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알렉스 퍼거슨 비화: 명장이 되는 비결

기사작성 : 2018-08-14 14:00

- 세계적인 명장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 알렉스 퍼거슨의 힘은 디테일에 있다
- 알려지지 않은 퍼거슨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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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lec Fenn 외]

세계적인 명장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맞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7년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쓸어 담은 트로피와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 불같은 성질머리. 그게 다일까? 오랜 시간 명장의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디테일’에 있었다. <포포투>가 측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퍼기(Fergie)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1 아르센의 구세주?(찰리 니콜라스, 친구)
알렉스가 내게 맨유 감독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와는 1985년 스코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사이가 돈독해졌다. 대표팀에 있을 때 그가 내게 아스널의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비밀엄수를 맹세했다. 아스널 소속이었던 나는 클럽에서 그의 지도를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와 함께라면 이전까지 막막했던 나의 아스널 생활에 환하게 볕이 들 게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그는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제안을 받았어. 거기로 갈 거야”라고 말했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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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어드라이어의 탄생(크리스 터너, 맨유 골키퍼 1985~1988)
악명 높은 헤어드라이어의 첫 등장은 1986년 11월 29일이었다. 부임 3주차에 우리는 윔블던에 1-0으로 패했다. 퍼기는 정말 미친 듯이 퍼부었다. 그는 우리가 안일한 태도를 벗고 무자비하게 싸워야 한다고 소리쳤다. 볼키핑이나 몸싸움이 약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날 희생양은 라이트백인 존 시베백이었다. 그는 알렉스의 고함과 침을 고스란히 얼굴로 받아야 했다. 존은 내가 만난 가장 착하고 조용한 친구 중 하나였다. 그래서 더 불쌍했다. 알렉스는 우리를 자극하기 위해 반응을 유도해야 했다. 위대한 감독의 전술 중 하나였다.

#3. 알렉스 퍼거슨 vs 폴 맥그라스 (비브 앤더슨, 맨유 수비수 1987~1991)
나의 맨유 첫 풀 시즌에 하틀풀 원정이 있었다. 우리는 전반전에만 0-5로 깨졌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선수들 가방부터 라커룸 안에 있는 모든 물체들이 붕붕 날아다녔다. 이윽고 내 코앞으로 그의 얼굴이 훅 들어왔다. 그의 이마 핏줄이 터질 듯이 불끈거렸다. “네가 맨유 선수라고 생각해? 넌 수치야!” 다음 대상은 폴 맥그라스였다. 그는 폴과 거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들이대고 똑같이 소리쳤다. 온화한 성품의 폴은 아일랜드 억양으로 “고함치지 않으셔도 돼요. 코앞에 있어서 잘 들리거든요”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일동 얼어붙었다.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안돼애애애애애! 제발 죽은 듯이 듣기만 해, 폴, 불난 집에 기름 붓지 말고!’ 알렉스는 짐작대로 더 노발대발했다. 우리는 결국 0-6으로 대패했다. 폴은 이듬해 여름에 팔렸다.

#4. 속전속결(리 샤프, 맨유 윙어 1988~1996)
토키 견습생이던 16세 때였다. 내 경기를 본 한 스카우트가 알렉스 퍼거슨에게 “괜찮은 애가 있는데 한 번 보시죠”라고 전화했다. 금요일 저녁 퍼기가 아치 녹스 코치와 함께 우리 경기를 보러 왔다. 토요일 아침 그는 나의 맨체스터 이적에 동의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심지어 나는 토요일 새벽 2시가 돼서야 그가 경기를 보고 갔다는 걸 알았다. 감독과 사무국장이 내 방에 찾아와 맨유가 나를 원한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17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맨유에 입단해서 바로 1군에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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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제력을 의심하지 마라(패트릭 바클레이, 기자)
1990년 메인 로드에서 맨유와 올덤 애슬레틱의 FA컵 준결승 재경기가 열렸다. 하프타임에 기자단과 클럽 임원, 기타 관계자들이 연회장에서 어울리고 있었다. 알렉스가 들어왔다. 잠깐 쉬려는 목적이었다. 평소 우리는 아주 무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가 나를 보더니 “개자식아”라고 말했다. “뭐라고요?”, “망할 개자식아.” 그러고는 사라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몇 주 후에 엘런드 로드 휴게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다가갔다. 참으면 울화통으로 죽을 것 같아서 따졌다. 나중에 집에 가면서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자존심은 세운 것 같아서 후련했다. 다음 시즌에 나는 맨유의 컵위너스컵 경기를 보기 위해 헝가리에 갔다. 하필 취재진이 클럽과 같은 호텔에 묵었다. 바에서 기자 몇 명과 맥주를 마시는데 퍼거슨이 들어왔다. ‘올 것이 왔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종일관 웃으며 나를 포함한 전원에게 술을 돌렸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가 화를 낸 이유는 그 올덤 경기 전에 내가 쓴 기사 때문이었다. 나는 퍼기가 올드 트래퍼드의 장악력을 잃고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었다. 퍼기에게 ‘개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고 갚아 주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의 통제력을 의심하면 곤란해진다.

