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told] 나비 케이타: 스트리트풋볼에서 안필드까지

기사작성 : 2018-08-01 17:43

- 스티븐 제라드의 8번을 물려받은 나비 케이타
- 기존 전술 개념으로는 그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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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Michael Yokhin]

나비 케이타(23, 기니)의 최대 장점은 다재다능함이다. 다른 선수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과는 약간 달라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케이타는 그라운드의 모든 영역에 최적화된 능력을 발휘한다. 정통적인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도 아니다. 플레이메이커와 윙어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합쳤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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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타는 길거리에서 만들어졌다.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상태로 유럽에 왔다. 매뉴얼대로 축구를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 유럽 초기에는 난관으로 작용했다. 볼터치 능력은 기막히게 좋았지만, 축구의 기본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일부 지도자들은 케이타가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축구 훈련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케이타에게는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16세의 케이타가 로리앙에 입단했을 때였다. 그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혼자 멀리 떠나보내기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케이타의 아이돌이자 기니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인 파스칼 페인두노가 로리앙행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우여곡절 끝에 로리앙에 들어갔지만, 클럽은 ‘실력 부족’을 이유로 케이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정거장은 더 엉망이었다. 르망은 케이타의 잠재력을 믿었다. 디디에 드로그바를 배출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프리카 유소년의 평가에도 관대했다. 케이타도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르망이 재정 파탄에 빠졌다.

# 우연히 생긴 기회

케이타는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에 남아 아마추어 리그에 참여했다. 대회 주최자는 프랑스 태생 기니 국가대표 수비수였던 보보 발데였다. 케이타에게는 결정적 인연이 되었다. 르망에서 정보를 입수한 이스트르(2부)의 스카우트가 현장을 찾았고, 곧 케이타의 능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스트르는 당장 케이타와 2013년 11월까지 3년간 계약을 맺었다.

그 시점으로부터 3년이 흐르면서 케이타는 유럽 전역이 탐을 내는 선수로 성장했다. 급성장 뒤에는 제롬 르로이가 있었다. 프랑스 밖에서는 거의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던 르로이는 현역 시절 매우 거친 스타일이었다. 마흔 살까지 선수로 뛰면서 르로이는 현명한 식견을 습득했고, 이는 케이타에게 귀중한 멘토링으로 전달되었다. 케이타는 “제롬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 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데 필요한 요령을 가르쳐줬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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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불 날개를 펼쳐줘요

케이타는 빛났지만, 2014년 이스트르는 결국 강등하고 말았다. 남거나 떠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당시 제라르 울리에는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에 각종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명장이 바로 케이타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케이타의 특별한 재능은 레드불에서 대폭발했다. 기업 구단의 정체성으로 팬들로부터 비난은 받아도 레드불 자체의 사업 전략도 훌륭했다. 클럽은 유럽 각지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재능을 기막히게 효율적으로 발굴해냈다. 2012년 3부로 떨어진 메츠에서 사디오 마네를 영입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케이타가 마네의 동료가 된 것이다. 동료로서 지낸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둘은 ‘절친’이 되었다.

마네는 곧 사우샘프턴으로 팔렸고, 케이타는 레드불에 남았다. 첫 시즌에는 수비 쪽으로 내려선 탓에 기복을 보였다. 두 번째 시즌이 되자 케이타는 수비적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12골 9도움으로 맹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레드불의 코칭스태프는 본인들이 케이타의 능력을 억눌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거리에서 배운 그대로 케이타는 어느 포지션에 서도 돋보일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 자유분방한 슈퍼스타 후보

RB라이프치히의 랄프 하센휘틀 감독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2016년 케이타는 레드불 산하 최대 클럽인 라이프치히로 이적했다. 합류 초기에는 선발 경쟁에서 다소 밀렸다. 하지만 교체로 들어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경기에서 케이타는 갑자기 결승골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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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센휘틀 감독이 이끄는 라이프치히는 전술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지만, 케이타를 기존 전술 안에 끼워 맞추기는 불가능했다. 드리블 시도와 태클 부문에서 케이타는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기록을 남겼다. 하센휘틀 감독은 “볼을 갖기만 하면 정말 미친 플레이를 해낸다”라고 칭찬했다. 오프더볼 움직임이 더 좋다는 평가도 있다. 자연스레 케이타는 유럽의 모든 클럽이 탐을 내는 스타로 떠올랐다.

최종적으로 케이타는 리버풀을 선택했다. 첫째, 위르겐 클롭의 스타일이 케이타에게 안성맞춤이다. 제한된 기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라운드 곳곳을 누빌 수 있다. 둘째, 케이타의 부친이 리버풀의 광팬이다. 셋째, 좋은 친구 마네가 있었다. 둘은 서로를 “형제”로 부른다.

이제 케이타는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앞두고 있다. 짧은 기간 내에 수직상승한 탓에 아직 완성된 선수로 보기 어렵다. 그 덕분에 두려움이 적고 야망이 크다. 스티븐 제라드가 달았던 거대한 번호 8번을 과감하게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리버풀에는 그렇게 과감한 캐릭터가 필요하다. 안필드 팬들은 길거리에서 축구를 배운 스타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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