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파리생제르맹 잡학사전

기사작성 : 2017-08-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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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홍재민]

‘여기 이곳은 파리.’

파리생제르맹(PSG)의 홈경기장 파르크데프랭스에 걸린 문구다. ‘파리의 자존심’, ‘파리의 자랑’ 등이 아니라 그냥 파리(Paris)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클럽 엠블럼에는 에펠탑이 새겨져 있다. PSG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카타르 자금이 노리는 포인트는 PSG가 아니라 바로 ‘파리’ 그 자체일지 모른다.

2017-18시즌 유럽 축구의 최대 화두는 PSG다. 빅5 리그 중 TV중계권료가 가장 낮은 리그의 클럽이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것은 분명히 기이한 현상이다. 그들은 메가클럽 바르셀로나의 현역 슈퍼스타를 데려오는 초강수를 뒀다. 유럽 최고 기대주도 손에 넣기 일보 직전이다. 뭘 해도 근사한 도시의 축구 클럽에 어울리는 겉모습을 갖추기까지 PSG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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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시작

1970년 8월 12일 창단되었다. 파리의 사업가들이 모여 ‘파리FC’라는 이름 하에 창단 계획을 세웠다. 파리다운 빅클럽이 필요하다는 뜻이 모인 결과였다. 이들은 파리 서북부에 연고를 둔 생제르맹앙레와 합쳐 ‘파리생제르맹’을 탄생시켰다. 2부에서 시작한 첫 시즌 만에 1부로 승격했지만, 이듬해 내분에 따라서 클럽이 다시 둘로 쪼개졌다. 프로 정체성을 유지한 파리FC는 1부에 남았고, 아마추어 클럽으로 남은 PSG의 위치는 3부로 재조정되었다.

당시 PSG의 경영을 이끈 인물은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한 다니엘 에스테였다. 1973-74시즌 PSG는 1부로 복귀했고, 1974-75시즌부터 본격적인 1부 행보가 그려진다. 열정적인 사업가인 에스테가 클럽 회장직을 맡았고, 세 번째 재개발로 문을 연 파르크데프랭스를 홈경기장으로 사용하기로 파리 시의회와 계약을 맺었다. 참고적으로 같은 시기에 파리FC는 2부로 강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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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에스테가 입장권 중복 판매 혐의로 물러난 회장직에 프란시스 보렐리가 앉았고, 이때부터 PSG는 성공을 맛보기 시작한다. 클럽 최고 레전드인 루이스 페르난데스를 중심으로 전력을 강화한 PSG는 1982년 프랑스컵을 제패해 창단 첫 우승을 안았다. 1983년 프랑스컵을 지킨 PSG는 1985-86시즌 감격의 리그앙 첫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프랑스 1부 통산 우승 횟수는 생태티엔이 10회로 가장 많고, 마르세유(9회), 낭트, 모나코(이상 8회), 리옹(7회), 다음이 우승 6회인 PSG(보르도, 랭스 동률)다.

★ 카날플뤼(+)

PSG의 역사에서 케이블TV 방송사업자인 <카날플뤼(+)>를 빼놓을 수 없다. 1986년 PSG는 리그앙 챔피언이 되었지만, 베르나르 타피 회장이 이끄는 마르세유가 급부상했다. 마르세유는 1988-89시즌부터 리그앙 4연패를 달성했다. PSG는 경영 악화까지 겹쳐 보렐리 회장이 물러났다. 여기서 카날플뤼가 자크 시라크 파리 당시 시장과 협조를 등에 업고 PSG의 지분 40%를 인수했다. 카날플뤼가 유료 가입자 확보를 위한 방편으로 스포츠를 우선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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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시는 PSG의 부채 5100만 프랑을 탕감해줬을 뿐 아니라 3000만 프랑을 지원했다. 카날플뤼의 현금 지원까지 보태진 덕분에 PSG는 단번에 부자가 되어 베르나르 라마, 폴 르 구엔, 다비드 지놀라, 유리 조르카에프, 히카르두, 레오나르두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했다. 금상첨화 라이벌 마르세유의 승부조작이 폭로되면서 PSG의 부흥을 도왔고, 인수 1년 후에는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는 대형 호재도 터졌다.

이 시기의 리그앙 우승은 1회에 그쳤지만, 유럽 무대에서 활약해 국제적 명성을 얻는 기틀을 마련했다. 1994-95시즌에는 레전드 루이스 페르난데스가 지휘봉을 잡아 UEFA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했고, 1996년에는 UEFA컵위너스컵에서 우승해 마르세유에 이어 유럽 타이틀을 거머쥔 두 번째 프랑스 클럽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리그 7연패라는 초유의 기록을 앞세운 올랭피크 리옹에 밀려 PSG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 카타르 국영 프로축구단

2008년부터 서서히 전력을 되찾던 PSG는 2011년 일대 변혁을 맞이한다. 1991년 카날플뤼의 인수를 닮은 카타르투자청의 등장이었다. 2010년 12월 예상을 뒤엎고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카타르는 2011년 4월 투자청을 앞세워 PSG를 인수했다. 총책임자는 젊은 시절 카타르 통치자와 테니스 복식 국가대표 파트너였던 나세르 알-켈라이피였다. 구세주라는 점에서는 30년 전 카날플뤼와 닮았지만, 자금력 면에서 카타르투자청은 전혀 달랐다.

