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이건 악몽이야’…역사상 최악의 팀

기사작성 : 2018-10-12 12:33

-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 축구 역사상 가장 엉망진창이었던 팀들의 사연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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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Paul Simpson 외]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악의 팀은 스토크와 웨스트브롬이었다. 그렇지만 두 팀은 적어도 폭죽을 맞거나 100골씩 먹었던 악몽까지 간 적은 없다. 곧 소개할 팀들 앞에선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포포투>가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팀들을 추렸다. 사연이 이렇게나 많다.

“어? 우리가 40연패나 했던가??”
웨식스(잉글랜드 남부) 리그 디비전1 소속의 알더마스턴은 2009년 5월부터 2010년 4월까지 워민스터 타운과 1-1로 비기기 전까지 40경기 연속 패배를 기록했다. 이 기간의 실점이 150골이 넘었다. 와중에도 팀은 분위기가 좋다고 주장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아톰맨’(팀 애칭) 선수 중 10명이 그해 여름 한꺼번에 라이벌 태들리로 이적했다. 혹독한 추위를 보내며 훈련장 잔디가 심하게 훼손되는 일도 벌어졌다.
적어도 감독 에이디 히스는 품위 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난주까지 기록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 사실로 인해 구단이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

미래의 슈퍼클럽
올드 트래퍼드로 이전한 지 20여 년이 지난 1930년대. 맨유는 리그 우승 2회와 FA컵 우승 1회를 기록한 지방 클럽이었다. 잉글랜드 1부에서 두 번이나 강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호로 꼽히지 않더라도 개막 12연패는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얼어붙은 그 시기에 맨유는 무성의한 경기력으로 총 49골을 내줬고(스코어는 3-4, 1-3, 2-6, 0-6, 4-7이었다), 시즌 실점은 115골에 달했다. 2017년 세리에A 베네벤토가 ‘구원자’가 되어주기 전까지 90여 년간 유럽 5대 리그 중 누구도 깨지 못한 대기록이었다. 미들즈브러와 4-4로 비긴 맨유의 시즌 홈 최종전의 관중 수는 고작 3969명이었다. 허버트 밤렛은 감독직을 지켰으나 11월 결국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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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피델 카스트로~~”
잉글랜드 5부(당시 리그명은 스크릴 프리미어)에서 머문 유일한 시즌을 통틀어 하이드FC는 1승 7무 38패를 기록했다. 골득실 -81골을 기록한 끝에 강등했다. 팀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트위터 ‘드립’이 장난 아니다. ‘하이드 2-3 렉섬. 젠장’, ‘하이드 2-4 렉섬. 지랄’, ‘하이드 2-5 렉섬. 매번 이길 순 없잖아’ 등이다. 그들은 선발진 이름을 갖고 신나게 놀기도 했다. 선발 11인: 듈리스, 브리젤, 피델 카스트로, 블라디미르 레닌, 칼 막스, 레온 트로츠키, 휴즈,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서스턴, 토니 벤, 테임즈. 리그 최소 승점 기록을 깬 것도 모자라 1년 뒤에 한 계단 또 떨어졌다.

“수비가 약간 느슨해서” 5일, 3경기, 114실점
607개 섬으로 구성된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2015년 퍼시픽게임에 호기롭게 나섰다. 선수들이 11대11 경기를 나서본 적 없고, 대다수가 18개월 전에 축구공을 처음 만져봤다. 뭐 그게 대수랴. 호주 출신 스탠 포스터 감독은 “대부분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다. 다른 섬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괌에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도 난생처음 봤다. 유치원생들처럼 좋아했다”라고 말한다. 미크로네시아는 축구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를 맛봤다. 첫 경기 타히티전에서 0-30으로 패했다. 타히티의 9명이 골 맛을 봤다. 다음 경기에서 피지에 0-38로 졌다. 바누아투전은 더 심했다. 0-46. 장 칼탁이 홀로 16골을 책임졌다. 감독이 분석한 패인은 간단하다. “수비가 조금 느슨했던 것 같다.”

