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story] 루저에서 영웅, 사우스게이트의 ‘인생 역전’

기사작성 : 2019-03-26 16:22

- 강등을 막지 못한 감독에서
- 조국의 역사를 쓰는 감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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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선수 시절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57경기나 뛰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베컴, 앨런 시어러 등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가려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크리스탈 팰리스, 애스턴 빌라, 미들즈브러와 같은 중, 하위권에서 뛰며 이렇다 할 우승 경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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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우승은커녕 선두 경쟁을 해본 적도 없다. 심지어 2008-09시즌에는 강등을 경험했다.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서 유망주 육성에 재능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A대표팀 감독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보였다. 2016년 비리에 연루되어 삼사자 군단을 떠난 샘 앨러다이스 감독 대신 A대표팀 지휘봉을 잡자 팬들은 “대표팀은 이미 포기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그럴 만했다. 감독 사우스게이트가 보여준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지난여름 28년 만에 월드컵 최고 성적(4위)을 기록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에서는 스페인, 크로아티아를 꺾고 조 1위를 차지했다.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한 ‘루저’는 어느덧 조국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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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감독 데뷔
2006년 여름, 사우스게이트는 36세 나이로 미들즈브러의 감독에 ‘깜짝’ 선임되었다. 당시 팀 동료였던 데이비드 휘터는 “사우스게이트가 감독이 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쭉 주장이었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선배였다”고 말하면서 “열여섯 살 때, 체력단련실에서 내가 실수를 저질렀는데, 사우스게이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라커룸에서도 조용히 말한다. 선수단 통솔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침착하고 팀을 먼저 생각했다. 그만의 아우라가 있어서 다들 딴짓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갑자기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니 좀 이상했다”고 덧붙였다.

역시나 쉽지 않았다. 부임 첫 시즌을 14위로 마쳤다. 직전 시즌과 비교해 두 단계 올랐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두 번째 시즌은 13위였다. 그러나 문제는 순위가 아니었다. 사우스게이트는 선수 보는 눈이 좋지 않았다. 1250만 파운드로 영입한 아폰스 알베스는 실패했다. 미도는 토트넘 시절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훗날 미도는 사우스게이트와 베테랑 선수들의 관계에 작은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선수 모두 사우스게이트를 좋아하면서도 ‘초짜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는 쉽게 알만큼 선수들은 영리하다. 가끔 경기 도중 감독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팀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감독 본인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운도 나빴다. 회장이 예산을 줄이려고 야쿠부나 마크 비두카 같은 스타들을 팔았다. 지도자 경험이 없는 어린 감독이 빠듯한 예산으로 팀을 꾸려야 했다. 불공평한 상황이었다. 그 경험에서 많이 배웠을 거로 생각한다.”

