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세리에A 황금기 ①그들이 축구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기사작성 : 2019-08-06 15:30

- 세리에A가 천하를 주름잡던 1990년대
- 세리에A가 대세였던 이유는?
- 잉글랜드 슈퍼스타 개스코인이 소개한 새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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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축구 세상의 주류는 늘 바뀐다. 1990년대에는 이탈리아가 챔피언이었다. 13개의 유럽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세계 이적료 신기록을 여섯 번이나 갈아치웠다. 발롱도르 수상자도 6명 배출했다. 무엇보다 아스프리야부터 지단까지 슈퍼스타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겐 태어나기도 전의 역사지만 누군가에겐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살아있는 무대. 90년대 축구 세상을 지배했던 세리에A 그 시절을 추억한다.


# 세리에A가 축구를 지배하던 시절 연재 순서
①그들이 축구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② 만치니와 삼프도리아의 황금기
③ ‘슈퍼스타’ 바조와 위대한 밀란
④ 호나우두 등장과 전설의 파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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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주장 피에트로 판나는 스타디오 마르칸토니오 벤테고디 내부 복도를 걷던 중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진원지는 원정팀 AC밀란의 라커룸이었다. 아리고 사키가 이끌던 바로 그 팀.

한 달 뒤, 밀란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벤피카를 제치고 유러피언컵(UEFA챔피언스리그 전신)을 연패하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럽의 반열에 올랐다. 그로부터 28년 뒤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첫 3연패를 달성한 레알마드리드 정도가 ‘위대한 밀란’의 위상과 비교되려나.

1990년 밀란과 더불어 이탈리아 클럽들도 날아올랐다. 국가차원에서 1990 이탈리아월드컵 개최에 심혈을 기울이던 그때, 삼프도리아는 지안루카 비알리의 멀티골에 힘입어 안더레흐트를 무찌르고 유러피언컵 위너스컵을 들었다. UEFA컵(유로파리그 전신) 결승전에선 유벤투스가 같은 이탈리아팀인 피오렌티나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했다. 10년 가까이 지속한 세리에A의 황금기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초호화 멤버 구성

세리에A가 어떻게 ‘대세 리그’로 탈바꿈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1989-90시즌부터 살펴야 한다. 밀란 맞대결에서 판나가 들었던 울음소리는 흔히 말하는 기쁨의 눈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쿠데토를 놓친 절망이었다.

밀란은 전통적으로 베로나 원정을 꺼렸다. 1973년 최종전에서 3-5로 패하면서 리그 우승을 놓쳤다. 1990년은 그 속편 같은 느낌이었다. 밀란은 두 경기를 남겨두고 디에고 마라도나의 나폴리와 승점이 같았다. 여전히 로소네리(밀란 애칭)는 리그 선두였지만, 나폴리가 아탈란타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순위가 뒤바뀌었다. 사실 나폴리와 아탈란타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그런데 경기 중 나폴리의 브라질 미드필더 알레망이 아탈란타 관중이 던진 동전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틀 뒤 이탈리아축구협회가 나폴리의 2-0 승리를 선언했다.

밀란은 베로나에서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강등권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던 베로나에 동점골을 허용했다. 심적으로 쫓기는 상황에서 밀란 선수단을 분노케 하는 심판 판정도 나왔다. 주심 로사리오 로 벨로에 의한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퇴장이 대표적이다(훗날 주심은 레이카르트가 자신에게 침을 뱉었다고 말했다). 몇 달 전, 네덜란드 출신 레이카르트는 월드컵 무대에서 서독의 루디 푈러에게 침을 뱉은 적이 있었다.

다시 베로나로 돌아와, 마르코 판 바스턴이 짜증난 표정으로 유니폼을 찢고는 레이카르트의 뒤를 따랐다. 사키 감독도 퇴장한 마당에 수비수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는 베로나의 결승골 상황에서 선심에게 격하게 항의하다 세 번째 퇴장자가 되는 불상사를 당했다.