자신을 믿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구!
북중미 소국 엘살바도르는 1982 스페인월드컵에서 그다지 최악은 아니었다. 벨기에에 0-1로 패하고, 아르헨티나에 0-2로 졌다. 하지만 개막전 헝가리전이 문제였다. 1-10 대패!
모든 상황이 나빴다. 우선 엘살바도르에서 스페인까지 가는 데에만 사흘이 걸렸다. 수비수 하이메 로드리게스는 “일정을 상대편이 짠 것만 같았다”라고 회상한다. 선수들은 시차 문제로 괴로워했다. 첫 경기 24시간 전까지 훈련용 축구공도 없었다. 녹초가 된 선수들은 무모한 전술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에 부딪혔다.
헝가리 주장 티보르 닐라시는 “그렇게 나쁜 팀은 아니었다. 너무 순진했을 뿐이다”라고 기억한다. 루이스 라미레스 사파타가 1-5를 만드는 만회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헝가리 서브 라슬로 키스의 해트트릭이 이어졌다. 훗날 키스는 “불쌍한 친구들은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날 스코어는 지금도 월드컵 최다 골 차 패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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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쾌승에도 불만이라니!!!
팬 100여 명이 크리스마스 저녁에 침을 뱉고, 자동차를 부수고, 레스토랑을 향해 폭죽을 쏜다면? 그래서 경찰을 불러야 한다면, 시즌을 망쳤다고 해도 좋다. 페스카라의 다니엘레 세바스티아니 회장이 2016-17시즌 중 겪은 일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팬들이 탄 차량 두 대가 사유지 차도까지 들어와 그의 집을 향해 붉은색 폭죽을 쏴댔다. 팬들의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 전반기 승리가 단 한 번이었는데, 그마저도 사수올로가 부정 선수를 기용한 덕분에 얻은 3-0 몰수승이었다. 마시모 오도 감독을 해고한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4주 동안 최하위에 머문 끝에 81실점, 승점 18점의 치욕적 기록만 남긴 채 세리에B로 강등했다. 참! 사수올로전 실제 스코어가 1-2였다는 말을 빼먹을 뻔했다. 아차차.

다윈과 이름은 비슷한데, 진화에 실패했군
블랙번 남부의 다웬FC는 프로선수와 계약한 사상 첫 잉글랜드 클럽이다. 1880-81시즌 FA컵 준결승에 진출한 이력도 있다. 1891년부터 1899년까진 프로(풋볼리그) 소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시즌(1988-89) 비참하게 2부 생활이 끝났다. 전직 선수에 의해 고소를 당한 여파로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뒤, 18연패를 찍었다. 세 차례 0-10 스코어를 포함해 풋볼리그를 통틀어 기록적인 141실점(34경기)을 허용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년간 대략 63명에 달하는 지역주민(신문기자 포함)을 경기에 투입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다음에는 추락이 시작했고, 지금까지 부활에 실패했다. 팀은 현재 ‘노스웨스트 카운티스 리그 퍼스트 디비전 노스’(이름 더럽게 기네) 소속이다. 10부란 얘기다.

