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갈라스, “첼시-아스널-토트넘 중 제일은…”

기사작성 : 2018-05-03 18:29

- 첼시, 아스널, 토트넘에서 모두 활약한 수비수
- 프랑스 대표팀 비사까지
- 윌리암 갈라스를 단독으로 만났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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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rthur Renard]

윌리암 갈라스만큼 런던을 고집한 외국인 선수는 없었다. 프랑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갈라스는 첼시와 아스널, 토트넘을 거치면서 백포(back 4)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319경기에 출전했다.

<포포투>는 갈라스를 촬영할 장소로 스탬퍼드 브릿지를 골랐다. 런던에서만 300경기 이상을 뛴 수비수에게 썩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오늘의 주인공은 촬영 장소에 블랙캡(런던 택시 애칭)을 타고 등장했다. 역시 런더너답다.

하지만 <포포투>가 대접한 장어 요리는 런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갈라스에게도 낯설었던 것 같다. 갈라스는 “이게 뭐야?”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장어 젤리”라고 말하자 그는 “이런 음식은 난생처음 봤다!”고 대꾸했다.

장어 젤리는 처음일지 모르지만, 축구 이야기는 좀 다르다. 갈라스는 화려한 현역 경력을 거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 월드컵 결승전 패배, 라커룸 불화 등 수많은 일을 직접 목격했다. 지금부터 독자가 직접 묻고 갈라스가 답하는 원온원 인터뷰가 이어진다.

런던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건가? 혹시 런던에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있는가?(나타샤 하트, 페이스북)
“코스모폴리탄 도시다. 다양한 사람과 경험, 문화와 만날 수 있다. 길거리에서 누구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길을 잃고 서성이면 누군가 다가와서 도와준다. 물론 런던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처음 왔던 2001년만 해도 차도 별로 막히지 않았고, 운전자들도 인내심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길이 조금만 막혀도 운전자들이 짜증을 부린다.”

1999-2000시즌 마르세유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맨유전에서 하프라인 드리블로 첫 골을 터트렸는데, 그때 혹시 공격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가?(그렉 해리스, 트위터)
“클레르퐁텐에서는 공격수로 시작했다. 동료들이 여러 클럽으로 스카우트되어가는데 나만 1년 더 아카데미에 남아있어야 했다. 감독이 ‘윌리엄, 스트라이커가 되기에 부족한 것 같아. 윙어가 되기도 그렇고, 미드필더가 될 실력도 안 되는 것 같아. 이제 마지막 1년이니까 수비수로 뛰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파리 생제르맹 경기를 앞두고 그런 말을 들어서 라이트백으로 출전했는데 꽤 잘했다. 다음 경기였던 옥세르전에서도 잘했더니 감독이 ‘드디어 네 포지션을 찾았구나’라고 말하더라. 시즌 끝날 즈음에 캉의 초청장을 받았고, 1년 뒤에 주전이 되었다. 2년 뒤에는 마르세유로 이적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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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 뛸 때, 센터백 파트너로서 마르셀 드사이와 존 테리 중 어느 쪽이 편했는가?(로버트 반즈, 런던)
“고를 수가 없다. 둘 다 월드클래스 수비수이니까. 1998년 당시 마르셀은 세계 최고 센터백이었다. 존의 전성기는 2006년 정도였다. 마르셀은 존의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첼시에 갔을 때, 마르셀이 ‘윌리엄, 팀에 어린 녀석이 있는데 재능이 정말 대단해. 이 다음에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첫 훈련에서부터 나는 존에게 놀랐다. ‘세상에. 몸싸움도 좋고 양발로 패스를 다 잘하네. 난 저렇게 못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파워도 넘쳤다. 주전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매일 최선을 다하면서 노력했다. 덕분에 백포 포지션을 전부 소화했다.”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 회장이 구단을 인수한 뒤로 첼시가 얼마나 발전했다고 생각하는가?(알베르도 베가, 트위터)
“프로페셔널해진 것 같다. 조직 전체가 강해졌다는 느낌이랄까.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선수뿐 아니라 코치, 의료진, 트레이너, 심지어 주방까지 투자했다. 훈련장도 할링엄에서 코범으로 옮겼다. 첼시를 인수하기 전에 첼시, 토트넘, 리버풀을 놓고 고민했다고 들었다. 2002-03시즌 최종전에서 우리가 리버풀을 꺾어 UEFA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낸 것을 보고 첼시로 마음을 굳혔다. 경기 결과가 달랐다면 그는 리버풀을 샀을 수도 있다. 정말 열정적인 구단주였다. 우리가 경기에서 이기면 자주 라커룸에 직접 와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몸은 괜찮냐, 기분이 어떠냐, 몇 번 걷어차인 것 같은데 다음 경기 뛸 수 있겠냐’ 등을 물었다. 그는 선수들과 정말 가깝게 지냈다.”

