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월드컵에서 뜬 ‘깜짝스타’ 10인

기사작성 : 2018-05-17 18:03

- 월드컵은 누구에게나 꿈의 무대가 될 수 있다
- 혜성처럼 등장해 역사에 길이 남은 축구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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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Seon Cole]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깜짝 스타들이 등장한다. 월드컵 전까지는 비주류였지만 대회에서 ‘뜻밖의 활약’을 펼치면서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다. 심지어 은퇴를 번복하고 나와 스타가 된 경우도 있다. <포포투>가 월드컵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한 스타들을 정리했다. 이들 모두 ‘최소 8강’ 이상 멤버들이란 사실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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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허스트(잉글랜드, 1966)
제프 허스트는 월드컵 개막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있던 1966년 2월,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됐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였기 때문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 경쟁은 치열했다. 허스트는 월드컵 직전까지 보비 탐블링, 존 번과 경쟁을 벌인 끝에 살아남았다.

시작은 벤치였다. 지미 그리브스와 노만 헌트의 백업 파트너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기회가 열렸다. 그리브스의 부상으로 허스트가 출전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상승세가 이어졌다. 그리브스가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결승전 선발 출전은 허스트의 몫이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해트트릭을 터뜨렸다. 이후로 잉글랜드 축구사의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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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 용블루트(네덜란드, 1974)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서열이 확실한 편이다. 심각한 결격 사유가 생기지 않는 한, 대부분의 팀에서 No.1의 입지는 확고하다. 1974년 얀 용블루트의 대표팀 합류는 이런 역학을 뒤집었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 대표 선수가 아니었다. 1962년에 국가대표에 선발되긴 했지만, 서독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1경기에만 출전했다.

1974년 대표팀에 복귀했을 때는 벌써 서른세 살이었다. 포지션 경쟁자인 피트 슈레이버스(27), 에디 트레이첼(28)보다 나이가 많았다. 두 선수 모두 용블루트보다 대표팀 경기에 더 많이 출전했다. 키도 더 컸다. 전형적인 골키퍼들이었다. 반전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대표팀의 리누스 미셸 감독은 수비 뒤에서 스위퍼 역할을 해내는 용블루트의 능력을 선호했다. 용블루트는 대회 결승까지 7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네덜란드는 서독에 패해 준우승의 아쉬움을 삼켜야 했지만, 용블루트에게는 인생 역전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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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카브리니(이탈리아, 1978)
월드컵에서 깜짝 출전하는 선수는 흔치 않다. A매치에 뛴 적 없는 수비수인 경우 더욱 그렇다. 1978년 여름 안토니오 카브리니가 바로 그 흔치 않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20세에 불과했던 카브리니가 프랑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로 깜짝 출전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에 2-1로 승리했고, 인상적인 활약상을 보인 카브리니는 대회 내내 주전 레프트백으로 자리를 지켰다. 이후 10여년 동안 아주리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그해 여름 인상적으로 데뷔해 팀의 준결승행을 이끈 카브리니는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4년 뒤에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도 들어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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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올로 로시(1982)
로시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도박 스캔들에 연루된 혐의로 2년 간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1981-82시즌 막판 복귀해 몇 경기를 치렀지만 컨디션도 나빴고 체력 상태도 엉망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월드컵 엔트리에 발탁됐다. 감독 엔조 베아르조트는 로시를 제외하라는 목소리를 거부하고 그를 품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조별리그 1라운드를 거쳐 2라운드에 진출했다. 로시의 ‘보은쇼’가 시작됐다. 2라운드 브라질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고 폴란드와의 준결승전에는 두 골을 넣었다.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선제골까지 뽑아냈다. 이탈리아는 서독에 3-1 승리를 거두고 우승했다. 6골을 기록한 로시는 골든부츠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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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밀라(카메룬, 1990)
로저 밀라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팀 복귀를 종용한 이는 카메룬 대통령 폴 비야였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 이미 프로 무대에서 은퇴한 상태였다. 대표팀 감독과 일부 선수들이 처음에 그의 복귀를 반기지 않은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밀라는 카메룬의 8강행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조별리그 두 경기 만에 진가가 확인됐다. 루마니아와의 2차전에서 교체 출전해 2골을 넣었다. 16강전에서도 활약은 계속됐다. 콜롬비아를 상대로 추가시간에만 두 골을 터뜨렸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도 분전했다. 카메룬은 잉글랜드에 페널티킥 결승골을 허용하며 2-3으로 아쉽게 패했다. 밀라의 도전은 끝났지만 그가 1990월드컵의 스타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골을 넣을 때마다 코너 플래그 앞에서 춤을 추는 셀러브레이션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댄스 세리머니를 따라하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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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 스킬라치(이탈리아, 1990)
스킬라치가 대표팀에서 활약한 기간은 1년 남짓이다. 눈깜짝할 사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한 기억을 남겼다. 스킬라치는 기술적으로는 조금 부족하지만 날카로운 공격수였다. 메시나 소속으로 세리에B에서 최다득점자가 된 후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1부리그 첫 시즌에 30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넣었다.

