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전설이 말하는 ‘지단- 佛 전성기- B.뮌헨’

기사작성 : 2018-03-2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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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요즘 축구팬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시절 그의 이름은 유럽과 세계를 정복한 ‘프랑스 축구의 성공’과 동의어였다. 뱅상 리자라주다. 리자라주는 월드컵(1998), 유로(2000), UEFA챔피언스리그, 인터콘티넨탈컵(이상 2001)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표팀과 클럽에서 모두 유럽과 세계 정상을 경험한 최초의 선수다.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 태어나 대표 선수가 된 그는 주짓수 유단자다. 은퇴 후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중이고, 다양한 스포츠에 푹 빠져 사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이쯤이면 다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포포투> 본사를 찾은 리자라주와 인터뷰를 나눴다. 이번에도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쏟아진 질문 더미를 던졌다. 팬들의 질문에 리자라주가 직접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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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이름 좀 알려달라. Bixente? Vincent? (앤서니 스티븐스, 헐)
“Bixente! 프랑스의 바스크 지역에서 태어났고, 부모님께서 그 이름을 붙이셨다. 그런데 동사무소가 바스크식 이름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프랑스식인 Vincent라고 고쳐야 했다. 내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바스크 지역에서는 모두 나를 ‘뱅상(Bixente)’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빈센트(Vincent)가 크로스를 올렸다’라고 쓴 기사를 보고는 ‘빈센트? 누구 말하는 거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번도 ‘빈센트’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무사를 고용해서 부모님께서 원하셨던 ‘뱅상’을 되찾았다. 내 아들 이름은 ‘치미스타(Tximista)’, 딸은 ‘우하이이나(Uhaina)’다. 모두 바스크식 이름이다.”

보르도에서 에릭 칸토나와 함께 뛴 얘기 좀 해달라. (이안 로스, 맨체스터)
“칸토나와 오래 뛰진 않았지만, 잘 지냈다. 잉글랜드에서 칸토나가 얼마나 활약했고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다. <포포투> 인터뷰에서 칸토나가 “그 자식을 더 세게 갈겼어야 했다”라고 말한 것도 읽었다.(웃음) 보르도에서 함께 뛰었던 컵 경기에서 웃긴 일이 있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던 날이었다. 칸토나가 파넨카를 시도했는데, 맞바람이 강해서 볼이 골대까지 가지도 못했다.”

1995-96시즌 보르도가 인터토토컵에서 UEFA컵까지 승승장구했는데, 당신도 그 덕을 봤다고 생각하는가? (스테펜 라이터, 아우쿠스부르크)
“맞다.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바이에른 뮌헨과 결승전만 빼고 다 좋았다. 2차전에서 나는 다쳐서 교체되고 말았다. 유럽 전체에 보르도의 이름을 알렸다. 지네딘 지단은 유벤투스로, 크리스토프 뒤가리는 밀란으로, 나는 아틀레틱 빌바오를 거쳐 바이에른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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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지단은 축구를 얼마나 잘했는가? (테오 르크로아, 마르세유)
“보르도에 처음 왔을 때 지단의 체형은 축구선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90분을 뛰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기술 면에서는 물론 천재였다. 훈련에서도 이상한 트릭을 자주 선보였다.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기술이 아니었다. 길거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움직임과 기술이었고, 지단만 해낼 수 있었다. 혼자 힘으로 승부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팀플레이도 충실했다. 혼자 다 하는 선수는 내가 아무리 공간으로 파고 들어도 패스를 주지 않는데, 지단은 달랐다. 내가 들어갈 때마다 2m 앞에 정확히 패스를 떨어트렸다. 동료가 괜히 뛰어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그를 위해서 뛰고 싶어했다. 수비에서 볼을 빼앗으면 다들 지단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그에게 볼을 주면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니까. 엉성하게 보내도 그는 볼을 지켜냈다. 지단에게 주는 모든 패스가 항상 옳았던 셈이다. 지단과 함께 뛰면 모든 게 쉬워진다.”

아틀레틱 빌바오에 입단한 최초의 프랑스인이었다. 바스크 출신만 뽑는 클럽이었으니 크게 자랑스러웠을 것 같은데. (준 칼루스티안, 페이스북)
“부상 악몽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던 탓에 그 시절을 회상하기가 솔직히 쉽지 않다. 이적은 오직 축구적 판단이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프랑스인 1호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리곤 다쳐서 정상 경기력을 보일 수 없었다. 내게는 즐거운 시즌이 아니었다.”

프랑스인과 바스크인. 어느 쪽인가? (톰 그랜트, 페이스북)
“프랑스인 그리고 바스크인. 프랑스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코르시카와 브리타니는 파리와 전혀 다르다. 바스크도 마찬가지. 그런 다양성이 좋다.”

