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세기의 스타에서 MLS 구단주로…베컴의 야망

기사작성 : 2018-09-27 11:45

- 축구스타와 셀럽의 경계를 허문 세기의 스타
- 데이비드 베컴이 MLS 구단주가 된 이유는?

본문


[포포투=Graham Parker]

단언컨대 데이비드 베컴만큼 축구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이는 없다. 미국프로축구(MLS) 구단주가 된 일도 우연은 아니다. 단순한 호기심은 더더욱 아니다. <포포투>가 라커룸에서 이사실로 옮겨가는 베컴의 여정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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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이 없었다면 지금 MLS는?
LA갤럭시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 ‘2012 MLS 컵’을 앞두고 데이비드 베컴은 스텁허브 센터 미디어 룸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유의 수줍은 표정과 수년간 연마한 연설 솜씨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지난날을 돌아봤다.

베컴 앞에 높인 테이블에는 취재진의 녹음기와 스마트폰이 흩어져있었다. 인터뷰가 한창일 때 전화기 중 한 대가 진동했다. 인터뷰가 중단된 상황. 베컴은 웃으며 이렇게 농담을 건넸다. “제가 받아도 될까요?” 현대 축구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짤’이 생겨날 뻔한 순간이었지만, 베컴이 전화기를 들지 않으면서 좋은 볼거리를 놓쳤다. “삼성이 아니네요. 받을 수 없겠어요.” (일동 폭소)

이 장면은 베컴이 미국 축구계에 남긴 유산에 대해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한다. 보통의 축구선수가 언론 앞에서 그렇게 편하게 브랜드 윤리를 강조하기가 쉽지 않다. 베컴에겐 오랜 기간 일상다반사였다. 지난 몇 년간 베컴은 사업상 이익과 커리어 관리를 위해 개인 지위를 이용했다. 지금은 직업 윤리의 고결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베컴은 한창 현역 시절 훈련을 마치고 프리킥을 연마했다. 사진작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그만큼의 열정을 쏟았다.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춘 비즈니스 매니저 사이먼 풀러와 세운 전략대로 움직였다. 여러모로 세심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베컴은 모든 일, 예컨대 비평가들과 대화까지도 큰 그림 안에 포함한다.

선수 생활 말년의 베컴을 봤다면 경기력을 비판할 수도 있다. 마치 톰 브래디처럼 느긋하게 패스를 뿌렸다. 동료들에게 뜀박질과 태클을 지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베컴이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티에리 앙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스티븐 제라드, 안드레아 피를로, 다비드 비야, 카카의 MLS 이적도 불가능했다. 우리가 아는 MLS의 트렌디한 이미지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베컴은 MLS에서 그럭저럭 잘했다. 5시즌 동안 MLS컵을 두 번 들었다. 그 공적으로 본인을 ‘MLS 레전드’로 포장할 필요는 없었다. 베컴은 미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그 점에선 백점 만점이다. 지금부턴 베컴의 오른발을 신경 쓰지 말자. 데이비드 베컴은 직접 구단을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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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 이전의 세상

역사적 배경부터 알고 가자. MLS는 모든 권한이 연맹에 집중된다. 모든 선수가 각 팀과 협상하지 않고 리그와 계약을 맺는다. 2007년 초, LA갤럭시에 입단한 베컴도 그랬다. 사실 베컴의 계약서에는 다른 계약서에 없는 옵션이 추가됐다. 향후 2500만 달러를 내면 MLS 신생구단을 창단할 권리를 얻는다는 조항이다. 당시는 무의미한 권리로 보였다. 2500만 달러는 지금도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이다.
MLS는 지금보다 불안한 상태였다. 신생 리그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초보적 실수를 반복했다. 페널티킥 승부차기, 카운트다운 시스템 등등 참신한 시도를 했으나 오히려 리그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911 테러 사태 이후 경제 침체로 2002시즌에는 리그가 반으로 쪼개질 위기에 직면했다.