2005년 안필드에서 ‘유령 골’이 있었다. 볼이 골라인을 넘었다고 생각하는가?(마크 스미스, 페이스북)
“절대 아니다. 라인을 넘지 않았다. 내가 걷어냈으니까 확실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05년 당시 우리는 유럽 최강이었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우리가 결승에 올랐다면 우승했을 거다.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내 꿈이었다.”

2004-05시즌 첼시는 15실점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정말 미친 기록 아니었는가?(토니 발렌타인, 페이스북)
“믿을 수 없는 기록이긴 하다. 우리 수비가 정말 강했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항상 수비를 강조했다. 팀미팅을 할 때마다 감독은 “우리팀이 골을 먹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선수끼리 불화가 없었던 것도 전부 감독 덕분이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모리뉴 감독이 즉각 해결한다. 누가 제대로 뛰지 못하면 감독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왜 안 했지?’라고 묻는 식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다들 집중할 수밖에 없다.”

2006년 토트넘전 ‘극장골’만큼 짜릿했던 골이 있었을까?(스티브 램버트, 켄트)
“인생 최고의 골이었다. 내가 어떻게 더 멋진 골을 넣겠나!(웃음) 아들은 지금도 내게 그 골을 보여주면서 ‘아빠, 무슨 일을 한 건지 알고나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사실 그 경기 전날 킥오프 시간을 착각한 바람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구단이 아침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젠장, 망했어. 나 못 뛰어!’라며 투덜거렸다. 경기 중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덕분에 그런 골을 넣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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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첼시를 그런 식으로 떠났나. 구단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레이저, 트위터)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계약 기간 연장에 합의를 보지 못했다. 나는 내 요구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팀 내 최고액 연봉을 바라지도 않았다.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았으니까 2006년 월드컵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뒤에 가족과 과델로프로 휴가를 떠났다. 공항에 내렸는데 팬들로 가득 찼다. 매일 우리 숙소로 찾아와 기념사진과 사인을 부탁했다. 그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휴가가 끝나가도록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모리뉴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만 더 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구단은 미국 투어에 나를 데려가고 싶었던 것 같다. 가서 ‘월드컵 결승전 멤버’가 있다고 팬들에게 어필하고 싶었을 테니까.
서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구단도 나도 우승이라는 공통 목표가 있었는데 참 아쉬웠다. 구단이 내 등번호였던 13번을 발락에게 주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첼시에 머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소중한 등번호였으니까. 나를 세계 최고 수비수 중 하나로 키워준 조제 모리뉴 감독과 그런 식으로 헤어져서 아쉬웠다.”

첼시를 떠날 때 ‘자책골을 넣겠다’고 협박한 것이 사실인가? 헛소문이라면 그런 억측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토비 워즈스미스 오쇼, 페이스북)
“결단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내가 들어본 말 중에서 제일 말도 안 된다.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은가? 팬들이 모두 내가 남기를 원했기 때문에 아마도 구단 관계자가 그렇게 꾸며냈던 것 같다. 축구에서 매 순간 나는 진심으로 뛰었다.”