2008-09시즌 초반 미들즈브러는 토트넘과 스토크를 연파하고 리버풀에 패했다. 당시 사우스게이트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이후 미들즈브러는 빈공에 시달렸다. 14경기 연속 무승으로 강등권에 떨어져 시즌이 끝날 때까지 회복하지 못했다. 총 득점이 28골에 그쳤고, 1부 리그의 영예는 11년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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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순간
챔피언십(2부 리그) 출발은 좋았다. 개막 7경기에서 5승을 거뒀다. 하지만 9월 중순 홈에서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에 0-5로 대패했다. 다음 2경기도 졌다. 홈에서 내리 3패를 당하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리그 선두와 1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4위 상태에서 더비 카운티에 2-0 승리하고 나서 사우스게이트가 뜬금없이 경질되었다. 휘터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경질되었다는 소식에 다들 놀랐다. 더비와 맞대결이 끝나고 선수들 몇몇이 자축 모임을 가졌는데, 감독이 전화를 걸어 자기가 경질되었다고 했다. 리더인 나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충격을 받아 입을 뗄 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새 직장을 찾아야 했다. 사우스게이트는 자신이 3년 반의 지도자 경력, UEFA 자격증을 지닌 ‘준비된 구직자’로 믿었다. 하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감독 자리가 난 챔피언십 구단에 이력서를 보냈으나 회신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사우스게이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행정가가 되기 위한 장기적 포석으로 잉글랜드축구협회의 엘리트 육성 책임자 업무를 맡았다. 뛰어난 업무 성과 덕분에 협회의 테크니컬디렉터 후보 1순위가 되었다. 그러나 사우스게이트는 지도자 경력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협회를 떠났다. 2013년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연결되었다. 면접 내용도 좋았지만, 셰필드는 데이비드 위어를 선택했다. 사우스게이트는 지인을 통해 탈락 이유를 알게 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인성이 너무 좋아 감독으로 부적격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자녀들의 등굣길에서 다른 학부모들에게 “나더러 뭐 어쩌라고? 아이들 데려다주면서 소리라도 쳐야 하는 건가?’라고 불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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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님’이 아닌 ‘가레스’
2013년부터 잉글랜드 U-21 대표팀을 맡은 사우스게이트의 성적은 역시나 신통치 않았다. 2015년 UEFA U-21 챔피언십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했다. 여전히 수준 높은 팀의 감독이 될 준비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희망 징조는 있었다. 감독의 팀 관리와 점유 축구에 어린 선수들이 화답했다. 당시 골키퍼였던 조나단 본드는 “선수들이 ‘감독님’이 아닌 ‘가레스’라고 불렀다. 모두 감독을 좋아했다. 처음부터 새로운 접근법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가장 놀란 점은 팀의 끈끈함이었다. 일반적인 라커룸 분위기가 아니었다. 학교 친구들끼리 모인 것 같았다. 가레스가 그렇게 만들었다. U-21 대표팀에서 오래 뛴 친구들도 예전과 다르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대표팀 훈련이 기다려질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잉글랜드 U-21 대표팀은 툴롱컵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루벤 로프터스-치크의 결승골로 프랑스를 꺾었다. 사우스게이트는 U-21 대표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유로2016이 끝나고 로이 호지슨 감독이 물러났을 때도 A대표팀 감독대행 제안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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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번의 ‘깜짝’ 선임, 그리고 성공
시간이 흘렀다. TV 시사 프로그램의 폭로가 앨러다이스를 내보냈고,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사우스게이트를 대체자로 낙점했다. 역사상 가장 ‘뜻밖의’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임된 것이다. 본인도 원하지 않았을뿐더러 팬 대다수도 지지하지 않았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사우스게이트 감독대행의 적절성에 관한 설문을 했다. 반응은 예상대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준수했다. 라이벌 스코틀랜드를 3-0으로 잡았고, 며칠 뒤에는 스페인과 2-2로 비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우스게이트는 정식 감독이 되었다.

사우스게이트는 먼저 정신력 함양에 힘썼다. 드본 해병대 캠프에 입소한 선수들은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야외 막사에서 잠을 자야 했다. 유격 훈련에서는 감독이 솔선수범해 진흙탕에 빠지기도 했다. 미국 슈퍼볼의 미디어데이도 도입했다. 모든 선수가 인터뷰에 나서는 방식이다. 과거 메이저 대회마다 선수와 언론 사이가 불편했다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로2016 16강에서 아이슬란드에 1-2로 뒤지자 스티븐 제라드가 “언론 보도를 걱정하면서 뛰었다”고 고백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일간지 <타임스>의 헨리 윈터 기자는 “오래전부터 언론과 선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협회에 말했다. 인터뷰하는 선수가 많을수록 특정 선수에게 보도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월드컵에서도 부드러운 팀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우스게이트는 선수 가족이 선수단 호텔로 방문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선수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구성원 모두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이 형성되었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16강 콜롬비아전에서 지긋지긋한 승부차기 징크스를 끊었다. 8강에서는 스웨덴을 꺾고 28년 만에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스웨덴과 경기 후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우스게이트는 그라운드로 돌아갔다. 경기장에 남아 승리를 즐기고 있던 잉글랜드 팬들 앞에 서서 함께 4강 진출을 자축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감히 바라지도 못했던 쾌거를 이룬 순간이었다. 사우스게이트와 잉글랜드 대표팀은 여전히 순항하고 있다. 네이션스리그 조 1위에 올랐고, 3월에 열린 유로2020 예선에서는 두 경기 연속 5골을 퍼부으며 대승을 거뒀다.

아주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우스게이트를 통해 잉글랜드는 깨달음을 얻었다. 풍부한 경험이나 톱클래스 경력이 대표팀 감독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표팀의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감독이면 충분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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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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