3월 스위스와의 A매치 친선경기에 나설 대표 선수로 깜짝 발탁됐다. 짧은 시간 출전했지만 디노 조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1990월드컵 개막전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교체 출전해 결승골을 넣었다. 체코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로베르토 바조와 짝을 지어 선발 출전했다. 또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 계속 선발 출장이었다. 스킬라치는 총 6골을 넣었다. 이탈리아는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득점왕과 최우수선수 타이틀은 스킬라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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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에리 앙리(프랑스, 1998)
월드컵 엔트리 경쟁이 치열했다. 남은 공격수 한 자리를 두고 니콜라스 아넬카와 티에리 앙리가 맞붙었다. 아넬카는 아스널에서 맹활약하면서 더블에 공을 세웠다. FA컵 결승전에서도 골을 넣고 팀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기회는 앙리에게 돌아갔다. 세 차례 A매치에서 골을 넣지 못했지만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했다. 남아공과의 월드컵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해 골까지 넣으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경기 내내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앙리는 추가시간에 팀에 세 번째 골을 안겼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선제골로 4-0 완승을 주도했다. 이후 앙리는 더 이상 득점을 추가하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와 8강전에서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면서 팀 승리를 도왔다. 결승전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그러나 우승 메달을 목에 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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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 리베리(프랑스, 2006)
8년 후, 앙리는 프랑스 라커룸에서 리베리의 대표팀 입성을 소개하는 최고참이 됐다. 리베리는 갈라타사라이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마르세유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상태였다. 월드컵 전 친선 경기 멤버로 발탁돼 기량을 점검받았다. 멕시코, 덴마크, 칠레를 상대로 아주 짧은 시간만 출전했기 때문에 교체 멤버 정도로만 여겨졌다.

대회가 개막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리베리는 프랑스가 결승에 진출하기까지 7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경기를 빼고 모두 선발 출전했다.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는 결정적인 동점골도 넣었다.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이 무렵 23세의 리베리는 유럽에서 가장 유망한 선수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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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뮐러(독일, 2010)
2009년 여름 루이스 판 할이 바이에른뮌헨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전임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체제에서 무력해진 팀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어린 선수 토마스 뮐러와 홀거 바티슈투버를 1군에 포함시킨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두 선수는 팀의 더블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까지 함께했다. 이후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월드컵 전 뮐러는 A매치 2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하지만 대회를 치르는 내내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독일이 준결승을 치르기까지 5골3도움을 기록했다. 대회 골든부츠와 영플레이어상 수상에 부족함이 없는 활약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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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프린스 보아텡(가나, 2010)
뮐러의 대척점에 케빈-프린스가 있다. 케빈-프린스는 가나 대표 선수로 뛰면서 조별리그에서 이복 동생 제롬과 뮐러의 독일을 상대해야 했다. 2009년까지 독일 유스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그는 독일 대표팀이 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가나는 2006년 월드컵에서도 케빈-프린스를 선발하려 했다. 4년 후 같은 방식으로 접촉했다. 보아텡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23세에 불과했던 그는 가나 미드필드의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6강전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개인 기술이 돋보이는 골을 넣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우루과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루이스 수아레스의 악명 높은 핸드볼 골이 나온 그 경기다. 추가 시간에 아사모아 기안이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아쉽게 마감한 경기였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포포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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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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