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축구 역사상 가장 황당한 해고 20건

기사작성 : 2018-08-08 13:38

- 해임, 부임, 해임, 부임, 해임, 부임
- 감독 자리는 돌아오는 거야?
- 축구계 별별 해고 사연들

본문


[포포투= Nick Moore 외]

생일이다. 직장 동료들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와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그리고 건네는 한마디. “당신, 오늘부로 회사에서 잘린대.” 이렇게 황당할 데가. 축구판에선 종종 이렇게 터무니없는 해고를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 찬찬히 읽어보면 안데르손 감독도 등장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인천유나이티드의 그 감독,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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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떼가 등장해서 소 떼라 했을 뿐인데…

스코틀랜드 출신인 이피 오누오라가 에티오피아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1년 3월 대표팀의 훈련 캠프에서 그가 목격한 그라운드는 일반적인 잔디 상태와 아주 거리가 멀었다.
허더즈필드와 스윈던, 질링엄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오누오라는 “사람들이 나와 선수들을 수풀 사이로 데려갔다. 바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나마 평평한 지역에 도착하자 그들이 ‘여기예요’라고 했다. 그때 나는 ‘그라운드 한가운데에 있는 소 떼가 나한테만 보이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훈련 전에 우선 소 떼를 내보내야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피는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 0-4로 패한 뒤 소를 입에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에티오피아축구협회 대변인 메라쿠 아옐레는 “대표팀 훈련장에 소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라고 반격했다.
오누오라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1년 후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일기를 공개했다. 제목은 ‘그라운드에 있던 소 떼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바로 지금!’

# 구린내 나는 이별

2013년 가 스페인과 나이지리아의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하프타임이 되자 진행자 마크 채프먼은 왼쪽에 있는 거스 포옛을 바라보며 “당신과 브라이턴 앤 호브 알비온의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포옛이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그는 “가 대단한 뉴스거리를 얻은 것 같다. 그렇지 않나?”라고 비아냥댔다. “여기에 온 이후 나는 문자나 전화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니다.”
브라이턴이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라이벌 크리스털 팰리스에 패한 이후 문제가 불거졌다. 포옛은 2차전에서 0-2로 패한 뒤 구단 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홈 팬들에게 종이 응원 도구 2만8000개를 나눠준 결정을 맹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원정팀 라커룸 바닥에 똥을 발라놓은 장본인도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정말 구린내 나는 이별이었다.

# “여보세요? 이사님이시라고요?”

시청자 참여형 축구 프로그램은 기이한 특성을 보인다. 뜨거운 열기로 열정과 헌신을 논하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2011년 터키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한 사카리아스포르의 감독 사반 일디림도 팬들의 성난 외침을 듣는 게 전부일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사회의 일원인 시한 일디란이 직접 전화를 걸어 상황이 심각해졌다. 시한 이사는 방송 중 전화 연결로 “사반은 클럽을 부끄럽게 했다. 바로 해고다!”라고 선언했다. 당황한 감독과 프로그램 진행자가 함께 항의했다. 소용이 없었다. 거 왜 방송욕심 부려서,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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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 전에 해줄 일이 있는데…”

실직은 전혀 즐겁지 않다. 거대한 주택과 카리브해의 섬 중 원하는 곳에 투자할 만한 거액의 퇴직 보상금을 받는 투자 상담사이거나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해고되어 곧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행운일 수 있다.
칼 플레처는 2013년의 첫날 플리머스 아가일의 구단주 제임스 브렌트 회장에게 잘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경기 후 기자회견 참석 의무를 다해야 했다. 웨스트햄과 크리스털 팰리스, 아가일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이 남자는 4부 경기에서 브리스톨 로버스에 2-1로 승리한 뒤 “브렌트가 막 결정한 일인데 오늘이 내 마지막 경기다. 그러니까 난 해고된 거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울음이 터졌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도전해보고 실패하는 사람이고 싶다.”

