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EPL 역사상 최고의 ‘꿀 영입’ 100선 ⑤1~20

기사작성 : 2019-01-21 18:34

- 영입할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최고였어
- epl 최고 영입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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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편집팀]

‘이런 선수를 공짜로?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어떻게 영입을…’.
영입할 때는 모르지만, 훗날 최고의 구매였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쿵푸유단자(?), 프랑스에서 온 소방수, 프랑스에서 온 골잡이가 좋은 예다. <포포투>는 100명을 추렸다. ⑤편에선 1위부터 20위까지 20명을 소개한다. 상위권에는 유독 프랑스 선수들이 많이 포진했다. 교수님의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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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이-제이 오코차 - PSG to 볼턴, 2002 (자유계약)

참 언발란스한 조합이다. 샘 앨러다이스의 특색 없는 축구와 화려한 나이지리아 플레이메이커의 만남. PSG에서 호나우지뉴의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던 오코차는 볼턴 입성 첫 시즌 리그에서 7골을 넣었다. 서막에 불과했다. 볼턴에 머문 4시즌 동안 레인보우 플릭스(일종의 사포)와 같은 기술로 팬들을 즐겁게, 상대팀 선수들을 열 받게 했다.(아스널의 레이 팔러는 그 의미를 알 것이다)

19. 시무스 콜먼 - 슬리고로버스 to 에버턴, 2009 (60만 파운드, 최대 300만 파운드)

2009년 슬리고 감독을 지낸 위건의 폴 쿡 감독은 훗날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콜먼 이적료가 30만 파운드였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다른 말을 했는데, 언급된 이적료의 5배이든, 6배이든, 그건 중요치 않아 보인다. 콜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적료를 받고 입단한 에버턴에서 10년 가까이 오른쪽 수비를 책임진다. 리그에서 233경기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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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셰이 기븐 - 블랙번 to 뉴캐슬, 1997 (150만 파운드)

케니 달글리시 감독은 뉴캐슬에서 환영받지 못할 인물이지만, '유산' 하나를 남겼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달글리시 감독은 블랙번에서 거의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던 기븐에게 1번 장갑을 맡겼다. 그로부터 12년간 기븐은 기복 없이 꾸준한 활약을 했다. 골과 다름 없는 슛을 종종 쳐냈다. 뉴캐슬 구단 최다 출전 기록을 33경기 남겨둔 2009년, 600만 파운드에 맨시티로 이적했다.

17. 조 하트 - 슈르즈버리 to 맨시티, 2006 (60만 파운드, 최대 150만 파운드)

하트는 서서히 잊혀간다. 31세에 불과하단 점을 감안할 때, 다소 놀랍다. 전성기가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영향도 있을 것 같다. 20대 초반 프리미어리그 NO.1 골키퍼로 여겨졌으니. 꾸준함은 말할 것도 없고, 선방 능력도 가장 뛰어났다. 맨시티는 셰이크 만수르 시대에 접어들어 지금까지 3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두 개의 트로피를 하트가 있을 때 들었다.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후 임대를 전전하다 지난해 여름 번리로 완전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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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레엄 르 소 - 첼시 to 블랙번, 1993 (70만 파운드)

첼시에서 감독과 마찰을 일으킨 뒤, 블랙번으로 이적해 1995년 팀의 3번째 1부 우승에 일조했다. 4년간 주전 레프트백으로 활약한 르 소를 첼시가 이적료 10배를 들여 재영입했다. 르 소는 친정팀의 UEFA컵 위너스컵 우승에도 일조했으니, 르 소 덕분에 모두가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15. 네마냐 비디치 - 스파르타크모스크바 to 맨유, 2005 (700만 파운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운 수비수로 꼽힌다. 양발 컨트롤에 능했고, 슈팅 블록, 태클, 헤더 능력도 출중했다. 압도적인 힘과 공격성 뿐아니라 자기 편 골문에서 골을 지켜내는 능력도 일품이었다. "네마냐는 일반 선수들이 꺼리는 곳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다"는 팀 동료 로빈 판 페르시의 말에서 비디치의 위대함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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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빈센트 콤파니 - 함부르크 to 맨시티, 2008 (600만 파운드)

2008년 초여름, 맨시티는 인수 작업이 지체되고 있었다. 무분별한 영입 작업이 지속되면서 정체성이 위협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벨기에 센터백이 독일에서 건너왔다. 이적료는 엘리아킴 망갈라의 20%에 불과했다. 콤파니가 맹활약한 10년 동안 맨시티는 리그 트로피에 대한 오랜 기다림을 끝냈고, 리그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망갈라가 주전 센터백으로 시즌을 소화한 적은 없다.

