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세미프로->EPL, 동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기사작성 : 2018-08-21 13:47

- 넌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선수들
- 제이미 바디는 사례는 곳곳에 있다
- 축구판 인생역전, 어떻게 완성될까

본문


[포포투= Chris Flanagan]

TV중계권에 막대한 돈이 오가고 세계적 스카우팅 네트워크가 가동되는 이 시대에도 세미프로로 시작해 최정상 리그까지 올라서는 선수들이 있다. 어떻게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능할까. <포포투>가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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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판 동화는 계속된다
트로이 디니는 술에 취해있었다. 본인은 몰랐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이 바로 프리미어리그로 향한 여정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디니는 넌리그(Non-league; 5부 이하)에 있던 고향 클럽 쳄슬리 타운에서 뛰고 있었다. 평범한 경기였다. 적어도 날씨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월솔의 스카우트 믹 헐솔은 원래 그날 다른 경기를 볼 예정이었지만, 경기가 취소되자 아들의 경기를 보러 쳄슬리로 갔다.

디니는 그날 오후 술에 취한 와중에도 7골을 몰아치며 팀의 11-4 대승을 이끌었다. 헐솔은 17세 디니에게 입단테스트를 제안했다. 디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침에 일어나 입단테스트에 응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프리미어리그 클럽 왓퍼드의 주장이 되었다. 2016년 여름, 왓퍼드는 디펜딩챔피언 레스터의 2,500만 파운드 제안을 받고도 디니를 팔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프리미어리그와 하위 리그의 재정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넌리그에서 1부까지 올라서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아카데미 시스템이 정착된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전히 동화는 이어진다. 심지어 깜짝 놀랄 만큼 빈번하다.

넌리그 출신 선수가 잉글랜드 대표팀에 포함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년 전 샘 앨러다이스 시절 제이미 바디와 크리스 스몰링, 조 하트, 미첼리 안토니오 등 4명이 한꺼번에 선발됐다. 이들 중 제이미 바디는 2018러시아월드컵 최종엔트리로 함께하기도 했다. 하트는 콘퍼런스의 슈루즈베리 타운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웨스트 햄에서 뛰는 안토니오는 한때 투팅&미첨 유나이티드의 선수였다.

안토니오는 “자기 직업이 축구선수라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안다”고 주장했다. “나는 매 순간 감사한다. 아카데미를 거치지 않았지만 늘 프로축구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 나는 이곳에 있고, 누구도 내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는다.”

안토니오는 어린 시절 풀럼에 입단하지 못했다. 넌리그에서 1부까지 올라온 선수들은 대부분 거절당했던 아픔이 있다. 때로는 눈앞에서 맞닥뜨린 거절이 전체 여정만큼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케빈 필립스(은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우샘프턴에서 연습생으로 있다가 방출됐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잉글랜드의 모든 클럽에 입단테스트를 보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겨우 세 통이었고, 모두 부정적이었다. 내게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포기하지 않았다. 금요일 밤 친구들이 놀러 나가도 집에 남았다. 나만의 규칙을 스스로 지켰다.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꼬드길 때면 쉽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뛸 경기가 비록 넌리그라도 지켜보는 누군가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믿었다.”

# 넌리그가 선수를 성장시키는 법
사우샘프턴은 필립스가 스트라이커로 뛰기에는 너무 작다고 판단했다. 그는 넌리그에서 라이트백으로 시작했다. 볼독 타운에서 맞닥뜨린 성인 무대는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의 그를 조각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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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나 체격을 중시하는 세미프로에서 뛰면서 자연스레 얻은 교훈도 있다. 에버턴의 윙어 야닉 볼라시에는 올트링엄에서 러쉬던&다이아몬드와 맞붙었던 경기를 기억했다. 그는 상대 수비를 완전히 휘저었다. 감독은 수비수들이 그를 걷어찰까 봐서 그를 먼저 교체했다.