첫 이적시장에서 PSG는 당시 최대어였던 하비에르 파스토레를 영입했다. 이듬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구 시우바를 데려왔고, 2013년 에딘손 카바니, 2014년 다비드 루이스, 2015년 앙헬 디 마리아를 차례로 샀다. 그리고는 올여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네이마르 영입에 성공했다. 카타르발 스폰서십을 앞세운 PSG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재정페어플레이 규정을 우회하며 막대한 지출을 거듭하고 있다. 2012년 2,941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6년 6,933억 원으로 수직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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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파이낸셜타임즈> 인터뷰에서 알-켈라이피 회장은 “5년 내로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는 최정상급 클럽이 되고 싶다. PSG 브랜드 가치로 10억 유로(약 1조3308억 원) 수준을 목표하고 있고, 우리는 해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7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PSG의 가치를 8억4100만 달러(약 9,486억 원)로 산정했다. 하지만 유럽 무대 성적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 초 중동 언론 인터뷰에서 주카타르 프랑스 대사인 에리크 셰발리에는 “프랑스 기업 120개 사가 카타르 현지에 진출했으며 프랑스 내 카타르의 투자는 22조5760억 원에 달한다”라고 밝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카타르 자본을 프랑스로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카타르 양국의 비즈니스 관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사르코지는 카타르의 PSG 인수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현재 2022년 월드컵 유치 비리 혐의로 조사 받고 있다.

★ 즐라탄과 네이마르

현존 최고의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호날두-메시’의 유일한 대항마 네이마르가 PSG와 파리를 상징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2011년 즐라탄은 바르셀로나를 떠나 에펠탑 아래에 섰다. 파리와 PSG, 즐라탄의 교집합은 화려함이었다. 카날플러스 TV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한 즐라탄은 축구 게임에서 PSG를 선택한 소년에게 “너는 이미 2-0으로 이겼어”라고 말했다. 소년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라고 말하자 즐라탄은 “할 필요도 없어. 즐라탄과 함께 있으면 무조건 이겨”라고 말했다. 즐라탄이 있는 동안 PSG는 리그앙 4연패를 달성했다. 프랑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즐라탄하다(zlataner)’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였다.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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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G와 네이마르의 공통분모는 야망이다. 앞선 설명처럼 PSG는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해 ‘최강 클럽’이 되고 싶어 한다. 의지의 표현이 올여름 네이마르 영입이었다. 네이마르 역시 ‘넘버원’이 되겠다는 야망이 불타고 있다. 브라질 에이스에게 발롱도르 수상은 의무시된다. 2007년 카카 이후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탓에 브라질 축구계는 네이마르에게 거는 기대가 어느때보다 크다. 바르셀로나에서 우승을 차지해도 리오넬 메시에게 밀릴 것이 뻔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네이마르는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만약 PSG가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다면, 네이마르와 브라질의 염원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 경기장 안의 성공

카타르 시대 개막으로 PSG는 경기장 바깥에서 빅클럽이 되었다. 이제 안에서 성공이 필요하다. 2012-13시즌부터 PSG는 5연속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지만, 지금껏 8강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클럽 역대 최고 기록(4강)에 가지 못했다는 조바심이 네이마르 영입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이번 시즌에서도 챔피언스리그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내년 여름의 지출 대상은 초대형 감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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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챔피언스리그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빅이어에 입을 맞추기까지 9년을 기다렸다. 맨체스터 시티에 막대하게 투자하는 UAE 자본도 준결승 진출에 만족하는 중이다. 설상가상 역사적 슈퍼스타와 상업적 성공을 만끽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은 여전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계처럼’ 다툰다. PSG의 알-켈라이피 회장이 꿈을 실현하려면 그런 상대들을 제압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화려함은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곳에 있는 축구단 PSG도 큰 수혜를 받아왔다. 자유시장에 가까운 프로축구판이라면 PSG와 재력의 만남은 더욱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작품’이라고 칭하는 클래식 음악은 대부분 먼 옛날 귀족들의 고급 기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카타르와 PSG와 네이마르가 성공한다면, 그들의 족적이 후대에서 그렇게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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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파일]
-창단: 1970년 8월 12일
-홈경기장: 파르크데프랭스 (로제 타예베르 / 47, 929명 / 파리 시의회로부터 2043년까지 임대 계약)
-구단주: 오릭스 카타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 (카타르투자청 산하 투자캐피털)
-연매출: 6,933억 원 (2016년 기준, 딜로이트 ‘머니리그’)
-우승: 리그앙 6회, 프랑스컵 11회, 리그컵 7회, 슈퍼컵 7회, UEFA컵위너스컵 1회, UEFA인터토토컵 1회
-최다 출전자: 장-마르크 필로제(435경기)
-최다 득점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156골)

사진=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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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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