13. 다비드 지놀라 - PSG to 뉴캐슬, 1995 (250만 파운드)

1993-94시즌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 출신답게 엘클라시코 두 팀이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케빈 키건 감독의 설득으로 뉴캐슬에 입단했다. 영입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이 윙어는 뉴캐슬의 4전 전승을 이끌며 1995년 8월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뉴캐슬 유니폼을 입고 눈부신 기술(머리카락)을 뽐냈다. 2년 뒤 토트넘이 같은 금액을 들여 지놀라를 품었다. 이 역시 좋은 영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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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 보아비스타 to 리즈, 1997 (200만 파운드)

전생에 골망과 원수라도 진 걸까. 공만 잡으면 골망이 찢길 듯한 강슛을 날리곤 했다. 입단 첫 시즌 크리스마스 이전 5골을 포함해 17골을 넣으며 리즈의 리그 5위 달성에 기여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공동 득점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오리어리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면서 1000만 파운드에 아틀레티코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리즈가 훗날 선수 영입에 들인 돈을 생각할 때, 저렴한 돈으로 좋은 영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1. 위르겐 클린스만 - 모나코 to 토트넘, 1994 (200만 파운드)

에릭 칸토나, 뤼트 굴리트, 주니뉴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출범 초기 리그를 빛낸 외국인 선수 중 하나다. 리그 21골, 컵대회 포함 30골을 몰아치며 축구기자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년 만에 바이에른뮌헨으로 떠났지만, 1997-98시즌 임대로 다시 화이트하트레인으로 돌아와 귀중한 9골로 팀의 강등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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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올레 군나르 솔샤르 - 몰데 to 맨유, 1996 (150만 파운드)

1996년 여름, 솔샤르는 존 하트슨의 거의 절반, 제이슨 맥아티어의 1/3, 대런 피콕의 절반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유에 입단했다. 요즈음 사람들은 맥아티어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에 대해 토론하지 않는다. 대신 솔샤르가 얼마나 대단한 조커였는지 말한다. 유스 출신('Class of 92')을 제외할 때, 알렉스 퍼거슨의 팀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솔샤르 밖에 없다.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

9. 사미 히피아 - 빌럼II to 리버풀, 1999 (260만 파운드)

제라르 울리에 시대의 최고 영입생 중 하나다. 제이미 캐러거는 히피아가 "리버풀 수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이다. 리버풀은 히피아 영입 직전 시즌에 리그 49골을 허용했다. 히피아가 안필드를 지킨 10년 동안(*464경기 출전) 그러한 최악의 수비를 재현하지 않았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외 수비가 갖춰야 할 모든 방어 능력을 장착했다. 리버풀이 트레블을 달성한 2000-01시즌 총 58경기에 선발출전할 정도로 꾸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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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델레 알리 - MK돈스 to 토트넘, 2015 (500만 파운드)

알리가 처음 대중 인지도를 얻게 된 경기는 MK돈스가 맨유를 격파한 리그컵이었다. 하부리거의 가능성을 발견한 토트넘이 그를 영입했다. 약 반 년 뒤 맨유는 3000만 파운드를 들여 멤피스 데파이를 데려왔다. 알리는 22세의 나이로 스티븐 제라드가 27세에 달성한 득점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스피드, 투쟁심, 득점력, 창의성 등 다양한 장점을 지녔다는 평가다. 앞서 언급한 나이가 가장 큰 무기다. 27세가 됐을 때, 얼마나 더 성장해있을까?