첼시에서 아스널로 이적했을 때 집도 옮겼나? (로빈 듀어든, 페이스북)
“아스널 첫 시즌에는 윔블던 근처에서 살았다. 훈련장까지 자동차로 45분에서 한 시간이나 걸렸다. 큰애도 태어난 탓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 피로한 상태에서 10월에 사타구니 부상까지 당해 결국 3개월이나 뛰지 못했다. 운전을 너무 오래 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햄스테드로 이사했다. 통근 시간이 25분에서 30분 정도로 줄었다.”

아스널에서 데니스 베르캄프가 달았던 10번을 받은 기분이 어땠는가? (제이미 버거, 루턴)
“좋아하는 13번을 알렉산드르 흘렙이 달고 있었다. 애슐리 콜이 떠난 덕분에 3번이 비었지만 나는 10번을 선택했다. 선수 초창기에 잠깐 달았던 등번호라서 나름대로 내게 의미가 있었고, 딸이 11월 10일 태어났다. 팀 내에서 젊은 선수에게 10번을 달게 하면 그 친구에게 큰 부담을 줄 수도 있어서 차라리 내가 10번을 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벵거 감독과 모리뉴 감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피트 데이비스, 노리치)
“모르겠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과거를 털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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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시절 제일 좋았던 순간을 말해달라.(대니 스미스, 런던)
“아스널 데뷔전이었던 미들즈브러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첼시 출신이기 때문에 아스널 팬들이 야유를 보낼 줄 알았다. 워밍업하러 나갔더니 팬들이 박수를 보내더라. 기분이 정말 좋았다.”

2008년 버밍엄전(*)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에두아르두의 발목 골절 때문이었는가? 혹시 그 일을 후회하는가?(벤 모스, 에식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 에두아르두의 부상은 상관없었다. 경기 집중력이 떨어진 탓에 승점 2점을 잃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만 자위하지 않고 진짜 열정을 폭발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 탓에 결국 4위에 그쳤다. 물론, 그때 내가 정신줄을 놓쳤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편집자 주: 경기 종료 후 텅 빈 그라운드에 갈라스 혼자 좌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주저앉아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벵거 감독이 당신의 주장 완장을 박탈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애런 루카스, 페이스북)
“개인적으로는 부당하게 느꼈지만, 팀 전체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구단 내에서 내가 주장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감독은 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라커룸 분위기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나쁜 주장처럼 보였던 결과다.”

시즌 막판 경쟁력 관점에서 볼 때, 첼시에 비해 아스널이 결여된 점이 있다면?(그렉 스키너, 페이스북)
“팀에는 올바른 자세를 지닌 베테랑이 필요하다. 당시 첼시는 평균연령도 아스널보다 많았다. 베테랑 유무가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축구는 좋은 플레이를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싸울 준비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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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에서 아스널로 이적하면서 욕을 많이 먹었다. 2010년 아스널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을 때는 더 신중했는가? (리 매튜스, 캠브리지)
“별로 그렇지 않았다. 당시 파리 생제르맹으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해외 이주를 원하지 않았다. 토트넘에서 한 시즌을 보낸 다음에 유벤투스가 나를 원했지만, 같은 이유로 잔류했다. 원래 1년만 뛰기로 했는데 토트넘이 2년 연장을 제안한 덕분이기도 했다.”

