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조 콜, “모리뉴와 관계가 어땠냐면…”

기사작성 : 2019-12-0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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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이곳은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10Ten 탤런트’ 사무실. 평범한 화요일 아침이다. 몇백 미터 밖으로 마블 아치가 보이고, 에이전트들은 자신의 선수들에게 모닝콜 중이다. 평온한 풍경이다. <포포투>가 일을 벌이기 전까지는 그랬다.

잠시 후 ‘스타 고객’ 조 콜이 들어섰다. 사무실 가운데서 이리저리 카드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포포투>는 그에게 또 다른 마술사가 되어달라고 주문했다. 축구로 마법을 부렸던 현역 시절을 연출했다. 콜은 카드 묘기와 함께 모든 걸 보여줬다.

콜은 지난해 11월 은퇴했다. 미국 템파베이라우디스에서 보낸 세 시즌이 끝이었다. 지금 그는 지도자 생활로 새로운 카드를 꺼내보이는 중이다.

1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속마음을 공개했다. 언젠가 첼시나 웨스트햄, 혹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첼시 아카데미 지도자인 그는 꿈으로 향하는 사다리의 첫 번째 칸에 올랐다. 매 순간을 사랑하고 있다.

그는 <포포투>에 런던 억양으로 “지금 일에 몰두하고 있다”며 “새로운 직업이고 아직은 배우는 중이다. 실수도 있겠지만 더 배우고 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이 선수 시절 콜은 학습 속도가 빨랐다. 사실 그는 잉글랜드가 배출한 가장 흥미로운 십대 중 한 명이었다. 이제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그가 팬들의 질문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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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 잉글랜드 최고 유망주로 주목 받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조 버논, 노팅엄)

“좋은 시절이었다.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엄청난 기대감과 압박감이 있었지만, 그 덕에 발전했다. 10대 이전까지 경쟁적으로 뛰진 않았다. 축구만 했을 뿐이다. 열정과 애정이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순수하게 즐기곤 했다. 공으로 무슨 생각을 했겠나. ‘저 나무를 꺾을 수 있을까? 이 가로등을 때려볼까? 가게에 갔다 오는 길 내내 볼을 차는 게 가능할까?’ 가게까지는 꽤 멀었는데 말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만의 경기를 했다. 그렇게 축구에 ‘입덕’했다.”

2006월드컵 스웬전에서 중거리슛을 시도했을 때, 골이 될 줄 알았나? (핀 팔프리먼, 인스타그램)

“제대로 때렸다는 걸 알았다. 볼을 잘 차면 감이 온다. 골프공을 칠 때와 비슷하다. ‘오, 이거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첼시를 떠난 뒤 토트넘 이적 제의가 있었다고? (마크 그레인저, 페이스북)

“사실이다. 논리적으로는 런던에 남았어야 한다. 당시 토트넘 감독이 해리 레드냅이었다. 선택이 더 쉬운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웨스트햄과 첼시 선수였던 내가 토트넘에서 뛰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첼시에서의 이룬 모든 성취들이 퇴색할 것 같았다.”

리버풀로 이적했을 때 스티븐 제라드가 말했다. 리오넬 메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당신도 잘 할 수 있다고. 맞는 말인가? (요나 테일러, 인스타그램)

“스티비가 그렇게 말해준 건 영광이다. 메시는 최고의 선수다. 그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면 대단한 거지. 아마 내가 좋은 훈련을 받았다면 맞을 거다, 나도 모르겠다!(웃음)”

잉글랜드는 크로아티아전 패배로 유로2008 본선에 참가하지 못했다. 힘들었나? (수잔 클라크, 리즈)

“웨스트햄 강등과 함께 가장 아픈 기억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예선 내내 골키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골키퍼 모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스콧 카슨은 그 정도 압박감이 있는 경기들을 감당하기엔 어린 편이었다. 웸블리에서 패한 날 밤, 정말 괴로웠다.”

