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io.told] 토티의 불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기사작성 : 2017-05-04 15:56

- 그의 앞에서 충성심을 논하지 말라
- 위대한 영웅 프란체스코 토티의 역사를 알아본다

본문


[포포투=Andrew Murray]

(편집자 주: 본 기사는 <포포투> 2016년 2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저 꼬마를 넣어, 어서.” 부야딘 보슈코프는 교체 지시를 기다리는 미드필더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에게서 고개를 돌려 로마 벤치에 앉아 있던 16세 금발 소년을 바라보았다. 지알로로시(로마 애칭)는 경기 종료를 5분 남기고 브레시아에 2-0으로 앞서고 있었다. 실망스러운 시즌이 끝나가던 1993년 3월 말이었다.

보슈코프는 22세 공격수 로베르토 무치 옆에 앉아 있던 소년에게 다가가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풀어”라고 지시했다.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치가 “이봐, 너한테 얘기하는 거야. 네가 나간다고”라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토티는 당시를 “10초 정도 몸을 푼 뒤에 바로 경기에 투입됐다. 겨우 두세 번 공을 만진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너무 신이 나고 행복했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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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아버지 로렌초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피오렐라 사이에서 태어난 토티는 언제나 눈에 띄는 아이였다. 포르티투도에서 처음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고, 스미트 트라스테베레를 거쳐 10세부터 13세까지 로디지아니에서 훈련을 받았다. 당시 지도자 에미디오 네로니는 “열 살 때 프란체스코는 작고 빨랐다. 타고난 재능이 보였다. 그는 유전자에 축구를 품고 태어났다”라고 말한다.

라치오를 뿌리치고 로마에 남기로 한 토티는 자기보다 두 살이 많은 15세 팀에서 뛰었다. 그는 1991년 UEFA컵 결승 2차전에 볼보이로 나섰고, 로마 선수가 되는 일에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그해 후반 토티는 17세 이하 팀의 리그 우승을 도왔다. 에지오 셀라 감독은 “그는 거친 태클을 모두 뛰어넘었다. 2-0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두 골을 모두 만들어냈다. 기술을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런 건 시간 낭비였다”라고 말한다.

1993년 3월 브레시아 원정을 나서던 보슈코프 감독이 토티(16세)를 데려갔다. 20세 이하 팀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토티는 하프타임 교체되어 그 길로 1군 버스에 올랐다. 다음날이 토티는 루지에로 리치텔리와 교체되어 1군 데뷔를 신고했다. 리치텔리는 “1군에서 훈련한 유망주는 많았지만 토티는 달랐다. 훈련에서 1군 선배를 상대로 알까기를 선보이는 꼬맹이는 많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를 어딘가에 숨기고 싶었다. 17살에는 흥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어진 18개월 동안 토티는 카를로 마초네 감독 아래서 1군 경험을 쌓았다. 마초네 감독은 안드레아 피를로를 딥라잉미드필더로 변신시킨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부자지간처럼 지낸다. 마초네는 “토티가 얼마나 뛰어난지 떠벌리는 스태프가 있으면 화를 면치 못할 거라고 엄중경고했다. 누구든 그의 성장을 망치는 건 원치 않았다. 거의 그를 어딘가에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17살에는 금방 흥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1994-95시즌 개막일 포지아전에서 토티는 프로 데뷔골을 터트렸다. 그는 형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으로 자축했다. 가족은 그에게 자전거를 선물했다. 토티는 “삼촌이 산악자전거를 사주기로 했었다.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직접 살 수도 있었지만 계속 자전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늘 어떤 목표를 갖는 게 도움이 됐다.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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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컵 없이 세 시즌을 보낸 마초네가 1996년 여름 해고되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카를로스 비안키가 왔다. 비안키는 클럽의 새로운 간판스타를 싫어했다. 1996년 그는 초기 임대를 조건으로 삼프도리아로 이적하려고 했다. 토트넘도 토티에게 관심을 보였다. 토티는 잔류했고, 로마가 세리에A 하위권에 처했던 4월, 비안키 감독은 프랑코 센시 회장에게 “토티와 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토티가 남았다. 1997-98시즌 즈데넥 제만이 비안키를 대신했다. 토티는 10번을 받았고, 1년 뒤 22세로 세리에A 역대 최연소 주장이 되었다.

