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축구보다 전쟁, 국가간 라이벌 8

기사작성 : 2019-03-25 16:07

- 축구가 아니다
- 전쟁이다
- 라이벌 국가들을 소개한다

태그 라이벌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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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Nick Ames]

무조건 이겨야 한다. 무승부도 안 된다. 한 경기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잃을 수도 있다. 라이벌 국가와 맞대결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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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vs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첫 A매치였다. 1872년 11월 3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만난 두 국가는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이후 111번이나 만났다. 1967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스코틀랜드의 3-2 승리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1966잉글랜드월드컵 우승국을 꺾었다는 이유로 ‘비공식 세계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잉글랜드 축구의 성장, 스코틀랜드 리그 쇠퇴가 맞물려 전력 차이가 확연해졌다. 21세기에는 잉글랜드가 3승 1무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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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vs아르헨티나
언제나 세계 최고의 선수가 즐비하다. 월드컵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면, 우승 후보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조명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러나 100회가 넘는 맞대결 중 월드컵 결승은 한 차례도 없었다. 아이러니하다.

논란도 많았다. 1990이탈리아월드컵 16강에서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이기고 나서 브라질 수비수 블랑코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신경 안정제를 탄 물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훗날 카를로스 빌리야도 아르헨티나 감독이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는 얼토당토않는 해명으로 논란을 가중시켰다. 1982년 월드컵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주앙 바티스타를 격투기의 한 장면처럼 걷어차 두 국가의 라이벌 관계에 기름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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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vs알바니아
2014년 10월 14일에 열린 첫 경기 전부터 마찰을 빚어왔다. 축구 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는 국민 대부분이 알바니아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세르비아 사람들이 코소보를 자국의 고유한 영토로 주장하며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유로2016 지역 예선에서 갈등이 폭발했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파르티잔 스타디움이었다. 당시 알바니아인 이스마일 모리나가 경기장 근처에 숨어 ‘코소보는 알바니아의 일부’라고 표현한 깃발을 드론에 걸어 조종하며 도발했다. 흥분한 세르비아 팬들이 급기야 그라운드에 난입해 알바니아 선수들을 폭행하는 사태로 번졌고, 경기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유럽축구연맹(UEFA)는 징계 위원회를 열어 세르비아에 몰수패를 선언하고, 양국 축구협회에 10만 유로 벌금을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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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vs일본
설명이 필요한가. 일본에 가위바위보도 이겨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 도쿄 대첩을 완성한 이민성의 중거리슛 등 이야깃거리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포포투> 영국 필진의 시선으로 한국과 일본의 라이벌 관계를 설명한다. 건조함이 느껴질 수 있으나 영국인의 관점이니 이해 바란다.

양국의 이해관계부터 알아야 한다.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였다. 남북한이 분열한 후 특히 남한과 일본의 맞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지금까지 78차례 A매치를 치렀다. 첫 경기는 1954스위스월드컵 플레이오프였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의 상황으로 당시 1, 2차전 모두 도쿄에서 열렸다. 그러나 한국은 원정 부담을 딛고 1차전 5-1 승리, 2차전 2-2 무승부로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의 영광을 안았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미국월드컵 지역 예선 마지막 라운드에서 이라크가 일본 상대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한국이 본선행에 성공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도하의 참사’라 부른다. 역대 전적에서는 41승23무14패로 한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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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vs알제리
1990이탈리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두고 아프리카 최대 라이벌이 만났다. 결과는 이집트의 1-0 승리. 당시 이집트 공격수 아이만 유네스는 “축구가 아닌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2009년에 또다시 월드컵 본선을 다퉜다. 알제리가 1차전을 3-1로 가져간 상황,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2차전이 열렸다. 경기 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이집트 팬들이 알제리 선수단 버스에 돌을 던져 선수 3명, 관계자 1명이 다쳤다. 그러나 경기는 속행되었고, 이집트가 웃었다. 시작 3분 만에 아므르 자키의 선제골, 종료 직전 에마드 모테압의 헤딩슛으로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원정 다득점 규정이 없어 4일 후 재경기에 나서야 했다. 장소는 제3국, 수단의 가장 큰 도시 옴드루만이었다. 알제리 선수들은 폭력 사태에 불만을 토로하는 듯 거친 플레이로 경기를 압도했고, 수비수 안타르 야히아의 결승골에 힘입어 월드컵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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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vs네덜란드
1990이탈리아월드컵 16강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루디 펠러와 신경전을 벌이다 침을 뱉어 퇴장당한 것이다. 두 선수는 1996년 버터 광고에 동반 출연하며 화해한 듯했으나 국가간 라이벌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세계 2차 대전에서 독일이 네덜란드를 지배해 네덜란드 사람들로 하여금 ‘독일=적’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중요할 때마다 맞붙었다. 1974년 월드컵 때는 결승전에서 만나 독일이 2-1 역전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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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두라스vs엘살바도르
축구를 계기로 전쟁이 발발했다. 1970멕시코월드컵 플레이오프였다. 1차전을 온두라스가 이기고, 2차전에서 엘살바도르가 승리해 원점이 됐다. 멕시코에서 열린 재경기는 엘살바도르의 3-2 승리. 온두라스는 곧바로 엘살바도르와 외교 단절을 선포했다. 안 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축구로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긴장이 극에 달한 시점, 엘살바도르가 먼저 온두라스 공군 기지를 급습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축구 전쟁’은 6일, 약 100시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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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vs멕시코
1980년대까지 멕시코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미국은 1934년 첫 만남에서 4-2로 이긴 후로 46년간 한 번도 웃지 못했다. 무려 25경기 21승 3무 1패(멕시코 기준). 라이벌이라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근 경기도 미국이 타일러 아담스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1980년 이후 18승 12무 13패.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경기 외적인 논란도 잦았다. 2004년 랜던 도노반이 몸을 풀다가 과달라하라 경기장에 소변을 누며 멕시코 팬과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것이 대표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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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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