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살라보다 드로그바? EPL 누빈 아프리카 선수들

기사작성 : 2018-03-19 17:59

- 잉글랜드 정복 앞둔 이집트 왕자
- 살라 이전에 드로그바가 있다
- 은들로부부터 드로그바까지, 살라가 지워야 할 이름들

본문


Responsive image
[포포투=Jamie Roberts]

‘이집트 왕자’는 잉글랜드 정복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을까. 왓퍼드전에서 4골을 몰아넣고 프리미어리그 득점 단독 선두에 오른 걸 보면 그럴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모하메드 살라가 진짜 대관식을 치르려면 이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보다 앞서 프리미어리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아프리카 선수들이다. <포포투>가 정리했다.

15. 피터 은들로부(짐바브웨)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부터 코번트리에서 활약했다. EPL 초창기에 큰 사랑을 받았다. 1992-93시즌 EPL 출범 당시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선수였고, 첫 시즌 7골을 넣으며 믹키 퀸(17골)과 함께 좋은 호흡을 보였다. 1993-94시즌 아스널로 이적할 뻔했지만 불발됐다. 성사됐다면 당시 몸값으로는 최고 기록이었다. 1997년 2부리그 버밍엄으로 이적했다. 그곳에서도 최고 선수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4. 토니 예보아(가나)
EPL 초창기 하이라이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보아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포알 같은 슈팅을 떠올릴 수 있다. 1995년 리버풀전에서 나온 골이다. 예보아의 발끝에서 터진 중거리슛이 크로스바 하단을 때린 뒤 골라인을 넘어섰다. 이 경기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예보아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두 차례 득점왕에 오른 뒤 리즈로 이적해 66경기에서 32골을 기록했다. EPL에서 뛴 기간은 2년 반 밖에 안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리즈에서 세 차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이달의 골’ 단골 후보였다.

Responsive image
13. 사디오 마네(세네갈)
잘츠부르크에서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한 뒤 EPL 스타덤에 올랐다.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2분56초 만에 해트트릭을 작성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2016년 여름 3천400만 파운드 이적료에 리버풀로 옮겼다. 첫 시즌 27경기에서 13골을 넣는 활약으로 리버풀 ‘올해의 선수’가 됐다. 이번 시즌 안필드에서는 살라, 피르미누와 함께 공격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며 쿠티뉴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다.

12. 로렌(카메룬)
2003-04시즌 무적의 아스널에서 콜로 투레와 함께 백포(back 4)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당시 로렌은 팀의 모든 대회에 참가해 47경기를 소화했다. 아스널에서 6년 동안 242경기에 출장한 ‘근속맨’이다. 로렌이 마요르카에서 아스널로 옮길 당시 이적료는 720만 파운드였다. 당시 수비수에게 매겨진 몸값으로는 꽤 비싼 금액이었다. 주전 라이트백이었던 리 딕슨을 대체하는 자원이 됐다. 좋은 선수였다.

Responsive image
11. 루카스 라데베(남아프리카공화국)
11년 간 리즈를 지켰다. 250경기 넘게 뛰는 동안 골 기록 하나 없었지만, 대신 골을 내주지 않는 수비에 능했다. 윌킨슨 체제(1988-1996)에서는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 조지 그래엄(1996~2001)이 지휘봉을 잡은 후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리즈 주장 완장을 찬 1999-2000시즌에는 팀을 프리미어리그 최고 순위(3위)까지 올려놓고 UEFA챔피언스리그 출전 자격도 가져왔다(다음 시즌 대회 준결승 진출). 라데베는 올드 트래퍼드행 유혹을 뿌리친 적 있다. 그래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찬사를 받았다. 자국 지도자 넬슨 만델라에게선 ‘스포츠 영웅’이라는 말도 들었다.

