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알베스, 밥 먹듯 우승하는 기분은 어때?

기사작성 : 2018-08-07 13:25

- 아스널을 괴롭히는 비결은 무엇일까?
- 펩의 맨시티를 거절한 이유는?
- 지금도 소젖 짤 줄 알아?

본문


[포포투=Felipe Rocha]

지난 5월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파리생제르맹(PSG)이 레 에흐비에를 2-0으로 꺾으며 우승했다. PSG가 우승컵을 하나 더 추가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매 시즌 리그 정상에 서는 팀이니까. 2017-18시즌 프랑스 리그앙에서도 4월 중순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브라질 베테랑 풀백에게는 좀 특별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다니 알베스는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후반 41분 부상으로 교체 아웃된 그는 한동안 그라운드에 서지 못할 거란 진단을 받아들여야 했다. 결국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브라질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대신 프로선수로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쿠프 드 프랑스는 알베스가 프로팀에서 경험한 35번째 우승 경험이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따낸 우승 타이틀(코파아메리카 1회, 컨페더레이션스컵 2회)을 제외하고도 이렇게나 많다. 현역 선수 중 세계 최다 업적이다.

<포포투>를 만난 다니 알베스는 “세상에는 축구선수가 정말 많다. 하지만 바히아에서도 변두리인 주아제이루에서 온 촌놈이 그 누구보다 많은 우승 트로피를 따냈다.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우승을 많이 해본 현역 선수가 <포포투>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직접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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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농장에서 일했다는데, 지금도 소젖 짤 줄 아는가?(대니얼 타야스코, 페루)
“농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봤다. 소젖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다.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농장을 돕는 건 뭐든지 했다. 내 아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화학약품을 많이 다뤄야 해서 위험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매일 그렇게 일하시면 돕지 않을 수가 없다.”

패션 센스가 독특하다. 그렇게 컬러풀한 수트 영감을 도대체 어디서 얻는 건가?(주니어 레이오스, 페이스북)
“나의 패션 영감은 간단하다. 남들과 똑같이 보이기 싫다는 생각이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고 싶어서 패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플레이가 공격적이다. 풀백으로 정착하기 전에 윙어로 뛰었던 시절도 만족했나?(더그 포웰, 페이스북)
“원래 나는 공격수였다. 아버지는 내가 골을 넣는 공격수가 되기를 바라셨다. 주로 9번으로 뛰었고, 10번, 11번 자리도 봤다. 축구교실에 들어갔는데, 다들 공격수를 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다른 포지션을 봐야 했고, 나는 체구가 작고 기술과 스피드가 좋아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골키퍼 빼고 다 해봤다.”

어릴 적 영웅은 누구였는가? 풀백이 되어서는 카푸를 롤모델로 삼지 않았을까?(마르코스 소사 산투스, 트위터)
“축구 영웅은 내 아버지였다. 축구에 열광하셨다. 아버지의 열정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본격적으로 축구계에 들어왔다. 카푸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그가 남긴 역사와 업적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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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열린 유스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상대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바르셀로나에 들어갔을 때 서로 알았는지도 궁금하다.(카를로스 아옌데, 페이스북)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소년들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이미 유럽에서 뛰고 있었지만, 그 대회가 인생의 큰 반환점이라고 해야 한다. 세비야에서 임대로 뛰면서 외국인 쿼터 한 자리를 꼭 잡아야 했다. 다행히 대회가 끝나고 구단이 나를 완전 영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유럽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세비야에서 젊은 세르히오 라모스와 함께 뛰었다. 대스타가 될 줄 알았는가? 또, 엘클라시코에서 상대로 만나야 하는 운명도 있었다.(마르타 리베로, 페이스북)
“그때도 세르히오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 친구는 풀백으로 뛰고 싶어 했는데 다들 위대한 센터백이 될 재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센터백이 되었다. 라이트백에 있었으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혹은 자연스레 센터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라이벌이 되어 그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지만,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일원이 되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다. 계약 조항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라운드 바깥까지 라이벌 의식을 끌고 가면 안 된다.”

