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세리에A 황금기 ③‘슈퍼스타’ 바조와 위대한 밀란

기사작성 : 2019-08-06 15:32

- 세리에A가 천하를 주름잡던 1990년대
- 로베르토 바조의 희비쌍곡선
- 무패로 스쿠데토 들어올린 AC밀란

본문


[포포투=Chris Flanagan]

축구 세상의 주류는 늘 바뀐다. 1990년대에는 이탈리아가 챔피언이었다. 13개의 유럽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세계 이적료 신기록을 여섯 번이나 갈아치웠다. 발롱도르 수상자도 6명 배출했다. 무엇보다 아스프리야부터 지단까지 슈퍼스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겐 태어나기도 전의 역사지만 누군가에겐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있는 무대. 90년대 축구 세상을 지배했던 세리에A 그 시절을 추억한다.


# 세리에A가 축구를 지배하던 시절 연재 순서
①그들이 축구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② 만치니와 삼프도리아의 황금기
③ ‘슈퍼스타’ 바조와 위대한 밀란
④ 호나우두 등장과 전설의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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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토 바조의 희비쌍곡선

로베르토 바조는 페널티 스팟에 놓인 공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말총머리를 한 그는 그러나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불과 3년 전, 1994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트라우마일까? 또 다른 드라마가 탄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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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조가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 처음으로 피오렌티나로 돌아온 날이었다. 피렌체 시내에선 이적에 격분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켜 50여 명이 다쳤다. 사실 바조도 라비올라(피오렌티나 애칭)를 등진 채 떠나고 싶었는지 확실치 않다. 유벤투스 입단식에서 클럽 스카프 착용을 거부한 걸 보면 그렇다.

바조는 유벤투스의 페널티키커였지만, 옛 팀의 골문에 공을 찔러 넣고 싶지 않아 했다. 유벤투스 동료들이 설득했으나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끝내 키커가 루이지 데 아고스티니로 교체됐다. 그는 실축했고 팀은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바조는 페널티킥을 거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체됐다. 그는 관중석에서 날아든 피오렌티나 스카프를 품에 안은 채 라커룸으로 향해 논란을 야기했다.

바조는 영원한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모습은 일부일 뿐이다. 바조는 1990년대 세리에A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에서만 머물면서 세계 이적료를 경신하고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호나우두는 1997년 이적료 신기록을 갈아치우며(1950만 파운드) 인테르에 입단해 연말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상반기에 바르셀로나에서 선보인 활약이 발롱도르 수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단 점에서 바조와는 또 달랐다.

바조의 ‘경이적인 해’는 1993년이었다. 유벤투스 동료들과 함께 그의 경력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유럽클럽대항전 우승컵인 UEFA컵을 차지했다. 1993년 한 해에만 39골을 쏘아올렸다.

유벤투스 레전드인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는 “바조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위에선 위대한 챔피언이었다. 발 기술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기술을 발휘할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바조는 경력을 통틀어 두 차례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첫 번째 트로피는 1995년 유벤투스와 함께 들었다. 해당 시즌 큰 부상으로 5개월 가까이 결장했던 그는 올드레이디(유벤투스 애칭)가 우승을 확정한 파르마전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에 이바지했다.

1995년 스쿠데토는 약관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첫 트로피이기도 했다. 과거 <포포투> 인터뷰에서 바조는 “델 피에로는 위대한 선수가 될 모든 자질을 지녔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라바넬리는 “1994-95시즌 우린 세 명의 공격수를 전방에 내세웠다. 비알리, 나, 그리고 바조(또는 델 피에로)였다. 마르셀로 리피 감독은 좋은 리딩 능력을 보였고, 선수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요령을 알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우리를 경기장 한가운데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유벤투스는 한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구성원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유벤투스는 팀 단합력이 강한 팀이었다. 피치 위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안젤로 페루치, 파울로 소사, 디디에 데샹, 치로 페라라, 알레시오 타키나르디, 안토니오 콘테 등 정상급 선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1월, 파르마를 3-1로 꺾어 순위를 역전했다. 그날 나는 선수 경력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골을 터뜨렸다. 비알리가 크로스를 띄웠고, 낮게 날아온 그 공을 다이빙 헤더로 득점했다. 굉장했다. 우승 여부가 걸린 파르마와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너무 긴장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행히 그날은 아름다운 일요일, 유벤투스의 일요일이 됐다. 난 2골을 넣었고 팀은 4-0으로 승리했다. 그날 밤 움베르토 아녤리 명예회장의 집에서 축승연이 열렸다.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벤투스는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번갈아 흘렸다. 1993-94시즌 27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장래가 밝던 23세 레프트백 안드레나 포르투나토가 우승 몇 주 전 운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백혈병으로 투병해왔다. 라바넬리는 “유벤투스에서 이룬 모든 업적을 포르투나토에게 바친다”라고 말했다.

포르투나토에게 바쳐진 트로피 중에는 1996년 수확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있다. 유벤투스는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약스를 제치고 우승했다. 값진 선제골을 넣으며 팀 우승을 이끈 라바넬리는 경기 전 충격적으로 미들즈브러 이적이 결정된 상태였다. “유벤투스가 이미 계약을 맺었다. 난 아무것도 몰랐다. 아주 불쾌했으나 에이전트와 전화 통화를 한 뒤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 위대한 밀란

바조는 라바넬리보다 1년 먼저 팀을 떠났다. 유벤투스가 임금의 절반을 삭감하겠다고 요구하던 그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밀란 회장이 이적료 680만 파운드를 내세워 그를 낚아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블랙번 로버스도 관심을 보였지만, 밀란이 최종 승리했다. 바조는 새로운 클럽에서 10골을 넣으며 1995-96시즌 스쿠데토 달성에 기여했다. 10골 중에는 우승을 결정한 피오렌티나전 페널티킥도 있었다.

