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special] ‘찬란한 출발 미약한 현재’ 호비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기사작성 : 2020-10-14 17:07

- 호비뉴는 한때 축구 세상의 화려한 미래였다
- 산토스에 2번 우승을 안기고, 레알로 향했다!
- 지금? 월급 31만 원… 그의 전성기는 왜 선이 아니라 점이 되었을까

본문


[포포투= Mark White, 에디터=조형애]

환상적인 스텝으로 드리블을 하던 호비뉴는 한때 축구 세상의 화려한 미래였다. 위대한 선수들이 그를 찬미했고, 그도 스타가 될 운명을 타고난 듯했다. 모두를 놀라게 한 건 단 하룻밤에 그쳤다. 그리고 2020년 10월, 자유계약 신분으로 산투스에 복귀했다. 월급 31만 원(물론 재정난을 겪고 있는 친정팀을 배려하는 차원이다!)... 그래도 찬란한 시작에 비하면 현 상황은 아쉽다. 역사는 호비뉴를 어떻게 기억할까? <포포투>가 그의 헛발질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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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적과의 동침을 한 증거가 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진 속 마라도나는 한 호텔 방에서 당시 브라질 최고 스타였던 호나우지뉴와 호비뉴를 양팔로 감싸고 있다. 세 공격수는 각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축구를 상징한다는 믿음을 줬다.

처음 주목받았을 때, 호비뉴는 그 세대를 이끌 결정적인 인물로 묘사됐다. 마라도나나 호나우지뉴처럼 자신의 힘으로 월드컵을 다시 브라질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펠레도 환호했다. “호비뉴는 내 업적을 넘어설 수 있다. 또 다른 펠레를 산토스에 내려 주신 신께 감사드려야 한다.” 처음엔 칭찬이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호비뉴는 공과 함께 춤을 췄다. 브라질 한 심판은 어린 호비뉴에게 나이 든 선수들이 앙심을 품고 발목을 노릴 수 있으니 헛다리짚기를 주의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2004년 공항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마드리드 회장은 “호비뉴를 영입해”를 외치는 팬들을 만났다. 엘클라시코에 패한 뒤였다. 유튜브가 아직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호비뉴가 트레이드마크인 ‘페달 밟기’로 코린치안스 수비수 호제리우를 무너뜨리는 영상은 지네딘 지단이 “날아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1년 뒤 레알이 2,400만 유로(약 325억 원)에 호비뉴를 영입하며 호비뉴는 지단의 동료가 됐다. 당시 호비뉴는 21세였다. 유럽 제패의 영광이 빠르게 과거가 되자 페레스는 젊은 선수들 영입에 나섰다. 세르히오 라모스, 줄리우 밥티스타, 시시뉴, 안토니오 카사노 등을 영입했다. 호비뉴는 그중 헤드라인이었다. 페레스가 경기장이나 포스터에 다음 세대를 상징해서 내세울 수 있는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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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맞은 카디스

호비뉴는 라리가에 도착하자마자 유럽을 밝혔다. 입단 바로 다음 날, 레알은 승격팀 카디스와 1-1로 비기고 있었다. 종료 25분을 남기고 호비뉴는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 거대한 기대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을 즐겼다. 시차 적응도 안됐으나 반데를레이 룩셈부르구 감독은 바로 경기에 내보냈다. 호비뉴가 가진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호비뉴는 상대 미드필더를 상대로 대담하게 사포를 했다. ‘호비뉴 쇼’였다.

“경이로운 선수다.” 레알이 2-1로 이긴 뒤 지단은 호비뉴를 극찬했다. “그런 선수와 함께 뛰면 너무 공격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 호비뉴와 함께 우리는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상대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상대방도 호비뉴를 칭찬했다. 마이클 로빈슨 카디스 단장은 “호비뉴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한 선수가 단 20분 만에 우리 팀 전체를 찢어 놓는 걸 잘 감상했다.”