2006년 리버풀로 이적할 뻔했다고 들었다. 이적 실패로 낙담하지 않았는가?(존 스티어자커, 페이스북)
“리버풀과 개인 조항까지 합의한 상태였다가 결렬되었다. 솔직히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어쨌든 내가 결렬 원인은 아니었다. 지금과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했던 시절이었는데 정확히 어떤 내막이 있는지 잘 모른다.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바르셀로나와는 대화가 잘 풀렸다. 덕분에 캄프누에서 엄청난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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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이적 시도로 세비야의 호세 마리아 델 니도 회장과 싸웠다고 알려졌다. 동료였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팀을 떠나려고만 했다는 게 사실인가?(루크 조던, 페이스북)
“세비야 회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고 들었다. 안토니오에게 일어난 일보다 내가 이적을 더 크게 여겼다는 식이다. 그때 나도 정말 괴로웠다. 안토니오는 라커룸을 밝게 해주는 친구였던 탓에 충격이 더 컸다. 하지만 그 전부터 나는 팀을 떠나고 싶어 했다. 첼시 협상이 기대했던 대로 성사되지 않았고, 나는 당분간 이적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었다. 푸에르타와 상관없이 나는 세비야를 떠나 새롭게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승 욕심도 컸는데 세비야에서는 그게 어려웠다. 우승에 근접했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펩 과르디올라의 공식 감독 부임과 같은 날 입단했다. 그가 당신을 영입한 건가?(미구엘 카바예로, 트위터)
“펩이 나를 영입하라고 요청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이적시장이 열리기 반년 전에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들었고, 브라질 선수들이 크게 성공했던 곳이니까 나도 뛰고 싶다고 대답했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타가 될 기회를 준 펩과 티키(베기리스타인), 호안 라포르타 회장에게 감사드린다.”

2009년 결승전에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첼시와 준결승전에 출전했다.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날 바르셀로나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빅터 시몬스, 페이스북)
“그런 상황에서는 다음 일을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눈앞에 있는 경기에만 집중할 뿐이다. 경기가 어렵게 꼬였지만 우리는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대단한 동료들이 있었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상 우리가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운이 좋아 결승전에 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맡은 소임에 충실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축구의 진리를 재입증한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로마로 갈 자격이 있었다.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동료들과 함께 있다는 마음이었다. 우승하고 나서도 풀타임으로 뛴 사람처럼 기뻐했다. 나도 우승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2년 뒤 웸블리 결승전에는 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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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웸블리에서 맨유를 꺾고 우승한 ‘위대한 팀’의 일원이 된 기분은 어땠는가? 바르셀로나 재적 기간에서 그 팀이 가장 강했던 같은데.(카르멘 구즈먼, 페이스북)
“맞다. 축구 전문가들에게 물어도 그때 우승한 바르셀로나 같은 팀을 찾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축구계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들도 그만큼 잘하는 팀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현대적 축구팀의 정의를 내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축구를 먹고 마시고 숨 쉬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우리가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뛸 때, 가장 만만했던 잉글랜드 클럽은 어디였는가?(러비 데이비스, 페이스북)
“(미소) 음, 아스널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스타일이라서 오히려 상대하기가 쉬웠다. 대회에서 만날 때마다(2009-10, 2010-11, 2015-26) 우리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항상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풀 수 있었다.”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바이에른 뮌헨으로 간 결정에 놀라지 않았는가? 선수들을 더는 동기부여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는가? (대니얼 블록섬, 트위터)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펩은 축구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서 가끔 그럴 때가 있을 것 같다. 똑똑해서 자신의 한계도 잘 안다. 하지만 펩과 루이스 엔리케가 그런 것처럼 떠나기 전에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있어도 팀 안에서 불안감이 생기니까. 감독의 권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선수들은 항상 부담감을 안고 생활한다. 파울리뉴에게 문자로 ‘부담감은 내 아드레날린’이라고 보낸 적이 있다. 아드레날린이 없어지면 긴장이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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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아비달에게 간 조직을 제공했다. 그와 얼마나 가까웠는지, 그의 질병을 들었을 때 얼마나 괴로웠는지 궁금하다.(보비 루이스, 슈루즈베리)
“주위에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비달이기 때문에 그 친구만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에릭이 내 형제 같은 존재였다는 점뿐이다.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내가 특별히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를 가족처럼 사랑했을 뿐이다.”