유로96 준결승전(올드 트라포드)에서 체코에 패했는데, 성공과 실패 어느쪽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니 클라크, 스티버니지)
“승부차기로 아쉽게 패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가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세대의 시작점이었다. 다비드 지놀라와 칸토나가 떠난 후, 자케 감독은 지단, 유리 조르카에프를 중심으로 새 판을 짰다. 유로96은 1998년 월드컵을 위한 훈련 같은 경험이었다. 유로를 통해서 나 자신도 대표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1998년 월드컵 전부터 우승을 목표했는가? (제이미 프램프턴, 런던)
“정말 몰랐다. 수비력을 갖췄지만, 공격력에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대회를 치르면서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가 전부 골을 넣는 것 아닌가. 릴리앙 튀람은 준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로랑 블랑과 나도 골을 넣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기분은 정말 끝내준다. 나는 부상에서 돌아온 상황이었으니까 사우디전 골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고생했지? 이 골을 네게 줄게. 이제부터 햇볕이 너를 반길 거야’라는 식이었다.”

릴리앙 튀람, 로랑 블랑, 마르셀 드사이 그리고 당신이 프랑스 백4 라인이었다. 정말 최강 아닌가? (앤디 컨리, 벨퍼)
“그 뒤에 파비앙 바르테즈까지 있었다. 천하무적. 정말 대단했다. 개인 기량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하나로 뭉치면 더 강해졌다. 내가 뚫리면 마르셀이 커버해줬다. 그가 놓치면 내가 만회해줬고. 그런 수비력이 월드컵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앞에서 먼저 막아준 미드필더들의 도움이 컸다.”

매 경기 시작 전에 로랑 블랑은 바르테즈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좀 이상하지 않나? (제임스 메리디스, 니덤 마켓)
“(웃음)재미있었다. 일종의 의식이었다. 똑같은 양말이나 속옷을 입는 것처럼. 우리도 그 의식이 계속되길 원했다. 행운을 준다고 생각했다. 축구에서는 그런 미신이 존재한다. 블랑의 키스가 없으면 우리가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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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월드컵 결승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토마스 반즈, 사우샘프턴)
“마음이 정말 편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그런 상태가 대단히 중요하다. 나는 부담이 큰 경기일수록 마음이 더 편해졌다. 부담이 없으면 더 적극적이 되려고 애썼다. 월드컵 결승전이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인생 최고의 경기를 할 거야’보다 그냥 농담을 던지는 편이 더 좋다. 결승전 당일 아침부터 우리는 호나우두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을 역으로 농담하면서 낄낄댔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브라질을 앞서 있었다. 엄청난 선수들을 지닌 브라질을 상대로 우리는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쉬운 경기를 펼쳤다. 월드컵 트로피를 받았을 때 관중석에서 울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단이 내게 트로피를 건넸다. 들어올리면서 나는 “젠장, 해냈어!”라고 외쳤다. 아무도 내게서 트로피를 빼앗아갈 수 없었다. 월드컵 전 챔피언은 없다. 한 번 챔피언이면 영원한 챔피언인 거다.”

유로2000에서도 우승할 수 있을 거로 기대했는가? (프레디 노턴, 칼라일)
“결승전에서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만큼 이탈리아도 전술적으로 대단한 팀이었다. 쉽게 골을 넣고 좀처럼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승전에서 우리는 운이 대단히 좋았다. 실뱅 윌토르와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역자 주: 윌토르가 후반 추가시간 3분 동점골, 트레제게가 연장 13분 골든골을 넣었다)”

당시 팀은 다문화로 유명했다. 그런 점이 도움이 되었을까? (제롬 지로, 브뤼셀)
“우리는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다.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였다. 마르티니케에서 온 녀석, 가나에서 온 녀석, 바스크에서 온 녀석, 그런 건 없었다. 모두 불어로 소통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친구였을 뿐이다.”

2001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는가? (마티아스 헤르만, 뮌헨)
“5번 키커 안에 내가 없었다. 1998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실축한 뒤로 나는 절대로 승부차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 차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서 차서 성공했다. 올리버 칸이 막아내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은 마법 같았다. 올리버가 서 있던 곳까지 50m를 우리는 미친 듯이 달렸다. 그때 아마 우사인 볼트보다 빨랐을 거다. 영광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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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전 세계와 유럽을 모두 석권한 첫 번째 주인공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이브라힘 아윱, 페이스북)
“1998년 월드컵, 유로2000 그리고 2001년 UEFA챔피언스리그와 인터콘티넨털컵에서 우승했다. 모든 것을 성취한 셈이었다. 2001년 분데스리가에서 샬케를 막판에 제치고 극적으로 우승했고, 월드베스트XI으로도 선정되었다. 그 시즌은 내게 정말 특별했다.”