바조와 발롱도르 수상자 조지 웨아가 이끄는 밀란의 공격진은 활력이 넘쳤다. 1990년대 초반 밀란의 무패 우승(1991-92)을 이끈 네덜란드 삼총사 판 바스턴, 굴리트, 레이카르트에 견줄 만 했다. 당시 밀란은 1991년 5월부터 1993년 3월까지 리그에서 58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내달리며 ‘무적 밀란’으로 불리었다. 그 우승을 통해 코치 경험이라곤 밀란 19세 이하팀을 맡았던 것이 전부였던 파비오 카펠로가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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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밀란에 유러피언컵 우승을 안긴 아리고 사키 감독은 1991년 여름 이탈리아 대표팀 수장이라는 중책을 맡기 위해 떠났다. 압박과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구하던 사키의 색깔은 카펠로 체제에서 서서히 옅어져 갔다.

이탈리아 레전드 프랑코 바레시는 “사키는 우리 정신력을 개조해 팀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다만 조금 과한 면은 있었다. 선수들의 아주 작은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라고 회상한다.

“우린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했고, 카펠로 감독은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밀란은 이전까지 모든 대회에서 우승해 본 클럽이었고, 카펠로 감독은 성인팀 벤치에 앉아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부임 초창기 불신하는 분위기가 다소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베를루스코니의 선택이 옳았다. 카펠로 감독은 몇몇 규칙을 세우긴 했지만,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시즌에 임하고, 또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포포투> 인터뷰에서 루드 굴리트는 “베를루스코니는 당신이 꿈꿔 봄직한 그런 ‘회장님’이었다. 빡빡한 일정 와중에도 매주 경기장을 찾았다. 상황이 좋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한결 같았다. 그는 팀의 성공을 바랐고, 또 밀란 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플레이하길 원했다.”

훗날 알려진 것처럼, 22개월 동안 무패 질주를 하면서 베를루스코니는 두 가지 개인적인 바람을 모두 이뤘다. 바레시는 “당시 무패 질주는 선수들의 믿음을 키우는가 하면, 누구도 우릴 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때때로 상대 선수들은 우리팀 골라인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가 레이카르트의 미드필더 파트너로 합류했고, 우리에겐 굴리트라는 비범한 선수가 있었다. 판 바스턴은 카펠로의 첫 시즌에 득점력을 폭발하며 25골을 넣었다. 발목 부상이 없었다면 더 많은 득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를 잃은 건 대단히 큰 손실이었다.”

1992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판 바스턴은 부상으로 커리어를 조기에 마감했다. 굴리트와 레이카르트는 나란히 팀을 떠났고, 장-피에르 파팽은 이적료 신기록을 경신(1000만 파운드)하며 마르세유로 이적했다. 밀란이 파팽 이적료보다 많은 1300만 파운드를 들여 토리노에서 영입한 지안루이기 렌티니는 1993년 8월 자신이 탄 포르쉐가 배수로로 추락한 뒤 불까지 붙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두개골 골절상을 입은 그는 시즌 말미에 그라운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예전의 모습을 재현하지 못했다.

렌티니 사례처럼 잘 풀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카펠로는 1993-94시즌 34경기에서 고작 36골을 넣고도 리그 3연패에 성공했다.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마우로 타소티 그리고 필리포 갈리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은 시즌을 통틀어 15골만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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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시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에게 빈틈은 없었다. 카펠로는 상대해야 할 팀에 따라 경기 준비를 달리 했다. 상대팀 영상을 분석한 뒤 경기에 최적화된 전술을 꾸렸다. 수비 대형을 유지하는데 집중한 사키와 달리 카펠로는 상대 공격수들을 대인마크하길 바랐다.”

“우리 중 대다수는 영원할 것처럼 오랜 기간 함께 뛰었다. 자연스럽게 진한 우정을 나눴다. 서로에 대한 존중심은 넘쳤다. 타소티, 갈리, 말디니는 경기 전 코카콜라, 폴라세 미네랄(비타민), 설탕 섞은 칵테일을 나눠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들에겐 긴장을 푸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었다.”

선수들의 스트레스를 대폭 줄여준 팀 운영 방식은 1994년 유러피언컵 결승전 전까지 제 효과를 냈다. 밀란은 이날 바르셀로나에 충격적인 0-4 대패를 당했다. 이 경기는 곪았던 문제점이 터지는 계기가 됐다.

카펠로는 밀란에 머문 5시즌 중 4시즌 동안 이탈리아를 제패했다. 그가 1995-96시즌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뒤, 밀란의 상황은 점차 안 좋게 흘러갔다. 시즌이 끝나면 바레시도 은퇴를 할 예정이었다.

밀란은 일단 기억에 남을 만한 개막전으로 새 시즌의 문을 열었다. 베로나와 홈경기에서 웨아가 자기 진영 페널티박스부터 상대 진영까지 단독 돌파를 한 뒤 득점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오스카 타바레스는 카펠로의 빈자리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즌 도중 사키가 돌아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디펜딩챔피언은 리그를 11위로 마쳤다. 베를루스코니는 1997-98시즌 지휘봉을 다시 카펠로에게 맡겼다. 하지만 해당 시즌 밀란은 이전 시즌보다 고작 한 계단 오른 10위에 머물렀다.

새 얼굴인 우디네세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자케로니의 뒤를 이어 독일 공격수 올리버 비어호프가 산 시로(밀란 홈구장)에 입성했다. 그는 이적 첫 시즌 19골을 낚으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세리에A 깜짝 우승을 이끌었다.

말디니는 “아마 밀란 선수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적인 면을 보자면 다른 팀들에 비해 더 낫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결정적으로 우승할 만한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 4편에 계속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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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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