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세리에A 황금기 ④호나우두 그리고 전설의 파르마

기사작성 : 2019-08-06 15:33

- 세리에A가 천하를 주름잡던 1990년대
- 인테르에 등장한 '일 페노메노'
- 세리에C에서 올라선 파르마: 그들보다 더 많은 유럽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린 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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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축구 세상의 주류는 늘 바뀐다. 1990년대에는 이탈리아가 챔피언이었다. 13개의 유럽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세계 이적료 신기록을 여섯 번이나 갈아치웠다. 발롱도르 수상자도 6명 배출했다. 무엇보다 아스프리야부터 지단까지 슈퍼스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겐 태어나기도 전의 역사지만 누군가에겐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있는 무대. 90년대 축구 세상을 지배했던 세리에A 그 시절을 추억한다.


# 세리에A가 축구를 지배하던 시절 연재 순서
①그들이 축구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② 만치니와 삼프도리아의 황금기
③ ‘슈퍼스타’ 바조와 위대한 밀란
④ 호나우두 등장과 전설의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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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테르 혁명과 호나우두의 등장

1997년 8월31일. 유리 조르카에프, 하비에르 사네티, 디에고 시메오네가 차례로 터널을 통과했다. 그다음 등장한 이는 모두가 보고 싶어했던, 호나우두였다.

호나우두는 30년 전 볼로냐에서 영입한 덴마크 공격수 해럴드 닐슨에 이어 인테르 소속으로 가장 비싼 몸값을 기록한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의 회장 조세프 루이스 누녜스는 이 브라질 선수가 클럽과 함께한 첫 시즌 47골을 넣자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 바람과 달리 호나우두는 캄프누에서 단 한 시즌을 지냈다.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관계에 금이 갔고, 인테르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호나우두와 바르셀로나의 계약서에 명시된 바이아웃 금액인 1950만 파운드를 내밀면서 영입에 성공했다. 동시에 레인저스도 관심을 보였었다. 훗날 호나우두 에이전트에 따르면, 레인저스는 호나우두를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에만 출전시킨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호나우두는 무난히 인테르 데뷔전을 치를 것 같았다. 상대가 승격팀인 브레시아였고, 또 홈 경기였다. 선발 출전한 호나우두는 크로스바를 강타한 프리킥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시아 소속으로 당시 십대였던 안드레아 피를로가 교체투입된 이후로 상황이 바뀌었다. 피를로는 전방의 다리오 휘브너에게 예리한 패스를 찔러 선제골을 만들었다.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두고 산시로에는 충격패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날 인테르 데뷔전을 치르는 신입생이었다. 호나우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우루과이 나시오날에서 이적한, 무명 알바로 레코바였다. 그는 그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30야드 부근에서 대포알과 같은 왼발 중거리포로 동점골을 만들더니 5분 뒤 비슷한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을 직접 성공시키며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네라주리(인테르 애칭)에 새로운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인테르는 불과 몇 달 전 UEFA컵 결승전에서 샬케04에 패했었다.

앞서 인테르는 1990년대에만 두 차례 UEFA컵을 수확했다. 1991년에는 독일 삼총사 로타어 마테우스, 안드레아스 브레메, 위르겐 클린스만을 앞세워 결승에서 로마를 무찔렀다. 1994년에는 다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잘츠부르크를 꺾고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해당 시즌, 야심차게 영입한 데니스 베르캄프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리그에선 1929년 이래 처음으로 강등을 당할 뻔하다가 1점차로 구사일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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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구단을 인수한 마시모 모라티는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700만 파운드를 들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미드필더 폴 인스를 영입했다. 그는 인테르에서 두 시즌간 13골을 넣으며 제 역할을 했다. 호나우두에 앞서 이반 사모라노도 데려왔다. 하지만 모라티가 영입한 선수 중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불행한 시간을 보냈다. 호지슨 감독이 그를 레프트윙으로 기용했기 때문이었다.

