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survey] K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감독은 누구?

기사작성 : 2020-06-24 17:18

- K리그 외국인 감독 특집
- 거쳐간 감독은 24인, 1위는 누구…?
- 71명 설문으로 찾은 결과를 공개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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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조형애, 이종현]

K리그 37년사, 최고의 외국인 감독을 찾아 나섰다. 후보 24명 중 최고를 가리는 여정은 K리그 22개 구단이 함께했다. 우리의 설문에 답변을 전해 준 이는 각 구단의 대표급, 그리고 코칭스태프 2인이다. 단, 현 감독이 외국인인 전북현대는 백승권 단장과 김상식 코치의 답변만 구했다. 대한축구협회 송기룡 심판운영실장,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종권 홍보팀장, 해설위원 5인 등 구단 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순위는 역순으로 차등 점수를 매겨 더하는 방식으로 산출했다. 각자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등수까지 받았고, 그대로 총점을 구했다. 현장에서 구한 답을 지금부터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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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틴 레니
서울이랜드 2014.09~2016.06ㅣ21승18무17패

이랜드 초대 감독이자, 현재까지 이랜드에서 감독직을 1년 이상 수행한 유일한 감독. 이랜드 최고 성적을 일군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는 창단 첫해였던 2015시즌, 이랜드를 정규 시즌 4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성적과 경기력, 마케팅까지 잡으려 했던 이랜드는 마음이 급했다. 결국 2016시즌 도중 계약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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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알툴 베르날데스
제주유나이티드 2008.01~2009.10ㅣ19승17무31패
강원FC 2014.01~09ㅣ11승6무10패

K리그에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지도자. 2008년 제주에 부임한 그는 브라질 대표팀 특유의 4-2-2-2 포메이션을 적용, 공격적이고 세밀한 축구를 펼쳤다. 그 과정에서 신예 구자철을 적극 기용하기도 했다. 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지도력을 인정받은 이유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목표가 무산되자 감독직을 내려놨다. 9월, 포항전 1-8 대패가 결정타였다. 2014년 강원과 맺은 인연은 9개월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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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모아시르 페레이라
대구FC 2011.11~2012.11ㅣ16승13무14패

대구 최초 외국인 감독. 2011시즌, 상위 스플릿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중위권 도약을 이끄는 등 '대구 업그레이드’에 일조했다. 광주 유경렬 수석코치는 그를 가장 큰 영감을 준 이로 기억하고 있다. “겪어본 외국인 감독 중 한국 축구와 정서,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았다. 특히 한국 지도자들과 융합,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며 팀을 원팀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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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이안 포터필드
부산아이파크 2002.11~2006.04ㅣ30승40무53패

“내가 은퇴를 하고 플로리다 해변에 앉아 뒤돌아 봤을 때, 부산아이파크 유소년 팀에서 박주영 같은 선수가 나온다면 그 씨앗을 내가 뿌렸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싶다. 조윤환이나 최윤겸 같은 감독들이 우리 선수 가운데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장관, 이정효 등의 선수가 내게 배워서 좋은 감독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행복하겠다.”
K리그에 선진 축구 시스템을 뿌리내리고자 했던 지도자. 2005년 대한축구협회와 인터뷰에서 ‘한국을 떠난 뒤,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포터필드 감독이 한 답은 그가 어떤 가치에 투신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포터필드 감독의 축구는 2004년 FA컵 우승, 2005년 K리그 전기리그 우승, ACL 4강이라는 일부 성과에도 평가에 이견이 존재한다. 2002년 11월 부임 이후 2004년 FA컵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는 점, 과거 대우로얄즈가 자랑했던 공격 축구가 잊힐 만큼 역습 후 한 방을 노린 극심한 수비 축구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시즌 도중에 팬들의 퇴진 요구를 받기도 했고, 한때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되자 반대 여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가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그는 축구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데 힘썼고, 연령별 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K리그에 남긴 유산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을 발한 케이스다.