# 6. 팬 미팅은 언제나 기쁘게(앤디 미튼, 팬진 편집장)
1991년 여름, 16살이던 나는 알렉스에게 편지를 썼다. ‘뭉치면 산다(United We Stand)'라는 팬진 편집장으로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기꺼이 돕겠다고 답장했다. 나는 빨간색 대형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팀 호텔을 찾았다. 녹음 버튼을 누르자 그가 웃기 시작했다. 기자들에게는 대개 딱딱했지만, 나는 어린 팬이었으니까. 그는 선수들을 불러 모아서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라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가량 대화한 후 더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가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 긴 시간을 오롯이 할애해준 명장과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멍청했다!

#7. 집, 차, 애인, 개와 생이별한 리 (리 샤프, 맨유 윙어 1988~1996)
내가 당한 최악의 헤어드라이어는 리버풀전 하프타임 때였다. 그는 나를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말했다. 나는 하숙집에서 지내야 했다. 버밍엄에서 온 여자친구도 집으로 돌아갔고, 결국 헤어졌다. 차와 개까지 팔았다!

#8. 성공적인 스카우팅 (폴 맥기네스, 아카데미 감독 1992~2016)
맨유 초기에 이끈 핵심 변화는 브라이언 키드에게 지역 스카우트를 일임한 것이었다. 클럽은 더 많은 스카우트를 단행했고, 그 분야에서 더 활기를 띠었다. 알렉스는 강력한 지원과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했다. 그는 “이 선수 좀 봐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해당 선수를 1군 훈련에 전격 합류시켰다. 유소년과 지역 출신자들의 재조명은 맨유의 정체성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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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퍼기의 아이들 (폴 파커, 맨유 수비수 1991~1996)
퍼기는 그 아이들이 모두 성공할 거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나와 폴 인스, 데니스 어윈 같은 친구들에게 그 친구들(니키 버트,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데이비드 베컴 등)이 곧 우리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말했을 뿐이다. 거듭거듭. 그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결국 그가 옳았다.

#10. 스트레스 조절 능력(폴 맥기네스, 아카데미 감독, 1992~2016)
알렉스의 대단한 점 중 하나는 성적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유소년팀 같은 것으로. 맨유가 26년 만에 리그 타이들을 거머쥔 시즌(1992-93)에 출발이 저조했다. 3번째 경기를 비긴 후 18위까지 떨어졌다. 그 경기 종료 10분 후에 그가 내게 와서 “폴 깁슨 번호 좀 줘”라고 말했다. 폴은 16세 이하 골키퍼였는데, 그날 오전에 코가 부러졌다. 알렉스는 그의 부모와 통화했다.

#11. 자상한 퍼기(디온 더블린, 맨유 공격수 1992~1994)
1992년 다리가 골절되었을 때 감독이 내게 “그래도 유럽 여정에 동참하고 싶다면 비행기에 두 자리를 마련할 테니 걱정 마라”라고 말했다. 나는 사타구니에 쭉 깁스를 한 채 거의 옴짝달싹도 못 했다. 그는 또 자기 집에서 우리 집까지 차를 몰고, 거실까지 들어와서 내게 직접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넸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뭐였냐고? 수건이었다.