빈터는 “호나우두는 뛰어본 선수 중 단연 최고였다. ‘일 페노메노’(경이로운 존재)란 말이 딱 적당한 표현 같다. 득점력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뛰어났으니까”라고 말한다.

이들은 샬케에 UEFA컵 우승컵을 내줬으나 이듬해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라치오를 3-0으로 꺾고 우승했다. 호나우두는 이날 팀의 마지막 골을 넣었다.

호나우두는 이적 첫 시즌 무려 34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무릎에 이상 징후가 생긴 이후 인테르를 떠나기까지 이후 4시즌 동안 총 25골에 그쳤다. AC밀란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 바조는 볼로냐에서 33경기에 출전 23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8년 인테르에 합류한 뒤로는 부상 탓에 제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호나우두, 바조로 재미를 못 본 인테르는 1999년 다시 한 번 지갑을 열었다. 라치오 스트라이커 크리스티안 비에리를 영입하는데 3210만 파운드를 들였다. 또 다른 세계 이적료 신기록이었다. 놀랍게도 인테르는 비에리의 아홉 번째 클럽이었다. 그는 9시즌 동안 토리노, 피사, 라벤나, 베네치아, 아탈란타, 유벤투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라치오를 거쳤다. 1996-97시즌 유벤투스 소속으로 유일하게 스쿠데토를 커리어에 새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의 선수들인 비에리와 호나우두는 인테르 소속으로 세리에A를 가져가지 못했다. 인테르의 109년 역사를 통틀어 1990년대는 우승을 하지 못한 유일한 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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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호나우두는 “인테르 이적을 후회하지 않는다. 밀라노에서 좋은 기억이 많다. 내가 당한 부상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도, 저에게도 없다. 부상이 없었다면 우리가 더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 전설의 파르마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진은 모스크바에서 촬영됐다. 1999 UEFA 결승전이었고, 잔루이지 부폰, 릴리앙 튀랑, 파비오 칸나바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에르난 크레스포 등이 나란히 한 사진에 담겼다.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에 위치한 이들의 팀 파르마는 1990년대에만 무려 9시즌 연속 6위권에 들었다. 이전까지 세리에A를 밟아보지 못했던 팀이었다. 심지어 식품회사인 파말라트가 투자하기 전인 1986년에는 세리에C가 그들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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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브롤린과 골키퍼 클라우디오 타파렐(1990 월드컵의 브라질 주전 골키퍼)은 세리에A 승격 직후 입단한 첫 번째 스타들이었다. 타파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적 과정이 놀라웠다. 1990년 월드컵 16강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한 뒤 브라질로 돌아가고자 밀란 말펜사 경기장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다. 한 남성이 오더니 ‘이탈리아에서 뛸 생각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그렇긴 한데 어떻게?'라고 되물었다.”

“일주일 뒤 전화기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그 남성이 ‘아직도 이탈리아에서 뛸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고 질문했다. 그 순간 장난이 아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몇 주 뒤 파말라트의 대표이사가 직접 브라질로 날아와 당시 내 소속팀이던 인테르나치오날과 협상했고, 파르마로 가게 됐다.”

“도착하자마자 팀 동료가 내 사인을 요구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여긴 대체 뭐 하는 클럽이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스쿼드를 통틀어 세리에A 경력자가 1명뿐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어 했다.”

“첫 시즌 목표는 이탈리아에서 흔히 말하는 ‘살베자(Salvezza; 구원)’였다. 강등만 피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는 공식 훈련장도 없어서 공원에서 훈련할 정도로 열악했다. 도시 전체가 우리 훈련장이었던 셈이다.”

“지역민들과 유대관계가 무척이나 끈끈했다. 파르마에선 모두가 가족이었다. 선수 중 대다수는 세리에A 경험이 없었으나, 톱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만 한 실력이란 점을 증명해갔다. 구단은 브롤린과 같이 뛰어난 선수들도 영입하면서 팀 구색을 갖췄다.”