2010-11시즌 아스널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다. 북런던 더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친정을 상대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 (벤 킹, 이메일)
“나와 팬들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아스널에서 나는 1년 반 동안 주장 완장을 찼다. 에미리트 원정 아침에 누군가 내게 신문을 보여줬다. 일부 아스널 선수들이 나와 악수를 하지 않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라커룸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해리 레드냅 감독이 내게 와서 그 기사를 물었고, 나는 ‘상관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감독은 ‘이 경기를 더 뜨겁게 달굴 무언가를 해야겠어’라고 말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 묻자 레드냅 감독이 ‘오늘 네가 주장 해라’라고 말했다. 그라운드에 입장하자 사람들이 나를 보며 모두 놀랐다. 나는 잘 뛰었고, 팀도 3-2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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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냅 감독 시절에 비해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 체제에서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그랬는가?(패트릭 대니얼스, 트위터)
“맞다. 처음엔 괜찮았다. 첼시에서 그가 모리뉴 감독의 스카우트로 일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토트넘 첫 시즌 도중에 부상을 치료하려고 프랑스에 다녀온 다음부터 뭔가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FA컵 리즈전에서 뛰라고 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정 명단을 보니까 내가 아예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구단 버스를 탔더라면 정말 큰 망신을 당할 뻔했다. 면담에서 감독은 나를 후반기에 기용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유로파리그 경기에만 나를 기용했다. 내가 늙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감독은 내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나는 솔직한 감독을 좋아한다. 빌라스-보아스가 솔직하지 못한 감독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때 내게는 솔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달라. 첼시, 아스널, 토트넘 중 어느 팀이 제일 마음에 드는가?(조지 르퍼지, 이메일)
“세 팀 다 좋아한다. 하지만 내게는 첼시가 가장 특별한 추억이다. 처음 경험하는 외국이었고, 나도 잘 뛰었고, 우승도 많이 했다. 프랑스 국가대표가 된 것도 첼시 때부터였다. 첼시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정말 내가 잉글랜드의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웃음)”

웨스트햄까지 갔더라면 런던 주요 구단을 전부 거칠 수 있었는데. (아서 그리핀스, 트위터)
“에이전트가 실제로 웨스트햄과 이야기를 나눴을 수도 있다. 2013년 여름에 크리스털 팰리스와는 실제로 협상했었다. 이언 홀로웨이 당시 감독과 훈련장에서 만나서 세부적인 이야기를 나눴지만 계약이 성사되진 못했다. 마르세유로 돌아가서 보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연봉을 절반으로 깎아야 한다고 해서 불발됐다. 당시 모나코를 이끌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과도 만났다. 감독은 나를 원했지만, 이사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나중에 감독이 설명해줬다. 결국 호주의 퍼스 글로리로 이적했다.”

호주에서 보낸 첫 시즌은 어땠는가?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 경기에서 우울한 경험도 했는데.(로저 새들러, 페이스북)
“경력을 통틀어도 최악 실수 중 하나였다. 오른발로 차려다가 헛발질을 하고서는 볼이 내 왼발에 걸렸다! (웃음) 축구를 하다 보면 그런 실수도 저지른다. 내 경력을 통틀어서 딱 한 번이었으니까 괜찮다. 그 실수만 빼고는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느긋한 문화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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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골로 캉테가 클로드 마켈레레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에디, 트위터)
“둘이 비슷하다. 첼시가 새롭게 시도하는 3-4-3 포메이션에서 캉테는 마켈레레보다 앞선 지점에서 뛴다. 캉테가 경험을 좀 더 쌓으면 마켈레레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치 선정 능력만 가다듬으면 될 것 같다.”

2010 남아공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나온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을 알고 있었는가? 경기 후 앙리는 뭐라고 하던가? (셰인 베어니, 페이스북)
“주위에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그 장면을 직접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날아오는 볼만 보면서 머리를 갖다 대려고 했는데 어깨에 맞고 골인이 되었다. 라커룸에 돌아갔는데 앙리가 손을 썼다는 말을 들었다. 앙리는 따로 뭐라고 말하지 않았고, 솔직히 나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아일랜드도 똑같이 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몇 달 전에 아일랜드는 운 좋게 페널티킥을 얻기도 했고, 2010년 월드컵에서 루이스 수아레스는 가나의 슛을 손으로 막았다. 그가 자신의 행동을 수치스럽다고 여길까?”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실패한 원인은? 당시 프랑스를 이끌었던 레이몽드 도메네크 감독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야닉 보르데, 페이스북)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감독과 선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어수선했는데 니콜라스 아넬카가 귀가 조치를 당하자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 선수들이 훈련을 거부하기에 이르렀을 정도로 프랑스 축구 전체의 위기였다.”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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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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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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