안토니오에게도 익숙한 경험이다. “아카데미 선수들과 비교하면 나는 나이 차가 많은 상대와 뛰었다. 16살 때였다. 그 경기에서 내가 제일 빨랐다. 왼쪽 측면을 따라 달려가는 동안 태클이 세 번이나 들어왔다. 공을 노리는 게 아니라 내 발목을 노리는 태클이었다. 결국 나의 크로스가 우리 팀의 골로 연결되었다. 그러자 경기 중에 누군가 내 발을 밟았다. 넌리그에서는 친절한 대접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강해진다.”

스몰링은 밀월 아카데미와 메이드스톤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을 거쳐 1군 주전까지 발돋움했다. 그는 무서운 성장 속도로 클럽의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당시 메이드스톤의 감독이었던 로이드 흄은 “그를 처음 본 것은 켄트컵 경기에서였다”라고 기억했다. “키가 크고 말랐지만 분명히 재능이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팀에는 스몰링보다 더 강하고 준비도 더 잘 된 듯한 선수가 두세 명 있었다. 여름을 보내고 프리시즌에 돌아왔을 때는 작대기 같던 소년이 사나이로 변해 있었다. 체력 테스트를 하는데 다른 선수들이 모두 나가떨어진 후에도 혼자 계속하고 있어서 우리가 그만하라고 했다.”

스몰링은 메이든스톤에서 뛰며 학교도 계속 다녔다. 넌리그 출신인 던컨 왓모어도 올트링엄에서 학업을 병행했고, 선덜랜드로 이적한 후에도 공부를 계속한 끝에 경영경제학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 일상의 축구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가졌던 선수들도 있다. 찰리 오스틴은 벽돌공이었고, 조지 보이드와 애슐리 윌리암스는 각각 과자점과 드레이튼 매너 테마파크에서 일했다. 크레이그 도슨은 도그&파트리지 펍에서 유리잔을 정리했는데, 그곳에서 코미디언 버나드 매닝의 아들인 래드클리프 보로의 회장을 만나 이 클럽에 합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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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필립스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창고에서 12시간 교대로 일했다. 힘들었지만 그래야만 했다. 왓퍼드의 프로 선수가 된 첫날을 기억한다. 오전 10시 반에야 훈련을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출근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났을 시간이었다. 12시인가 12시 반에 끝나서 훈련장을 걸어나가는 동료들을 붙잡고 ‘이제 된 거야? 끝난 거야?’라고 물었다. ‘그래, 이제는 집에 가도 돼’라고 하더라. 믿을 수가 없었다. 전에는 8, 9시간을 더 근무해야 했었다. 비현실적인 동시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선수들이 아카데미로 올라오면 창고에 보내서 12시간 교대로 일하게 하는 거다. 그럼 프로선수가 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지 않을까?”

현재 더비에서 코치로 일하는 필립스는 21세에 프로선수가 되었다. 토니 북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는 서른에 넌리그를 떠나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1부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다. 그를 플리머스에 영입했던 말콤 앨리슨도 나이를 걱정했고, 클럽 회장을 설득하려고 북의 출생증명서를 28세로 조작하라고 했다.

상위 리그 선수가 되면 명성과 부를 얻는다. 둘 다 함정이 있다. 디니는 왓퍼드에 합류하며 연봉이 크게 오르자 먹고 노는 데에 돈을 지나치게 썼다. 결국, 나이트클럽 밖에서 벌어진 싸움에 휘말려 감옥에서 두 달 반을 보냈다.

안드레 그레이가 힝클리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에는 트위터에 동성애 혐오 발언을 올려도 주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번리에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터트린 지 몇 분 만에 문제의 트윗이 커다란 뉴스거리가 됐다. 그레이는 2012년 발언 이후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넌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려는 의지다. 스몰링이 메이드스톤에서 늘 보여줬던 재능이다.

흄은 스몰링의 옛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넌리그에서 뛰던 시절, 크리스(스몰링)는 리오 퍼디낸드 같지는 않다. 침착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어느 경기에서 그의 실수로 우리가 골을 먹을 뻔했다. 하프타임에 혼을 내며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다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크리스에게는 한 번만 이야기하면 되었다. 언제나 누구의 말이든 어떤 말이든 받아들이려 했다.”

