가는 QPR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복잡하지 않은 상황을 바라고 있었는데, 결국 영화의 피날레처럼 끝났다.

사람들은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결승골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전에 당신이 선제골을 넣어 1-0을 만들었다. 경기가 1-0으로 끝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잊힌 골이다. 1-0으로 앞서나가게 하는 득점을 올린 뒤 하프타임을 맞으러 (라커룸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이대로 끝나면 내가 영웅이 되겠군.’ 난 그 시즌에 골을 넣지 못했다. 그런데 하프타임 휴식 후에 어찌 된 일인지 1-2로 뒤지게 되었다. 누가 그런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결국 아구에로가 모든 칭찬을 가로채게 됐다! 아구에로가 득점했을 때, 난 내 몸을 치며 축하했다. 스프린트 해서 득점을 축하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우린 긴장해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은 더 없을 거다. 그 후 맨체스터에서 한 축하행사는 믿을 수 없는 정도였다. 해방 운동 같았다. 그때까지 유나이티드만이 거리에서 우승 축하연을 했다. 시티 팬이면 누구라도 그때가 가장 감정을 자극하는 우승이라 할 거다.

맨체스터시티에서 펩 과르디올라와 함께하는 건 어땠나?

난 그와 1년 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제안을 받았고, 펩이 수비를 젊은 선수들로 꾸릴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떠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 후에, 1년 더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가장 좋았을 26세 때, 펩을 위해 뛸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다. 그와 함께한 몇 달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일을 훌륭히 해냈다.

그가 이번 시즌을 마치고 시티를 떠날까 걱정하나?

시티와 같은 팀들은 올해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늦게 마치고 거의 쉬지 못해서다. 관건은 구단이 가능한 한 빨리 계약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내 경험으론, 감독의 미래는 추측하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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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시티를 떠났다. 그 당시 기억나는 게 있나?

사람들의 사랑. 결국 그것으로 귀결된다. 그런 인정을 받는다는 건, 무언가를 잘했다는 뜻이다. 마지막 홈경기를 마친 뒤에 팬들이 남아서 작별 인사를 보내주었다. 헌신과 열정을 보여준 선수는 오래가고, 우승컵을 넘어서는 유산을 남긴다.

웨스트햄에서 보낸 시간은 즐거웠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축구를 하고, 프리미어리그를 즐기고, 런던과 같은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 수 있었다. 웨스트햄은 잠재력이 아주 큰 클럽이다. 홉 경기에 6만 명 팬들을 끌어모은다. 난 그들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은 유럽 클럽대항전을 위해 싸울 약간의 야망이 부족하다.

201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했을 땐 어땠나?

우승에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웠다. 우린 결승전에서 잘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월드컵 결승전에 다시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상처, 그 이상이다. 축구 선수로서 그런 경험을 했다는 그 자체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엔 무엇을 할 건가?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싶다. 잉글랜드에서 시작했는데, 2년이 남았다. 코칭을 하고 싶긴 한데, 내가 그걸 좋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시티가 어떤 역할을 제안하던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문은 열려 있다. 시티는 우리가 항상 미래에 함께 일하길 바라왔기 때문이다. 난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클럽은 확장되었고, 그들은 맨체스터 밖의 팀들도 소유하고 있다. 내가 자격증 따는 것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10년을 머물렀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코치 몇몇도 연락을 줬다.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겠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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