한편 바르셀로나도 얼마 전 그들이 만든 남미 스타를 공개했다. 4개월 전, 아카데미 출신 리오넬 메시가 역대 최연소 득점자가 됐다. 메시는 호비뉴와 유사점이 많았다. 같은 키에 비슷한 무게 중심 그리고 폭발력까지 비슷했다. 두 선수는 2005년 11월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맞붙었다. 지단과 호나우지뉴가 벌인 ‘세계 최고 10번 대결’이 메인이었으나 두 사람의 서브 매치도 빛났다. 전반 15분, 호비뉴는 빅토르 발데스 골키퍼와 맞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바로 바르사는 역습 상황에서 메시에게 공을 보냈다. 메시는 18미터 정도를 드리블로 돌파, 사무엘 에토에게 패스를 해 이케르 카시야스를 무너뜨렸다.

메시가 라리가 첫 번째 도움을 올리는 순간은 호비뉴에게 바로 앞에서 문이 닫히는 상황과 같았다. 이날 바르사의 3-0 승리는 호나우지뉴가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인 경기로 영원히 기억됐지만, 호비뉴의 밤이 될 수도 있었다. 언론은 열 올려 레알을 비판했다. <엘파이스>는 메시가 동년배 라이벌과 ‘가상 결투’에서 승리했다고 썼다. <가디언>은 베컴이 호비뉴 때문에 중앙으로 자리를 바꾼 이유를 궁금하며 “페레스의 (영입) 정책이 다시 한번 몰락했다”라고 한숨 쉬었다. 레알은 2005-06시즌에 바르사에 크게 밀리며 2위를 했고 페레스 회장은 구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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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커다란 공백

어린 왕자 호비뉴는 지단의 그늘 속에서 뒤죽박죽인 데뷔 시즌을 견뎌냈다. 그는 분발하면 월드클래스였으나 마드리드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에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지 못했다. 2006월드컵은 호비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레알과 달리 브라질은 세대교체가 필요한 팀이 아니었고, 호비뉴는 독일에서 많이 활약하지 못했다. 16강에서 허벅지를 다쳐 8강 프랑스전엔 조금만 뛰었다. 지단은 이 경기에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숨막히는 개인 기량을 선보였다. 브라질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게 됐다.

그해 여름, 레알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선임했고 파비오 칸나바로를 비롯해 뤼트 판 니스텔로이, 에메르송, 마하마두 디아라를 영입했다. 4,000만 유로(약 539억 원)를 사용해 유망주인 곤살로 이과인, 페르난도 가고, 마르셀루도 영입했다. 세계 최고들에게 둘러싸인 호비뉴는 더 이상 레알에서 신예라는 달콤함을 누릴 수 없어졌다. 호비뉴는 더 이상 선발을 보장받지 못했다. 카펠로는 시즌 초반 6경기에서 호비뉴를 선발로 쓰지 않았다.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맞은 여름에 남아메리카에서 완벽하게 재기했다. 브라질 소속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코파아메리카를 우승했다. 호비뉴는 6골을 넣으며 득점왕과 MVP를 모두 차지했다. 레알은 2008년, 리그 2연패를 차지했으나 여전히 호비뉴는 팀 중심 선수가 아니었다. 레알은 호비뉴를 지켜보는 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곧 비슷한 선수를 찾아 나섰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데려오는 계획이었고, 호비뉴는 협상 카드가 됐다. 호비뉴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호날두는 한 시즌 더 올드트래퍼드에 머물게 됐다. 하지만 호비뉴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레알에서는 최고 선수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구단에 말했고, 구단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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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만수르

2008년 9월, 호비뉴는 이적료 4,200만 유로(약 565억 원)에 맨체스터시티 유니폼을 입었다. 새로운 맨시티가 지닌 야망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같은 날, 새 구단주가 팀을 인수했다. 호비뉴는 새 팬들에게 최고의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데뷔전에서 13분 만에 골을 넣었고, 스토크시티를 상대로는 해트트릭을 터뜨렸으며 트벤테, 토트넘, 아스널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2008-09시즌 전반기에 팀은 헤맸지만 호비뉴는 제값을 했다.

그는 “출발은 좋았다”고 회상했다. “불운하게도 당시 맨시티에 좋은 선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게 호비뉴 경력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화려하게 등장한 후 이내 실망을 안겼다. 이적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호비뉴는 동료들에게 ‘약팀의 멘탈’을 지녔다고 말했다. 내리막길은 가팔랐다. 그는 12월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 도움 하나에 그쳤고 골은 넣지 못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한 소녀를 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나왔다.