당시 바이에른의 중심은 올리버 칸과 스테판 에펜베르그 중 누구였는가? (@rivaoul, 트위터)
“둘 다. 그런 동료가 있으면 두려움 없이 전쟁에 나설 수 있다. 2013년 팀은 그런 캐릭터 없이 테크닉으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정말 강했던 덕분에 분데스리가를 여섯 번이나 제패할 수 있었다. 한 팀에 칸, 에펜베르그, 옌스 제레미스, 사미 쿠푸르 등이 있었으니까 상대가 늘 고전했다.”

바이에른 훈련 도중 로타 마테우스의 뺨을 때렸다는 것이 사실인가? (올리버 브라켄, 빌레펠트)
“참았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가 먼저 손을 댔다는 사실도 꼭 밝히고 싶다! (웃음) 나는 반응했을 뿐이었다. 이후에도 그 일로 농담을 나눌 정도로 잘 지낸다. 간혹 나도 한 성깔 한다는 점을 어필해야 할 때가 있다. 팀 안에서는 그런 부분이 꼭 필요하다. 나도 그렇고, 마테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있었는가? (@spursdab, 트위터)
“있었다. 2001년인가 2002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갈 뻔했다. 하지만 바이에른이 거절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나를 원해서 맨유가 구단과 협상을 요청했다. 바이에른은 거절했고, 나도 떠날 이유가 딱히 없었다.”

2004년 마르세유 이적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판단이었을까? (벤자민 레이노드, 트위터)
“아무 짓도 하지 않으면 실수도 없을 것이다. 오트마르 히츠펠트가 바이에른을 떠났을 때, 나의 바이에른 시간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가 은퇴하고 싶었다. 막상 가보니 문제가 많았다. 회장이 바뀌었고, 감독도 세 번이나 교체되었다. 마지막 감독(필립 트루시에)과 사이가 나빴던 탓에 바이에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즌 나는 마르세유에서 5개월, 바이에른에서 5개월을 보냈다. 바이에른은 리그와 컵대회에서 우승했고, 나는 분데스리가 최우수 레프트백으로 선정되었지만, 마르세유에서는 내가 이미 끝난 선수라고 비난했다. 내 나름대로 적절히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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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으로 복귀해서 등번호 69번을 달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혹시 놀림감이 되진 않았는가? (앤디 무디, 렉섬)
“당연히 놀림을 당했다! (웃음) 내가 달았던 등번호 3번을 루치우가 달고 있었다. 내 모든 최고의 순간을 함께했던 번호였기 때문에 나는 “어쩌지? 몇 번을 달아야 하지?”라고 당황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1969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키는 169cm였고. 그래서 69번을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른 해석을 해댔지만, 어쨌든 그런 점도 축구에서는 참 재미있는 것 같다.”

2002년 월드컵과 유로2004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제임스 드마르코, 스털링)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는 메이저 대회 2연속 우승, 스페인은 3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스페인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우리는 4년 동안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켰으니까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면, 여기저기서 다양한 제안을 받기 때문에 초심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2002년 월드컵(조별리그 탈락)에서는 주축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아쉬웠다. 첫 경기에서 세네갈에 패하면서 일이 꼬였다.”

은퇴 후 그냥 재미로 사람들을 두들겨팼다는 것이 사실인가? (숀 암스트롱, 페이스북)
“재미삼아 두들겨팼다고…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주짓수는 그런 게 아니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고 무척 재미있는 무도이다. 10년째 하고 있는데 정말 재미있다. 건강에도 좋다. 현역 시절에도 도움이 되었다. 상대의 힘을 어떻게 이용해서 그들을 막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정말 유럽 주짓수 챔피언이 되었던 건가? 당신이 월드컵 우승자라는 사실을 알면 상대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렉 브루스, 울버햄프턴)
“(웃음)다들 나를 죽이려고 했다! 대회에 세 번 출전했었다. 처음 출전했던 대회에서 누가 내게 “우리가 널 죽여버릴 거야!”라고 으르렁댔다. 하지만 내가 우승했다! 나는 파란띠였고, 동년배 부문에서 챔피언이 되었다. 대회 참가자가 약 500명 정도였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축구 외에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데스 고흐, 페이스북)
“어릴 때 테니스, 축구, 서핑, 스키, 요트, 럭비, 핸드볼, 육상, 펠로타(바스크 전통 스포츠; 스쿼시와 닮았다)를 해봤다. 뭐든지 나는 좋아했다. 지금은 자연 속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서핑을 즐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스포츠인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알프스로 스키 타러 자주 간다. 사이클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다 해보려면 아마 500년은 걸릴 것 같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서핑과 다이빙을 즐기고 싶다. 최근에는 폴리네시아에서 다이빙을 즐기는데, 상어 200마리가 우글거린다. 환상적인 경험이다. 스포츠를 멈출 수가 없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사진=포포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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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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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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