포터필드를 인상적으로 기억한 많은 이들은 그가 일군 성적보다 철학을 높이 샀다. 제주 김현희 단장은 포터필드를 K리그에 영감을 준 외국인 감독으로 꼽으며 “클럽 시스템과 스태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돌아봤다. 강원 박종완 대표이사는 “구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많은 감동을 줬다”고 표현했다. 그는 “오래된 기억”이라면서도 “축구보다는 그 마음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포터필드는 선수들 마음도 샀다. 포터필드를 최고의 외국인 감독으로 적은 상주 임관식 수석코치는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감독이 성공한 외국인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제자들이 포터필드 감독을 많이 본받으려고 애썼다. 존경하는 감독님”이라고 전했다. 안산 박성배 수석코치 역시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감사를 표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심리를 이용, 선수들 사이 경쟁을 통해 조직을 극대화했듯이 부산 시절 포터필드 감독 또한 강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경쟁을 통해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극대화했다. 개개인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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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조세 모라이스
전북현대 2019.01~ㅣ29승13무4패 *2020K리그 7라운드 기준

전북 최초 외국인 감독이자, 전북의 리그 3연패를 완성한 사령탑. 동시에 여전히 검증해야 할 것이 많은 지도자. 조제 모리뉴 사단으로 K리그 입성 전부터 국내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그는 2019시즌 울산의 저항을 뿌리치고 기적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하지만 낮은 선수 영입 효율, 제한적인 운용, 모호한 전술적 색채까지 그에게 쏟아지는 의문을 풀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손가락 세 개를 펴며 ‘트레블’을 노래한 모라이스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준희 해설위원도 평가를 보류했다. “모라이스 감독은 올 시즌 퍼포먼스에 따라 앞으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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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넬로 빙가다
FC서울 2010.01~12ㅣ25승6무6패

2010년, 서울에 정규 리그 우승과 컵 대회 트로피를 안기고 1년 만에 홀연히 떠난 지도자. 빙가다를 K리그 최고 외국인 사령탑으로 꼽은 강원 김병수 감독의 한 줄 평도 짧은 기간 일궈낸 성과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 임팩트가 강하다.”

K리그 통산 성적은 25승6무6패. 무패 확률이 무려 83.7%에 달한다. 공격 축구를 표방하던 전임 감독 세뇰 귀네슈와 달리 그는 실리 축구를 추구하며 승수를 쌓았다. 최효진, 현영민, 김용대 등 베테랑 선수들로 구심점을 잡았고,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드러운 리더십도 더해졌다. 현영민 해설위원은 “선수들의 창의력을 힘껏 밀어주었다. 동기부여 측면에서 확실한 철학이 있었다.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 결과, 그는 서울이 그토록 염원하던 정상에 올랐다. 부임 첫해에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는 남다르다. 하지만 ‘재미가 반감된다’는 수비 축구 한계를 뛰어넘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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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안드레
대구FC 2017.05~2020.01ㅣ36승35무13패

대구 최초 FA컵 우승, 대구 최초 ACL 진출을 이끈 지도자. 2000년 선수로 인연을 맺은 K리그에, 2015년 코치로 돌아와 5년여를 대구와 함께 했다. 현장은 안드레 감독이 대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름값이 그다지 높지 않은 선수들을 데리고 짜임새 있고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했다. 투지 넘치고 쉴 틈 없는 공격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나아가 시민 구단도 얼마든지 우수한 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송기룡 심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

“지난해 대구와 맞대결을 펼쳤던 경기가 인상 깊었다. 대개 전북과 경기를 펼치는 팀은 수비 지향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7월 10일 대구 홈에서 펼친 경기에서 전반에 2실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펼쳤다. 결국 경기는 전북의 승리였지만 홈 팬들에게 공격하는 축구를 보여주려 했던 안드레 감독의 전술이 인상적이었다. 안방에서 어떤 축구를 팬들이 원하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했다.” - 백승권 전북 단장

“넉넉지 못한 스쿼드의 대구를 ACL까지 이끌었다. 전술적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였다.” - 설기현 경남 감독