#12. 폰은 꺼주세요(폴 파커, 맨유 수비수 1991~1996)
언젠가 스티브 부르스의 아내가 허리 수술로 입원했다. 그는 경기 중에 폰을 라커룸에 뒀다. 부진한 전반전을 끝내고 하프타임에 모두 라커룸에 앉아 있는데 그의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일순 싸늘한 침묵과 함께 브루스가 고개를 숙였다. “접니다.” 감독은 그에게 달려들어 폰을 낚아채고 벽에 내동댕이쳤다. 폰은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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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 잔 더 하실래요? (디온 더블린, 맨유 공격수 1992~1994)
올드 트래퍼드 초기 경기. 나는 라이언 긱스와 그라운드를 떠났다. 사방에 팬들이 있었다. 당시 긱스의 인기는 최고였다. 나는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고, 긱스도 도망가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뒤쪽 통로와 주방을 거쳐 각종 문을 통과한 후에 세탁실에 도달했다. 거기서 세탁기 뒤에 앉아 있는 알렉스 퍼거슨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는 귀가 전에 세탁실 여직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라이언 긱스, 에릭 칸토나, 혹은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4부)에서 막 건너온 선수, 세탁실 여직원 등 감독은 클럽 식구들과 항상 개인적인 친교를 나누었다.

#14. 천재적인 암기력(데이비드 메이, 맨유 수비수 1994~2003)
감독의 가장 특출한 점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을 완벽히 기억하는 능력이었다. 차(茶) 담당자와 세탁실 직원, 선수들 아내까지, 그는 모르는 이름이 없었다. 은퇴 10년 후 몰타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가 여전히 내 아내의 이름을 기억해서 깜짝 놀랐다. 내 아이들 이름까지 일일이 대며 안부를 물었다. 사람을 기억하는 그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15. 현상 유지는 후퇴다(폴 맥기네스, 아카데미 감독 1992~2016)
리그 우승 다음 날, 나는 그와 함께 차를 타고 클리프 훈련장에서 올드 트래퍼드로 향했다. 그는 이적 관련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1분도 쉬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종료 휘슬과 함께 리그 우승이 결정되자 그는 곧장 다음 업무를 떠올렸다. 일벌레였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새 선수와 스태프를 영입하며, 새로운 구상을 떠올렸다. 리그에서 우승하면 두세 명을 영입했다. 덕분에 모두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클럽의 어떤 부분에도 정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16. 아드님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루크 채드윅, 맨유 윙어 1999~2004)
감독의 위대한 점은 상대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14살 때 나는 맨유와 노팅엄 포레스트의 시범경기에 출전했다. 기차를 타고 집에 와보니 그가 이미 내 어머니에게 나와 계약하고 싶다고 통화를 마친 상태였다. 집에 도착해서 그런 소식을 듣는 기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황홀하다. 심지어 그는 9세, 10세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가족 안부까지 챙겼다. 그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능력자였다. 덕분에 나는 엄청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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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트레블 달성은 과거다(빌 베스윅, 스포츠심리상담사 1999~2001)
1999년 여름 프리시즌 첫날이었다. 트레블 달성으로부터 불과 몇 주 후였다. 선수 한 명이 ‘트레블 달성’이라고 적힌 야구방망이를 한 자루 가득 들고 나타나서 나머지 선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걸어와서 그것들을 회수한 후 다시 자루에 담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미 지난 일이야. 끝났다고. 이번 시즌에 집중하자.” 그는 항상 승리에 집중하길 원했다.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일탈을 근절했다.

#18. 명예를 걸고 선수를 지키다(대니 히긴보텀, 맨유 수비수 1997-2000)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나와 로니 월워크가 벨기에축구협회와 곤경에 처했을 때 그가 우리를 도와줬다. 1999년 우리는 로얄 앤트워프에서 임대로 뛰었다. 플레이오프 경기 종반에 사고가 있었다. 로니와 나는 각각 심판의 목을 조르고 그를 머리로 들이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첫 공판에서 나는 1년, 로니는 평생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항소심에서 알렉스가 신원 보증인으로 날아왔다. 그는 우리에 대한 극찬을 토했다. 그럴 의무가 없었는데도, 맨체스터에서 트레블 방어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가 우리를 위해 자기 명예를 걸어줬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우리를 믿었다. 1군에서 많이 뛰지는 못했지만, 맨유에 9년가량 몸담았기 때문에 감독은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의 징계는 현격히 감량되었다. 맨체스터로 복귀했을 때 감독은 우리에게 4년짜리 새 계약서를 내밀었다.