승점은 소중한 땀에 대한 보상이니까
더 배시(애칭) 강성 팬 71명은 팀이 ‘사우던 리그 디비전 원 사우스&웨스트’에서 맨고츠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승점 1점을 획득하자 배쉴리 로드 위에서 축제를 열었다. 2016년 2월 이후 27경기 만에 챙긴 승점이니까 그럴 만도 했다. 2014년 9월부터 무승 행진이 이어지고, 프리시즌에 데이비드 스트라이드 감독이, 이후 스티브 라일리 감독이 연달아 해임되었다. 후임인 톰 프로도모 감독은 “그 승점 1점이 꼭 우리의 이번 시즌 유일한 승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경기가 있던 4월을 되돌아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기우였다. 슬림브릿지전 0-0 무승부로 1점을 더 따냈다. 최종 시즌 기록은 201실점, 40패. 골득실은 -18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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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실점? 막은 것도 많다는 뜻!
개막전에서 0-10으로 패했다. 대처법은 크게 두 가지. 첫째, 고개를 빳빳이 든다. 그게 싫다면 두 번째 방법을 쓰자. 2라운드에서 0-13으로 패해 첫 경기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글로스터셔 노던 시니어 리그 디비전2’(13부) 소속의 롱퍼드 AFC가 썼던 방식이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롱퍼드는 0-15, 0-16, 0-17과 같은 스코어로 모든 경기에서 패했다. 특별 대책으로 클럽은 스튜어트 피어스와 한 경기짜리 초단기 계약을 맺었다. 롱퍼드는 피어스가 14년 전 선수로서 1경기를 뛰고 은퇴했던 곳이다.
보험사의 떠들썩한 홍보는 아주 작은 성공을 거뒀다. 워턴로버스전에서 1골 차 패배를 당한 것이다. 악몽 같은 시즌 동안 거둔 최고의 성적이긴 했다: 30전 0승 0무 30패 10득 226실. 골키퍼(25, 보험사 직원)로 뛰었던 이르샤드 바다트는 “우리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나는 꽤 괜찮게 뛰었다고 생각한다. 경기 중 바쁘긴 했지만”이라고 회상한다.

포르투갈인은 인정사정없다
룩셈부르크 남부 클럽 뒤들랑주는 원래 전통의 강호였다. 1939년부터 1965년까지 10차례 리그에서 우승했다. 1991년에 합병해 이름이 F91뒤들랑주로 바뀐 이 팀은 2000년 이후 14개의 우승컵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이번 기획에 딱 들어맞는 암흑기도 있었다. 1966년 두 차례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한 벤피카에 0-8로 패했다. 에스타디오 다 루즈에서 열린 2차전 결과는 더 참혹했다.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에우제비오에게 경기 시작 32분도 지나지 않아 해트트릭을 허용했다. 호세 아우구스투도 덩달아 3골을 기록했다. 최종 스코어 0-10. 종합 전적 0-18은 지금도 대회 기록으로 남는다.

인도네시아의 ‘아이고 의미 없다’ 항해
네덜란드 점령군과 인도네시아 지역민으로 구성된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현 인도네시아) 팀은 배를 타고 프랑스로 이동했다. 이동에만 수 주일이 걸렸기 때문에 이들은 갑판 위에서 훈련을 하고, 연습경기도 치렀다. 월드컵에 나서는 첫 아시아 팀의 첫 여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인도네시아는 대회 준우승팀이 될 헝가리와 첫 경기를 가졌다. 전반전에만 0-4로 끌려간 끝에 결국 0-6으로 패했다. 1938년 월드컵은 녹아웃 시스템이었다. 패배는 곧 대회 탈락이었다. 그래서 허무하게도 월드컵 최악의 기록을 남기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야 했다. 인도네시아의 월드컵 전적은 아직도 ‘0-6 패배’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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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윙어의 흔한 득점 기록
1885년 9월 12일, 스코티시컵 개막전에서 등장한 ‘아브로스 36-0 본 어코드’ 경기는 자칫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할 뻔했다. 다른 경기장에서 던디 하프와 애버딘 로버스전이 37-0으로 끝났는데, 하프 측이 35골을 넣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심판이 실수를 인지하고 최종 스코어를 수정하면서 아브로스와 본 어코드의 36-0 스코어가 역사에 남게 되었다. 아브로스는 실제 더 많은 골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오프사이드로 7골이나 날렸다. 골대에 그물이 없던 시절이라서 축구공을 다시 가져오는 데에도 시간이 낭비되었다. 본 어코드는 전반에만 15골을 허용했다. 아브로스의 10대 윙어 존 페트리는 홀로 13골을 몰아쳤다. 이 기록은 116년 동안이나 깨지지 않았다.