시즌을 앞두고 MLS 구단주들과 지금의 MLS를 만든 리그커미셔너 돈 가버가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마이애미 퓨전과 템파베이 무니티의 문을 닫기로 했다. 팔을 내주고 몸을 지키는 전략이었다. 남은 10개 팀은 필립 안슈츠 회장의 AEG그룹, 석유업계의 큰손 헌트 가문, 그리고 스포츠 재벌 로버트 크래프의 소유로 통합하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는 TV 중계권 및 마케팅 수익을 올리기 위해 미국프로리그(MLS)와 미국축구협회(US Soccer)의 마케팅 부서가 제휴를 맺어 ‘사커 유나이티드 마케팅’(SUM)을 설립했다.

새로운 협정 아래, 안슈츠 회장은 위기에 빠진 리그의 팀 다수를 소유하게 됐다. 안슈츠 회장은 그 팀 중 한 곳의 경기장에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여기서 LA갤럭시가 다시 등장한다. 도심에 위치한 경기장을 확장해야 한다는 선행 조건에 따라 안슈츠 회장은 갤럭시의 홈디포 센터(현재 스텁허브 센터)를 LA 근교의 카슨 지역에 지었다. 이후 스포츠 투자 파트너들과 함께 지불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몇 년 뒤, AEG의 최고경영자 팀 레이웨크가 집권하던 시기에 LA가 베컴을 데려왔지만, 여전히 리그 발전 속도는 더뎠다. 2002년 경기 침체와 맞물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두 팀은 2005년 레알 솔트 레이크, 멕시코의 빅클럽 CD 치바스 과달라하라에서 파생한 치바스 USA로 재탄생했다. 레알 솔트 레이크는 활기가 넘쳤으나 군소 클럽에 불과했다. 반면 치바스 UAS는 LA갤럭시와 새 홈구장에서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다. 이 팀은 불운했다. 10년 가까이 애매한 행보를 보인 끝에 2014년 말 해체 운명을 맞았다.

그렇다면 MLS는 어떻게 지금처럼 급속히 확장할 수 있었을까? 2007년 1월 11일이 분기점이었다. 그날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슈퍼스타 베컴이 갤럭시 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막후에서는 더 큰 구조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스페셜원 베컴과 풀러의 21매니지먼트는 입단 전 이미 MLS 시장을 오래도록 관찰했다. 입단 당시에 이미 다른 영역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안슈츠 회장은 2007년까지 팀 소유권을 하나 둘 처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2006년 3월 본인이 소유했던 뉴욕의 메트로스타즈를 레드불 그룹에 넘긴 것이 대표적이다. 캐나다의 큰손 스포츠 그룹인 ‘메이플 리프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파트너십스’(MLSE)가 토론토에 MLS 팀을 창단하기로 한 결정이 더 상징적이었다. 토론토는 베컴 입단 소식이 전해진 지 3달여 뒤 리그에 데뷔했다.

팀들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힘든 여정을 겪어야 할 터였다. MLS는 초반 10년 동안 스포츠계에서 일어날 역기능의 전형을 경험했다. 하지만 MLSE의 상징성은 잠재적 투자자들을 끌어내는 효과를 냈다. 어쨌든 MLS 1세대인 안슈츠, 헌트, 크래프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입각해 돈이 줄줄 새는 줄 알면서도 리그를 꾸역꾸역 끌고 갔다. 스포츠 사업가들은 재무제표만큼이나 그들의 유산을 지키려는 습성을 지녔다.