바르셀로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엘클라시코는?(낸시 로버츠, 뉴욕)
“2010년 11월 있었던 5-0 승리를 꼽고 싶다.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이었다. 최대 라이벌에게 축구란 무엇인지를 가르쳤으니까. 팀이 하나가 되어 승리를 거둔 경기였다. 2012년 1월 엘클라시코는 내가 골을 넣어서 특별했다. 경력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골이었다. 2-2로 비겼는데, 그 각도에서 골이 들어갔다니 믿을 수가 없다! (웃음)”

2014년 4월 관중이 던진 바나나를 먹었다. 축구계가 인종차별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펠리페 고메스, 트위터)
“솔직히 그 행동에 특별한 메시지를 담지는 않았다. 인종차별을 줄이는 힘이나 영향을 끼쳤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절대로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 요즘 멋있어 보이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바꿀 힘이 내게 있다면 올바른 쪽에 쓰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인종차별 행동이 결코 ‘쿨’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은 잔인한 본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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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7시즌 유벤투스는 시즌 더블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직접 뛰어본 수비진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가?(폴 베이커, 트위터)
“아니다. 최고의 수비진은 펩의 바르셀로나였다. 제일 편하게 뛴 팀이었다. 과르디올라는 우리가 볼을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수비라고 가르쳤다. 볼이 우리에게 있으면 아무도 공격하지 못하니까. 볼을 빼앗기는 지점도 최대한 골문에서 멀어야 한다. 물론 유벤투스의 수비도 끝내줬다. 감독이나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라 수비 조직력 자체가 좋았다. 유벤투스의 수비가 대단하다는 칭찬은 각자가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에 가능하다. 축구는 단체 종목이다. 수비수 중 한 명이라도 그룹에서 떨어지면 전부 어려워진다. 유벤투스는 전통적으로 수비가 매우 강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펩의 바르셀로나가 더 재미있었다.”

PSG로 이적한 이유는 무엇인가? 맨시티나 펩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지 않았는가?(마이클 에드워즈, 트위터)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PSG에는 내 친구가 많았다. 내 여자친구도 파리에 산다. 구단의 야망도 거대하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펩과 재결합하는 선택도 고민했었다. 내게 준 것이 정말 많은 감독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적에 있어서는 내 주위에 끼치는 영향도 감안해야 한다. 유벤투스로 가고 보니까 바르셀로나와 비행기 편도 적고, 여자친구도 토리노에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부분을 고민하다 보니까 PSG 쪽으로 기울었다. 다시 말하지만, 펩과 다시 일할 기회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과르디올라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하지만 너무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맨체스터보다 파리에서 생활하는 쪽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 같았다. 펩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보는 꿈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은퇴하기 전에 잉글랜드 무대에 설 생각은 없는가?(리온 퍼거슨, 페이스북)
“마음은 있지만 실현될지는 잘 모른다. PSG에서 우선 해야 할 일이 많다. 단순히 출전이 아니라 성취를 하고 싶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뛰고 싶고, 쉰 살이 되어서도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다. 은퇴 후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도 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음악 속에서 자랐다. 내 안에 음악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브라질에 내가 설립한 음악 회사도 있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하고 싶다. 은퇴하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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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월드컵 토너먼트 단계부터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는 당신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그를 원망하는가? (P.프랑코, 트위터)
“벤치에 앉아있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모든 힘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벤치에서는 팀을 도울 일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

요즘 눈에 띄는 라이트백이나 라이트윙은 누구인가?(롭 우즈, 트위터)
“아스널의 베예린을 좋아한다. 레알 마드리드의 다니 카르바할과 바이에른의 하피냐도 마음에 든다. 하피냐의 플레이에서는 나도 배운다. 실력과 두뇌를 겸비했다. 볼을 절대로 빼앗기는 일이 없다. 항상 그런 경기를 하고 싶다. 균형 감각도 좋고 패스 능력도 갖췄다. 집중력이 최고다.”

2018 러시아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브라질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A매치가 있다면?(호드리구 아제베두 카르두수, 페이스북)
“셀레상을 위해 뛴 모든 경기가 내게 특별하다. 평가전이든 결승전이든 똑같다. 카나리 유니폼을 입으면 정말 특별한 기분이 든다. ‘젠장, 내가 브라질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뛰고 있잖아!’라는 식이다. 많은 관중와 아버지가 관중석에서 나를 지켜본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간이다.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기분.”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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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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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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