네비오 스칼라 감독은 승격 두 번째 시즌에 지알로블루(파르마 애칭)의 코파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다. 1년 뒤에는 스타 공격수 티노 아스프리야가 자동차 사고로 인해 앤트워프와 결승전에 결장하는 불운 속에서도 컵위너스컵을 따냈다. 2년 뒤인 1995년, 팀은 또 한 번 유럽클럽대항전 트로피를 챙겼다. 디노 바조의 결승골에 힘입어 유벤투스를 제압하고 UEFA컵에서 우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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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모스크바에서 마르세유가 파르마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였다. 결과는 예상대로 파르마의 3-0 승리였다. 마르세유가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르마는 1990년대에만 세 차례 유럽클럽대항전에서 우승한 저력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2000년대에 들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파말라트의 재정난에 구단이 직격탄을 맞았다. 급기야 구단은 2015년 파산하면서 세리에D로 강등됐다.

타파렐은 1993년 레지아로 이적해 파르마의 영광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 “일련의 일들을 보며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하루빨리 팀이 정상화가 되길 바란다. 파르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랑스러운 팀 그리고 도시다.”

# 영광의 종말: 유벤투스에서 레알마드리드로

유벤투스는 1998년 통산 세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을 쫓았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들을 외면하고 레알마드리드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결승에서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슈팅이 수비벽에 맞고 굴절돼 프레드락 미야토비치 앞으로 향했다. 미야토비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날 유일한 골을 터뜨렸다. 이 결승전 결과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라리가가 세리에A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것이다.

경기 전으로 돌아가보면 많은 이가 유벤투스의 우승 가능성을 더 높게 점쳤다. 3회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유벤투스에는 델 피에로, 에드가 다비즈 그리고 위대한 지네딘 지단이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지단은 유벤투스에 입단하자마자 2년 연속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세 번의 유럽대회 결승전에 연달아 올랐으나 한 번도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1996년 UEFA컵 결승에선 보르도에 패하면서 고개를 떨궜고, 1997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선 도르트문트에 1-3으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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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지단을 큰 경기에 약한 겁쟁이라고 비아냥댔다. 하지만 지단은 두 달 전, 1998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프랑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연말에는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겁쟁이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 아닌가? 지단은 <포포투>와 인터뷰에서 “유벤투스는 국제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도약대와 같았다”고 회고한 적 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의 영광을 유벤투스가 아닌 레알 마드리드 시절 맞이했다. 1998년 그날 밤, 레알은 유벤투스를 누르고 32년만에 새로운 유러피언컵을 진열장에 세웠다. 레알에 의해 세리에A의 유러피언컵 연속 결승 진출 기록은 7경기에서 마감했다.

1999년 파르마의 UEFA컵 우승과 라치오의 컵위너스컵 우승을 끝으로 이탈리아 클럽 축구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한 뒤로 스페인 팀들이 18번 우승할 때, 같은 기간 동안 이탈리아 클럽들은 3회 우승에 그쳤다.

빈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리에A 리그의 수준이 저하됐다. 프리미어리그가 가장 거대한 리그로 변모했고, 분데스리가와 라리가도 날로 성장했다. 프랑스 리그도 몇 걸음 전진했다”라고 말한다.

‘빅머니’는 더 이상 이탈리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에는 엄청난 액수의 TV 중계권료가 유입됐고, 스페인에선 레알의 갈락티코 정책이 등장했다. 세리에A의 정상급 선수들은 어디론가 떠났고 평균 관중은 급감했다. 2006-07시즌 불명예스러운 승부조작 스캔들(칼치오폴리)로 곤욕을 치른 뒤 평균 관중수가 2만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기록과 기억은 남는 법이라고 했다. 1990년대의 세리에A는 고작 10년 동안 13개의 유럽대회 트로피, 6번의 세계 최대 이적료, 6명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란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때 그 시절, 세계 축구를 지배한 건 분명 세리에A였다.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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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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