#19.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폴 스콜스, 맨유 미드필더 1992~2013)
뉴캐슬 원정에서 교체 출전한 적이 있었다. 나는 1-3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후반 중반 투입됐다. 우리가 3-3까지 추격했다. 아마 내가 두어 번 기회 중 하나를 놓쳤던 것 같다. 나는 공을 멀리 차버렸다. 뉴캐슬이 반격해 결국 우리는 3-4로 패했다. 경기 후 감독의 머리에는 딱 하나만 각인됐다. 내가 멀리 차버린 공. 나는 호되게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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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역할 분담과 전권 위임(빌 베스윅, 스포츠심리상담사 1999~2001)
함께 일해본 모든 감독 중에 자기 역할을 가장 명확하게 파악한 이가 퍼기였다. 대부분은 지도와 관리 사이에서 맴돌며 감독 임무를 정확히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훈련장에서 훨씬 더 여유로웠다. 알렉스는 좋은 대표였다. 그는 코치와 다른 스태프를 믿고 전권을 위임했다. 그는 스태프들의 전문성을 믿었다. 그 역시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였다.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 쫓겨날 일은 없었다. 덕분에 승리에 집중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는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 이길 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 그 다음 경기를 위한 선발진을 미리 정했다. 그의 머리에는 언제나 3경기에 출전할 팀이 들어 있었다.

#21. 인간 관찰자(믹 클레그, 맨유 트레이너 2000~2011)
내가 아는 그는 최고의 관찰자였다. 평소 그는 아침 7시에 출근했다. 그의 사무실에서는 주차장이 내려다보였다. 그는 선수들이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는 걸 일일이 지켜보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춤추듯이 경쾌한 발걸음이 있는가 하면, 전화로 아내와 다투거나 기운 없어 보이는 선수, ‘훈련을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듯 가슴이 부푼 선수 등 각양각색이었다. 전원이 집합해서 워밍업을 끝낸 후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기타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그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훈련에 동참하지 않고 경기장 주변을 돌며 오로지 관찰만 했다. 그렇게 선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했다. 그는 언제든 최상과 최악의 컨디션을 가려낼 수 있었다.

#22. 이겨서 미안해(대니 히긴보텀, 맨유 수비수 1997~2000)
2005년 사우샘프턴에서 뛸 때 시즌 마지막 상대가 맨유였다. 잔류하려면 꼭 이겨야 했다. 일주일 뒤 맨유는 FA컵 결승전에서 아스널과 대결할 예정이어서 2군을 내보낼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니었다. 우리는 그 경기를 2-1로 패해 강등됐다. 경기 후, 알렉스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안으며 “대니, 미안해. 보는 눈이 많아서 2군을 쓸 수가 없었어“라고 위로했다. 굳이 사과까지 할 필요가 없었지만, 옛 제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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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장난을 받아들이는 여유(찰리 니콜라스, 친구)
1986년 월드컵 개막을 며칠 앞두고, 퍼기와 아치 녹스, 월터 스미스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코칭스태프가 야간 외출에 나섰다. 스티비 니콜과 나는 감독의 방을 각종 장비로 가득 채우면 진짜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우리는 변기 시트 위에 셀로판지를 깔고, 침대의 나사까지 모조리 풀었다. 모두 고전적인 장난이었다. 다음날 당연히 추궁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늘 그가 범인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수년 후에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러 올드 트래퍼드를 방문했다. 이후에 술 한잔 하려고 그의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난데없이 “네 짓인 거 다 알아”라고 말했다. 나는 “뭐가요?”라고 물었다. “그 장비랑 셀로판지 붙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그러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는 정말 따뜻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물론 완강한 꼴통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너그러웠다. 그의 인생은 사랑과 온기로 가득했다.

#24. 축구 괴물의 탄생(토니 풀리스, 라이벌 감독)
나는 스토크를 승격시킨 후 프리미어리그 감독 두어 명과 향후 진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알렉스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홈경기 승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 너의 강점을 살려라. 다른 사람이 뭐라든 간에 신경 쓰지 마라”라고 했다. 그 말이 뇌리에 깊이 박혔다. 우리는 홈경기 철통 방어를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아르센 벵거는 경기장 크기를 불평했다. 잔디가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감독도 있었다. 우리 플레이 방식과 로리 델랍의 초장거리 스로인에 대한 불평도 많았다. 알렉스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던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였다. 아마 그는 내가 그의 조언을 따랐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이기는 건 끔찍하게 힘들었다. 우리가 이겼다면 그가 뭐라고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25. 이젠 감독이라고 부르지 마(데이비드 메이, 맨유 수비수 1994~2003)
지도자 은퇴 직후 골프장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감독님, 잘 지내시죠?”라고 물었다. 그는 “아냐, 아냐, 이제 감독이 아니야. 그냥 알렉스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알렉스라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감독으로 불린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인재관리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선수들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효과적인 질책과 동시에 선수들을 적절하게 품어줄 줄 알았다.


사진=포포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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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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