“2019 시즌 안드레 감독이 지휘했던 대구가 인상적이었다. 세징야, 에드가, 김대원, 정승원 등을 앞세운 빠른 역습 축구가 매우 잘 통했다.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활용하는 팀은 수비적인 팀이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는데, 상당히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는 매력적인 팀이었다.” - 장철혁 안양 단장

“한국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했다. 선수 특징을 잘 파악했다. 전체적인 팀 전력이 약해도 그 이상의 플레이를 만들어내는 지도자다.” - 김도균 수원FC 감독

“리그 하위권 팀을 FA컵 우승으로 이끌고, 리그 상위 순위까지 올린 지도력에 큰 점수를 줄 만하다. 선수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선수 특정에 맞춰 전술의 다양성을 만드는 등 무엇보다도 한국 축구에 잘 적응한 감독이었다.” - 김길식 안산 감독

“대구가 ACL에 올라가는데 큰 일조를 했다. 대구를 한 단계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 김종영 경남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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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레리 니폼니시
부천SK 1995.01~1998.01ㅣ57승38무53패

‘K리그의 전설, K-풋볼의 아버지’ 니폼니시는 1995년 부천SK 지휘봉을 잡기 전 1990월드컵 카메룬의 센세이셔널한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한준희 해설위원이 “국제적 성공을 고려하면, K리그에 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을 자아낼 법한 인물”이라고 첨언한 이유다.

광주 유경렬 수석코치는 니폼니시 축구에 대해 “한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라 말한다. 투지와 체력을 바탕으로 한 ’뛰는 축구’ 혹은 ‘치고 달리는 축구’였던 K리그에 패스와 조율, 포지셔닝 등 선진 축구 개념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전북 김상식 코치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킥앤러시가 한국 축구였다. 니폼니시는 균형 있는 패스 축구를 선보였다.” K리그에는 충격이었다. 직접 지도를 받았던 포항 김기동 감독은 “처음으로 지역방어에 대한 개념을 배웠다. 전술과 상대 움직임, 상황 판단과 같은 부분을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일각의 반대와 의구심도 존재했다. 하지만 니폼니시는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지도자이기도 했다. “소통하는 지도자였다.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인상적인 축구를 했다.” 부산 안기헌 대표이사의 말이다. 제주 남기일 감독도 “니폼니시는 개인의 성장을 도모했다”고 회상했다.

부임 3년여 동안 리그컵 우승 1회(1996)에 그쳤지만, 그가 남긴 영향력은 그 결과를 훨씬 웃돈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당시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축구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됐다’고 술회한다”고 말한다. 최윤겸, 윤정환, 남기일, 김기동 등 후세대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기념비적이라 할 만하다. 훈련법 역시 마찬가지다. 대구 최원권 코치는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에 맞는 전술 철학을 구현했다. 실제 니폼니시의 훈련 방법은 후에 모든 팀들이 오랜 기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보여준 신사다운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대한축구협회 송기룡 심판운영실 실장의 기억이다. “하프타임이나 경기 종료 후 목동 운동장 본부석 건너편에 있는 라커룸에 갈 때도 그라운드의 잔디를 밟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축구에 대한 존중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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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세뇰 귀네슈
FC서울 2006.12~2009.11ㅣ51승37무22패

우승컵 하나 없는 감독이 K리그 역대 외국인 감독 2위에 올랐다. 세뇰 귀네슈가 그 주인공. 이번 설문에 참가한 대상자 71명 중 대다수가 팀 성적에 사활을 거는 프로구단관계자라는 점에서 ‘무관’ 귀네슈가 2위 자리에 오른 건 큰 의미가 있다.

귀네슈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어린 선수의 과감한 기용과 육성이다. FC서울의 강명원 단장은 귀네슈의 빠르고 재미있는 축구를 언급하면서 “이청용과 기성용 등 젊은 선수 발굴에도 큰 성과를 보였다”고 회상했다. 귀네슈 시절 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이재하 성남 단장도 “어린 선수를 적극 기용하며 선수를 발굴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하지만 귀네슈가 남긴 유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타들을 모아둔 서울이라는 팀을 꽤나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나름의 카리스마도 갖췄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팬들을 모이게 한 감독이다. 당시 재미를 느꼈던 팬들이 지금도 서울 경기를 찾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김환 해설위원 말이 핵심이다. 백승권 전북 단장도 “FC 서울의 부흥기를 이룬 감독이다. 우승의 경험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당시 서울의 축구에 많은 팬들이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귀네슈가 서울에 남긴 업적을 평가했다.

