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EPL 역사상 최고의 ‘꿀 영입’ 100선 ④21~40

기사작성 : 2019-01-19 16:33

- 영입할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최고였어
- epl 최고 영입 100선

태그  

본문


[포포투=편집팀]

‘이런 선수를 공짜로?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어떻게 영입을…’.
영입할 때는 모르지만, 훗날 최고의 구매였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EPL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1, 2위를 다투는 애슐리 콜, 파트리스 에브라가 좋은 예다. <포포투>는 100명을 추렸다. ④편에선 21위부터 40위까지 20명을 소개한다.

Responsive image
40. 모하메드 살라 - 로마 to 리버풀, 2017 (3400만 파운드)

살라가 입단한 2017년 여름, 맨유는 로멜루 루카쿠(7500만 파운드), 첼시는 알바로 모라타(6000만 파운드), 에버턴은 길피 시구르드손(4500만 파운드)을 영입했다. 3400만 파운드에 차기 득점왕(리그 32골)을 영입했으니, 남는 장사라고 할 수도 있다. 살라 입단시즌에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39. 클린트 뎀프시 - 뉴잉글랜드레볼루션 to 풀럼, 2007 (150만 파운드)

미국 출신 선수가 평가절하 받던 시기에 보란 듯이 성공 가도를 달렸다. 23세 나이로 풀럼에 입단해 첫 시즌부터 리버풀전 결승골과 같은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공격 전 지역에서 활약할 수 있고, 공중볼 장악에 능했던 뎀프시는 풀럼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 23골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2012년 600만 파운드 이적료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Responsive image
38. 미하엘 발락 - 바이에른뮌헨 to 첼시, 2006 (자유계약)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를 논할 때, 발락을 포함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발락은 거의 모든 걸 갖춘 미드필더의 표본이었다. 높이, 양발, 시야, 득점력, 투지, 두뇌 등등을 장착했다. 첼시가 프랭크 램파드 중심으로 꾸려진 팀이라 실력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첼시가 들인 이적료를 생각하면 '대박 영입'으로 꼽힐 만하다. 첼시는 독일 대표로 42골(98경기)을 넣은 선수를 공짜로 데려왔다.

37. 크리스토퍼 삼바 - 헤르타베를린 to 블랙번, 2007 (45만 파운드)

헤르타베를린에선 벤치를 달궜다. 2007년 마크 휴즈 감독의 부름을 받고 블랙번에 입단한 뒤 인생이 바뀌었다. 이번 리스트의 66위에 랭크한 라이언 넬슨과 함께 블랙번 뒷문을 지켰다. 상대 공격수에게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었다. 안지, QPR, 디나모모스크바에서 더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이우드파크(블랙번 홈구장)에서 보낸 5시즌 동안의 활약을 어디에서도 재현하지 못했다.

Responsive image
36. 카를로 쿠디치니 - 카스텔디산그로 to 첼시, 1999 (20만 파운드)

인구 5천500명에 불과한 이탈리아 소도시 카스텔디산그로 출신으로 기적을 써내려갔다. 로마와 밀란에서 골키퍼를 지낸 부친 파비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쿠디치니는 세리에C1에서 곧바로 첼시로 이적해 놀랍게도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오직 6명의 골키퍼가 그보다 더 높은 무실점 비율을 자랑한다.

35.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 - 베르더브레멘 to 스토크, 2013 (200만 파운드)

아르나우토비치가 입단한 이후 바르셀로나에서 아펠라이와 보얀, 인테르에서 셰르단 샤키리, PSG에서 헤세가 연달아 스토크에 입성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오스트리아 공격수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4시즌 연속 꾸준한 활약을 펼친 아르나우토비치는 2500만 파운드 이적료를 남기고 2017년 웨스트햄에 입단했다. 스토크는 1년 뒤 강등됐다.