10. 콜로 투레(코트 디 부아르)
두 개의 다른 클럽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주역이 되는 독보적 성과를 냈다. 아스널로 이적하기 전, 자신을 보러 훈련장에 온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 태클을 시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는 2003-04시즌 EPL 무패 우승 주역이 됐다. 아스널에서만 300경기 이상 출전 기록을 남겼다. 맨체스터 시티로 옮긴 후 2011-12시즌에 타이틀을 추가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리버풀에서 활약했다. 이 즈음 수비력은 저하됐지만,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성격만큼은 여전했다.

Responsive image
9. 존 오비 미켈(나이지리아)
잉글랜드에서 처음 유명세를 탄 건 2005년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후 1년여 동안 맨유와 첼시 사이를 오가는 이적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그는 결국 2006년 1천600만 파운드의 몸값에 첼시로 합류했다. 미켈은 첼시에서 11년 동안 374경기에 출전했다. 두 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타이틀을 들어올렸고, 네 차례 FA컵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각종 타이틀을 얻었다. 득점 기록은 6골밖에 안된다. 하지만 뛰는 내내 침착했던 스타일은 첼시의 엄청난 자산이 됐다.

8. 야쿠부(나이지리아)
지난해 코번트리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3경기 출전-무득점). 하지만 포츠머스와 미들즈브러에서 뛰던 2000년대 중반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포츠머스에서 36골을 터뜨렸고, 보로에서는 35골을 만들면서 팀을 UEFA컵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2007년 에버턴이 그를 데려가는 데 쓴 돈은 2천500만 파운드. 클럽 사상 최고액 이적료였다. 구디슨파크에서의 첫 시즌에는 21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지만 이후 부상으로 고생했다. 레스터 시티 임대를 거쳐 2011-12시즌 블랙번에서 17골을 남겼다. 100골에 5골이 모자란 기록을 만들고 프리미어리그를 떠났다.

Responsive image
7 제이-제이 오코차(나이지리아)
2000년대 초반 볼턴에 관한 기억은 볼과 함께하는 오코차의 현란한 발기술이 주를 이룬다. 그의 스타성은 이반 캄포와 유리 조르카에프를 포함한 빅스타들의 계보를 잇는다. 볼턴을 강등 후보에서 유럽 클럽 대항전에 도전하는 팀으로 바꿔놓았다. 2004-05시즌 그들은 역대 최고 순위인 6위에 올랐다. 오코차는 리복스타디움에서 뛴 4년 동안 볼턴 팬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안겼다. 특히 2003년 웨스트햄을 상대로 꽂아넣은 결승골의 잔상이 강렬하다.

6. 은완코 카누(나이지리아)
1999년 4천15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하이버리로 입성했다. 아스널에서 197경기를 소화하면서 두 번의 리그 타이틀과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카누 최고의 순간은 1999-2000시즌 첼시전에서 나왔다. 아스널이 0-2로 뒤진 상황에서 15분 동안 해트트릭을 폭발하며 역전승을 주도했다. 2004년 아스널을 떠난 후 웨스트 브롬과 포츠머스를 거치면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8년 FA컵 결승전에서는 포츠머스 소속으로 결승골을 터뜨려 해리 레드냅에 트로피를 안겼다.

Responsive image
5. 엠마누엘 아데바요르(토고)
경기장 밖에서는 유별난 언행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6년 모나코에서 아스널로 이적하면서 화제를 모았고, 2007-08시즌 통틀어 30골을 기록하면서 절정에 올랐다. 2009년 ‘신흥부호’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2009-10시즌 아스널전에서 예의 ‘악습’이 튀어나왔는데, 골을 넣고 반대편에 있던 아스널 팬들 앞으로 달려가 자축 세리머니를 펼쳤다. 2011년 레알마드리드 단기 임대 후 또 한번 아스널 팬들을 화나게 했다. 지역 라이벌인 토트넘으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토트넘에서는 113경기 출전에 42골을 기록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크리스털 팰리스 시절에는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2016년 15경기에서 단 한 골만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그가 남긴 골은 모두 97골. 아프리카 선수 중 두 번째로 많은 골이다.