21세에 웨스트햄 주장 완장을 찼는데? (에밀리 프란첸, 그레이스)

“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장과 부주장 모두 부상이었다. 자랑이 아니라, 당시 팀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라운드 위에서는 책임감을 가졌고, 늘 공을 소유하려고 했다. 강등 전쟁을 펼칠 때는 다른 종류의 성격이 요구된다. 웨스트햄 같은 팀에서는 특히 그렇다. 기대와 현실이 매우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글렌 로더 감독에게는 내가 유일한 선택지였을 거다. 고참 선수들에게 주장직을 주고 싶었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2002-03시즌 웨스트햄이 ‘강등되기엔 너무 좋은 팀’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나? (스티븐 호턴, 이딩)

“클럽 운영진이 다소 안일했던 것 같다. 선수 영입에 실수가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만한 선수들은 13명 정도였다. 다른 선수들은 팀에 맞지 않았다. 두 달 간 이안 피어스가 전방에서 뛰어야 했다. 이안은 매우 훌륭한 수비수였는데 우릴 위해 전방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렇지만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필요했다. 저메인 디포는 당시 19세였고 파올로 디 카니오는 서른네 살이었다. 주전 공격수였던 프레디 카누테는 부상이었다. 공격에는 더 많은 지원이 필요했고, 수비는 좀 약했다.
강등은 축구 인생에서 바닥을 친 경험이었다.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최선을 다했지만 팀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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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햄 강등 당시 팀을 떠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나? (프랜시스 클라인, 턴브리지 웰스)

“그 순간 이적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그렇지만 클럽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고, 나는 가장 팔릴 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결국 이적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웨스트햄은 돈이 필요했고 나는 대표팀에 선발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프리미어리그에서 계속 뛰어야 했다.”

첼시에 합류했을 때 지안프랑코 졸라의 대체 자원으로 소개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프란체스코 모로, 칼리아리)

“그런 기대감을 경험한 적 있다는 게 도움이 됐다. 졸라는 스트라이커였고 나는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다. 우리가 좀 작고 드리블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비교가 됐던 것 같다. 첼시 이적 당시 나는 사실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아드리안 무투, 에르난 크레스포,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등이 모두 합류했기 때문이다.”

카를로 안첼로티와 조제 모리뉴, 당신의 선택은? (로리 카메론, 인스타그램)

“답변하기 힘든데… 각각 다른 유형이다. 두 분 다 훌륭한 감독이라는 전제 하에 일단 조제를 꼽을까 한다. 모리뉴와는 3년 반을 보냈는데 안첼로티와 함께한 시간은 1년이었으니까.”

모리뉴와 관계는 어땠나? (앤드류 터튼, 배터시)

“흔한 사제지간이었다. 감독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눴다. 나는 경기에 뛰고 싶었고,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그가 나를 택하든 그렇지 않든, 그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감독 역할을 했다. 감독이 선수들과 말다툼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더이상 대화도 하지 않는 시대다. 문자를 더 많이 한다. 어린 선수들 중에는 감독과 실제로 대화하는 일에 겁먹는 이들도 있을 거다. 나는 조제 감독의 방에서 질문을 꽤 많이 했다. 불만이 있을 때면 그의 방을 찾았다. 농담도 주고받았다. 완전히 평범한 관계였다.”

펠레가 당신에게 “브라질 선수 같은 기술”을 가졌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주앙 시우바, 리우 데 자네이루)

“(웃음) 엄청났지! 그가 경기를 보러 왔었다.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말을 들어 영광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도 첼시 훈련장에 왔었는데,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완전 ‘심쿵’이었다. 펠레도 내가 누군지 알았고 나를 좋은 선수로 평가로 해줬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환상적이었다. 레전드들이 나를 알고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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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뉴는 종종 당신에게 가혹했다. 당신에게서 최선을 끌어낸 걸까? (로니 그랜트, 버몬지)

“종종 그가 나를 거칠게 대할 때가 있었다. 2006년 풀럼전에서 나와 쇼니(라이트-필립스)를 25분 만에 뺀 적 있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우리가 패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큰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계획 안에서 이뤄진다. 그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리버풀전에서 골을 넣은 나는 공식적인 메시지(비난)를 받았다. 좀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지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늘 ‘내가 보여주겠어’라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 숨어버리는 선수들도 있는데 나는 늘 조제 감독이 원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결심했다.”