들어는 보셨나, 타스마니안스?
1965-66시즌, 타스마니안스 베를린은 분데스리가의 각종 불명예 기록을 경신했다. 최소 득점(15), 최다 실점(108), 최다 골 차 패배(0-9 vs 마이더리히), 최소 승점(8) 그리고 최소 관중(856명). 애초 타스마니안스는 승격을 당했다! 독일축구협회가 회계 부정을 저지른 헤르타 베를린을 강등시키고, 같은 연고지의 타스마니안스를 올렸다. 수도 베를린에 분데스리가 팀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승격 소식을 접한 선수들은 휴가를 반납하고 부랴부랴 팀으로 복귀했다. 서독 대표 미드필더 호르스트 쉬마니아크를 영입했다. 하지만 쉬마니아크의 뇌 기능이 발보다 떨어졌다. 입장권 판매수익 배분 협상을 마치고는 팀 동료에게 “30%를 떼어준다고 하길래 최소한 25%는 받아야 한다고 했지!”라고 자랑했다. 34경기 2승으로 강등되었고, 팀은 7년 만에 재정난으로 파산했다.

어딘가 구린데?
2016-17 UEFA챔피언스리그에서 크로아티아 챔피언 디나모 자그레브가 잘못한 일은 딱 두 가지였다. 공격 그리고 수비였다. 2011년 12월 디나모는 조별리그 홈경기에서 리옹에 1-7로 패한 적이 있다. 스코어를 수상하게 여긴 유럽축구연맹(UEFA)이 조사를 고려했을 정도였다. 2016-17시즌에는 더했다. 조별리그에서 디나모는 6전 6패 0득 15실의 기록을 남겼다. 기량 부족이라기엔 수비는 코미디에 가까웠고, 골키퍼 안데르 셈퍼도 엉망진창이었다. 수비수 피타르 스토야노비치는 의도가 불분명한 행동(세비야의 비톨로를 걷어찼다)으로 퇴장을 받았다. 0-1이던 경기는 그 퇴장 등의 이유로 0-4로 끝났다. 디나모는 6경기에서 3차례 골대를 맞혔고, 감독은 3명이 오갔다. 잔여 시즌 디나모는 11년 만의 무관 수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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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각자 챙겨와, 쓰레기들아!”
토니 우드 회장이 1994년 르완다에서 재산과 이권을 모두 잃자 레이턴 오리엔트는 혼란에 빠졌다. 유소년 존 시턴 감독과 1군 선수 크리스 터너가 팀을 통솔해야 할 정도였다. 최악은 2월에 찾아왔다. 블랙풀에 0-1로 끌려가고 있었다. 시턴 감독은 하프타임에 주장 테리 하워드를 해고했다. 그리고는 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독설을 쏟아냈다. “너, 꼬맹이 자식. 그리고 너! 무식하게 크기만 한 놈. 내가 뭘 해야 할지 말해줄 테니, 그대로 해. 정리가 필요해. 너희들끼리 짝짓고 싶으면 그대로 해. 저녁은 각자 챙겨와. 경기 끝나면 너희와 나는 끝이니까. 배고프면 각자 쳐먹으라고!”
오리엔트는 이후 15경기 중 1승에 그쳤다. 신임 배리 헌 회장은 시턴과 터너를 해고했고, 오리엔트는 4부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시턴 감독은 지금 택시 기사로 전업했다.