# 부임, 해임, 부임, 해임, 부임, 해임

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에 연고를 둔 치파 유나이티드에서 로저 시카카네가 겪은 일들은 설명이 어렵다. 그는 3년 사이 네 번이나 이 클럽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매번 아주 짧게 팀을 지휘했고, 구단 이사회와 싸운 후에 해고되었다. 두 번째 해고 후 그는 구단 이사회를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며 공격했다. 그는 “팀이 승리해도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방해하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흑인 지도자를 믿지 않는다. 내게 스카우트 자리를 제의했지만 감독이 스카우트로 간다는 건 쪽팔리는 일이다.”
2015년의 파국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술 냄새를 풍겼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 하지만 구단은 증거가 없었다고 바로 인정했다. 시카카네는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이 팀을 몇 번이나 구했나?”라고 비난했다. 구단은 그에게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시카카네는 탄다 로얄 줄루 FC로 자리를 옮겨 1년 반 동안 감독직을 유지했다.

# 까마귀도 헤엄 잘 치는 거 알아?

방랑벽이 심한 브라질 감독들의 기준에서도 리스카(45)는 가혹한 두 시즌을 보냈다. 2016년 3월 세아라에 퇴짜 맞았고, 9월에 조인빌르에서 해고되었고, 12월에는 창단 108년 역사상 첫 강등된 인테르나시오나우에서 잘렸다. 이듬해 9월에는 코치와 주먹다짐을 벌여 파라나에서 해고되었다.
파라나의 레오나르두 올리베이라 회장은 리스카 감독이 코칭스태프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리스카가 지역 언론에 “나를 미치광이라 부르는 건 그만두라. 정신적 타격이 크다”라고 호소한 직후 벌어졌다. 구단 마스코트 의상을 입고 강에 뛰어 들어 승격을 기원하겠다는 공약을 보도하는 언론 논조가 그에게는 불만이었다. 파라나의 마스코트는 푸른 까마귀였다. 감독 목숨이 파리에 버금가는 브라질답게 리스카는 2018년 또다른 팀을 찾았다. 크리시우마를 거쳐 다시 세아라에서 감독직을 맡고 있다.

# 감독 자리는, 돌아오는 거야~

호사가들은 셀럽 부부가 사랑과 결혼, 이혼 그리고 재결합 등을 연출하는 과정을 구경하는 맛을 사랑한다. 욱하는 성격의 찬코 츠베타노프 감독은 불가리아 구단 에타르의 페이지 일한리 회장과 비슷한 관계를 맺었다. 한 시즌에만 세 번이나 해고된 것이다.
첫 해고는 2012년 9월 불가리아 1부 경기에서 베로에 스타라 자고라에 패한 직후였다. 팬들 항의로 츠베타노프가 복귀했지만, 한 달 뒤 일한리 회장은 그를 다시 해고했다. 다시 한번 팬들이 항의했고, 또 복직되었다. 한 달 뒤 완전한 파국이 찾아왔다. 회장은 감독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주장하며 해고했으나 곧 꼬리를 내렸다. 츠베타노프는 현재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에서 일한다.

# 페이스북에서 확인한 결별통지서

페이스북은 폐해도 많다. 10년 동안 한번도 본 적 없는 동창의 아이 사진을 매일 봐야 한다. 난데없는 정치 프로파간다를 퍼트리는 녀석도 있고, 업무 출장 간 녀석의 온갖 여행 허세도 참고 봐야 한다. 어디선가 주운 명언을 평생 기억해온 것처럼 떠드는 녀석도 있다.
드리나 즈보르니크의 블라디카 페트로비치 감독의 사정은 이렇다. 2015년 9월 어느 날, 페이스북에 로그인하자마자 그는 자기 팀 공식 페이지에서 ‘감독과 결별하기로 했다’는 포스팅을 발견했다. 페트로비치는 품위 있게 반응했다. 그는 ‘악플’ 대신에 “알려줘서 고맙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팬들이 남긴 “진작 그랬어야 했다”라는 댓글에 ‘좋아요’도 눌렀다. 그의 출현은 동유럽에서 입소문을 탔다. 페트로비치 감독은 “재미로 달았던 댓글이 ‘좋아요’가 그렇게 많이 달릴 줄은 몰랐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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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인데요”