귀네슈는 K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서 기대하는 다양한 측면을 만족시켰다. “미디어를 활용한 경기 분위기 업시켰다.”(송기룡 대한축구협회 심판운영실장), “직설적인 인터뷰 선수 기용 등 기존 한국 감독과 다른 스타일로 화제를 몰았다.”(오동석 수원 단장), “경기분석이라는 개념을 K리그에 소개한 외국인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김길식 안산 감독) 등의 증언도 이어졌다.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의 개념이 적립되고 불이 붙은 것도 이 시기다. 이종권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은 “차범근 전 수원 감독과 지략대결로 슈퍼매치가 K리그 대표 라이벌 매치로 자리 잡도록 하는 등 K리그의 흥행에도 큰 기여를 했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귀네슈는 특히 라이벌 문화를 함께 만든 수원 관계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이임생 수원 감독은 “차범근 감독님을 모시던 수석코치 시절 서울과 맞대결했던 모든 경기”가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골키퍼 출신 귀네슈는 당시 수비적으로 생각했던 스리백을 가지고 공격 축구를 강조했다.

그의 축구를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압박하는 빠른 공격 축구”로 정리했다. 당시 귀네슈 밑에서 주장으로도 뛰었던 최원권 대구 코치는 “당시 기억에 남는 건 90분간 계속해서 선수들에게 좋은 플레이를 주문했던 게 생각난다. 매 경기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터키말로 지시하는 보고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무관의 제왕’ 귀네슈가 떠나고 부임한 빙가다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은 운명의 장난일지 모르겠다. 귀네슈가 남긴 유산에 투자까지 더해서 서울의 2013년까지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 우승트로피에 귀네슈의 몫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닐 거다.

이청용이 기억하는 귀네슈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십니다.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첫해엔 안 좋은 습관들을 바로잡고 경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선수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감을 갖게 하신 점이 놀랍습니다. 저를 비롯해 어린 나이였던 선수들이 주축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건데, 성적을 내야 하기에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귀네슈의 FC서울 축구는 매력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면서도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과정과 결과를 모두 잡는 축구였습니다. 아직도 많은 팬들이 당시를 그리워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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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스틸러스 2005.01~2009.05ㅣ83승55무43패

“어떻게 보면 파리아스의 훈련은 정말 단순했다. 그런데 연습한 플레이가 그라운드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인천 김재성 코치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한다. 그는 강조한다. ‘토너먼트의 신이라 불리는 지도자’ 파리아스가 일군 결과가 마법처럼 보이지만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파리아스의 업적은 화려하다. 2007년 K리그 우승부터 FA컵 우승(2008), 리그컵 우승(2009) 그리고 ACL 우승(2009)까지 국내외에서 들어 올릴 수 있는 모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가 일군 클럽월드컵 3위라는 기록은 아직까지도 K리그 구단 역대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다. 수원 오동석 단장이 “국적을 떠나 성과에 있어서 K리그 역대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이라 한 평가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설문자 71명 중 27인에게서 최고의 지도자로 지목됐다. 무려 38%가 1위로 파리아스 이름을 적어냈다는 소리다. 그 이유는 단연 가시적인 성과로 꼽힌다. 포항 장영복 단장, 울산 김광국 단장, 아산 박동혁 감독, 전북 김상식 코치, 성남 정경호 코치 등이 “우승 횟수를 고려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시작은 의문투성이였다. 그는 리빌딩 작업이 필요한 조로한 명가에 나타난 당혹스러운 인물이었다. 그것도 브라질 청소년 대표팀 코치 시절, 호나우지뉴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는 것 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것 없는… 당시 <포포투>가 기록한 파리아스 첫인상을 공개한다. “브라질 출신의 젊은 지도자라는 것 이외에는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

파리아스는 처음 나선 공식 기자회견에서 “포항스틸러스가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노력했을지 모른다. 당시 포항은 ‘과거의 영광에 도취돼 의미 없는 경기를 하던 팀’ 정도 평가가 적당한 때였다. 하지만 파리아스는 빠르게 의문 부호를 지워갔다. 부임 첫해 A3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이듬해 리그 3위를 기록했고,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포항에 안겼다.

