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울산] 전북은 믿었고, 울산은 믿고 싶어 했다
기사작성 : 2020-10-26 04:36
- 전북현대가 8번째 별에 가까워졌다
- 울산현대와 차이는 뭘까
- 그래, 믿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은 다르다…!
본문
[포포투=조형애(울산)]
타인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시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코끼리?) 그렇다. 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쫓기 때문에 조작이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에선 하나의 생각을 심기 위해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들어간다. 3단계 꿈을 이용하고 나서야 ‘간단한 생각’을 로버트 피셔의 무의식에 넣는데 성공한다.
무의식 깊숙한 곳까지 주입된 생각은 강한 믿음으로 발현된다. 전북현대를 보며 <인셉션>이 떠오른 이유다. 전북은 진정으로 믿는다. ‘중요한 경기에서 매번 이겼다. 그러니 또 이길 것’이라고 말이다.

25일 울산현대와 전북현대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사실상 결승전’이 열린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은 걸개와 BGM이 묘한 엇박자를 내고 있었다. ‘우리를 조롱거리로 만들지 마라’, ‘15년의 기다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결의에 찬 처용전사 때문에 경건해질 뻔했다. 반면 BGM으로 깔린 퓨전 국악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따앙땅따당 리듬을 타게 했다.
경기도 어느 박자에 몸을 맡겨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과열된 양상이 딱히 없었고 경기 운영도 조심성이 있었는데 어쩐지 박진감이 넘쳤다. 짐작건대 전반부터 골대가 ‘열일’한 탓이다. 6,973명 관중이 만들어 내는 클래퍼 응원 소리도 한몫을 했을 거다. 페널티킥을 다리로 막아낸 조현우의 선방 장면도 물론이다.
현실 감각을 찾게 된 건 후반 18분이었다. 김기희의 뒷머리를 맞고 애매하게 떨어진 볼을 바로우가 살짝 방향을 바꿔 골문 안으로 흘려 넣었을 때다. 전북의 득점은 <인셉션>의 ‘킥(떨어지는 감각을 이용해 꿈을 깨우는 것)’과 비슷했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전북은 소기의 작전에 성공해 있었고, 승리라는 ‘간단한 생각’을 한층 강하게 믿는 것 같았다.

경기 후 가장 주목받은 건 전북의 ‘위닝 멘털리티’였다. 울산은 올 시즌 가장 중요했던 승부에서 졌다. 안방에서 일방적인 응원을 받고도 졌다. 지난해 <포포투>에 “국내 팀끼리 붙을 때는 변수를 주고, 해외 팀과 대결할 때는 그대로 가는 게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던 김도훈 감독이 이번엔 ‘정공법’을 택했지만 졌다. 이전 두 번의 맞대결은 변칙을 썼는데도 졌다. 다 졌다. 그러니 남은 건 ‘멘털’ 타령뿐이었다.
모라이스 감독은 경험에서 오는 믿음이라 했다. “전북에서 일하면서 ‘올해는 우승 못하겠다’는 부정적 생각을 하는 선수를 못 봤다. 그렇다고 안주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1위 팀 선수들이 가져야 하는 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홍정호는 흡사 간증과 같았다. “나도 신기하다. 이겨야 하는 경기는 항상 이긴다”며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듯 말했다. 어쩐지 낯설지 않다. 경기를 앞두고 손준호가 “우승 DNA라고들 하신다. 중요한 경기를 항상 이겼던 것이 ‘전북다움’이다. 선수들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 것과 오버랩된다. 더 과거로 시계를 돌려봐도 비슷한 말이 한가득이다. 지난해 이용은 믹스트존에서 “우리가 우승할 것 같아서 (우승 세리머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송범근은 우리와 인터뷰에서 “경기장 들어가니까 또 우승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 적 있다.
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추적한다고 했다. 전북은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일어나는 마음에 확신을 얻는 케이스다. 그렇지만 울산은 생각을 좇았을 때 좋지 못한 추억에 맞닿는다. 의심이 싹트고, 그만큼 중요할 때 응집력이 약해질 수 있다. 믿어지는 생각과 믿고 싶은 생각은 다르다. <인셉션>에서 위조꾼 임스는 말했다. “(생각을 심는다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XX 어려울 뿐이지.”
사진=FAphotos

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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