어른이 될수록 생일에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뚜렷이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특별한 일이 벌어져도 곤란하다. 2003년 4월 어느날, 트레버 프랜시스 감독은 크리스털 팰리스로부터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날은 그의 49번째 생일이었다.
팰리스의 사이먼 조던 당시 회장은 자서전에서 “그는 그냥 차분하게 자리에 앉더니 ‘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인데요’라고 했다. 나는 ‘생일 축하해요, 트레버’라고 말하면서 해고통지서를 건넸다”라고 담담하게 적었다.
생일을 맞은 남자는 재빨리 훈련장으로 향해 소식을 전했다. 프랜시스는 “이봐, 친구들, 나는 잘렸어. 여름휴가 즐겁게 보내”라며 씩씩댔다. 아, 직전 주말에 팰리스가 그림즈비 원정에서 1-4로 패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 “바보 같은 악마 놈. 내가 죽여주마”

루마니아의 레오 그로자부는 거친 입과 불같은 기질로 악명이 높다. 그의 병적인 행동은 FC 보토샤니를 지휘하던 2015년 정점을 찍었다. 팀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래의 발언들이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았다.
“플라마다! 이 천치!”
“미론, 바보 같은 악마 놈아. 내가 죽여주마.”
“보르데이아누, 넌 뇌가 비었어!”
“파타셰, 똥멍청이야, 죽도록 때려주마, 한심한 놈.”
구단주 발레리우 이프티메 회장은 “감독에게 좀 더 긍정적이 되라고 했다”라는 절제된 표현으로 사태를 정리했다. 시즌 후반에 결국 그로자부 감독은 해고되고 말았다. 끝이 아니었다. 1년 뒤 그로자부 감독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기자회견 막말(“이 피클 좀 봐라. 루마니아 축구계가 딱 이 모양이다!”)과 선수에게 가한 주먹질을 추가했다.

# 선수 지갑을 슬쩍한 감독

친구들과 술에 취해 걷는데 길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다. 주워서 안을 보니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술도 취했겠다, 눈 딱 감고 이 카드로 2차나 실컷 즐겨보자!! 뭐,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누구나 악마 한 마리 정도는 품고 사니까.
프레코 자그레브의 요조 가스파르 감독은 악마의 속삭임에 홀라당 넘어갔다. 2013년 4월 프레코와 훈련 시설을 공유하던 NK 스파르타 에렉트라 소속 선수의 가방에서 삐죽 튀어나온 지갑을 슬쩍 했다. 문제는 이 카드로 술값을 계산하는 모습이 CCTV에 잡힌 것이다. 결제가 거부되자 가스파르 감독은 그날 오후 다른 곳에서 같은 술을 또 사려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가스파르 감독은 곧 구단에서 해고되었다. 크로아티아 A매치 출전 기록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술이 고팠나 보다.

# “당신은 해고... 이제 승진이야!”

셀틱과 스코틀랜드의 전설인 재키 맥나마라는 평범한 감독 이상의 인물이다. 발을 소재로 시트콤 ‘치료실’(The Therapy Room)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물론 그의 비범한 재주는 여타 지도자들처럼 변덕에 자주 희생된다는 운명과는 상관없었다. 요크 시티에서 그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2015년 11월 당시 그는 4부에 있던 요크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부진이 이어진 끝에 강등되고 말았다. 이듬해 10월에는 5부의 만년 하위팀인 기즐리에 0-6으로 패하며 꼴찌로 추락했다. 맥나마라는 계약상 떠나야 했지만, 새 사령탑이 선임될 때까지 임시 감독으로 남았다.
게리 밀즈가 후임자로 결정된 뒤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맥나마라는 짐을 챙기는 대신 단장으로 승진했다. 구단은 “재키는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에 집중하게 된다. 홍보 전략과 행정관리, 아카데미, 재단, 광고를 책임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것도 시트콤 소재로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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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격 후유증의 끝판왕