MLSE와 레드불, 그리고 새로운 대형 스폰서인 아디다스 등은 감성적이지 않았다. 리그의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고, 합리적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때 투자했다. 이들의 존재는 슈퍼스타 베컴 이상으로 리그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킬 방아쇠였다. 베컴의 공헌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 문화 자본으로는 경기장을 건설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베컴은 MLS 계약 당시 향후 신생구단의 창단 권리를 단돈(?) 25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베컴은 늘 큰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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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마이애미

스타 파워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4년 1월, 베컴은 카를로스 히메네스 마이애미 시장과 마주 앉아 계약 권리를 행사했다. 베컴은 해변 도시 마이애미를 연고지로 낙점했다. 시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과인 양 호탕하게 웃느라 바빴다. 베컴은 특유의 겸손한 매력을 바탕으로 잘 훈련된 대로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 순간, 프로젝트가 야망만 넘치고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더라도 그게 뭔 대수인가? 디테일은 언제든지 채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다들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감이 생겼다. 마이애미시와 지역 정치권이 베컴의 능력을 감당할지였다. 상황은 1999년 개봉한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영화에서 가상의 NFL 팀 마이애미 샤크스의 구단주로 출연한 캐머런 디아즈는 경기장 자금을 요구하는 자리에서 도리어 시장에게 설교를 듣는 자신을 발견했다: “당신은 이 도시에서 꽤나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차근차근히 해보시죠. 도움을 받기 전에 먼저 스스로 헤쳐 나가보세요.”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베컴 사단은 순전히 베컴의 유명세를 이용해 경기장 부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가 지역의 정치 현실에 부딪혔다. 베컴은 선수 출신의 존재감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학습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베컴은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의 경기를 보러 마이애미 히트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르브론의 눈에 잘 띄는 좌석에 앉았다. 그렇게 킹 제임스가 킹 데이비드를 만났다! 하지만 베컴은 그 시간에 미키 애리슨과 담소를 나누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애리슨은 마이애미 히트와 카니발 크루즈 그룹을 소유한 인물이다. 시내에 위치한 히트의 해변 경기장을 건립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베컴 사단은 2014년 마침내 야망을 실현할 해변 경기장 부지를 찾았다. 똑같은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그 직후 다양한 저항에 부딪혔다. 크루즈 업체부터 중소기업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겁을 먹은 지역 정부도 경기장 신축 자금 지원을 꺼렸다. 이유가 있었다. 마이애미시는 이미 MLS 팀을 잃은 적이 있어 축구팀에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농구장 건립을 위한 애리슨과 마이애미시가 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많은 비난이 따랐었다. 하지만 베컴은 누구보다 비난이 익숙하다. 더 큰 걸림돌은 플로리다 말린스였다.

말린스의 경기장 계약은 일방적 민관 자금 지원으로 인한 재앙의 대명사 격이다. 베컴의 마이애미계획에 관한 모든 것은 당시의 경험의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말린스의 소유주는 경제적으로 침체된 리틀 하바나 지역에 새로운 야구장을 짓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24억 달러에 달하는 이자를 지역 주민이 대신 갚도록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를 열심히 설득했다.

경기장 건립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마이애미 체육계에도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부지가 확정된 뒤에 소유주는 빚에 쪼들린 나머지 최고 선수를 매각하기 시작했다. 말린스는 지금 약체로 연명한다. 납세자들은 여전히 빚에 허덕인다.

‘마이애미 베컴 유나이티드’(MBU)가 지역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의 결정은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카를로스 알바레스 시장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알바레스 시장은 말린스 스캔들로 입지가 좁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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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부지와 관련된 MBU의 비교적 작은 요청조차도 힘겨운 싸움에 직면했다. 베컴 사단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스카우팅 임무와 SNS 포스팅 횟수가 희미해졌다. 시 당국자들은 베컴뿐 아니라 그의 든든한 후원자인 통신 재벌 마르셀로 클라우레로부터도 접촉이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베컴은 실패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리그 측도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돈 가버 커미셔너는 각종 기자회견에서 마이애미 관련 질문을 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베컴을 얼마나 기다려줄 것인가?” 등이었다.

리그는 빠른 속도로 확장했다. AEG그룹과 헌트 가문에 의해 매각 절차가 가속했다. 각각 1개 팀만 남았다. 리그는 젊고 유망한 기업가가 이끄는 그룹과 손을 맞잡았다. 이들도 권리금 2500만 달러를 기꺼이 지불했다.

