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월드컵 활약 후 이적했다가 망한 10인

기사작성 : 2018-07-17 16:14

- 월드컵 착시 바이러스는 무시무시하다
- 감염되면 클럽 통장에서 돈을 술술 빠져나가는 증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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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Jon Spurling]

2018 러시아월드컵이 끝났다.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의 레이다가 본격 작동한다는 뜻이다. 크로아티아의 풀백, 러시아 미드필더, 프랑스의 ‘블링블링’ 스타 등을 영입할 생각에 들떠서 에이전트의 연락처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 전에 아래 10명을 훑어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절약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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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 하지 디우프 (리버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를 꺾고 신나게 춤추던 세네갈 선수 중 하나였다. 리버풀과 무려 5년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 기간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첫 시즌 3골이 그나마 나은 기록이었다. 두 번째 시즌에는 리그 26경기 노골. 팬에게 침을 뱉는 기행을 벌인 디우프는 2004년 팀을 떠났다. 그리곤 스티븐 제라드와 제이미 캐러거를 싸잡아 비난해 그나마 남아있던 소수의 팬마저 등을 돌렸다.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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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토 타란티니 (버밍엄 시티)
타란티니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미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보카 주니어스와 임금 분쟁을 일으켰다. 1978 멕시코월드컵을 앞둔 5월 무직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버밍엄 시티는 토트넘이 월드컵 우승 멤버인 오시 아르디예스와 리키 빌라를 영입하자 ‘탱고를 추는 타란티노’를 데려왔다. 당시 기준으로 꽤 거금을 들였지만, 맨유의 브라이언 그린호프를 때려눕히고, 관중과 주먹을 주고받은 것 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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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아스널)
비쩍 마른 세르비아 출신 플레이메이커. 1983년 1월 하이버리에 입성할 때만 해도 영웅이 될 줄로만 알았다. 입단 반년 전 열린 1982 스페인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터였다. FA컵 준결승에서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두고두고 회자할 골을 터뜨리긴 했으나 테리 닐 감독은 페트로비치를 4개월짜리 선수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아무리 잘한들 빛날 수 없었다. 다음 정거장인 로얄 안트워트로 재빨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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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드레아스 이삭손 (맨체스터 시티)
이삭손은 로빈 올센 이전에 스웨덴 골문을 지키던 명골키퍼였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스웨덴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다만 월드컵 직후 인연을 맺은 맨체스터 시티와 궁합이 맞질 않았다. 부상이 있었고, 복귀 후에도 니키 웨버로부터 주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 에인트호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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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레크 살렌코 (발렌시아)
어느 팀이 월드컵 득점왕을 마다하랴? 발렌시아가 1994 미국월드컵에서 6골을 넣으며 골든부트를 차지한 살렌코를 영입했다. 그다지 나쁜 선택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렌시아가 간과한 게 있었다. 살렌코의 월드컵 5골이 카메룬전 한 경기에서 쏟아졌다 사실! 메스타야에서 악몽 같은 한 시즌을 보낸 뒤 레인저스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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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린 라두초우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1994 미국월드컵에서 루마니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조별리그 콜롬비아전에서 2골, 스웨덴과 8강에서 1골을 넣었다. 웨스트 햄의 해리 레드냅 감독이 한눈에 ‘뿅’ 갔다. 2년의 공을 들여 드디어 영입에 성공했다. 라두치오이우는 런던의 삶과 리그의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다. FA컵 경기 출전보다 아내와 쇼핑을 즐기는 쪽을 선호했다. 본인은 물론 지금도 극구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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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야르니 (코번트리, 레알 마드리드)
크로아티아의 야르니는 “고든 스트라칸 감독이 1998월드컵에서 뛰는 내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르니는 코번트리의 프리시즌 친선전을 소화한 뒤, 돌연 사라졌다. 일주일 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다시 나타났다. 레알에 가고 싶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딸의 학교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만히 앉아 100만 파운드를 벌어들인 코번트리도 나쁜 거래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그 후, 레알에서도 종적을 감췄다. 1년 뒤, 스페인 2부 라스팔마스에서 목격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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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비트 오동코어 (레알 베티스)
2006 독일월드컵에서 독일 대표 일원으로 통통 튀는 활약을 펼친 뒤, 이적료 600만 파운드로 베티스에 입단했다. 베티스에서 5년 동안 단 51경기 출전에 그친 오동코어는 대부분 시간을 치료실에서 머물다가 독일 2부 알레마니아 아헨으로 이적했다. 무릎, 엉덩이 부상 여파로 29세에 은퇴했다.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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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판 기바르쉬 (뉴캐슬 유나이티드)
1998 프랑스월드컵의 ‘올리비에 지루’였다. 프랑스의 우승에 무득점으로 기여했다. 그래도 프랑스 전설 미셸 플라티니는 “가장 저평가된 공격수”라고 추켜세웠고, 그해 여름 뉴캐슬이 지갑을 열었다(350만 파운드). 기바르쉬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골문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8개월간 1골을 넣은 뒤 레인저스로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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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베르송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3년 여름 맨유는 포르투갈어 사용자 2인을 데려왔다. 한 명은 곱슬머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다른 선수의 이름은 가물가물할 텐데, 바로 클레베르송이었다. 당시만 해도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클레베르송이 훨씬 큰 주목을 받았다. 30경기 2골을 기록한 클레베르송은 2년 뒤에 떠났고, 그 1년 후에 호날두는 잉글랜드 무대 첫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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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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