4. 리야드 마레즈(알제리)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 메달을 딴 알제리 1호 선수.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동화같은 우승을 만들어낼 당시 레스터 핵심 멤버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37경기에서 17골을 넣었다. PFA올해의 선수상 수상은 그에 대한 보상이었다. 사실 레스터로 이적하기 전, 지인과 가족들은 잉글랜드행을 만류했다. 그의 스타일이 잉글랜드 축구에 맞지 않을 거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2014년 잉글랜드 2부리그에서부터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지금은 유럽 최고 클럽들이 탐내는 윙어가 됐다. 2018년 맨시티의 뒤늦은 관심이 이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어디로 가든, 2018-19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시 뛰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Responsive image
3. 마이클 에시엔(가나)
2005년 첼시로 이적했을 당시 그의 몸값은 2천440만 파운드. 클럽 최고 이적료였다. 2007년 첼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첫 아프리카 선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 시즌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터뜨린 벼락같은 골도 첼시 ‘올해의 골’로 선정됐다. 잉글랜드에서의 생활은 9번째 트로피(2011-12 UEFA챔피언스리그)를 들어올린 후 부상으로 서서히 끝났다. 하지만 첼시 팬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에시엔의 ‘소름돋는’ 경기력을 추억할 것이다.

2. 야야 투레(코트디부아르)
잉글랜드에 네빌 형제가 있다면 코트디부아르에는 투레 형제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2010년 형 콜로가 먼저 옮긴 맨시티에 합류했다. 야야는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부터 8골8도움을 기록하며 이름값을 했다. 중앙 미드필더지만 세트피스 상황에 특화한 파괴력으로도 유명했다. 현재까지 맨시티에서 80골 이상 기록 중이다. 그중 24골이 2013-14시즌에 나왔다. 두 번째 리그 타이틀을 얻은 시즌이었다. 최근 입지는 다소 줄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Responsive image
1.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2004년 2천400만 파운드로 첼시에 합류했다. 초반에는 팬들에게 그만한 이적료를 납득시키기 위해 분전해야 했다. 그러나 2012년 첼시에서의 첫 번째 시간이 끝났을 때는 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존경받았다. 모든 대회 통틀어 341경기에서 157골을 남겼다. 다시 첼시로 돌아온 2014-15시즌에는 자신의 우승 경력에 네 번째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추가했다. 앞서 첼시와 함께 FA컵(4회), 리그컵(3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팀에 우승을 안겼다. 2012년 바이에른 뮌헨과 결승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연장까지 몰고 갔고,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슈팅에 성공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동안 드로그바는 빅게임에 강한 선수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했다.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던 날, 동료들은 그를 가마에 태워 보내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첼시의 왕'으로 대접받을 만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writer

by 편집팀

남들보다 442배 '열일'합니다 @fourfourtwokorea
트렌드
포포투 트렌드

[영상] 카메룬 대표팀은 왜 원피스 유니폼 입었나

포포투 트렌드

[영상] 송민규는 어떻게 30분만 뛰어도 눈에 띄냐..

Responsive image

2020년 8월호


[COVER] MORE THAN A HERO, MORE THAN A GAME
임영웅이 쓰는 영웅들의 이야기
[SPECIAL] 세계가 사랑하는 그 이름 브라질
히바우두, 베베투&호마리우, 호비뉴, 피르미누, 호베르투 카를로스, 마르타
[INTERVIEWS] 야프 스탐, 주니오, 팔로세비치, 이정협&이동준,
[READ] PHEONIX THE SNAGMU: 군팀 상무는 무엇으로 사는가+김태완 감독 인터뷰

[브로마이드(40x57cm)] 임영웅(2면), 리오넬 메시, 프란체스코 토티
주식회사 볕
07806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중앙2로 35(이너매스마곡2), 821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김도영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9-서울강서-2752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