몇 달 전 모리뉴가 UEFA 출입금지 징계 당시 경기장에 있던 걸 들키지 않으려 세탁바구니 속에 숨어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때 첼시 선수들은 무슨 생각을 했나? (이안 메이들리, 옥쇼트)

“정말 재밌다고 생각했다!(웃음) 몇 년 간 입밖에 낼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은 그가 말하고 다닌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패닉에 빠진 감독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웨스트햄 시절 ‘보는 재미’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선수였다. 모리뉴는 자신의 계획에 맞게 당신을 바꿔놓은 것 같다. 그가 당신의 창의성을 떨어뜨린 건 아닐까? (히카르두 토마트리고, 페이스북)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성숙하게 경기하게 된다. 호날두의 최근 5년과 초기 5년을 비교해보라. 플레이 양상이 다르다. 또 다른 선수들을 보라. 아델 타랍 같은 선수는 어린 시절 나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선수로 성숙하지 못했다. 그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수는 성장해야 한다.”

당신이 16세일 때 맨유가 1000만 파운드에 영입하려 했다는 게 사실인가?(앨리슨 우달, 치들)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지만 맨유가 접촉했던 건 사실이다. 내가 웨스트햄을 택한 건 어린 선수에게 좀 더 안정적인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뛰고 있었고, 팀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FA 유스컵에서도 우승했다. 내 직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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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데이비드 베컴, 프랭크 램파드,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미드필드 왼쪽에 배치됐다. 대단한 선수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잉글랜드는 성적이 좋지 않았을까? (제이크 게이블, 인스타그램)

“월드컵에는 거품이 생긴다. 나는 우리가 진짜 우승할 줄 알았다. 전술적 선택이 나빴고 부상도 있었다. 웨인 루니가 발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이었고, 마이클 오언은 스웨덴전에서 무릎을 다쳤다. 시오 월콧은 17세였다. 출전하거나 임팩트를 남기기엔 너무 어렸다. 저메인 데포는 집에 있었고. 나는 8강 포르투갈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은 루니를 대신해 교체 출전했다. 답답했다. 경기에 들어가 라이트백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대표팀 경력이 실망스러워질 때가 있긴 하다.”

2008 챔피언스리그 결승 연장전에서 당신 대신 니콜라 아넬카가 교체출전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승부차기를 찰 예정이었나? (레베카 우즈, 엡섬)

“맞다. 하지만 페널티 경험이 많은 아넬카가 나왔다. 그때까지 나는 페널티를 찬 적이 없었다. 승부차기에 참가한 적도 없었다. 윙어는 항상 (승부차기)옵션에서 벗어난다. 120분을 뛰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승부차기는 악몽이었다. 소속팀 팀원 모두에게 졌다. 내가 그들 중 절반에게라도 이겼다면, 지금 이 자리에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 타이틀 두어 개는 갖고 나왔을 거다.”

첼시를 떠난 뒤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걸 보는 기분은 어땠나?(조니 데이비스, 워체스터)

“달콤쌉쌀했다. 팀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정말 기뻤지만 그곳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네댓 차례의 준결승과 한 번의 결승전 경험이 있지만, 좌절스러웠다. 그 시절 첼시는 분명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였다. 그 팀에서 뛸 때 우승했어야 했다. 하지만 승부차기가 있었고, 유령골이 있었고, 첫해에는 모나코를 상대로 전략을 잘못 짰다. 2006-07시즌 리버풀이 우리보다 두 계단 위에 있었던 때를 제외하면,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때마다 우리가 더 나은 팀이었다.”