승수보다 많은 감독 머릿수
네덜란드의 RBC로센달은 에레디비시에서 역대 최소 승점(9점)을 기록하며 강등되었고, 5년 후에 파산했다. 현재 그들은 7부에 있다. 2005-06시즌에는 승리 수보다 감독이 더 많았다. 2월 NEC네이메헌전(2-0)이 시즌 유일한 승리였는데 감독 자리에 돌프 록스와 로베르트 마스칸트가 있었다. 득점과 실점은 각각 22골과 90골. 2004-05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RBC는 자유계약 선수와 임대생으로 전력을 보강하며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다들 형편없었다. 감비아 출신 윙어 에브리마 실라가 7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RBC는 개막 4라운드에 최하위로 떨어져 끝까지 이 순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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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마! 느그 회장하고 마! 밥도 묵고 어!
풋볼리그의 단일 시즌 최다 패전 기록을 보유한 팀은 34패에 빛나는 동커스터 로버스다. 1998년 5월 2일 0-1로 패한 콜체스터전에선 성난 팬들의 장례식 시위까지 벌였다. 팬들은 113실점, 34득점, 출전 선수 46명, 승점 20점 획득 기록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75년간 머물던 풋볼리그에 작별을 고했다. 켄 리처드슨 회장은 보험금을 노려 홈 경기장에 불을 지른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훗날 징역형). 그런 상황에서도 리처드슨 회장은 벤치에서 선수 선발에 적극 관여했다. 해당 시즌, 감독은 총 4인이었는데, 개중 한 명인 마크 위버 감독의 경력은 동네 복권방 운영이 전부였다. 위버 감독은 팬들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세상에서 이기는 게 제일 싫어요
1980년대 초, 영광스러운 3년 11개월 동안 이비스 스포트는 ‘지구상 최악의 팀’을 자처했다. 무승 행진을 펼치며 브라질 페르남부코 지역 챔피언십에서 최하위에 머물렀으니 그런 호칭이 아깝지 않았다. 마라도나 펌을 한 마우로 샴푸가 “0-5, 0-6, 0-7과 같은 스코어로 패하곤 했다”라며 껄껄 웃었다. 10번 에이스였던 샴푸는 4년 동안 1골밖에 넣지 못했다. 이비스 스포트가 지난해 9월부터 이기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하자, 샴푸는 팀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팀의 3연승을 지켜본 뒤, “계속 이기면, 특유의 색깔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팬인 닐시뉴 필류가 거들었다. “만약 우승이라도 하면 지구상에 ‘최악의 팀’으로 불릴 팀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걱정했다. 이런 분위기, 실화?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월드컵 예선 역사상 가장 일방적 경기가 끝나려는 참이다. 2001년 4월 11일, 미국령 사모아 선수 중 일부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웃음을 터뜨렸다. 31-0으로 끝난 경기에서 혼자 13골을 넣은 호주의 아치 톰슨은 “그 친구들은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라고 말한다. 당시 FIFA랭킹 203위였던 미국령 사모아는 FIFA가 미국 여권을 소지한 19명의 자격을 박탈하는 바람에 선수단 구성에 애를 먹었다. U-20 대표 선수들은 학업과 훈련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코프스하버, 뉴사우스웨일스주 출신의 몇몇은 90분을 뛰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 레인저스를 이끌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호주 선수들이 지나쳤다고 여겼다. 그래서 크레이그 무어와 토니 비드마가 아이브록스로 돌아오자 비신사적 행위에 대 1경기 출전 정지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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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잘못했다고 너무한 것 아뇨??
앨런 딕스 감독은 브리스톨 시티의 1부 승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단 한 번 끔찍한 시즌을 통해 강등한 뒤 13년간 머문 클럽을 떠나야 했다.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심지어 젊은 로이 호지슨(수석코치로 와서 1982년 감독을 대행)도 팀의 쇠퇴를 막지 못했다. 팀은 1982년까지 3시즌 연속 강등을 거듭한 끝에 4부까지 추락했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2월 초, 브리스톨 수뇌부는 현금을 마련하려면 1군 선수 8명과 계약을 해지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몸 바쳐 구단을 살린 영웅은 주장인 제프 메릭을 비롯해 데이비드 로저스, 피터 에이킨, 크리스 갈런드, 트레버 테인턴, 지미 만, 줄리안 마셜이었다. 이들은 ‘애쉬튼 게이트 에이트’로 불리었다. 메릭은 “딸린 자식이 셋이었고, 갚아야 할 대출금도 있었다. 누구도 팀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라고 회상한다.