Responsive image
34. 유리 조르카에프 - 카이저슬라우테른 to 볼턴, 2002 (자유계약)

당시 볼턴은 '왕년의 슈퍼스타'를 주로 영입했다. 그 전략이 무조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자르델, 마리오 케이스) 조르카에프는 달랐다. 월드컵 우승자 출신인 조르카에프는 공간을 찾는 능력, 킬러 패스 그리고 때대로 빼어난 마무리 능력을 선보였다. 그가 볼턴에 안착한 뒤 샘 앨러다이스 감독은 베테랑 스타에 대한 확신이 더욱더 깊어졌다.

33. 로비 킨 - 리즈 to 토트넘, 2002 (700만 파운드)

1999년 울버햄턴에서 코번트리로 이적할 당시 이적료 600만 파운드. 2000년: 인터밀란 이적 1300만 파운드. 2001년: 리즈 이적 1200만 파운드. 2002년: 토트넘 이적 700만 파운드. 2008년: 리버풀 이적 1900만 파운드. 2009년 2월: 토트넘 재이적 1200만 파운드. 참 많이도 옮겼다. 그만큼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이 아일랜드 공격수의 득점력을 높이 샀다. 킨은 토트넘에서 구단 올해의 선수상을 세 번 수상했다.

Responsive image
32. 파트리스 에브라 - 모나코 to 맨유, 2006 (550만 파운드)

외국인 선수가 타리그 구단의 컬트 히어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프랑스 출신의 에브라는 맨유에서 6번의 리그 우승, 한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을 뽑을 때 애슐리 콜 등과 최종후보에 올릴 만하다.

31. 거스 포옛 - 레알사라고사 to 첼시, 1997 (자유계약)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고의 자유계약 영입 선수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1997년 스템포드브릿지에 입성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 팀의 컵위너스컵 우승에 일조했다.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곤 했다. 레알마드리드전 결승골, 뉴캐슬과의 FA컵 준결승전 멀티골 등등이다. 또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당시 감독의 비공식 통역관이기도 했다. 145경기 49골을 넣고 2001년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220만 파운드.

Responsive image
30. 미추 - 라요바예카노 to 스완지, 2012 (200만 파운드)

커리어 대부분을 스페인 하부리그에서 지내다 최정상 무대에서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바예카노에서 스완지로 이적한 첫 시즌, 무려 18골을 터뜨렸다. 변방으로 여겨진 웨일스 클럽에는 축복 그 자체였다. 원-시즌 원더로 끝났지만, 훗날 '슈가맨'으로 소환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계속해서 내리막을 걷다 30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9. 애슐리 콜 - 아스널 to 첼시, 2006 (500만 파운드)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일한 '월드클래스' 레프트백, 지난 20년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프리미어리그 대표 레프트백이란 평가가 따른다. 런던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돈만 밝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첼시에서 8개의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커리어를 풍성하게 채웠다. 그나저나 500만 파운드라고?!

Responsive image
28. 미켈 아르테타 - 레알소시에다드 to 에버턴, 2005 (200만 파운드)

선수의 머리모양을 보면 대략 그 선수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아르테타는 단정한 머리스타일처럼 깔끔하고 한결같았다. 2005년 에버턴은 같은 이적료로 앤디 반 데 메이데를 영입하고, 거의 3배를 들여 페어 크롤드럽을 영입했다. 그중 오직 아르테타만이 클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처음으로 소화한 풀 시즌에 에버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경기 이상을 소화한 뒤, 어릴 적 동경하던 아스널로 향했다.

27. 존 스톤스 - 반슬리 to 에버턴, 2013 (300만 파운드)

2016년 에버턴과 맨시티가 합의한 이적료는 4500만 파운드. 3년 전 에버턴이 지급한 이적료의 15배에 이른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맨시티가 판단한 것이다. 머지사이드에 머문 세 시즌 동안, 특히 마지막 시즌에는 그의 성처럼 돌같이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5년 전 2부리그 수비수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에 입 맞추고, 잉글랜드의 월드컵 준결승 달성에 기여했다.