리오 퍼디낸드는 당신이 경기 전 드레싱룸에서 공을 만질 때 무서웠다고 하더라. 왜?! (카일 노리스, 밀턴케인스)

“그냥 징크스일 뿐인데 너무 부풀려졌다!(웃음) 한 시즌 정도 미신같은 거였다. 누군지 이름을 댈 순 없지만 한 선수가 있다. 경기 전 식사시간에 꼭 감자 다섯 개를 먹는다. 배가 고프면 더 큰 감자를 찾는 데 시간을 썼다. 그 친구는 아마 감자 다섯 개를 먹은 뒤 좋은 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었을 거다.”

1999-2000시즌 웨스트햄에 리오 퍼디낸드와 프랭크 램파드가 모두 남았다면 진짜 리그 우승에 도전할 만한 팀이 되었을까? (존 스탁턴, 인스타그램)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선수들 모두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2003년이나 2004년 쯤엔 정말 좋은 팀이 될 수 있었을 거다. 진짜 강팀이었을 것 같다. “

FA컵 사우스엔드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선수 생활의 전환점이었을까?(브라이언 놀란, 바즐던)

“물론이다. 이후로 내 몸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하던 걸 할 수 없었다. 대신 지도자 생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사후 내가 더 잘 관리한다면, 인생의 후반전에 더 많은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간을 통해 많이 배웠다. 지도자 생활에도 반영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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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를 떠날 때 어떤 감정이었나? 첼시에서 최고의 순간은? 개인적으로는 2006년 맨유를 상대로 리그 우승을 안겨준 골이 좋았다! (제이미, 페이스북)

“나도 그 순간이 가장 좋다. 타이틀 방어에 결정적인 골을 넣었고, 가족과 함께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떠날 때는 비참했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부상 때문에 나의 시간들이 끝난 셈이었다. 한 팀에서 우승에 기여하는 톱 레벨 선수로 뛸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첼시는 나를 선발 선수로 보지 않았다. 돈 문제가 아니라 나를 보는 클럽의 시각 문제였다. 나는 선발로 뛰는 선수이고 싶었다. 돌아보면 클럽이 옳았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전히 내가 회복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금전적으로는 첼시의 제안도 리버풀이 제시한 것만큼이나 훌륭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떠나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첼시와 장기계약을 한 뒤 클럽과 소원해지는 건 원치 않았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랑받는 선수로서 나를 기억하고, 나 역시 그게 기뻤다. 나쁜 기억은 없다.”

리버풀에선 뭐가 잘못된 걸까? (레즈 호프 위클리, 페이스북)

“몸상태는 훨씬 좋았다. 감독들이 나를 좀 더 경기에 뛰게 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경기하기에 충분하다는 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도움도 좀 필요했다. ‘자, 들어가, 자신감을 갖고 다시 뛰는 거야’라고 생각해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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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과 교감이 없었다며, 리버풀과 계약한 건 실수였다고 말한 적 있는데?(딘 만리, 인스타그램)

“리버풀 구단주들 때문에 이적했는데 구단주가 바뀌었다. 새로운 구단주들이 내게 연봉 주기 꺼려한다는 잡음이 나왔다. 에이전트를 통해 나를 방출하고 싶어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새 클럽과 계약서에 사인한지 5분 만에 내보내고 싶어한다는 얘길 들으면, 바로 힘든 싸움을 마주하게 된다. 벤치에서 부스러기를 받아 먹는 거다. 이 경기 10분, 저 경기 15분, 그리고 별별 리그 컵 경기….
나는 리버풀에서 최선을 다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뛰었던 경기를 보면 내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다 몸상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4주 쉬고, 저기서 6주 쉬고, 그러다 몸상태가 괜찮아지고. 기복이었다. 내가 좀 더 좋은 관리를 받았다면 더 잘했을 것이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매체들의 관심이 성장을 방해하는 걸까? 당신은 폴 개스코인의 후계자로 불렸는데. (맷 워커, 페이스북)

“개스코인에 비견되는 게 좋았다. 그는 내 영웅 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경기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그를 닮고 싶었다. 어떤 선수들은 그런 관심을 즐기지만 다른 선수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내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를 지켜주는 절친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이 곁에 있던 건 행운이다. 그렇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탈선할 수도 있다. 초특급 유망주는 항상 나온다. 내가 등장하기 전에도, 후에도 ‘원더키즈’가 있었다. 몇몇은 엄청난 커리어를 쌓지만 또 몇몇은 방향을 잃고 가게에서 끝낸다. 주변 사람들과 좋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매일 릴까지 유로스타를 타고 다녔던 게 사실인가?(제임스 라이트, 길링엄)

