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told] 끊임없이 이겨내고 증명한 23년, 이동국은 희망의 아이콘이다

기사작성 : 2020-10-28 19:53

-라이온킹 이동국 은퇴하다
-23년간 롱런한 비결은?
-그는 그렇게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본문


[포포투=이종현(전주)]

이동국(전북현대)은 끊임없이 이겨냈다. 그대로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과 시련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23년간 정상에서 롱런했다.

그는 당장 경기에 나서도 괜찮은 몸상태이지만, 나약해지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이제 이동국은 1998년 한국 축구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그때처럼 마지막에도 해피엔딩을 원한다.

28일 오전 11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이동국은 ‘라이온킹’이라는 수식어로 줄곧 불렸고, 동시에 희망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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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롱런의 비결

이동국 스스로도 1998년 포항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입단했을 때를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회상한다. 실력이 좋은 데다가 귀공자 느낌의 외모였던 그는 구름 팬들을 몰고 다녔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이동국이 회상하는 그때 그 시절이다.

하지만 아픔은 빨리 찾아왔다. “당연하게도 출전할 것이라 생각했던” 2002년 한일월드컵 불참. 이동국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뛰지 못했을 때다. 그때 심정을 기억하면서 살다보니, 지금까지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날의 고통은 이동국 자신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이동국의 부모님은 한일월드컵 당시 전국을 강타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듣기조차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전라북도 장수의 산골로 피신한 일화는 유명하다. 월드컵을 추억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순간 중 하나인 2002년 6월의 기억은 이동국에게는 반대로 가족마저 악몽으로 생각하는 시기였다.

무너질 수 있었던 이동국을 버티게 한 건 마음가짐이다. 그는 말한다. “좌절을 하고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더 큰 좌절을 했던 사람을 생각했다. 그렇게 프로 생활을 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았다. 힘든 시간마다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생긴 것 같다.”

이동국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십자인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을 때, 해외 진출(미들즈브러) 실패와 성남일화에서 기량을 찾지 못하자 ‘이동국은 끝났다’는 소리를 듣는 시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9년 최강희라는 은사를 만났다. 이동국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인연이다.

전주, 전북현대와 최강희

사실 이동국이라는 인물을 지금 K리그의 레전드이며 한국 축구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건 전북현대에서의 12년 커리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한 이동국은 MVP, 득점왕, 도움왕을 수상했다. 전북과 K리그 7회 우승 신화를 함께 했다. 이동국은 자신을 전북으로 이끈 최강희 감독을 어떻게 정의할까.

“보통 (선수가) 은퇴할 때 쓸쓸하게 떠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2009년 전북에 가면서 같이 많은 것을 일궈냈다. (최강희 감독님은) 내가 모르는 기량을 다시 한번 끄집어 내셨다. 많은 분들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어느덧 12년을 생활한 전주에 대한 그의 추억은 애틋하다. 포항 출신인 그는 “전주는 내비게이션 없이 그냥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제2의 고향이 됐다. 여기서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팬들의 함성이라든지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전북 팬들은 친숙하고 끈끈한 묘한 매력이 있다. 앞으로도 자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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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기록, 최선 다했다는 자부심

이동국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대표팀을 포함해 800경기를 넘게 소화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그도 자신이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오랜 기간 그라운드를 누빈 숫자는 이동국이 가장 애정을 가지는 기록이다.

“나도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 등을 하면서 내가 많은 것을 이루어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800경기 출전은 10년 이상 꾸준히 경기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그래서 많은 기록 중에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고 몸을 만들고 좋은 경기력으로 뛰었다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다. 아마 후배들도 깨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팀과 대표팀을 포함해 한국 축구 선수 최다 득점자(344골)인 이동국이 K리그 신인왕, MVP, 득점왕, 도움왕이라는 타이틀도 가졌어도 가장 자부심을 가진 기록은 최다 출전 수(844경기)다. 그래서 한국 축구 역시 이동국이란 이름이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말처럼 득점과 도움 등에 관한 기록은 언제나 깨질 수 있지만, 최다 출전 기록 부문에는 아주 오랜 기간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 같다.

아듀, 축구선수 이동국

씩씩하게 은퇴 기자회견을 자리한 그는 가족 이야기에 결국 눈물을 보였다. “어제(27일)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네가 내일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 본인도 은퇴를 해야겠다'고 하시더라. 23년 동안 축구를 했고, 축구 시작부터 아버지와 30년을 넘게 함께 했다. 부모님께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한동안 훌쩍거린 그가 이어 한마디 했다. “아...안 울려고 했는데, 망했네, 망했어!”

장기 부상으로 조급해지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은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그의 아내 이수진 씨는 현명한 결정을 도와줬다. “가장 가까이 있는 와이프와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결심했다.” 그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정했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동국은 23년 전 데뷔 때처럼 웃으며 떠나가기 원한다. 그 결말은 11월 1일 대구FC와 치르는 하나원큐 K리그1 2020 최종전 결과로 알 수 있다. 승점 3점 차 선두 전북은 대구전 무승부 이상을 거두면 자력으로 우승이 가능하다. 이동국은 "코칭스태프와 의논 이후 결정한 사안이다"라는 조건을 달면서 11월 8일 홈에서 예정된 FA컵 결승전 2차전 경기 출전에 대한 여지도 남겨놨다. 전북은 11월 4일과 8일 울산현대와 FA컵 결승전을 치른다.

“아내가 얘기하는 게 마지막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일들이) 뭔가 짜 놓은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마지막에 우승컵을 안고 가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 순간에 내가 있다면 더 기쁠 것 같다. 이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마지막 축구 인생이 되지 않을까.”

사진=전북현대모터스, FAphotos
writer

by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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