그가 잡은 건 결과뿐만 아니다. 내용적으로도 팬들을 매료시켰다. ‘파리아스 웨이’ 1항이 바로 ‘백 패스 금지’였다. 인천 임완섭 감독도 그 점을 인상 깊게 기억했다. “백 패스가 없는 공격 축구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 팬들을 즐겁게 했다. 포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지도자다.”

큰 경기에 강했다는 점도 파리아스가 가진 강점이다. 특히 그는 ‘토너먼트의 황제’로 불릴 만큼 녹아웃 스테이지에 강했다. 흔히들 기적이라 부를 정도다. 하지만 파리아스는 신에 의해 되지도 않을 일이 이뤄졌다는 식의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2007년 <포포투>에 그는 이유 있는 뒷심을 설명한 바 있다. “많은 팀들이 시즌 시작에 맞춰 몸 상태를 최고조에 맞추는 것으로 동계훈련을 진행한다. 문제는 시즌 중반이나 마지막까지 그 상태가 유지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계획을 다르게 세운다.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순위가 결정 나는 상황에서 최대한 좋은 상태로 경기할 수 있게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

세트피스는 파리아스 ‘계획 축구’의 정수다. 포항 세트피스 훈련을 지켜본 당시 한 취재진은 “집요할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울산 김도훈 감독이 “인상 깊은 일화가 있다. 파리아스 감독은 팀이 부족한 부분을 보이면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트피스 완성도가 부족하면 그날엔 세트피스만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식”이라며, 괜히 세트피스를 언급한 게 아니다. 최효진은 후에 “사실 연습할 때 짜증이 날 정도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에 너무나 똑같이 상황이 펼쳐진다. 그럼 완전히 몸에 익은, 반사적인 반응이 나오게 된다.”

파리아스의 집요함은 그라운드 안,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감독과 선수 사이 적당한 선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 문화와 선수 사생활을 존중했다. 스틸러스 황금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필연적으로.

팀 매니저가 기억하는 파리아스

파리아스 체제 마지막 3년 동안 팀 매니저로 함께한 포항스틸러스 홍보팀 신주현 팀장은 ‘일 잘하는 합리적인 상사’로 파리아스를 기억하고 있다.

“브라질인 특유의 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학구적이고 가정적이었다. 까탈스럽지도 않았다. 무리한 요구에 골치 아팠던 적? 없었다. 파리아스는 한 번 경험한 대회에 다시 도전했을 때 다 우승을 했다. 그게 좀 신기하다. 확실한 건 그가 상대에 대한 분석 이후 맞춤 전략을 잘 짰다는 점이다. 상대 잘한 것과 못한 것 15분, 우리 잘한 것과 못한 것 15분. 클립 영상을 달라고 했던 게 떠오른다. 내게 파리아스 감독이란 합리적인 지도자이자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는 클럽월드컵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팀을 떠나겠다는 발표를 했다. 다들 헤어짐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애틋함이 덜한 것처럼 말하는 게 그 탓일 거다. 냉정할 정도로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떠나버렸다. 잘나가는 다른 연인에게 가버린 느낌? 갑자기 ‘헤어지자’고… 지금 생각하니 혼자 섭섭함이 쌓인 것 같다. 그를 한 단어로 정리하긴 어렵다. 라커룸에선 욕을 굉장히 많이 하신 분이기도 했다.(웃음) 그런데 마지막 날 라커룸에 정적이 흘렀고, 굉장히 공기가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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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포포투> 6월호 중 주요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설문=조형애 이종현, 그래픽=황지영,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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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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