“아니!(웃음)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왕복이 편했다. 유로스타로 한 시간 걸리니까 쉬는 날 저녁에 외출하거나 저녁식사하러 집에 갈 수 있었다. 첫딸을 막 얻었던 때라 잘 맞는 방식이었다. 릴에서 뛸 땐 좋았다. 그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했다. 이적시장 마감일 릴로 향하던 시간, 애스턴 빌라가 잉글랜드 복귀를 제안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결국 3년 뒤 빌라에서 뛰게 됐다.”

현역 시절 호흡이 가장 좋았던 선수는? (션 오케인, 인스타그램)

“릴 시절 에당 아자르. 모든 무기를 다 갖춘 선수였다. 더 높은 곳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FFT: 아자르는 당신이 매일 ‘첼시로 이적하라’고 했다던데…) 매일은 아니고 거의 매일 그랬다!(웃음) 그가 맨체스터에서 지내는 삶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를 위해선 첼시행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 가정적인 사람이다. 첼시는 유럽 우승팀이었고, 그만한 수준의 선수에게 맞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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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팀에서 뛸 때 가장 즐거웠나? (아서 코넬, 인스타그램)

“정말 답하기 어렵다. 첼시라고 말해야겠다. 웨스트햄은 늘 내 마음 속에 특별한 곳이다. 하지만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는… 그건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지는 거다. 첼시에서 뛴 시간은 정말 특별했다.”

지난해 말 아카데미 지도자로 다시 첼시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cfcedits, 인스타그램)

“그들이 내게 일자리를 제안했으니까! 배우기에 좋은 곳이다. 편하기도 하고. 2010년 내가 떠날 당시 나와 좋은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다. 회장 브루스 벅과는 항상 연락했다. 그들은 내가 돌아오길 원했다. 예전 팀 통틀어 나를 복귀시키는 데 관심을 보인 유일한 팀이었다. 어린 시절 웨스트햄과 계약했을 때처럼, 이곳이 새 출발하기에 적절한 장소라고 느꼈다.”

선수 생활이 끝난 방식에 만족하나? (간데스 크리산티요, 인스타그램)

“선수 생활 대부분은 만족한다. 그러다 문득 ‘~했더라면 좋았을 걸’ 같은 생각이 들겠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골을 넣고 우리가 혈투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더라면, 잉글랜드가 월드컵 결승에 올랐더라면’. 이젠 털어냈다.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다. (FFT: 사람들이 당신에게 잠재력을 완전히 틔우지 못했다고 말할 때 상처받나?) 아니다. 사람들 생각에 영향 받지 않는다. 내가 엄청난 관심에 부응하는 선수였다면, 내가 어떤 류의 선수가 되었을까. 잉글랜드는 월드컵에서 세 차례 우승했을 거고, 나는 매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거다! 과한 기대에는 거품이 끼기 마련이다. 잠재력은 의미가 없다. 경기장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꽤 많은 성취를 이뤘다. 그렇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더 많은 걸 하고 싶다.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서 몇 차례 우승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할 때가 있긴 하다. (과거가)지금 당장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아닌가!”


*** 조 콜 UP & DOWN ***
UP:1999 웨스트햄 스타로 FA 유스컵 결승 2경기 합산 9-0 승리를 이끌었다
DOWN: 2003웨스트햄에서 강등의 충격을 경험했다
UP: 2006 맨유전 득점. 첼시와 함께한 세 차례 우승 중 두 번째 타이틀을 가져왔다
DOWN: 2006 잉글랜드 황금세대가 월드컵 8강에서 탈락했다
UP: 2008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후 ‘첼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DOWN: 2013 안필드에서 불행한 3년을 보낸 후 리버풀을 떠났다

사진= 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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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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