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발롱도르 듀오' 쉐바와 카카가 밀란에서 만났을 때

기사작성 : 2020-09-22 17:11

-발롱도르 수상한 카카와 세브첸코
-밀란 전성기를 이끌다
-두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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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에디터=류청]

주세페메아짜가 광란의 장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79초에 불과했다. 파비오 카펠로가 이끄는 밀란이 로마와 홈경기에서 세리에A 우승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우승을 확정하던 2004년 5월의 그날, 스쿠데토는 그들의 것이 됐다.

AC밀란과 함께 첫 시즌을 보낼 당시 카카는 22세였다.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볼을 잡은 그는 올리비에 다쿠르를 제친 뒤 페널티박스에서 서성이던 안드리 세브첸코에게 자로 잰 듯한 크로스를 보냈고, 세브첸코의 슛은 골키퍼 이반 펠리졸리를 지나쳐 골망을 흔들었다. 8만여 관중이 미쳐 날뛰었다. 산시로 지붕이 들썩이다시피 했다. 결승골이었다. 밀란은 2경기를 남겨놓고 왕좌에 올랐다. 아름다운 합작골 덕이었다.

밀란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될 두 선수는 골문 앞에서 냉정한 골잡이와 우아한 플레이메이커였다. 각각 11,265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지만 2000년대 같은 무대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별로 만날 운명이었다. 세브첸코는 <포포투>와 인터뷰에서 “한 팀에서 함께 뛰는 게 즐거웠다. 카카 덕에 많은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다섯 살 많은 세브첸코는 구소련 후기에 성장기를 보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피하려 잠시 키예프에서 지냈고, 디나모키예프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1997년에서 1999년 사이 챔피언스리그 바르셀로나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66골을 넣었다. 후에 바르사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관심을 뿌리치고 밀란에 합류했다.

2000년대가 시작한 이탈리아 데뷔 시즌, 세리에A 득점순위에서 선두에 올랐다. 이것으로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내기에서 이긴 그는 재벌의 요트 위에서 휴가를 즐겼다.

한편 지구 반대편에서는 브라질 유복한 가정의 아이가 상파울루 유스팀에서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히카르두 이젝송 두스 산투스 레이치. 어린 시절 ‘히카르두’를 발음하지 못하는 남동생 때문에 ‘카카’라 불리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2000년 9월 축구를 접을 뻔했다.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사고가 났는데, 척추뼈를 다치는 바람에 마비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회복한 18세의 카카는 재활하는 동안 축구에서 이루고 싶은 10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 목표 중 하나가 월드컵 우승이었다.

꿈을 이루기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프로무대에서 활약상으로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감독의 셀레상에 합류했다. 한일월드컵에 나설 23인의 엔트리 중 하나도 그의 몫이었다. 그가 뛴 시간은 결승전 18분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 세계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이제 막 꽃이 필 참이었다.

세브첸코의 전성기는 11개월 뒤에 찾아왔다. 2003년 밀란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끄는 원정골을 넣으면서다. 긴장감 넘치는 준결승 상대가 라이벌 인테르였다! 올드트래퍼드에서 벌어진 결승전은 유벤투스와 대결이었다. 경기는 승부차기로 흘렀다. 결정적 순간을 확정하기 위해 골문 앞에 선 이는 세브첸코였다. 침착한 슛으로 부폰의 방향을 속인 그는 팀을 유럽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해 여름 밀란은 카카와 580만 파운드(약 88억 원)계약하면서 전력을 강화했다. 후에 카카는 <포포투>에 “다른 제안들도 있었다”면서 “하나는 첼시, 하나는 러시아 팀의 제의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곧 히바우두와 루이 코스타를 밀어내고 팀의 간판이 됐다. 그라운드를 자유롭게 활주하며 손쉽게 상대를 무너뜨렸다. 천국에서 보내온 것 같은 스루볼로 수비진을 분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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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첸코는 타고난 포식자였다. 카카의 오른발이 더해지면서 둘은 최상의 시너지를 낼 준비가 됐다. 셰바는 “볼을 갖고 있는 공격수라면 득점을 시도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선수가 되는 건 아니다. 그게 일이니까”라고 말했다.

2003-04시즌 둘은 리그에서만 34골을 넣으며 밀란에 우승 타이틀을 안겼다. 카카는 ‘세리에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고 셰바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둘은 찰랑이는 머리칼과 멋진 외모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모델까지 됐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인테르 팬이었는데도 말이다.

2005년에는 밀란을 또 한번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견인했다. 셰브첸코는 인테르와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카카는 이스탄불(결승)에서 환상적인 킬패스를 선보였다. 리버풀을 상대로 3-0 스코어를 만든 에르난 크레스포의 골은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카카의 패스 덕이었다. 그들은 이후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혹자는 결승에서의 좌절 후 세브첸코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다음 시즌 기록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표로 처음 참가한 월드컵에서는 자국의 8강행도 이끌었다.

그해 여름 세브첸가 첼시로 이적했다. 카카도 산시로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이전에는 젠나로 가투소, 클라렌스 세도르프, 안드레아 피를로와 함께 다이아몬드 미드필드의 꼭짓점에 섰다. 이젠 전방으로 옮겨 가상의 세컨드 스트라이커가 됐다. 2006-07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10골을 터뜨리며 득점 선두에 올랐다. 올드트래퍼드에서 그가 두 골을 터뜨린 덕분에, 밀란은 준결승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제치고 결승에 올라 리버풀과 ‘리벤지 매치’를 가질 수 있었다.

그해 카카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역사상 월드컵과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8명밖에 없다. 보비 찰튼, 게르트 뮐러, 프란츠 베켄바우어, 파올로 로시, 지네딘 지단,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그리고 카카다.

언젠가 피를로는 이렇게 말했다. “2~3년 동안 카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2009년 카카는 5600만 파운드에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합류하기 3일 전이었다. 부상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활약하진 못했다. 세브첸코와 카카는 각각 밀란으로 돌아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애썼다. 당시 ‘매직’의 효력이 다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그들은 유럽에 마법을 건 존재로 남았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발롱도르는 무려 16차례나 이탈리아에서 뛰는 선수의 몫이었다. 세브첸코와 카카 이후 13년이 흐르도록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리에A 선수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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