요른 안데르센(노르웨이). 팀을 승격시킨 뒤 프리시즌에 해고된 감독이라는 아주 희귀한 타이틀의 보유자다. 2008년 여름 그는 위르겐 클롭이 떠난 마인츠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첫 시즌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며 분데스리가 승격을 이뤘다. 그렇지만 1부 첫 시즌을 준비하면서 팀의 플레이스타일을 놓고 이사회와 싸웠다. 마인츠의 하랄트 스트루츠 회장은 “우리는 안데르센에게 클럽의 철학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설명했다”라고 주장했다. 요른은 “협력 관계를 보는 시각이 더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라고 반박했다.
노르웨이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였던 그는 분데스리가 개막 6일 전에 해고되었다. 다음 직장이었던 그리스의 라리사에서도 불행이 이어졌다. 분노한 팬들이 구단 버스에 돌과 요구르트를 던졌다. 그곳에서 24일밖에 버티지 못한 안데르센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다. 북한 국가대표팀. 지금은 인천 유나이티드 사령탑을 맡고 있다.

# 내 머리카락이 아니었다니까!

콧수염과 풍부한 표정을 자랑하는 크리스토퍼 다움은 독일 축구계의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다. 그는 1992년 유러피언컵에서 유명해졌다. 슈투트가르트의 감독이었는데 경기에 부적격 선수를 기용해 ‘크리스토퍼 바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평상시는 유능한 지도자다. 바이어 레버쿠젠의 비상을 이끌었고, 2000년에는 독일축구협회와 당시 임시 감독이었던 루디 푈러의 후임으로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불편하게도 당시 활개를 치던 타블로이드 매체들이 코카인 술판에 그가 연루되었다고 보도했다. 머리카락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다움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아니었다며 검사 결과를 부인했다. 징역형이 임박해서야 그는 혐의를 자백했다. 대표팀 감독직은 시작하기도 전에 저 멀리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펠러가 독일 대표팀을 맡아 2002년 월드컵 결승까지 진출했다. 다움이 가장 최근에 지휘한 팀은 루마니아 대표팀이었다. 그곳에서도 언론과는 사이가 나빴던 모양이다. 그는 신문이 “생선을 포장할 때만” 좋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렇다.

# 힙합 전사가 아니라 감독이 필요하다구!

2016년 심판과 맞서다 노츠 카운티에서 경질된 존 셰리던의 고함에는 분명히 재즈 스캣 같은 느낌이 있었다. 주심 에디 일더튼을 향한 욕설은 “너는 X나게 수치스럽고, X나게 쓸모 없어! 오늘 제대로 한 짓이 아무것도 없잖아! X나게 부끄러운 줄 알아! X같은 쓰레기야”라고 시작됐다.
놀라운 주장이 뒤따랐다. “우리 애들은 너 때문에 X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나 받지 못할 거야.” 대기심을 향한 욕지기도 잊지 않았다. 매튜 도노휴에게는 “너도 진짜 X같은 새끼야. 이 병신아, 내가 때려눕혀 주마”라고 으르렁댔다.
눈부시게 천박했던 ‘쓰레기 랩’은 팀의 9연패와 함께 감독을 해고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걱정 말라. 그의 열정에 감명을 받은 올덤 애슬레틱이 바로 그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다. 셰리던도 X나게 기뻤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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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트로 주문하면 더 싼 거 알아?”

보통 구단주는 감독을 해고하기 전에 개인 면담을 만든다. 사무실로 따로 불러 남들 눈을 피해서 슬픈 소식을 전달하는 식이다. 스코틀랜드 하부 구단 카우덴비스의 회장에게는 그런 배려심이 없었다. 피터 코맥 감독은 동네 햄버거 푸드트럭으로 불려 나와 해고 통보를 들었다.
선수 시절 코맥은 리버풀과 두 차례 리그 정상에 섰고 키프로스 클럽 아놀소시스 파마구스타와 보츠와나 대표팀을 지휘했었다. 그저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가 이 구단에 온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 그는 아직 한 경기도 치르지 않은 터였다. 해고 사유는 선수들의 반발이었다. 신임 감독이 너무 많은 걸 너무 빨리 바꾸려 한다며 반기를 들었다.
2000년 코맥은 이 해고에 관해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내가 바보로 보이게 됐다”라면서 분개했다.