Responsive image
26. 앤디 로버트슨 - 헐 to 리버풀, 2017 (800만 파운드)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2015년 헐시티가 강등됐을 때, 프리미어리그 클럽이 왜 로버트슨 영입을 추진하지 않았던 걸까? 2년 뒤 리버풀이 움직였다. 입단 당시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첫 시즌 만에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꿰차고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누볐다. 리버풀은 2년 전 첼시가 바바 라흐만에 들인 이적료의 절반 이하의 금액으로 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을 얻었다.

25. 콜로 투레 - ASEC미모사스 to 아스널, 2002 (15만 파운드)

투레의 아스널 입단 스토리는 퍽 인상적이다.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를 잠재우고 직접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의 열망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영입을 결정했다. 선택은 옳았다. 2003-04 아스널의 리그 무패우승의 일원이었고, 2006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올랐다. 2009년 1400만 파운드에 맨시티로 이적하기 전 구너스에서 30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

Responsive image
24. 필리페 쿠티뉴 - 인터밀란 to 리버풀, 2013 (850만 파운드)

유럽 입성 초창기 풋살로 연마한 기술은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감춰졌던 잠재력은,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폭발했다. 리버풀에 머문 5시즌 동안 쿠티뉴는 리그 정상급 플레이메이커이자 중거리 슈터로 발돋움했다. 그가 2018년 1월 바르셀로나로 떠나면서 리버풀에 남긴 이적료는 입단 당시 1700%에 이른다.

23. 로빈 판 페르시 - 페예노르트 to 아스널, 2004 (275만 파운드)

아스널 입성 초창기, 이 네덜란드 윙어의 생산성에 의문이 달렸다. 그럼에도 아르센 벵거 감독은 비가 오나 부상이 오나 판 페르시를 기다렸다. 창의성과 폭발성을 두루 갖춘 판 페르시는 (정상 컨디션으로 뛸 때면)기대에 십분 부응했다.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기량을 만개한 시기에 맨유로 이적해 벵거 감독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Responsive image
22. 팀 케이힐 - 밀월 to 에버턴, 2004 (150만 파운드)

2004년은 1부 경험이 없는 24세 선수에게 150만 파운드를 지불하는 건 일종의 도박으로 여겨지던 시기다. 하지만 케이힐은 에버턴이 마치 고향팀이라도 된다는 듯 빠르게 녹아들었다. 입단 첫 시즌 팀 내 최다득점자로 거듭났다. 전매특허인 헤더로 라이벌 리버풀을 무너뜨리곤 했다. 떠나기 전까지 8시즌 동안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21. 루드 굴리트 - 삼프도리아 to 첼시, 1995 (자유계약)

선수의 영향력은 때때로 수치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굴리트는 첼시에서 리그 4골을 넣었다. 그 대신 구단의 정체성을 바꿔놨다. 굴리트가 당도하기 전 첼시는 폴 펄롱, 스콧 민토를 영입했다. 이후에는 지안프랑코 졸라, 지안루카 비알리, 프랑크 르부프,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들어왔다. 굴리트는 입단 1년 뒤 선수 겸 감독을 맡았다. 첼시에서 선수로만 활약한 유일한 시즌(1995-96)에 PFA 올해의 팀에 뽑혔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writer

by 편집팀

남들보다 442배 '열일'합니다 @fourfourtwokorea
트렌드
포포투 트렌드

[영상] 골은 맛있고, 리버풀전 승리는 더 맛있지

포포투 트렌드

[영상] VAR 시대, '법규'하면 딱 걸림!

Responsive image

2019년 02월호


[COVER STORY] 황의조가 꿈꾸는 미래, 그리고 아시안컵
[FEATURE] GOALKEEPERS SPECIAL
현존 세계 최고 골키퍼들을 모두 모았다. 역사적 아이콘들도 소환했다
[독점인터뷰] 잔루이지 부폰, 알리송 베커, 조던 픽포드, 얀 오블락
[FEATURE] 2018-19 UEFA 챔스 16강 완벽 가이드
[READ] 축구팬들이 해야 할 일 총정리

[브로마이드(40X57cm)] 잔루이지 부폰, 다비드 데 헤아, 김승규, 조현우
주식회사 볕
0317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7 한글회관 302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임진성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7-서울종로-0716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