더비의 ‘100년 전 버전’
여러모로 2007-08 프리미어리그 시즌의 더비 카운티와 닮았다. 승수도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러프버러의 잉글랜드 축구계 역사상 최악의 한 해가 100여 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 정도다. 러프버러는 당시 프로 최하위 리그인 세컨드 디비전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34경기에서 100골을 내줬고, 획득 가능한 승점(68점) 중 8점(1승 포함)에 그쳤다. 울위치 아스널에 0-12로 패한 경기가 최악으로 꼽힌다. 아스널이 러프버러 선수 7명의 여행 경비까지 지원했다. 러프버러는 끝까지 프로 리그 잔류를 노렸다. 하지만 이 안건은 리그 이사회에서 부결되었다. 1900-01시즌부터 지역 리그인 미들랜드 리그로 복귀하겠단 계획을 세웠으나 6월 9일로 예정된 일정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2주 뒤에 리그 참가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러프버러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후반전에 놈들이 61골을 넣었대. 우리는 72골을 넣어야 해!”
승격을 노리는 팀이라면 골 득실이 중요하다. 나이지리아 리그 소속 플래토 유나이티드 피더스는 아크루바전에서 전반을 5-0으로 마쳤다. 하지만 승격하기 위해선 더 많은 골이 필요했다. 그들은 후반에만 72골을 기록하며 최종 79-0으로 승리했다. 같은 시각, 승격 경쟁팀 폴리스 머신은 후반전 61골을 앞세워 바바야로FC를 67-0으로 물리쳤지만, 1분에 4골씩 넣는 득점 페이스로는 부족했다. 결국 득실차에서 밀려 승격 티켓을 피더스에게 내줬다. 나이지리아축구협회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승부조작의 낌새를 알아차린 협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쇼”로 사태를 규정했고, 조사단을 꾸려 “비열한 사건”을 조사했다. 2주 뒤, 4개 구단, 선수 및 직원들이 10년간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아크루바의 한 선수는 홀로 자책골만 3개 기록하는 대담한 행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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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의 말은 법?
0-10으로 패한 경기에 웃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렌헨 단장 레나토 브룬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 11명을 해고하기로 하고, 공개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렌헨은 2014년 11월 스위스 4부의 바닥을 기는 상태였다. 루체른 유소년과 맞대결에서 두 자릿수 실점하며 패한 경기로 9연패를 기록했다. 이 기간에 무려 66골을 내줬다. 브룬의 말에 따르면, “환영받지 못할” 11명은 훈련장에서 패트릭 보시 감독을 조롱했다. 감독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장난을 쳤다고 한다. 수비수 데다이 듀가진은 해고 결정 자체보다는 방식에 더 화가 났다면서 “이건 일종의 인격 살인이다. 0-10으로 패했다고 선수들을 비난해선 안 된다”라고 토로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렌헨은 해당 시즌을 최하위로 마쳤다. 26전 1승 2무 23패 16득점 147실점.

브레친의 ‘정신승리’
‘이기는 습관’이란 게 있다면, 패배도 습관이다. 지난 시즌 스코틀랜드 챔피언십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브레친시티에 물어보라. 1년 전 호기롭게 승격한 브레친은 2017-18시즌 개막전과 폐막전에서 모두 퀸스 오브 더 사우스를 만나 각각 1-4와 1-5 스코어로 패했다. 잔류권과 승점 차는 26점이었다. 4무 32패, 108점 중 4점 획득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작성했다. 스코틀랜드 축구 126년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시즌에 승리가 없는 팀으로 역사에도 남았다. 팬 마거릿 노블(89)은 “나는 웃어야 했다. 그래야 했으니까. 내 딸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내 아들은 도싯(*잉글랜드 남서부 도시)에 산다. 브레친 시티가 지금은 내 가족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런 도즈 감독은 자리를 지켰다. 켄 퍼거슨 회장은 “우리는 절대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우리 선수단은 라커룸에서 사기가 꺾이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아주 잘해줬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포포투UK
writer

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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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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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마이드(40X57cm)] 브로맨스 특집(기성용, 손흥민, 이승우, 황희찬 외) 총 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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