7. 에드윈 판 데 사르 - 풀럼 to 맨유, 2005 (200만 파운드)

판 데 사르의 실력을 높이 산 퍼거슨 감독조차 그가 맨유에서 6년이나 머물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하위 팀 소속 34세 골키퍼'라는 꼬리표를 달고 올드트라포드에 입성한 판 데 사르는 맨유의 리그 3년 무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계 신기록인 14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풀럼에서 보낸 4시즌을 포함해도 그의 무실점률은 역대 3위다. 생각해보면, 맨유가 200만 파운드에 영입한 골키퍼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센추리 클럽 가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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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트리크 비에라 - 밀란 to 아스널, 1996 (350만 파운드)

비에라는 벵거 감독의 '선수 보는 눈'이 얼마나 좋은지를 증명해낸 첫 번째 사례다. 밀란의 2군에서 뛰던 20세 미드필더는 구너스에 합류한 뒤 모든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꿈꿀만한 거인이 되어갔다. 단순히 공간을 커버하거나, 긴 다리를 이용해 공을 탈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공격에 가담해 결정적인 패스를 뿌렸고, 귀중한 골을 터뜨렸다. 아스널의 리더이자 해결사(?)이기도 했다. 누군가 앙리에게 파울을 한다면 어느샌가 비에라가 나타났다. 아스널에 수많은 우승컵을 안기고 2005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1350만 파운드

5. 니콜라 아넬카 - PSG to 아스널, 1997 (50만 파운드)

벵거 감독을 또 한 번 소환해야 할 것 같다. 벵거 감독은 50만 파운드에 영입한 아넬카를 2년 뒤 2230만 파운드에 팔았다. 그 이적료의 절반을 들여 훗날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는 티에리 앙리를 영입했다.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아넬카의 활약도 빼어났다. 이언 라이트의 후계자로 데니스 베르캄프와 호흡을 맞춰 1997-98시즌 더블에 기여했다. 두 번째 풀시즌에 FA컵 결승전 득점 포함 19골을 몰아쳤다. 아넬카의 성공 사례를 지켜본 타 클럽이 프랑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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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루카스 라데베 - 카이저치프스 to 리즈, 1994 (5만 파운드)

얼마 전 필 마싱가가 49세 나이로 타계했다. 라데베는 옛 팀 동료들과 함께 그를 추모했다. 라데베는 1994년, 250만 파운드짜리 마싱가와 나란히 리즈에 입단한 인연이 있다. 같은 남아공 출신인 데다 나이도 같은 둘은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실력면에선 라데베가 마싱가보다 더 나았다. 포지션 및 리그 적응 문제로 데뷔 초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팀의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빠르게 입지를 넓혔다. 전성기를 누비던 1990년대 말 맨유, AS로마, AC밀란 등과 링크됐지만, 은퇴하는 그날까지 리즈에 남았다. 리.전.드

3. 은골로 캉테 - 캉 to 레스터, 2015 (560만 파운드)

캉테는 역사상 두 번째로 서로 다른 두 팀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연속 우승했다. 레스터의 동화와 첼시의 압도적 우승 모두 캉테 없이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1부리그 경험이 단 한 시즌인 미드필더를 560만 파운드에 영입하는 건 도박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캉테는 프리미어리그 입성 첫 시즌 31개와 15개 차이로 태클, 인터셉트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지금은 유럽 무대 최고의 소방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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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솔 캠벨 - 토트넘 to 아스널, 2001 (자유계약)

라리가에 루이스 피구가 있었다면, EPL엔 캠벨이 있었다.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되는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는 점에서 비교 가능하다. 토트넘 팬들은 주장이자 주전 센터백이 구너스로 향하는 것을 보며 가장 먼저 '유다'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실제로 북런던 더비 도중 유다가 적힌 수천 개의 풍선이 하늘을 떠돌아다녔다. 반면, 아스널 팬들에겐 캠벨은 '철벽' '전설'과 동의어였다. 이적료 한 푼 들이지 않고 영입한 캠벨은 입단 첫 시즌 리그 우승을 안겼고, 2년 뒤 무패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1. 에릭 칸토나 - 리즈 to 맨유, 1992 (120만 파운드)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성공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리즈유나이티드에서 이적할 당시 맨유는 1967년 이후 25년째 리그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한 상태였다. 칸토나의 입단 첫 시즌이자 프리미어리그 출범 시즌, 맨유는 오랜 갈증을 해갈했다. 칸토나는 마크 휴즈와 같은 15골(리즈 6/맨유 9)을 터뜨렸다. 이듬해에는 컵대회 포함 25골을 낚았다. 쿵푸킥과 같은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수준 높은 기술, 득점력, 카리스마는 맨유를 한 차원 높은 팀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칸토나는 총 4개의 리그 타이틀을 안겼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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