뉴욕 시티 FC와 올란도 시티가 리그에 가입했던 2015년만 해도 인수금은 1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NFL의 초호화 구단 아틀란타 팔콘스의 소유주 아서 블랭크가 2017년 아틀란타 유나이티드 창단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이 팀은 삽시간에 관중 대박을 쳤다. 2018년 LA의 두 번째 팀이 시내에 있는 경기장에서 창단식을 가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 이름 베컴이 다시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 올랐다.

베컴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세상은 베컴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베컴의 인내심을 간과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퇴장을 당한 뒤 베컴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 시즌에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을 이끌었다.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LA 이적을 발표한 뒤에 파비오 카펠로 감독 아래서 선발 자리를 되찾았고, 처음이자 마지막 라리가 우승 메달을 목에 건 채로 베르나베우와 작별했다. 베컴은 미국에서도 LA갤럭시 서포터즈로부터 야유를 받은 적이 있다. 2009년 AC밀란 임대 결정 때문이었다. 돌아온 베컴은 MLS 우승 타이틀 2개를 안기며 명성을 되찾았다.

베컴의 마이애미 팀은 지난 1월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경기장 부지가 마이애미 오버턴 지역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더 많은 후원자가 손을 내밀었고, 2020년부터 리그에 참가할 계획을 세웠다. 베컴의 인생에서 가장 까다로울지도 모를 프로젝트의 중대 과정이 완전히 끝났다. 부지 물색, 재정, 정치 협상, 유화 정책 따위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 베컴은 친숙한 공공 자산 역할로 다시 돌아와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과 투자자를 더 유치하는 일을 남겨뒀다.

마이애미의 지역 특징도 살펴야 한다. 지난 10년간 MLS 성장을 이끈 쌍둥이 엔진은 밀레니얼 세대와 라틴계였다. 플로리다 남부에서 라틴계의 영향력이 막대해 중요한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이애미 시내는 젊은 청년들의 스타트업 붐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아트 바젤 마이애미는 예술계의 세계적 박람회로 거듭났다. 알렉산더 칼더의 ‘칼더 서커스’ 작품은 부유한 콜렉터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마이애미에서 부동산 투기는 스포츠처럼 여겨진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영입설이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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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물음표가 존재한다. 베컴의 마이애미 팀이 버틸 수 있을까? 베컴의 끈기와 디테일이 간절히 요구되는 이유다. 오버턴 경기장 부지에 관한 법적 분쟁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창단팀의 참신함이 사라진 뒤로도 서포터즈를 유치할 수 있을까? 르브론 제임스가 한창 전성기를 누빌 때에도 히트는 늘 매력을 끌지 못했다. 스타트업 팀답게 무게중심이 베컴에게 많이 쏠린 형국이다. 과시적 소비 패턴이 익숙한 지역에서 충실한 팬을 보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 베컴이 MLS에 입단한 이후 도입된 '지정 선수 규정'(Designated Player: 셀러리캡에서 벗어나는 선수)의 시대는 지났다. MLS에 입성할 때만 해도 리그는 샐러리캡을 엄격히 적용했다. 리그는 베컴의 고액 연봉을 맞추기 위해 규정을 바꿨다. LA갤럭시가 최대 3명까지 ‘지정 선수’로 영입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고, 다른 팀들도 동의했다.

샐러리캡 관련 규정 변화가 팀의 재정적 균형을 가져왔다. 또한 유소년 시스템이 상위권 팀들의 운영 전략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현재 스타 파워 의존도의 축소, 현명한 투자, 지속가능성이 MLS의 핵심 키워드다. 저지대 도시인 마이애미는 지구 온난화 전선에 위치했고, 규칙적으로 빗물 배수관을 넘나드는 만조로 고통받는다. 천하의 베컴이 설령 이 조류를 막을 순 없다. 진짜 평가는 후대의 몫이다. 지금 데이비드 베컴은 당장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포포투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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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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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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