메이드스톤에서 풀럼으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스몰링의 경력은 무척 드물다. 흄은 첼시도 스몰링을 탐냈지만, 이미 마이클 맨시엔이라는 유망주가 있었던 탓에 장기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맨시엔은 지금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뛴다.

선수 대부분은 찬찬히 단계를 밟는다. 미드필더 샘 클루카스(25)는 지난 시즌 챔피언십의 헐에서 뛴 뒤 올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2년 전에는 리그1(3부)의 체스터필드, 그 전해에는 리그2(4부)의 맨스필드, 그리고 2012-13시즌에는 콘퍼런스(5부)의 해러퍼드 소속이었다. 왓퍼드를 거쳐 더비에서 뛰는 윙백 이케치 안야와 마찬가지로 클루카스는 스페인의 글렌 호들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낸 뒤 넌리그부터 1부까지 기어오르는 데 성공했다. 글렌 호들 아카데미가 기회를 얻지 못한 유소년 선수에게 두 번째 기회가 된 것이다. 레스터 시티에 있기 전까지 클루카스는 데번햄스 백화점의 카페에서 테이블을 치웠다.

필립스는 힘겨웠던 시절의 기억이 1부 경험을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고 했다. 선덜랜드에서 30골을 터트리며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했던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은 말할 것도 없다.

“창고에서 일하던 때로부터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르기까지 겨우 4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넌리그 출신으로 골든슈를 받았다는 게 엄청나게 자랑스럽다. 게다가 잉글랜드 선수로는 유일하다. 제이미 바디를 보면 그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기분인지 알 거 같다.”

필립스는 레스터가 챔피언십 우승 시즌에는 바디와 동료로 함께 뛰었고,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에는 코치로 함께했다.

필립스는 “그는 어떻게 대처했냐고? 때로는 악몽 같았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활기 넘치는 성격이라 한두 마디 하지 않고는 넘어가질 않는다. 생기발랄하지만 덕분에 격려하고 일으켜 세울 필요가 없다. 늘 무언가를 갈망한다.”

“사람들은 처음 그를 플리트우드에서 영입했을 때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라운드 밖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았냐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보다 넌리그 출신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더 집중된다. 그렇지만 그가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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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그리 정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통한다
넌리그 ‘날것’의 느낌은 안토니오에게도 있다. 그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 장점이라 믿는다.

“내 플레이 스타일은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운 선수들과 다르다. 다른 선수들은 나처럼 상대에게 달려들지 않고, 등을 대고 다투며 수비수를 압도하지도 못한다. 넌리그에는 이런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제대로 지도만 받으면 빛을 발할 친구들이다. 다만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다리오 그라디는 크루에서 33년간 잉글랜드 최고의 유망주들을 발굴했다. 그는 “지금은 넌리그에 괜찮은 선수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잉글랜드 선수들이 점점 하위 리그로 밀리고 있다. 우리가 바디를 달라고 하자 할리팩스가 10만 파운드를 불렀다.”

이론적으로 아카데미 시스템은 하위 리그 선수들이 상위 리그에 진출하는 경로를 끊어 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로이드 흄은 “리저브팀들은 거의 공을 지키는 플레이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넌리그에서는 모든 경기가 정말 중요하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바디가 뛰는 걸 보면 난생처음 출전한 선수처럼 달린다. 그렇게 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스템을 거친 다른 선수들은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고개를 숙인 채 ‘문제는 나야’라고 생각한다.”

필립스도 “지금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우는 선수들이 직접 축구화를 닦거나 관중석과 화장실, 샤워실을 청소하지 않는다. 모두 훌륭한 기초 훈련이 되는 일들이다”라며 힘을 실었다. “최근 중요한 쟁점은 리저브 리그가 정말 경쟁력이 있느냐다. 아카데미 출신자가 1군에 올라섰을 때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을까? 넌리그에서 선수를 영입하면 이미 성인 축구를 경험한 선수를 얻게 된다.”

“넌리그에서 더 많은 선수가 올라오는 걸 보고 싶다. 차이를 뛰어넘을 선수들은 분명히 있다.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트로이 디니가 10년 전 얻은 기회가 그랬다. 그날 그가 취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골을 터트렸을지 상상해 보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일러스트=포포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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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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