한편 나폴리는 마지막 2경기를 승리로 가져가면서 통산 두 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불과 4년 전 마라도나는 파르테노페이(나폴리 애칭)에 역사상 첫 세리에A 타이틀을 안겨준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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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입장에선 아쉽게도 해당시즌을 끝으로 마라도나의 영광시대가 막을 내렸다. 마라도나는 1991년 3월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와 15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로 산 파올로(나폴리 홈구장)에서 마라도나를 다신 볼 수 없었다.

마라도나의 마약 복용 사건은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의 명성에 흠집을 내지 못했다. 세리에A는 단 한 명의 스타에 의존하는 그런 리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스타들이 다양한 클럽에 퍼져있었다. 발롱도르 수상자 로타어 마테우스는 인테르나치오날레, 당시 세계 최고액 선수인 로베르토 바조는 유벤투스 소속이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통해 정상급 선수를 영입하는 리그란 이미지가 강했다. 1990년 바조가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기 전, 13차례 세계 이적료 신기록 중 11번을 세리에A 클럽들이 세웠다. 1985년 유럽축구연맹(UEFA)이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클럽대항전 출전 정지령을 내린 영향도 있었다. 잉글랜드야 어떻게 되든 이탈리아는 1990년대에 벌어진 30차례 유럽클럽대항전 중 25번의 결승전에 출전해 13번이나 우승했다.

90년대 라치오와 인테르에서 활약했고 네덜란드 A매치 84경기 출전을 기록한 아론 빈터가 <포포투>와 마주앉았다. “90년대 세리에A는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최고의 리그였다. 지금 스페인이 대세라면 당시에는 이탈리아였다. 난 세리에A 발을 딛자마자 리그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쉽게 이기는 경기가 없었다. 어딜 가나 세계 최고 선수들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 잉글랜드 스타의 라치오행, 세리에A 반향

잉글랜드 슈퍼스타 폴 개스코인도 세리에A의 일원이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그는 나폴리, 유벤투스, AS로마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 중 라치오를 낙점했다. 1991년 토트넘 홋스퍼를 떠나 라치오 이적에 합의한 이유에 대해 그는 ‘송어 양식장’ 때문이라는 유명한 농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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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FA컵 결승전에서 무릎을 다쳐 이적이 지연되었다. 가뜩이나 재협상을 통해 이적료도 850만 파운드에서 550만 파운드로 급감한 상황에서 개스코인은 재활 기간 중 뉴캐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 이 사태를 계기로 개스코인과 로마로 함께 갈 예정이던 전 뉴캐슬유나이티드 동료이자 절친인 글렌 뢰더는 자신의 이주 계획을 취소했다. 이에 화가 난 개스코인은 그날 밤 또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이적은 1992년 5월이 돼서야 성사됐다. 주급은 당시로서는 억 소리 나는 2만2000 파운드였다. 구단은 친절하게도 개스코인에게 두 명의 경호원도 붙여줬다. 한번은 개스코인이 경호원 중 한 명을 강도로 오인해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의 라치오 데뷔전 상대는 제노아였다. 잉글랜드에서 세리에A가 최초로 생중계되었다. 지금껏 유럽클럽대항전에서만 이탈리아 축구를 지켜보던 잉글랜드 팬들에게 세리에A는 전혀 새로운 세계처럼 여겨졌다.
라치오는 제노아와 1-1로 비겼고, 그다음 경기에서 파르마를 5-2로 대파했다. 개스코인의 눈은 산시로에서 열릴 AC밀란전으로 향했다. 개스코인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주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경기 10분까지 괜찮았지만, 이후 우리는 맥없이 무너졌다”라고 회상한다. 일주일 전 피오렌티나를 7-3으로 제압한 밀란 앞에서 라치오는 3-5으로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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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스코인은 로마 더비에서 막판 동점골에 관여해 라치오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말총머리도 인기 요소 중 하나였다. 비안코첼레스티(라치오 애칭) 동료들도 그를 따랐다. 하지만 악동 기질은 어딜 가지 않았다. 경호원을 설득해 오랜 벗 지미 가드너와 함께 로마은행 금고에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는 순전히 재미 삼아 5000만 파운드 상당의 돈더미 위에 앉아 놀았다. 한번은 직접 빗자루로 때려잡은 뱀을 훈련장에 가져가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라치오 전 공격수 베페 시뇨리가 웃으면서 말한다. “무슨 짓이든 할 놈이었다. 팀 숙소 로비에 벌거벗고 내려온 적이 있다. 원정길 버스 안에서도 같은 짓을 했고. 한번은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날 때였는데, 순식간에 옷을 다 벗고 디노 조프 감독 옆에 앉았다!”

