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now] 김치우, 단발 소년에서 육아 대디로

기사작성 : 2020-06-25 16:05

- 은퇴 후 이야기: <김치우> 편
- 육아 대열에 본격 합류했다
- 김치우가 단발 스타일을 포기한 사연은?

본문


축구화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때 그 스타’를 만납니다. <편집자 주>

[포포투=배진경]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측면을 타고 오르내렸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킥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기기도 했다. 1부리그 승격을 놓고 벌인 건곤일척 승부의 상대는 아뿔싸, 가장 사랑하는 팀 서울이었다.

지난달 초 은퇴를 공식화한 김치우를 만났다. “당분간 축구 휴식”을 외치고 있는 그는 요즘 육아에 한창이다. “손 많이 가는” 네 살짜리, 두 살짜리 아이들을 돌보면서 “운동이 덜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운동하는 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지금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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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2020시즌 K리그 개막 후 은퇴를 공식화했다.
지난해 말로 부산과 계약 만료였다. 승강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면서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다. 솔직히 올해까지는 뛰고 싶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였다. 갈팡질팡 했다. 아내가 ‘어차피 1년 뒤 그만둘 거였는데 조금 일찍 끝냈다 치고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자’고 격려해줬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키워주셨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두 분을 찾아 뵀다. 내겐 부모님과 마찬가지인 분들께 “축구 그만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정말 많이 울었다. 한번 쏟아놓고 나니 말끔해졌다. 팬들께는 K리그 개막 시점에 인사 드리고 싶었다. 은퇴 기사가 한번 나간 다음날 종일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전화와 문자가 끊임없이 왔다. 팬들도 SNS를 통해 격려 메시지를 많이 주셨다. 갑자기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다시 유망주로 입단하는 기분이다.(웃음)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하는 것 같다. 이제 정말 은퇴를 실감한다.

FFT: 현역 시절을 돌아볼 때 떠오르는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 있다면?
시간 참 빠르다. 어떻게 16년이나 프로 생활을 했지? 처음 A매치에 뛰던 순간도 기억이 나고, 가장 오래 몸담았던 팀 서울 시절도 많이 생각 난다. 입단했던 날 기억이 생생하다. 10년 가까이 있던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이적했을 때 기분도 떠오른다. 부산에서 동료들과 열심히 뛰어 다시 1부리그로 승격했을 때도.

FFT: 전남에서 서울로 이적할 당시 귀네슈 감독이 직접 지목했다. 어떤 점을 어필했던 걸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죽어라 열심히 뛰었던 활동량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그땐 어렸으니까. 사실 나도 서울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그 선수들과 같이 뛰어보고 싶었다. (FFT: 당시 서울엔 아디라는 K리그 최고 풀백이 있었다. 경쟁에서 자신이 있었나?) 원래 주 포지션이 풀백이었는데 인천과 전남에선 백스리의 윙백 역할을 했다. 서울에선 4-4-2 포메이션의 왼쪽 윙을 맡았다. 처음엔 아디 위에서 뛰었기 때문에 경쟁이 없었다. 나중에 포지션 변경으로 경쟁하긴 했지만 윙에 만족하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FFT: 본인을 포함해 기성용, 이청용, 정조국, 고요한에 아디와 데얀까지, 귀네슈 시절 서울은?
경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준비하는 과정도 재미있었고, 경기에 나설 때 진다는 생각을 거의 안했던 것 같다. 힘든 싸움이 힘들다기 보다 재미있게 느껴졌다. 당시 팀에 대표선수들이 많았다. 내 기억으론 대여섯 명 정도였던 것 같다. 팀 절반이 대표선수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팀과 동료들에 대한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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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선수들 사이에서 ‘스태미너 좋은 선수’로 알려졌다. 활동량을 많이 요구하는 포지션의 특성으로 볼 때 서른여덟까지 뛴 걸 보면 그 말을 입증한 셈이다.
꼭 그런 건 아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활동량도 많이 줄었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회복기간도 달라지긴 했다. 이런 차이는 있었다. 예전에는 정말 많이 뛰었다면 나이를 먹고서는 조절하면서 뛸 수 있게 됐다. 활동량은 줄어도 완급 조절하면서 효율적으로 뛴 거지.

FFT: 본인이 뛴 16년의 기간이 현대축구에서 풀백의 전술적 효용성이 높아진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변화상을 체감했나?
내가 만난 감독님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특히 공격 전환시 풀어가는 역할을 풀백이 맡아야 한다며 그런 움직임을 요구하셨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 포지션은 인기가 없었다. 빠른 선수들은 윙어가 됐고 볼을 잘 차면 미드필더가 됐다. 나도 처음엔 미드필더로 뛰다가 내려간 케이스다.(웃음) 프로 선수가 되면서 이 포지션의 매력과 중요성을 더 확신했다.

