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told] 라르손의 맨유 10주 임대 전설

기사작성 : 2018-10-18 15:23

- 스웨덴 레전드가 10주만에 맨유의 컬트히어로로 사랑받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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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Richard Jolly]

2018 러시아월드컵 최고의 센터백은? 라파엘 바란, 디에고 고딘, 해리 맥과이어, 토비 알더베이럴트가 떠오른다. 공통점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노렸던 선수들이다. 맨유의 영입 후보 목록에는 심지어 제롬 보아텡까지 있었다.

알다시피 성사된 건은 없다.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한 소식이 있긴 하다.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그란크비스트(32, 스웨덴)을 영입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선수 본인이 직접 “제안받았다”라고 밝혔으니까 성사 여부를 떠나 맨유의 관심은 사실이다.

그란크비스트의 국적은 맨유 팬들에게 기분 좋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가깝게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있었다. 37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즐라탄은 조제 모리뉴 감독과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선수로 통한다. 하지만 맨유가 스웨덴과 진짜 사랑에 빠졌던 시점은 2007년 1월부터 3월까지였다. 헬싱보리에서 날아왔던 10주짜리 임대생 헨리크 라르손(4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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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손은 2000-01시즌 스코틀랜드의 셀틱에서 리그 35골을 기록해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다. 브라질 레전드 호나우지뉴가 ‘나의 아이돌’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맨유는 2006-07시즌의 시즌 중반의 추진력을 얻을 심산으로 35세 골게터 라르손을 단기 영입했다. 맨유 동료들과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뒤, 라르손은 ‘쿨’하게 떠났다.

<포포투> 인터뷰에서 라르손은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내 경력의 유일한 후회로 남는다. 그때 떠나지 말고, 한 시즌 정도 더 뛰었어야 했다.” 하지만 11년 전, 라르손은 헬싱보리와 계약을 존중하기로 했다. 돌아오겠다고 했던 가족과의 약속도 지켰다. 라르손의 맨유 임대는 10주 만에 종료되었다.

라르손의 맨유 기록은 13경기 3골로 평범하다. 셀틱에서 기록했던 313경기 242골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 기록은 라르손이 맨유에서 남긴 레거시를 온전히 설명하기에 너무 부족하다. 라르손이 출전했던 13경기 중에서 맨유는 10승 2무 1패 성적을 남겼다. 유일한 패배도 라르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아스널전에서 라르손은 팀이 앞선 상태에서 교체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라르손은 아우라를 지닌 선수였다. 맨유 데뷔전(1월 7일)이었던 FA컵 3라운드 애스턴 빌라전에서 라르손은 팀의 선제골을 터트렸다. 수비수 틈에 낀 상황에서 완벽한 아웃프런트 킥으로 마무리했다. 경기에서 맨유는 2-1로 승리했다. 경기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라르손을 에릭 칸토나와 비교했다. 기폭제 같은 영향력, 강한 개성, 빅매치 강점을 꼽으면서 “우리가 진짜 귀인을 얻었다”라고 칭찬했다. 최근 자서전에서 퍼거슨 감독은 이렇게 쓰기도 했다.

“헨리크의 움직임과 용기는 그를 타고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처럼 보이게 했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선수들은 컬트히어로처럼 생각했다. 선수들의 말투에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미지는 주인공이 주위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면,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헨리크는 우리와 있으면서 자신의 컬트 이미지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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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의 스카우트 책임자 짐 롤러가 영입을 확정하기 전부터 라르손은 퍼거슨 감독의 영입 대상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활약했던 시절, 맨유의 영입 시도는 셀틱의 대주주 더모트 데스몬드의 반대 탓에 무산되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은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30대 선수를 데려다가 큰 재미를 보기로 유명했다. 퍼거슨 감독이 친구의 전략을 모방한 셈이다.

라르손 영입은 좌파적 발상의 결과였다. 당시 맨유의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자리가 났을 뿐이라는 것이 상식에 가까운 해석이었다. 2006년 여름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떠났다. 퍼거슨 감독은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공백을 메우려고 했다. 2006-07시즌 전반기까지는 좋았다. 루이스 사아가 크리스마스 전까지 12골로 공헌했다. 판 니스텔로이의 대역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아의 몸상태가 말썽을 부렸다. 사아의 득점 수는 하반기 내내 1골에 그쳤다. 오랜 부상에서 회복 중이던 앨런 스미스와 올레 군나르 솔샤르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라르손의 데뷔골이 나왔던 경기의 패장 마틴 오닐 애스턴 빌라 감독은 셀틱 시절 제자를 영입한 맨유의 판단을 높게 평가했다.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맨유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당시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절실했다.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처럼 우승 경험이 풍부한 스타들을 보유하고도 3시즌 연속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제 모리뉴 감독과 첼시가 급부상하면서 퍼거슨 감독은 맨유 경력의 마지막 ‘위대한 팀’을 만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발점은 2006-07시즌이었고, 시즌 중반에 강렬한 클래스를 더해준 주인공이 바로 라르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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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손이 출전했던 리그 7경기에서 맨유는 승점 18점을 획득했다. 같은 기간 첼시도 승점 3점밖에 잃지 않았지만, 맨유가 강력한 첼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저력을 입증한 것이다. 2006-07시즌 FA컵 결승전에서 첼시는 맨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라르손이 떠난 뒤에 치른 UEFA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는 AC밀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닐 감독의 분석대로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다면, 특히 라르손 같은 클래스가 있었더라면,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자서전에서 퍼거슨 감독은 “헨리크는 볼을 빼앗으려고 미드필드까지 내려왔다. 마지막 경기를 마친 헨리크가 라커룸에 들어오자 모든 스태프와 선수가 박수를 쳤다. 고작 두 달 만에 그런 인상을 남기는 선수도 있었다”라고 썼다.

# 프로필
-헨리크 라르손, 1971년 9월 20일생, 스웨덴
-클럽 경력: 1989~1991 회가보리(64경기 23골) / 1992~1993 헬싱보리(61경기 51골) / 1993~1997 페예누르트(149경기 42골) / 1997~2004 셀틱(313경기 242골) / 2004~2006 바르셀로나(58경기 19골) / 2006~2009 헬싱보리(107경기 54골) / 2012 라(1경기) / 2013년 회가보리(2경기) / *2006 맨유 임대(13경기 3골)
-국가대표 경력: 스웨덴(106경기 37골)
-지도자 경력: 2010~2012 란스크로나 / 2013 회가보리(코치) / 2014 팔켄보리 / 2015~2016 헬싱보리
-우승(선수):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4회), 라리가(2회), 프리미어리그(1회) / KNVB컵(2회), 스코티시컵(2회), 스코티시리그컵(2회), 스벤스카 쿠펜(1회) / UEFA챔피언스리그(1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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