# 박치기왕 노버트

유튜브에서 이미 유명한 장면이다. 한 선수가 상대 감독 앞에 선다. 감독도 상대 선수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댄다. 코가 닿자마자 감독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판단에서 약간 늦은 선수가 뒤따라 넘어진다.
2005년 12월 촬영된 주인공은 쾰른의 알베르트 스트라이트였다. 팔을 휘두르는 걸 보면 그는 체력이 매우 약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뒤스부르크의 노버트 마이어 감독이 이후 그라운드에서 장난질을 ‘그가 시작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뒤스부르크를 승격시켰던 마이어는 해고되었고 클럽도 곧 그의 뒤를 따랐다.
프리미어리그는 영상 자료를 근거로 시뮬레이션 행위를 사후 처벌하고 있다. 구단 측에서는 불만이 많은데 이 사건을 참조하면 그나마 프리미어리그 규정이 양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일축구협회는 3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마이어는 6개월 후 협회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본을 보이려 한다”고 불평했다.

# “오늘 우리가 이긴다. 상대가 누구라고?”

알렉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던 시절 단 세 마디로 경기 전 미팅을 끝낸 적이 있다. “여러분, 상대는 토트넘이야.” 그로부터 60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의 또 다른 감독도 북런던에서 온 상대를 비슷하게 무시했다.
레딩을 이끌던 조니 코크레인은 말을 아주 막연하게 했다. 한 선수는 “그는 경기 직전 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채 위스키를 마시며 라커룸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우리가 오늘 누구랑 경기를 하지?’라고 물었다. 우리가 ‘아스널입니다, 감독님’이라고 일제히 대답하자 조니는 ‘아, 식은 죽 먹기지’라는 말만 남기고 문을 닫고 가버렸다”라고 회상했다.
그렇지만 올드 트래퍼드에서 27년 더 남아 있었던 퍼거슨과 달리 코크레인에게는 13일밖에 없었다. 선덜랜드에서 리그와 컵 더블을 맛봤던 그는 1939년 당시로서는 거액 연봉인 1,000파운드에 레딩과 3년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받은 돈은 35파운드에 불과했다. 그는 보름의 임기 동안 1승 4패를 기록한 뒤에 독감으로 자리를 비웠다. 계속. 쭉. 오래오래. 영원히.

# 우승? 정신차려, 여기 레알이야!

비센테 델 보스케가 4년간 라리가 우승컵 2개와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컵 2개를 바치고도 해고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레알 마드리드는 감독의 무덤이었다. 지네딘 지단이 굉장히 장수한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하긴, 그렇게 혹독하게 굴어서 지금의 영광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호세 비야롱가는 1956년과 1957년 레알과 함께 빅이어를 들어 올렸다. 36세로 최연소 우승 감독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2년 반 동안 최초의 유럽 대항전을 2연패하고 라리가에서 두 번 우승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비야롱가를 해고할 빌미를 제공한 것은 1956-57시즌 유러피언컵 1라운드 경기였다. 레알이 라피드 빈(오스트리아)에 끌려가자 바로 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이 하프타임에 선수들에게 “그라운드에서 볼이 굴러가는 광경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선언했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회장의 뜻을 따랐다. 감독의 전술 지시가 무시되어야 했다는 뜻이다.
권위가 깎인 비야롱가는 국내외에서 거둔 영광에 기대어 6개월을 더 버텼다. 이후 그는 아틀레티코를 이끌며 코파델레이에서 연달아 마주한 옛 클럽에 승리를 거뒀다. 1964년에는 스페인을 유럽 챔피언으로 만들기도 했고. 인정.

일러스트=포포투UK,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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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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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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