FFT: 전술적 가치를 인정해주거나 잠재력을 가장 많이 끌어낸 감독은?
내가 만난 감독님 모두 조금씩 나를 발전시켜 주셨다. 굳이 꼽자면 2007아시안컵 대표팀 당시 핌 베어백 감독님과 홍명보 코치님. 수비 전술로는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은 팀이었는데, 그때 백포(back4) 전술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과 3/4위 결정전에서 수비가 너무 좋았다. 중앙에 (김)진규하고 (강)민수, 사이드에 나와 (오)범석이, 이렇게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나갔는데 내가 생각해도 수비를 너무 잘했다. 선수들 합도 좋았고, 상대가 일본이라 긴장감 넘쳤다. 승부차기까지 갔던 경기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FFT: 기대대로였다면 이영표, 김동진을 잇는 단단한 레프트백이었어야 했는데.
대표팀에 좀 더 기여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두 차례 월드컵(2010, 2014) 예선에서 열심히 했지만 본선이라는 큰 무대에는 결국 가지 못했다. 부상이라던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 결국 내가 미흡했다. 좀 더 신경써서 몸 관리했다면 부상도 당하지 않았을 거다. (FFT: 대표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두 차례 월드컵 최종 예선 득점이 기억 난다. 프로 경기에서 골 넣었던 것과는 다른 감동이 있었다. 닭살이 돋고 머리카락도 삐죽 서고. A매치 데뷔전도 생생하다. 베어백 감독님 시절 가나와 친선경기에서 교체 출전했다. 사이드라인 앞에서 들어갈 준비를 할 땐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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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귀네슈 감독이 2009년 한국을 떠나면서 “치우는 잘 생겼어. 그러니 외모보다 축구에 좀 더 집중하면 좋겠는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외국인 감독님이어서인지 팀 문화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때 내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민망하다. ‘도대체 어떻게 그 상태로 뛰었지’ 싶을 정도다. 심지어 머리 묶고 뛴 경기도 있다. 경기 전에 준비 시간이 좀 길었다. 머리띠도 해야 하고, 거울도 봐야 하고. 아마 한국 감독님이었다면 내가 혼났을 텐데. 귀네슈 감독님이니까 지켜 보시다가 떠나실 때 말씀하셨던 거다. 말 그대로 뼈 있는 농담이었다! (FFT: 긴 머리를 고수했던 이유는?) 중고등학교6년 동안 삭발하고 다녔다. 요즘은 두발 자율이지만 우리 때는 엄격했다. 졸업 후에 제대로 길러보고 싶었다. 그러다 군대 다녀오고 30대가 되니까 귀찮아졌다. 머리카락에 눈이 찔리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웃음)


“귀네슈 감독이 떠나면서 ‘이제 거울은 그만 보라’고 하더라. 뼈 있는 농담을 하신 거지”


FFT: 부산으로 이적할 당시 배경은?
이적 결정은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은퇴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내 나이가 서른여섯이었고 서울에서는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부산이라는 좋은 팀에서 제의가 왔다. 2부에서 승격 도전하는데 나를 필요로 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FFT: 1부에서 순위 경쟁하거나 ACL 도전을 이어가는 서울과 2부에서 승격을 노리는 부산. 각각의 팀에서 역할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서울은 나이에 상관없이 가장 경쟁력 있는 선수가 출전하는 게 맞는 팀이다. 아마 나도 어렸을 땐 후배들 같은 기세였겠지만, 나이가 드니까 나보다 경쟁력 있는 후배들이 보였다. 그걸 인정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뛰고 싶은 마음이 작아진 건 아니었다. 부산은 승격이 제일 큰 목표인 팀이었고, 베테랑을 원했다. 당시 팀에 계셨던 최윤겸 감독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나에 대한 기대가 커진 만큼 부담감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정말 잘 따라줬다. 종종 경기장에서 쓴소리도 했는데 다 경기의 일부로 받아줬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결국 작년에 승격을 이뤘다. 서울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지만, 승격은 또 다른 감동이 있는 경험이었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극복하고 1부리그에 오르는 기쁨이 더 진해지는 느낌이었다.

FFT: 부산 이적 첫 시즌(2018),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서울을 만났다.
설마 서울이 플레이오프까지 올까 싶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팀을 상대하게 돼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그래도 부산 소속으로 최선을 다했다. 경기 도중 (김)원식이 얼굴을 밀쳤던 게 빌미가 돼 원정에서 야유도 많이 받았다. 솔직히 여전히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더 열심히 해서 이기고 싶었던 마음이 감정적으로 올라왔던 것 같다. 해서는 안될 행동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원식이와 오해는 풀었지만 서울 팬들께는 죄송했다.

FFT: 체력, 주력, 기술, 킥, 왼발잡이라는 희소성까지,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보나?
아니다. 지나고 보니 많이 아쉽다. 프로 생활을 오래 했지만 큰 획을 긋지는 못한 것 같다. 좀 더 잘할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래도 축구선수여서 좋았고, 축구로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다. 이제 내 안에서 축구를 잘 보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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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못다한 말이나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박항서 감독님이 생각난다. 전남에서 서울로 이적할 때 감독님이 많이 실망하셨다. 이후 상무 시절 감독님으로 다시 뵈었다. 제대 3~4개월 전에 부상이 있었다. 수술 후 회복하다 서울로 복귀했는데, 감독님은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고 보셨는지 섭섭해 하셨다. 사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님인데 오해가 많았다. 이제 은퇴했으니 편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근데 너무 유명해지셔서.(웃음) 뵐 수 있다면 꼭 다시 인사 드리고 싶다.

FFT: 앞으로 계획은?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다. 지도자가 될지 다른 걸 할지 고민 중이다. 뭘 하든 계속 축구 안에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을 거다. 당분간 쉬면서 좀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 팬들께도 인사 드리고 싶다. 선수 생활하는 동안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했다. 그 사랑 덕분에 더 열심히 뛸 수 있었다. 더는 그라운드에서 뵙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축구 보러 경기장에 많이 갈 거다. 혹시라도 아는 척해 주시면 반갑게 인사 드리겠다. 선수 때는 차갑다는 얘길 좀 들었는데, 이제 다정하게 웃어드릴 생각이다!(웃음)

[TEAMS]
인천유나이티드
FK파르티잔(임대)
전남드래곤즈
FC서울
상주상무
부산아이파크
대한민국 대표팀

* 본 인터뷰는 <포포투> 6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사진=이연수, FAphotos
writer

by 배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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