1999년 파비오 카펠로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카펠로는 토티와 빈센초 몬텔리,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로 공격진을 꾸몄다. 공격 3인은 로마가 2000-01시즌 세리에A에서 터트린 68골 중 47골을 합작했다. 바티스투타는 “토티는 내가 함께 뛰어본 공격 파트너 중 최고였다. 판단이 빨랐고 스트라이커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토티와 카펠로의 만남은 이혼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완고했고, 독선적이었다. 근엄한 감독과 무정부주의적 리더는 차츰 멀어져 2004년 끝나고 말았다(카펠로가 떠났다).

가짜 9번의 탄생

토티는 나이에 따라 진화하는 능력을 소유했다. 회복할 수 없는 약점을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대신에 자신의 강점에 집중했다. 토티의 진정한 전성기는 루치아노 스팔레티와 함께 만들었다. 스팔레티의 두 번째 임기에서 30대 토티는 4.5시즌 동안 세 시즌을 리그 2위로 마쳤고, 코파이탈리아 우승 2회를 기록했다.

성공 요인은 토티의 적응력과 축구 지능이었다. 2005년 12월 삼프도리아전에서 카사노와 빈센초 몬텔라, 샤바니 농다가 모두 다치는 바람에 토티가 유소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최전방 공격수로 뛰었다. 그는 평범한 타깃맨 역할을 거부했다. 전진하는 만치니와 로드리고 타데이, 시모네 페로타의 뒤로 처져 마크맨을 곤란하게 했다. 따라갈 것인가 놓아줄 것인가? 그게 문제로다. 그렇게 4-6-0 포메이션이 만들어졌다. 로마는 당시 세리에A 기록이었던 11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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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티는 리그 24경기에서 15골을 몰아쳤지만, 2006년 2월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 다행히 개인 트레이너 비토 스칼라와 노력한 끝에 토티는 그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 아주리가 네 번째 월드컵을 들어 올리는 동안 토티는 팀의 7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대회 공동 도움왕(4개)을 차지했다.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토티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토티는 “몸상태가 30%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2006-07시즌 토티는 리그 2위, 코파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50경기 32골 15도움을 기록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4년 9월 38번째 생일을 보낸 토티는 사흘 뒤 열린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골을 넣어 UEFA챔피언스리그 역대 최연장 득점자가 되었고, CSKA 모스크바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터트리며 기록을 연장했다.


“토티가 뛰는 걸 20년 넘게 봤다며 자랑할 것이다”


지난 25년간 토티는 로마 사투리를 고수해 손해를 봤다. 2002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로마인이 되기 위해 대가를 치렀다”라고 주장했다. “내 억양과 매너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 아마 로마에 위대한 선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을 거다. 인종주의라는 말은 너무 무거우니 차별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나는 로마인으로 태어났고 로마인으로 죽을 것이다. 절대 이 팀을, 이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토티는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사랑받는다. 로마 더비는 토티가 만든 장면으로 기억된다. 1999년 3-1로 승리한 경기에서 악명 높은 골 뒤풀이는 그 자체로 전설이 되었다. 2004년에는 TV카메라를 빼앗아 스타디오 올림피코를 돌았다. 2015년 1월에는 서포터즈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라치오 골수팬인 파올로는 “그가 축구화를 벗는 날이 오면 샴페인을 한 박스 보내줄 거다!. 미운 마음이 있지만 존경심도 있다”라고 말한다.

토티의 축구 경력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지도자일 제만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로마의 모든 서포터즈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토티가 뛰는 걸 20년 넘게 봤어’. 거기에 나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를 두 번이나 감독을 했지’라고.”

이 남자가 로마의 신이다. 영원의 도시 곳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벽을 장식한 채 자신이 이룬 것들을 지켜보는 투사다. 우승컵 대신 그가 한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라. 맞다, 라치오의 팬들에게조차 그의 의미는 남다르다. 토티가 성취한 것들은 영원히 공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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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파일★
- 이름: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 생년월일: 1976년 9월 27일
-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 프로경력: AS로마(1992~현재, 783경기 307골)
- A매치: 58경기 9골
- 수상: 세리에A 우승 1회(2001), 코파이탈리아 우승 2회(2007, 2008), 수페르코파 우승 2회(2001, 2007), FIFA월드컵 우승 1회(2006)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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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Murray

Twitter @Andy_MurrayF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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