“훈련을 마치고 퇴근할 때에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차량 문짝의 손잡이가 젖어있고, 그것이 물이 아닌 것 같다면, 개스코인이 다녀갔단 얘기였으니까.”

# 라치오의 개스코인은…

빈터도 개스코인의 장난질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입단 첫날로 기억한다. 호텔 방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라. 문을 열었더니 개스코인이 반라 상태로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쟁반 위에는 웰컴 샴페인이 올려져 있었다.”

“같이 지내면서 그와 좋은 기억이 정말 많다. 때때로 네덜란드에서 친구가 놀러 오곤 했는데, 그들도 개스코인을 정말 좋아했다. 개스코인은 그들에게 다음 경기에 너희들을 위해 골을 넣고, 골대에 매달리겠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개스코인은 비행을 좋아하지 않아 원정길에 나서기 전 코냑을 먹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코올 양이 점점 늘었다. 이런 점을 떠나 개스코인은 내게 있어 좋은 친구였다.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건강이 악화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개스코인과 함께 한 첫 시즌 라치오는 리그 5위를 달성해 16년 만에 유럽클럽대항전 진출권을 확보했다. 불과 1980년대 후반까지 세리에B에 머물던 라치오는 이 시즌을 시작으로 5시즌 연속 라이벌 로마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로마에 가세한 뒤에야 전세가 역전됐다.

1992-93시즌 세리에A 득점왕도 라치오에서 나왔다. 시즌 전 포지아에서 이적한 시뇨리가 26골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1993-94시즌과 1995-96시즌에도 라치오 소속으로 득점상을 받았다. 1995년 파르마로 이적할 뻔했으나 수천 명의 라치오 팬들이 길거리로 나와 이적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본 뒤 팀에 잔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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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는 “운 좋게도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들은 나의 파르마 이적을 반대했다”라고 회상한다. “라치오에서 죽어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세 차례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것도 자랑스럽지만, 라치오에 100골 이상을 안겨서 뿌듯하다. 나는 전방에서 칼-하인츠 리들레와 호흡을 맞췄고 이후에는 피에를루이지 카시라기, 알렌 복시치와 함께 했다. 그들이 공간을 만들고, 수비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득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뇨리는 1990년대를 통틀어 세리에A에서 최다 득점자였다. 훗날 피렌체에 동상이 건립될 정도로 슈퍼스타였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보다 5골이 많은 141골을 넣었다. 공교롭게도 둘은 해당 기간 리그 타이틀을 손에 쥐지 못했다. 바티스투타는 로마 소속으로 2000-01시즌 우승의 꿈을 이뤘지만, 놀랍게도 이탈리아 대표로 A매치 28경기에 출전한 시뇨리는 트로피 하나 없이 은퇴해야 했다.

개스코인은 라치오에서 지낸 3년간 47경기 출전에 그쳤다. 알려지지 않은 부상, 훈련 중 알레산드로 네스타와의 충돌로 입은 다리 골절상, 그리고 과체중에 제동이 걸렸다. 1995년 스코틀랜드 레인저스로 이적하기 전, 개스코인은 마지막으로 라치오 훈련장을 찾았다. 할리 데이비슨 위에서 시가를 입에 문 채였다.

-> 2편에 계속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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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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