호비뉴에게 맨시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무대였다. 물론 펠레는 호비뉴가 레알을 떠난 뒤 지지를 재빨리 철회했다. 주제 페르난도스 산토스 단장도 실망감을 표했다. “그런 선수를 배출했다는 게 부끄럽다.” 호비뉴는 산토스, 레알이나 브라질 같은 강팀에선 좋은 모습을 보였을 수 있지만 맨시티의 아틀라스(어깨에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거인)가 돼 그 팀의 계획을 어깨에 짊어질 준비가 돼 있진 않았다.

5월 10일에 올드트래퍼드에서 한 맨체스터 더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카를로스 테베스는 스스로 골을 만들어 냈으나 호비뉴는 골대 7미터 앞에서 잡은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테베스는 완벽했고 맨시티의 얼굴 호비뉴는 그렇지 않았다. 맨시티는 2009년 테베스에게 10번 유니폼을 건넸다. 그 옷의 원래 주인 호비뉴는 잉글랜드가 “브라질 경기 방식에는 좋지 않았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라고 평했다.

2010년 초반, 호비뉴는 임대로 산토스에 복귀했다. 그해 8월, 맨시티는 호비뉴에 쏟아부은 돈 중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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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에서 보낸 세 시기

2002년부터 2011년 사이 AC밀란은 2002월드컵의 전설적인 3인방 히바우두, 호나우두, 호나우지뉴를 품었다. 밀란은 호비뉴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전날 밀란은 최전방에서 궂은일을 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했다. 역시나 호비뉴는 이탈리아에서 더 행복해 보였다. 찡그린 표정이 사라졌고, 데뷔 시즌에 총 15골을 넣으며 팀이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하는 걸 도왔다. 호비뉴, 즐라탄, 알렉산드리 파투는 각각 리그에서 14골을 넣었다. 밀란은 이 시즌에 65골을 터뜨렸다.

호나우지뉴가 2011년 1월 밀란을 떠나 플라멩구로 가면서 한 시대가 끝났다. 호비뉴는 추락하고 있었다. 즐라탄은 2011-12시즌 28골을 터뜨리면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호비뉴는 동료의 그늘에 가려 6골에 그쳤으며 밀란은 유벤투스에 이어 2위에 그쳤다. 2012-13시즌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즐라탄과 파투가 없는 상황에서도 2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다음 시즌에는 리그 15경기에만 선발 출전하며 이별을 예고했다.

2014년 여름, 산토스 유니폼을 세 번째로 입는 게 불가피해졌다. 산토스로만 두 번째 임대였다. 안방에서 열린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호비뉴를 명단에서 제외한 것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스콜라리는 1년 뒤에야 광저우헝다로 호비뉴를 불러들였다. 호비뉴는 유럽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전성기는 점으로만 남아 있다. 그해 11월에는 2013년 밀라노에서 한 여성을 집단 폭행했다는 혐의(그는 부인한다)로 9년 형을 선고받으며 논란을 키웠다. 이 사건은 그라운드에서 남긴 업적을 흐리게 했다.

호비뉴의 아쉬움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네 개 나라에서 여러 번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07년에는 코파아메리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현실이 그렇다. 사람들이 호비뉴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무엇을 가장 오래 기억할까? 2008년 여름 이적시장 마감일에 한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는 항상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2002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엔 너무 늦게 태어났고, 2006년에는 수많은 스타가 들고 나며 해체되던 갈락티코에 합류했다.

호비뉴도 너무 큰 기대의 희생자였을지 모른다. 메이저 트로피 8개와 브라질 대표팀 100경기 출전은 절대로 작은 게 아니다. 그저 마라도나, 호나우지뉴와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사람들이 기대한 게 아니었을 뿐이다. 적어도 아틀레치쿠미네이루, 시바스스포르, 이스탄불바샤크세히르를 거쳐 브라질 최저 임금보다 조금 높은 1,500헤알(약 31만 원)을 연봉으로 받으며 산토스로 향하는 그런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진=포포투,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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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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